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저널 창간 25주년 특별 기획 시리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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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원 원로기자
20세기만 하더라도 미국이란 ‘신세계’가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21세기가 시작하자 말자 ‘9.11사건’ 이후로 미국은 더 이상 안전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미국이 가장 부강하고 건강한 나라라는 믿음이 점점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도 보여 주었다. 선데이저널 창간 25주년을 맞는 2007년은 북한의 핵 위협과 이라크와의 전쟁으로 미국의 국론이 분열되면서 2008년 대선도 어지러운 형상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과 함께 12월 대선을 앞두고 보수와 진보의 10년 대결이 점점 가속화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한국인’들이 집단 납치를 당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인종으로 글로벌 시민으로 변해가고 있다. 따라서 미국 땅의 한 이민자로서 우리 한인들은 변화하는 세계에서 한인들의 정체성 존재를 결정짓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시간 속에 살아가야 한다.
특히 세계화로 나가는 환태평양 시대에 ‘미국 속의 코리안’으로 1세와 2세들이 더 나은 세계를 위해 꿈과 희망에 과감히 도전해야 할 시기이다. 이 도전을 위해서는 미주한인 이민 100년 역사에서 가장 암흑기였던 ‘4.29폭동’을 넘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15년 전   코리아타운이 3일 동안 화염에 덮이고 폐허가 되었다. 한인 피해자가 수만 명이 생명의 위험을 당하고 엄청난 재산피해가 발생했는데도, 미국정부는 가해자를 찾지 않고, 공권력의 책임과 처벌도 묻지 않았던 기이한 현상이 인권국가인 미국에서 발생한 것이다. 4.29폭동 후엔 희생양으로 피해를 당한 한인 커뮤니티에게 어떠한 배상이나 보상도 없었고 복구대책도 없었다. 1965년 왓츠 폭동 후 미국정부는 흑인 커뮤니티에 엄청난 복구자금을 지원했다. 역사에서 최초로 백인들에게 약탈과 수탈을 당한 인디언들에게 보상과 배상이 이루어졌다. 2차 대전 당시 수용소로 강제 수용됐던 일본인들에게도 명예회복과 보상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왜 4.29폭동에서 집단적인 피해를 당한 한인사회에 대해서는 말이 없는가. 그것은 우리가 소리를 내지 않고 정의를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진 <취재부 기자>














LA의 코리아타운은 1992년 4월 29일, 미국역사상 가장 큰 도시폭동(4.29 L폭동)의 최대 희생자였다. 폭동 3일간 무법천지가 된 코리아타운은 도시폭도들에 의해 방화, 약탈 그리고 파괴로 잿더미가 되었다. ‘아메리칸 드림’이 화마로 그을린 채 사라졌다. 불타는 코리아타운의 한인상가들 앞에서 아낙네들의 통곡소리가 비극을 보여 주었다.
약 2천3백개의 한인 업소가 파괴되고, 수만 명의 한인이민들이 생존에 위협을 당했다. 한인들의 재산피해만도 LA시 전체 피해 액수인 10억 달러의 절반 수준인 4억 달러 이상에 달했다.
그러나 15년이 흘러간 지금은 4.29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지를 의심할 정도로 잊혀져 가고 있다. 해마다 다가오는 4월 29일을 기념할 때면 커뮤니티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4.29의 비극을 잊지 말자”고 외치고 있으나, 기념식장 밖으로 나서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가’라는 듯이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닌 것처럼 되어버렸다.
이런 면에서 한인 이민역사에서 최초의 미국 일간지 기자로 활동한 이경원 원로기자가 분석한 코리아타운의 문제점은 한인사회가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닌가 한다. 그는 언론인 특유의 통찰력으로 미국에서의 인종갈등과 한인 엘리트들의 공동체 의식 부재와 커뮤니티 지도력 미비를 계속 우려해 왔다. 이 기자는 이민 2세기에 접어든 미주한인사회가 4.29의 교훈을 망각한다면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또 다른 폭동에서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


