LA평통 ‘남북이산가족 상봉’ 물꼬 <오늘의 남북 이산가족상봉 무엇...

이 뉴스를 공유하기































 ▲ 신남호 LA평통회장
민주평통 LA지역협의회(회장 신남호) 방북단이  해외평통의 이름으로  이산가족상봉을 처음으로 실현 시켰다. 비록 6명의 이산가족들이 북에 있는 가족 친지들을 만났지만 평통의 이름으로 양측이 공식적으로 실현시켰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게한다.
현재 한반도 문제를 다루고 있는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진 시점에서 미국의 LA평통이 이산가족상봉 사업의 물꼬를 공식적으로 텄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이번 평통의 이산가족상봉 방북은 신남호 회장이 경영하는 중국 선양 사업체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아 오다가 지난 2월10일 방북 시기 방문단 인원과 구성 일정 등 을 타결지어 4월 중 방북을 계획했다가 1개월 지연된 후 실현됐다.
LA평통 방북단은  지난달 13일 LA공항을 통해 출국해 중국 심양을 거처 16일부터 22일까지 북한에 체류하면서 평양시내와 개성 판문점 아리랑 축전 등을 둘러보는 7박8일간의 일정을 소화했다. ‘미주동포 평양방문단’으로 공식 명명된 이번 방북단은 LA평통 현직위원과 실향민 6명 등 총 17명이었다. 이번 방북에서 이산가족들은 평양이 아닌 고향 현지에서 북한의 가족들과 하룻밤을 지내기도 했다.
이번 북한 방문은 LA평통과 북한의 해외동포원호위원회측간의 5개월에 걸친 조율 작업 끝에 성사됐다. 이번 방북단을 계기로 남북이산가족상봉의 성과와 문제점을 분석한다. 
                                                                                      <성 진 취재부 기자>


 











한국전쟁으로 약 1천만명의 이산가족들이 생겨났으며, 미국 한인사회는 적어도 약 20-40만명의 이산가족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미주한인사회는 1980년대부터 일부 미시민권자 한인이 비밀리에 방북해 가족과 만나는 사례가 있었다. 본격적이고 공식적인 남북이산가족 상봉은 2000년 부터 였다.
지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 후 공동선언문 정신에 따라 그 해 8월 남북이산가족상봉 이 실현됐다. 당시 8월 13일자 뉴욕타임스는 1면 머리기사와 함께 4면 전면을 할애한 서울발 기사로 50년전 헤어졌던 혈육과의 상봉에 충격과 감동으로 가슴 부풀어 있는 이산가족들의 사례를 자세히 소개했다. 이 신문은 특히 지난 60년대 북한에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각종 탄압을 받았던 김남식(85)씨 가족이야기를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소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리고 뉴욕타임스는 “김정일 위원장이 북한주민들에게 잘사는 남한의 혈연들을 만나도록 허용한 것이야말로 지난 94년 김일성주석의 사망이래 김위원장 최대의 정치적 도박”이라고 평했다.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은 “이산가족의 상호방문은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공동선언의 중요한 기둥이고,그 실현은 남북간 교류와 협력의 확대를 상징하는 제1보”라고 평가했다.
한반도에서 6.25 전쟁 이후 남북이산가족 상봉은 1985년 처음으로 실시됐다. 그 해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으로 역사적인 첫 상봉이 이루어졌었다. 당시 남측 35명과 북측 30명만이 가족을 만났다. 제1차 고향방문단 교환 후 2차 방문단에 대한 협의가 있었으나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울타리 상봉 
 











