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타운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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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2007년을 뜻 깊게 보낸 코리아타운의 원로들이 있다. 이들은 본인의 나이를 무색케할 만큼 열정적인 한 해를 보냈다. 본보는 2007년을 보내면서 제2의 황금기 인생을 맞은 타운 원로들의 근황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온정을 펴는 길에 나선 정원훈 화백













 ▲ 정원훈 화백
한인 은행가의 대부인 정원훈(87)옹은 600년만의 ‘황금돼지해’가 점점 저물어 가는 것을 보며 “지금 나이에 생각하니 돈은 먹고사는 정도만 있으면 될 뿐 중요한 것은 영혼의 안정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지나온 인생을 보며 “순리대로 사는 것이 가장 편하다”며 “상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후세들에게 충고한다.
최근 자신이 초대행장을 맡았던 한미은행의 창립 25주년을 맞아  깊은 감회에 젖기도 했다. 창립 25주년 행사에서 그는 “4개 은행을 설립한 경험으로 볼 때 은행을 하나 만드는데 보통 3년이 걸린다.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미은행의 괄목할만한 성장에는 이사진과 경영진의 노력이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한미은행은 25년전 불과 580만 달러의 순수 동포자금으로 설립되어 오늘날 40억 달러가 넘는 한인 최대은행으로 성장했다.
25년 전 어렵게 동포은행이 최초로 허가를 받았을 때 정 옹은 너무 감격한 나머지 은행 허가 소식을 새벽에 조지 최 초대이사장에게 전화한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지고 있다.
그는 “한미은행 25년사는 우리 한인사회 경제활동의 하나의 지표라고 볼 수 있다”면서 “이제는 미 주류사회로 진출하기 위해 한인 금융권이 새로운 도약을 할 때에 왔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최근 불우이웃을 돕는 행사에 평소 애용하던 그림 소나무와 달을 바자회에 기증했다. 손수 그린 ‘송월도’다. 그림의 선과 농담은 노신사의 표정만큼 부드럽고 그윽하다. 바자회를 주관하는 중앙일보에 그림을 기증하면서, “이거 뭐 대단한 작품은 아니지만 온정을 나눈다는 의미로 들고 왔다”면서 “열심히 그린만큼 어디 걸어놓던 사랑의 빛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50 여년 동안 은행에서 일했다. 돈에 파묻혀 산 인생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는 사람 누구나 ‘돕는 마음’을 다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사람답게 산 다는 것은 남을 돕는 일이라고 했다. 옛말에도 ‘나누지 못할 만큼의 가난은 없다’고 했다.
정 옹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다. 한국에서 고답스런 은행 근무를 하면서 그는 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하면서 정서가 메말라가지 않도록 바랬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은행원 생활은 접대술 마시고 골프 치고 하느라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다. 그러다가 1973년 LA 가주외환은행 행장으로 발령을 받아 미국으로 오면서 본격적으로 미술을 배울 계기를 마련했다. 1974년부터 UCLA외 오티스 아트 칼리지에 나가 미술을 배워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동안 1984년 지금은 없어진 LA의 삼일당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했고 95년 앤드류 샤이어 갤러리에서는 이종성씨와 2인전을 열었으니 LA에서 개인전으로는 두번째. 한국에서는 1996년 하나은행 갤러리에서 2004년 포스코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1950년 한국은행에 입행한 후 한국외환은행 전무를 거쳐 가주 외환은행 행장 한미은행장 새한은행장 아시아나 은행장 등을 거치며 이곳 은행 창설에 공적을 세운 정원훈 전행장은 현재 남가주 미술가협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오리건 주지사 도전 임용근 의원













 ▲ 임용근 의원
한인으로 미국 주류사회에서 정치인으로 오리건주 의회에서 5선의 임용근(72.공화) 주하원의원은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미주한인 이민사상 최초의 주지사 꿈을 피우고 있다. 그는 “한 해가 저물어가는 것은 또 다른 해의 시작이다”면서 “이제 250만 미주 한인 사회에서도 새로운 지도자가 나올 때가 됐으며 하늘의 소명과 인간적 사명감을 갖고 오는 2010년 11월 실시하는 오리건 주지사 선거에 당선해 후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겠다”고 밝혔다.
그 때가 되면 75세가 되지만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며 “나의 능력은 쉬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한 그는 “유권자들은 나이보다 능력 위주의 후보를 선택할 것이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믿기에 나이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대선도 미주동포들에게 관심사이지만, 미국 정치에서 한인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장래를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관심사라고 강조한다. 그는 지난 1990년 주지사 도전을 위한 공화당 경선에 출마, 7명의 후보 가운데 득표 2위로 아깝게 탈락했으나, 그 것은 새로운 도전의 가능성이었다. 그는 1992년 4.29폭동으로 한인사회가 암흑속에 있던 때, 오리건주 상원의원에 도전해 당선해 1세도 미 주류정치에 진출할 수 있는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그 후  2004년 3선에 성공했고 지난해 하원의원에 재선되기까지 5선을 달성했다.
임 의원은 “워싱턴 주에서 중국계 주지사가 나오고 캘리포니아에서는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당선됐으며 이제 오리건주에서 한인이 주지사로 당선될 차례“라며 “한인 1.5세와 2세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민사에 한 획을 긋는 계기가 될 것으로 의심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경기도 포천 인근 미군부대에서 잡역부로 일한 돈으로 학비를 마련해 고교를 마친뒤 신학교를 졸업했으며 28세때인 1966년 무일푼으로 도미, 아르바이트를 하며 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건강제품회사 ARJ를 설립한 이후 지역 한인회장과 미주총연 총회장, 아시안미국시민권협의회 의장 등으로 활동했다.
1990년 존 임 장학회를 설립한 임 의원은 현재 오리건주 경제위원과 미 서북부 경제협의회 집행위원을 겸직하고 있으며 올 1월에는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오리건주에 `한국의 날’을 제정했고 지난 9월 19일에는 이민사상 처음으로, 한국인으로서 세계 각지에서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제1회 세계한인정치인협회’가 결성되어 모임을 가졌다. 지난 8월 미주 동포 후원 재단이 선정한 ‘자랑스러운 한국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미주류사회에 진출한 한국계 정치인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단합과 연대를 주창한 사람이다. 미국내 한인계 정치인들의 모임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이며, 나아가 전세계 한인계 정치인들의 결속과 단합을 주창한 사람이다. 그는 미국사회에서 한인사회 회장을 시작으로 여러 한인단체에서 봉사를 하다 4.29폭동을 계기로 미국 정치계에 1세로서 과감히 도전해 그 꿈을 이루었다.
임용근 의원이 꿈꾸는 오리건 주지사 선거는 2010년이다. 선거자금이 최소한 300만 달러 이상 모금을 해야 한다. 그래서 미전국의 한인사회에서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 유권자 들은 정치가들에 대해 불신하는 경향이 높은데 이를 변화시키는 것이 임용근 의원의 장점이다. 지난 동안 오리건주에서 동양인이 없는 터전에서 백인들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 5선의 주의원이 됐다. 공화당인 그는 민주당 강세지역에서 선거에 의해 그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말을 잘 한다고 당선이 되는 것도 아니고, 돈이 많다고 당선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하고 자신의 선거구 지역이나 미국을 위해서 열심히 일할 것인지에 대해 임 의원은  그 것을 증명했다.
“꿈을 다 이룰 수는 없을 지라도 꿈이 없으면 대업을 이룰 수 없다”고 강조하는 임 의원은 “동포들이 후원을 한다면 그 대업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힘주어 말했다.