“잊혀진 사건”


이 기자가 지적한 오늘의 코리아타운의 모습은 아직도 효율적으로 단결되지 못하고, 아직도 정치력이 미약한 커뮤니티라는 점이다. 특히 공동체 의식으로 표현되는 커뮤니티 참여에서 한인사회는 극소수의 전문 엘리트를 제외하고는 코리아타운의 의사, 변호사 등등 대부분 엘리트 그룹들이 한인 커뮤니티 봉사와 참여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우선 미국사회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한인 엘리트들이 나름대로 명예와 부를 갖추었으나, 한편 이민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어렵게 살아가는 한인이민사회를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성공한 이들 한인 엘리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미국 유명대학의 박사학위, 전문분야에서의 명예와 직위 그리고 따라오는 물질적인 부를 축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어려운 한인 이민자들을 위해 가장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 한인 엘리트 전문인들에게서 ‘노블리스 오블리제 (noblesse oblige)’ 정신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세 전문 엘리트들의 ‘커뮤니티 의식 미비와 무관심을 해결하는 방안은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 이경원 원로기자는 “미국에서 새롭게 교육받은 이민자들의 2세 자녀들이 1세 엘리트들이 하지 못했던 그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기자는 “사-이-구(4.29)의 자녀”(Children of 4.29)라는 말을 즐겨 쓴다. 4.29폭동 당시 10대나 20대였던 이들이 그들의 부모세대가 겪은 아픔을 이해하면서 자신들이 이 커뮤니티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자각을 지닌 세대를 “사-이-구의 자녀”라고 부른다.
그러나 오늘 날 아이비리그의 한인 대학생을 포함한 한인 2세와 3세들 중 많은 젊은이들이 미주한인 이민역사에서 최대 수난이었던 4.29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많은 한인2세 엘리트들은 1세 엘리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직 자신들의 개인적인 명성과 가족의 이익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경원 원로기자는 “이제는 미국에서 한인 정체성을 지니고 공부를 제대로 한 2세들이 4.29의 책임을 묻는 일에 나서야 한다”면서 “한인 커뮤니티가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희망도 없다”고 단정했다.













민권운동 키워야


미국사회에서 한인들의 정치력을 기르기 위해 한인들의 결집력 강화를 강조하는 김동석 소장은 흑인 민권운동가들로부터 교훈을 얻고 있다. 김 소장은 1960년대 흑인민권운동을 이끌었던 두 지도자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는 인종차별주의 척결에 집중했다면서 인종차별이 가장 근원적인 악이며 경제적 불평등 성차별 등은 부차적인 것으로 단정했다고 보았다. 그 결과 연방의회에서 흑인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민권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민권법으로 흑인들에 대한 사회적 평등이 법으로 보장됐지만 차별은 여전했다. 흑인 빈곤층의 생활에서 나아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흑인빈민에게 가해지는 백인 부자들의 경제적 착취가 더 심해졌다. 마틴 루터 킹과 말컴 엑스는 백인 빈곤층을 포함한 흑인들에게 경제적 불평등을 각성시키는 운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김 소장이 분석하는 4.29폭동은 한인과 흑인의 갈등으로 빚어진 것이라 이해하는 한인들도 많다고 하지만 사실은 레이건 대통령 이후 미 행정부의 사회복지 프로그램 축소로 인해 극빈자가 범죄자로 둔갑하게 된 정치적 책임을 한인사회가 떠맡은 것으로 풀이했다. 김 소장은 “피해자가 통곡하며 거리를 헤매고 있음에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전혀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미국이 다인종 사회이고 사회를 지배하는 인종이 다수인 백인이기 때문에 사회곳곳에선 늘 인종차별이 성행한다고 했다. 어떠한 사회문제도 늘 인종간의 대립 형태로 보여지기 마련이다’ 라고 역설하면서 분명한 것은 인종간의 갈등에 앞서 경제적 문제가 우선한다는 것이다. 인종간의 갈등이나 집단간의 대립을 야기하는 원인은 경제적 불평등과 자본가의 부패 때문이라는 것으로 김 소장은 풀이했다.
4.29폭동 당시 LA카운티 내에는 한인 등 아시안을 포함해 라티노, 중국, 일본, 그리스, 항가리 등등을 비롯한 100여 소수인종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LA폭동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내, 특히 백인사회로부터 인종적 차별과 구조적으로 경제적 불이익을 당한 흑인사회의 분노의 표출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왜 그 많은 소수인종 중에서 유독 한인들이 이 폭동의 희생양으로 공격을 당해야 했는지를 외치는 한인들의 목소리는 적었다.
4.29 폭동 발생 전 뉴욕과 LA에서의 미국 노동조합들이 일으킨 파업과 불매운동의 대상으로 여러 인종 중에서 왜 유독 한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들을 표적으로 삼았는지에 대해 한인 커뮤니티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미국은 흔히 “이민자의 나라”라고 한다. 한인들이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면서 4.29폭동에서 억울한 피해를 당하면서도 왜 한인들은 흑인이나 라티노 그리고 일본인들처럼 자신들을 보호할 전국적인 한인 민권운동 단체를 구성하지 못했는지도 문제이다.
