 
첫 상봉 이후 15년이 지난 2000년, 6.15 남북 남북정상회담 결과 발표된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이산가족문제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로 합의했고, 이후 남북적십자회담이 개최되어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생사·주소 확인, 서신교환 등 시범적 사업이 논의되었다.
그리고 2000년 8월 역사적인 제1차 이산가족방문단 교환이 성사되었으며, 현재까지 이산가족 방문 상봉이 이어지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은 제3차까지는 남북의 이산가족이 서로 남북을 방문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으나, 4차부터는 금강산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2005년 8월 15일엔 분단후 처음으로 서울과 평양, 그리고 평양과 인천·수원·대전·대구·광주·부산 등 남쪽 도시를 서로 연결한 화상상봉이 이루어졌다.
남쪽에서 상봉자 20명과 그 동반가족 57명이 북쪽 가족 50명을, 북쪽에서는 상봉자 20명이 남쪽 가족 79명을 각각 화상으로 상봉해, 모두 226명이 참여했다.
미주에서는 1980년대 미시민권자인 미주한인 학자, 종교인 등 일부가 비밀리에 방북해 가족을 만난 사례가 이산가족 상봉의 시초다. 당시는 북한을 방문하는 자체가 한국정부 보안법 위반사항이었다. 그러다가 노태우 대통령 시절 ‘미주동포의 방북허용’ 정책 으로  미시민권자 한인들의 방북이 조금씩 늘어났다. 하지만 방북자체가 북한정부의 허가가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이산가족방문은 극히 제한되었다. 지난 동안 미주동포들의 방북은 주로 친북단체들이 주도하여 왔으며 이중에는 일부 종교인들이 북한선교와 함께 극히 제한적인 이산가족상봉을 도왔다.
그러나 이 모든 이산가족상봉은 어디까지나 비밀이었고, 북한 당국의 사전 통제 아래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진 사실이었다. 북한 당국은 이같은 사전통제로 이산가족상봉을 주선한 대가로 ‘친북 해외’ 조직을 심기 위한 전술로 활용했다. 오직 죽기전에 가족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미시민권을 취득하고 북한을 방문해 가족을 만난 미주동포들 중에는 후회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오렌지카운티에 거주한 A씨는 90년대 방북해 가족을 만난 이후 직접간접으로 시달림에 정신적 고통으로 살아가고 있다. 북한에 가족들이 송금을 계속적으로 원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미주의 친북세력 단체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친북활동에 가담할 것을 권유하여 왔기 때문이다.













가족상봉비 $3,000
 











지난 2000년 8월 남북이산가족상봉이 공식적으로 실현되자 그 동안 미주에서 비공개적으로 친북 성향의 통일운동을 펴 오면서 북미간 이산가족찾기 운동을 벌여왔던 재미동포 전국연합 (회장 윤길상)이 미주에서 이산가족상봉 사업을 실천하겠다며 공식 활동을 선언했다. 이 단체는 LA와 워싱턴 그리고 뉴욕 등지를 포함해 여러지역에 지부를 두고 있다. 지난 1월 13일 뉴욕에서 개최된 창립 10주년 기념대회에는 북한 UN대표부의 박길연 대사가 참석해 축사까지 했다.
이 단체는 그 동안 이념 논란을 의식하여 비공개로 진행해 오던 이산가족 찾기 및 가족상봉 사업을 한반도의 화해기류에 따라 공개모집으로 전환해 지부 확장 사업을 병행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주에서 북한에 있는 가족을 만나려면 우선 돈이 있어야 한다. 알려진바에 따르면 방북을 위해 개인당 300 달러를 지불해야 하고, 북한의 가족을 만날 때는 3천 달러를 따로 지불해야 한다. 다시 비자 비용으로 150 달러를 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북한 왕복 항공비와 북한 내 체재비는 별도이다. 이번 LA평통 방북단에 이산가족상봉자로 허가받았던 한 사람은 이 비용들이 없어 마지막 순간에 방북을 포기했다고 한다. 이 문제를 두고 LA평통에서 많은 고민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통일부에 지원 모색을 강구했으나 소득이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한국의 통일부측은 LA평통의 이산가족상봉 계획에 대해 탐탁스럽게 여기지 않았다는 후문이 들려온다.
북한에서 해외동포들을 위한 사업을 관장하는 해외동포원호위원회는 북한을 방문했던 미주한인 들을 3등분으로 분류한다고 한다. 매달 송금도 하고 방문도 자주 오면 1등 동포이고 그것이 빈도가 낮으면 2등 동포이고, 한번 오고 북한에 헌금도 없고 연락이 불규칙하면 3등 동포로 분류한다고 한다.  어렵사리 북한 방문을 허가받더라도 50여년전 고향을 방문하기는 매우 어렵다. 북한 정권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 당성이 강한 함경도 주민들을 이주시킨 반면 평양 사람들은 함경도 등으로 강제 이주를 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DJ, 인권문제 외면
 
