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식을 흐리는 한국 방송 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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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타운 내 비디오 대여업소에서는 본국 방송국의 사극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사극 드라마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는 만큼 우려에 대한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한국 TV드라마를 비디오 대여를 통해 주로 시청하는 중년, 노인층은 사극 드라마 내용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느 내용이 진실인지에 혼돈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드라마를 픽션이 가미된 드라마로 보지 않고 논픽션으로 인식하고 시청하고 있다.
또 가정에서 1.5세나 2세들은 이같은 픽션 사극 드라마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가정 교육면에서도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다. 일부 가정에서는 미국에서 태어난 2세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이해시키기 위해 인기 방송 드라마를 보게 하는데 이들이 사극 드라마에 나오는 내용들을 역사적 사실로 배우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 교육 담당자들의 우려이다.
최근 새로 나온 KBS의 ‘대왕 세종’을 포함해, 계속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는 SBS TV의 ‘왕과 나’ 그리고 MBC 의 ‘이산’ 등이 정통 사극을 표방하며 나가고 있으나 어딘가 어색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여기에 최근 퓨전사극으로 나타난 KBS의 ‘쾌도 홍길동’은 미국의 한인 시청자들에게 사극인지 만화물인지를 분간할 수 없어 혼란을 주고 있다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일부 시청자들은 “일본의 드라마를 표절한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미국 내 아시아계 커뮤니티 방송에서는 ‘한류’ 영향으로 한국 사극 드라마도 방영하고 있는데, 왜곡된 역사적 사실이 드라마로 제작된 것을 모르고, 실제 한국 역사에서 존재했던 사실로 받아져 이들이 한국문화를 왜곡되게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하게 될 수도 있다. 이와는 달리 미국 주류사회 TV방송의 역사 드라마는 대체로 역사적 사실을 기본바탕으로 하여, 드라마적 요소를 가미하고 있어 교육적인 면에서도 문제점이 별로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편 비디오 대여의 주고객층인 노인층이 컴퓨터를 이용해 인기 드라마를 시청하는 경향이 높고, 앞으로 위성방송과 케이블 방송망에서 점차 인기 드라마 방송 프로그램을 시차 없이 제공하게 될 전망이어서 비디오 업소의 퇴장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우려감마저 나오고 있다.


                                                                                       데이빗 김 객원기자


 


지난 주말 오렌지 카운티 가든 그로브에 있는 S 비디오 업소에서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50대의 한 중년남자는 업소 주인을 다구치고 있었다.
“도대체 ‘대왕 세종’을 제작하는 KBS 드라마 팀이 역사를 너무나 왜곡하고 있다”면서 “똑똑히 만들라고 방송국 측에 건의하라”며 목청을 높였다. 이 중년남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양녕대군은 동생에게 왕위를 주기 위해 일부러 미친 흉내를 냈던 인물”이라면서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전혀 다른 인물로 나오고 있다”며 흥분했다. 비디오 업소 측은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처지”라며 당혹스런 표정을 짖고 있었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한 노인도 거들었다. “사실 요즈음 인기 있다고 하는 사극 드라마들이 한결 같이 선정적이 아니면 흥미를 돋구기 위한 내용으로 가득차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국 역사에 대해 많은 지식이 없는 한인들이 사극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왜곡된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웨스턴과 7가에 위치한 맥도널드 햄버거 식당은 한인들의 사랑방이다. 여기에 가면 온갖 화제들이 나돌고 있다. 한국 사극 비디오 이야기도 당연히 으뜸 순위이다. 지난 주말에도 한 60-70대 한인 노인들이 드라마 ‘왕과 나” 놓고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한 노인이 “정말로 정조가 어우동과 정분을 나누었는가”과 말을 꺼내자 다른 노인이 “고증을 거치며 사극을 제작한다는 SBS가 거짓말을 하겠어”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다른 한쪽에서 “신문기사도 못봤어…그거 모두 가짜래. 재미를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하더군”이라고 거들었다.
‘왕과 나’는 이조시대 환관들이 득세하는 궁중 이야기로 성종의 즉위와 치세를 전개하고 있는데 드라마에서는 성종이 종친의 부인 어우동에 반해 궁궐 담을 넘어 사랑을 나누기까지 한 것으로 묘사했으나, 이조실록에는 성종과 어우동간의 관계를 나누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다만 실록에는 어우동은 행실이 문란해 처형 당한 것으로 되어 있다. 드라마에서 성종이 미행으로 궁궐 밖에 나가서 어염집에 몰래 들어가 하룻밤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전개시키며, 이일로 중전이 성종과의 갈등을 부린다는 것으로 설정했다.
그 당시 환경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들이 흥미본위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성종과 종친 부인과의 불륜을 설정하면서 다른 사극인 황진이가 행한 것에서 따오기도 했다. 또 이 드라마에선 주인공 내시인 김처선이 문종부터 연산군까지 6대 왕을 모셨다는 기록은 전혀 무시하고, 예종 때 입궐해 연산군 아버지인 성종이 왕위에 있을 때까지도 일개 내시에 머무른 것으로 설정해 논란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왕자가 납치돼다니…”