 ▲ 김동석 한인유권자 센터 소장
2세는 1세의 대변자


많은 한인 이민자들은 고육수준이 높은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과 라티노로부터 ‘코리언은 심술궂고 탐욕스럽고 인종차별적이다’라는 인식을 받게 되었는지도 반성해보아야 한다. 4.29폭동에서 일부 폭동 가해자들은 백인보다도 코리안을 더 미워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한인 1세 이민자들은 미국 정착에서 가장 애로점은 언어문제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자란 1.5세와 2세들은 언어문제가 없으나, 그들의 부모세대가 격는 언어문제를 대변하는 역할을 왜 맡지 못했는지도 커뮤니티의 과제였다.
4.29폭동 당시 코리아타운을 포함한 한인사회의 구성은 타운 일원에서 거주하는 저소득층, 주로 교외지역에서 거주하는 중산층 내지 전문직 부유층, 그리고 미국사회에 동화된 한인 입양인과 혼혈인, 전직미군과 결혼한 한인여성들 및 그들의 자녀와 친척들, 그리고 이미 미 주류사회로 흡수된 초기 이민자들의 자손들 등등으로 다양한 분포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이같이 다양한 한인사회 구성원들을 커뮤니티 차원에서 어떻게 포용하고 대화를 이끌어내고 방향을 제시할지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었다는 것이 이경원 기자의 분석이다.
4.29폭동이 한인 커뮤니티에게 보여 준 것이 있다면, 한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진정한 커뮤니티 기구가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한인사회를 대변한다는 그나마 한인회 까지도 기능상실에 빠져 있었다. 또한 한인의 정당한 목소리로 대변할 수 있는 영문 일간지나 영어 방송매체가 전무했고 고작 주간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에서 최고의 학부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배출되어 미국 각 분야에서 “똑똑한 한인계”로 명성을 날리는 한인들이 많았으나 그 엄청난 폭동에서 한인들의 아픔을 대변할 아무런 구실을 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원인에 대해 이경원 원로기자는 “우리의 다원적 정치 공동체를 연결하고 통합하는 공동체 의식, 즉 커뮤니티 의식이라는 것이 완연히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 “아직도 1세 엘리트들은 관료주의적 엘리트이다”라고 밝혔다.
뉴욕의 한인유권자센터의 김동석 소장은 “4.29가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교훈은 한인은 소수계의 일원임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올바른 지도력이 필요하다”면서 “아직도 우리는 그 때의 그 교훈을 잘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LA총영사관에서 근무했던 유민 전공보관은 지난번 1세와 2세들이 공동으로 마련한 4.29 기념행사를 보면서 “1세는 2세의 자양분이다. 2세는 1세의 대변인이다. 1세와 2세가 이렇게 단합할 수 있는 행사가 15년 전에만 있었어도 4.29폭동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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