은행가 개혁 주창하는  토마스 정 전나라이사장













 ▲ 토마스 정 전 나라은행이사장
지난 2005년 3월 한인금융권 제2의 나라은행에서 당시 ‘이면계약서’ 파동으로 인해 타의로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던 토마스 정 전 이사장이 2년 9개월만에 처음으로 한인은행권의 발전을 위한 고언을 밝혀 연말 은행가에 관심을 몰고오고 있다.
정 전이사장은 우선 나라은행 이사회가 잘못된 관행과 오류를 시정치 않을 경우 법정투쟁을 통해서라도 이를 바로 잡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나라은행의 건전한 발전과 주주들의 권익을 위해서도 이사회의 책임을 끝까지 추궁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 중앙일보, 중앙라디오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해를 마감하는 시기에서 “이제는 한인은행들의 이사회가 커뮤니티의 이익과 미주류사회와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때가 왔다”면서  “이사들이 잘못 했으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자신이 나라은행 이사장 재직시 이사회에서 인정했던 소위 ‘이면계약서’를 문제 삼아 2002년 당시 회계보고가 잘못됐다며 회계보고서 수정을 했으나 결국 필요 없는 회계수정을 한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로 인해 나 자신도 책임을 지고 불명예 퇴진했고 주주로써도 손해를 봤기 때문에 이제는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 전 이사장은 “당시 문제가 됐던 부분에 대한 올바른 진상은 알려져야 한다”며 “이사진들이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작성된 서류를 ‘이면계약서’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증권감독국의 주가조작 조사에서도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사안을 두고 결국 회계수정까지 해서 주가 하락을 불러와 당시 주주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긴 점에 대한 이사회 책임소재는 분명히 가려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정 전 이사장은 2002년도 벤자민 홍 전나라행장 보너스 지급 문제 등 이익배당금 회계오류 사태의 책임을 지고 2005년 3월 당시 홍 전 행장과 함께 사퇴했었다. 이에 은행 측은 2002년도까지 소급해 회계수정에 나섰고 이로 인해 주가하락 등 5500만달러의 손해를 봤다며 홍 전 행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8월 패소하며 책임소재 문제가 불거진 상태다.
정 전 이사장은 “올 말까지 은행 측의 반응을 기다린 뒤 향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라며 “이미 변호사를 통해 은행 측에 ‘원상복귀’를 요구했으며 여기에는 명예회복은 물론 손해배상까지 포함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이사장의 이 같은 입장 표명은 연말까지 나라은행 이사회 측의 태도를 지켜본 뒤 여의치 않을 경우 법정소송을 통해서라도 이를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나타낸 것이다.
이미 정 전 이사장은 나라은행과 벤자민 홍 전 행장과의 손해배상 중재재판이 홍 전행장의 승소로 끝난 뒤 변호사를 통해 은행측에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 요구와 함께 법적소송 방침을 전달한 상태다.
정 전 이사장은  2005년 문제가 불거질 당시 이사회측은 나에게 3~6개월간만 이사직에서 물러나 있으면 추후 대비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그 후  3년 가까이 은행 이사회측에서는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며 섭섭함을 나타냈다. 최근 나라은행측이 홍 전행장과의 소송에서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사회측이  자신에게 일언반구의 해명조차 없었음에 더욱 분노를 나타냈다.
한편 그는 이번 입장 발표가 혹시 주주들의 집단소송으로 번질 가능성에 대해서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은행의 발전을 위해서는 잘못된 사항은 고치고 나가는 것이 정당한 수단이라고 밝혔다.
정 전 이사장은 현재 17개의 한인은행들이 난립해 심한 경쟁으로 인해 은행가의 개혁이 필요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평가하고 “만약 이사진에 복귀한다면 사심없이 은행을 위해 합병(M&A)의 기초를 다지는 일만하고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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