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 단소리

이 뉴스를 공유하기





“자심삼일” 신년계획


매년 연말 연초가 되면 인류를 지배하는 시대정신은 채무자에게 각서를 요구하듯 신년계획 수립의 빚을 지고 있음을 매스콤과 주위사람들의 입담에 스며들어 사람들을 긴장과 압박에 몰아 넣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다수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행하면 무의식중에 동참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무리에서 앞서지는 못하더라도 무리의 행군에서 벗어나는 일탈은 뭔가 정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가중시켜 버텨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만족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일상에서 뭔가 빠지고 부족한 것을 채워 넣었을 때의 안정감 하나와 뭔가 바라거나 원하던 것을 얻어내 일상을 업그레이드하는 성취감이다. 배가 고플 때 밥을 먹고 용변을 위해 화장실에 들르는 것은 욕구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별다른 만족감을 주지 않는다. 그 역시 만족임에도 너무 일상화되어 해결되지 않으면 불만이지만 해결되어도 성취감을 주는 지향성 목표는 아닌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올해 밥을 삼백끼를 먹겠다. 화장실은 백번만 가겠다”라는 말에 실소가 나오는 이유는 그것은 순간순간 해결해야 할 단기적인 바람이긴 하지만 장기적 목표로는 어울리지 않고 성격상 지키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것은 현상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안정감을 주기는 하지만 성취감은 주지 않는다. 한편, 용돈을 모아 책상의 절반을 차지하던 모니터를 치우고 보기에도 가뿐한 액정 모니터로 교환을 한다거나 읽다만 책들을 모두 섭렵한다거나 외국어를 일정 단계로 올린다거나 외롭던 시절을 청산하고 이성친구를 상비화 한다거나 6개월 동안 준비해 왔던 사업계약을 체결하는 것 등은 일상을 고양시킴으로서 성취감을 맛보게 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목표와 만족감이라 한다면 이 영역이겠지만 당장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현상유지에 지장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안정감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불만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연초가 되면 계획들로 금연, 금주, 다이어트, 운동, 외국어 자격증 등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금연과 금주다. 사람들에게 있어 술과 담배는 생활의 일부가 된지 오래다. 술과 담배는 밥과 화장실처럼 이미 안정감의 요소이기 때문에 금연과 금주를 목표로 세운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성취감과는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안정감을 해치는 요인으로 기능하기 십상이다. 말하자면 그 양자는 생활을 업그레이드시키는 목표가 아니라 생활의 기본체질을 개선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뤄낸다고 하더라도 가시적인 성취감을 주는 것이 아니며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원래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므로 실제적으로 퇴보하는 느낌을 주는 것도 아니다. 흡연과 음주는 그 자체만을 놓고 좋다 나쁘다를 따질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적당함을 넘어서는 것에 있고 술과 담배의 성격상 적당함을 유지키가 쉽지 않은 까닭에 아예 손을 떼는 게 낫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물론 도를 넘어서 자신의 건강과 타인의 찡그림을 감당하고 남는 효용을 술 담배에서 얻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끊을 필요도 없고 끊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건강에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이나 가정과 직장에서 칼끝처럼 빛나는 눈초리에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성취감이 아니라도 금연 금주는 추구해야할 목표가 된다. 술 담배에 장렬히 전사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주변의 번뜩이는 칼날에 목숨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굳이 굳은 심지를 굽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단 마음이 정해졌다면 관건은 자신의 의지를 어떻게 유지하고 조정하느냐 하는 것이다. 의지를 지속적으로 살려가기 위해서는 술과 담배가 일상에서 담당했던 효용에 대체재를 투여해야 한다. 술 담배는 밥과 화장실처럼 일상에서 안정감을 주는 요인으로 군림해 왔기 때문에 아무 조치 없이 한순간에 절단하면 마치 삼일 동안 억지로 밥을 참고 휴게실이 한시간이나 남은 고속버스 안에서 배탈이 난 것처럼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불안을 온몸으로 뒤집어쓰게 된다. 이런 무분별한 금연과 금주는 흡연과 음주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안정감에 비해 훨씬 위대한 상실감과 불안감을 불러오기 때문에 작심삼일 행사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생존학적 흡연과 음주 요구량을 재 달성하게 된다. 신년계획으로 금연과 금주를 선언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삶의 환경을 변화시킬 의지나 필요성이 있는가 하는 것과 맞물린 기회비용의 문제가 된다. 또한 흡연 음주가 몸에 좋지 않다는 현대적 상식을 근간으로 흡연자 음주자를 역 차별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약간의 흡연과 음주로 다른 스트레스성 문제와 생활들을 이기고 버텨갈 수 있다면 사회 전체적 맥락에서 흡연과 음주는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해에 뭔가 목표를 세우고 성취한다는 것은 보람찬 일이다. 하지만 현실성이 없는 계획은 자신과 주위사람을 실망스럽게 할 뿐이다. 그 중에서도 금연과 금주.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실행코자 하는 사람은 생활전반의 흐름을 고려해서 신중한 결정을, 흡연과 음주를 지속코자 하는 이들은 그로 인한 외적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을 고려해 술과 담배에 의한 피해나 편견을 유발하지 않도록 실속 있는 계획을 만들어 가야 한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