요즈음 소개된 KBS 의 ‘대왕 세종’은 그 웅대함이나 화려한 의상 등과 제작 기술면에서도 돋보인다고 하여 화제가 되고 있는데 드라마를 시청하는 한인들 중에는 “아, 이것은 아닌데…”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이조 왕조 초기 ‘왕자의 난’을 일으킨 후 정권을 잡은 태종 시절부터 소개가 되는데, 극 초반은 태종의 세째 아들 충년대군(나중 세종)의 왕권에 가까이 가는 과정을 그렸다.
그러나 세종대왕의 어린 시절을 너무 강조하면서, 드라마를 제작하다보니 상상력이 지나쳤다고 보여진다. 드라마에서는 어린 충녕대군이 민심을 살핀다고 궁궐밖에 잠행 나갔다가, 이조에게 망한 고려 유신들에 의해 한성거리에서 납치 당했다가 극적으로 풀려나와 신문고를 두드리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리 드라매틱하게 극중 스토리를 전개하기 위해 ‘궁궐밖 왕자 납치 사건’을 설정한 것 자체가 무리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드라마에서 태종의 맏아들로 세자가 되는 양녕대군에 대한 설정도 매우 어색하다. 실록이나 문헌에 따르면 양녕대군은 성품이 무난하고 지식도 많고 덕도 풍부한 대군으로 아버지 태종이 유독 셋째아들인 충녕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 주기 위해 자신을 망치기까지 했는데,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드라마 속에선 충녕과 양녕이 왕권을 두고 투쟁을 벌인다. 그리고 양녕을 몹시 파렴치한 성범죄자로 몰아가기까지 했다. 양녕은 궁궐 정원에서 시녀들이 보는 자리에서 선대왕의 후궁을 희롱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이런 설정도 양녕대군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MBC의  ‘이산’도 마찬가지이다. 이 드라마는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이 우여곡절 끝에 정조 대왕으로 등극하는 내용인데 주인공 정조와 정순왕후의 관계를 갈등구조로 설정했는데 실록에 따르면 정반대가 된다. 정조실록 15권에 보면 정조 7년(1783)에 ‘왕대비에게 존호를 더 올리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왕대비는 선왕의 비를 일컫는 말로 정조가 정순왕후의 칭호를 더 높여 불러, 정조가 정순왕후를 극진하게 대했음을 알 수 있다. 드라마 속에서 정순왕후가 영조가 사망한 후 이산이 정조로 즉위하게 됐다는 전갈을 듣고 “그의 목숨을 끊어놔야 한다”고 울부짖는 장면도 “대왕세종”에서 처럼 ‘왕자 납치’사건처럼 결국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한 역사 왜곡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정통 사극을 표방한 드라마들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마치 있지도 않았던 일을  역사적 사실인 양 포장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무리 흥미를 위주로 한 TV 사극 을 드라마적 재구성을 했다지만 그 왜곡이나 표현도를 너무 지나쳤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미국의 많은 한인 가정에서는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들에게 한국 정체성 확립과 한국역사 공부를 위해 한국 TV사극 시청을 권하고 있는 실정인데 왜곡된 드라마를 보고 그것이 역사적 진실인양 받아들이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ABC교육구 소속 공립중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김 에스더 씨는 “하루는 아들이 미국인 친구들에게 한글을 발명한 세종대왕을 소개하면서 ‘어린 시절 테러범들에게 납치당하고도 용감하게 탈출한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면서 “새삼 방송 드라마의 영향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교사를 지내고 이민한 정성태 씨는 “한국과는 달리 이곳의 이민자들은 방송 드라마의 재미에 빠져 들면 자신들도 모르게 세뇌가 된다”면서 “특히 이곳에서 태어난 2세들이 한국 역사에 대해 전문지식이 없어 왜곡된 장면을 그냥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특히 역사 문헌에서 몇 줄로 묘사된 고구려 시조 주몽에 대해 방대한 대하드라마로 방영된 ‘주몽’이나 ‘태왕사신기’ 드라마는 대부분 가공된 것으로 보면 된다”고 풀이했다. 
미국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제리 고씨는 “미국 TV에서도 가끔 역사물을 드라마로 제작하여 인기를 끌고 있지만 한국처럼 왜곡으로 흥미를 유발 시키지 않는다”면서 “역사적 사실을 근간으로 당시 시대 상항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건만을 그려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서도 역사 드라마 논쟁