본격적인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실현된 2000년 8월 당시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은 “방문단은 신청자 7만6000명 가운데 100명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남북 합계 1000만명에 이른다고 하는 이산가족들의 압도적 다수에게 있어 가족과의 재회는 아직 꿈일 뿐”이라고 ‘한계’를 강조했다. 이 신문의 지적처럼 이산가족들이 상봉을 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처럼 어렵다. 한번에 고작 200여명만이 만난다는 것은 이산가족들에게 또다른 고통을 주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미주 등 해외에 있는 이산가족들이 현재 남북한 정부가 벌리는 이산가족상봉에 포함되기란 너무나 요원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 동안 일부 미주한인들은 “빨갱이” 소리를 들어가면서 방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면에서 이번의 LA평통이 처음으로 이산가족상봉을 공식적으로 실현시켰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 한 것이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 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그가 줄기차게 외처온 인권문제에 있어 결정적 순간에 이를 외면했다.  그는 북한이 90년대부터 줄기차게 요구해온 미전향장기수를 전원 북송한다고 6.15선언문 제3항에 명기하는데 승인하면서 정작 정전회담 이후 마땅히 남한 고향으로 돌아와야 할 국군포로와 납북자 등에 대해서는 한자도 언급하지 않했다.
한심한 사항은 북측은 ‘미전향장기수’ 보내라고 정확한 용어를 구사하여 요구하는데 한국의  대통령, 장관, 관리들은 ‘국군 포로’ ‘납북자’라는 용어를 정확히 쓰지도 안했고 지금도 안 하고 있다.
한국정부 이재정 통일부장관을 포함한 관리들은 국군포로를 “국군포로”라 부르지 말고, 납북자를 “납북자”라 부르지 말라는 김정일 정권의 요구에 따라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사람”이라고 부르고 “국군 포로, 납북 어부”라는 표현도 안 하고 있으니 어느 나라의 관리인지 한심스럽기만하다.
미주국군포로송환위원회의 회장 토마스 정 박사는 “나라를 지키라고 싸우라고 하여 대한민국을 위해 싸우다 포로가 된 우리 국민인 국군포로를 데려오지 않는 이 정부가 과연 국민을 위한 정부인가 묻고싶다”면서 “미전향장기수는 김정일 요구대로 다 보내주면서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한사람이라도 데리고오지 못한 김대중 대통령은 반역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번에 고작 200여명 정도를 상봉시키는 현재의 조치도 매우 한심스럽다. 1년 365일을 매일 상봉을 시킨다 하더라도 1년에 불과 7만3천명 정도만 만날 수 있다. 이산가족 1천만이 모두 만나려면 매일 200명씩 한다고 하면 무려 140여년이 소요된다. 그것도 한번 밖에는 못 만나는 것이다. 두번을 만나려면 다시140여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는 또 있다. 정작 수많은 이산가족들은 편지 한 통 소식을 주고받지 못하고 극소수만이 동물원식 상봉을 하고 있어 이산가족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고 있다. 이산가족상봉은 한번 만난 이후 계속적인 만남이 돠어야 진정한 가족상봉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남북 정부간에 벌이는 이산가족사업은 한번 잠깐 만나자 다시 기약없는 이산가족이 되는 것이다.













 
이산가족상봉은 돈벌이
 











이번 LA평통의 방북단은 북한에 비료 2000여 포대와 어린이들을 위한 종합 비타민 1000명분 등 도합 약 3만 달러에 해당하는 물품을 제공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3만 달러로 6가족의 이산가족상봉 대가로 볼 수 있다. 앞으로 인원수를 늘리려면 북한에 제공하는 비용이 그만큼 늘어나야 할 것이다. LA평통은 2005년 4월 첫번 방북에서도 북한에 물품을 선물조로 기증했다.
이제는 돈과 물품을 주지 않으면 북한을 방문할 수 없게 되어있다. 북한측은 겉으로 아니라고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북한에 선물을 주지 않으면 방북은 힘들다. 이번에 LA평통 방북단은 평양에서 체류할 때 북한 현지의 물가시세와 관계없이 외국인에게 적용되는 비싼 체류비를 지불했다고 한다. 앞으로 미주 이산가족상봉 사업이 계속 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난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긍정적인 가능성도 엿보였다. 우선은 미주 한인이산가족상봉이 계속 된다는 전제의 가능성이다. 신남호 회장은 빠르면 금년 중 한번 더 이산가족상봉을 재개하는 등 정기적 교류에 대해 북한의 해외동포원호위원회와 합의를 했다고 한다. 또한 이산가족상봉과 함께 북한과 미주한인사회와의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의 가능성도 열어 놓았다.
북한측은 미주이산가족상봉을 계속하는 조건 중에는 미주에 있는 친북단체들의 이산가족상봉과의 연계를 간접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신남호 회장은 이를 우회적으로 거부했다고 한다. 북한은 이산가족상봉 사업을 인도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보고 있다. 우리측은 이 점을 항상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편 북한측에서는 미국에 문화단체 등을 파견하는데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또 북한측은 미주한인 경제인들의 방북을 원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은 절실히 지금 경제회복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내심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바라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북한측은 미주한인사회에 대해 협력과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현실에서 미주한인사회는 무엇이 미주한인사회에 이익이 될 수 있는가를 깊이 연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미주한인사회가 북한과의 교류에 있어 미국정부의 대북정책을 이해하는 바탕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런 바탕에서 미국정부 당국에도 미주한인들의 요구사항이 관철될 수 있도록 힘쓰는 것도 한 몫이라고 볼 수 있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