이같은 환경은 한국도 다르지 않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왜곡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중고교의 국사 수업시간은 10년 전에 비해 주당 1시간씩 줄어든 상태로 사극을 보고 역사적 사실을 잘못 이해할 가능성도 그만큼 많아졌다고 한다. 시청자 최천순 씨는 KBS 게시판에 “아이들과 함께 역사 공부를 위해 ‘대왕 세종’을 보고 있는데, 극 속에서 장영실은 연애만 하는 것으로 비쳐 당황했다”며 “역사적이고 사실적인 드라마를 만들어 아이들 교육에도 무리가 없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서울교대 사회교육과 임기환 교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픽션이 일부 더해질 수밖에 없겠지만 역사의 기본 줄거리와 상황을 넘어서는 가공은 곤란하다”며 “역사학계의 기존 해석을 완전히 뒤집는 방식의 접근까지 있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역사적 자료가 별로 없는 옛 고조선이나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주몽’과 ‘태왕사신기’는 대부분 이야기가 판타지로 이루어졌다. ‘태왕사신기’의 경우 청룡●백호●주작●현무, 사신(四神)의 신물이 광개토대왕이 태어나면 깨어난다는 설정 등 만화적 설정이 즐비하다.
최근 뉴시스 통신은 코믹 퓨전사극을 표방한 KBS 2TV 드라마 ‘쾌도 홍길동’이 홍길동이라는 민족적 캐릭터의 영웅담을 드라마로 옮기며 색다른 해석을 시도, 방송 전부터 기대를 모았으나 드라마 속 캐릭터나 설정이 일본풍이라는 비판도 있다고 보도했다.
강지환이 맡은 타이틀롤 ‘홍길동’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무겐’과 성격 등이 흡사하다. 또 장근석의 배역인 ‘이창휘’는 슬픈 과거를 간직한 무뚝뚝한 성격, 삿갓을 쓰고 다니는 모습 등이 애니메이션 중 ‘진’과 유사하다.
일본 에도시대가 무대인 ‘사무라이 참프루’는 힙합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는 등 기존의 틀을 깬 역사물로 화제를 모았다. ‘쾌도 홍길동’이 자랑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흥겨운 가요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한다. 특히 레코드 판이 돌아가는 드라마 오프닝은 ‘사무라이 참프루’와 완전히 같다시피 하다. 그리고 여자 주인공 성유리는 여전히 연기력 논란을 끌고 다니고 있다. 드라마의 현대적 해석이 지나치게 파격적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급기야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서 표절논란이 불거지기에 이르렀다. 일본 애니메이션 ‘사무라이 참프루’와 캐릭터 설정, 의상, 오프닝 등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카우보이 비밥’의 와타나베 신이치로가 2004년 만든 사무라이 만화영화다. 성유리가 연기하는 여주인공 ‘허이녹’은 돈과 음식을 좋아하는 왈가닥이다. ‘사무라이 참프루’의 여주인공 ‘후우’와 똑 닮았다. 머리카락을 한 가닥으로 묶고 옆머리가 많은 헤어스타일까지 비슷하다.
이에 대해 ‘쾌도 홍길동’제작사인 올리브나인 관계자는 “전혀 표절이 아니다”고 당혹스러워 했다. “(인터넷에서) 그렇게 부분적으로 잘라 놓으면 안 비슷한 것이 없다. 전체적으로 판단해 달라. 성유리 의상, 장근석의 갓 같은 것도 사극의 전형적인 설정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시청자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한참이다. ‘드라마가 애니메이션을 차용한 것이 분명하다’는 의견과 ‘무조건 표절로 낙인 찍는 것은 위험하다’는 식으로 주장이 갈리고 있다. ‘민족 캐릭터 홍길동이 일본 사무라이와 비교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실망’이라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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