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중지된 조풍언 극비귀국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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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그룹 구명을 위한 정관계 로비의혹’의 핵심인물로서 미국 측에 형사사법 공조요청이 돼 있던 무기거래상 조풍언씨가 지난 주 극비리에 귀국했다. 검찰은 지난 11일 조 씨를 출국정지 시키면서 조만간 조 씨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예고했다. 조 씨는 한국 검찰에서 지난 2005년 미완의 사건으로 남겨놓았던 대우그룹 로비의혹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입을 열 것으로 보여 총선을 앞둔 한국정가에 새로운 태풍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7대 대선에서는 ‘김경준 – BBK 사건’이 태풍의 핵으로 등장했다면 오는 4월 총선에서는 ‘조풍언 – 대우그룹 로비 의혹’이  정국을 강타할 것으로 보여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도 알려져 있는 조풍언씨의 갑작스런 귀국과 이제 막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검찰의 즉각적인 조 씨에 대한 수사발표는 신정부가 DJ를 겨냥한 수사의 첫 단추가 될 것이란 전망을 낳고 있어 한국 정가에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이번 조치는 ‘조풍언 조사’를 통해 DJ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원격조사’라는 점에서 한국정가에 새로운 태풍으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합동취재반>













DJ해외비자금 도마 위 오르나


대검 중수부는 현재 미국 시민권자인 조 씨에 대해 즉각 출국정지 조치를 했으며, 조만간 조 씨를 소환해 지난 2005년 마무리했던 ‘대우그룹 로비의혹’ 수사를 재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검찰의 조사가 시작되면 지난해 사면복권 된 김우중 전 회장에 대한 재조사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두 사람간의 병합 수사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수사과정을 통해 DJ와 조 씨간의 유착의혹도 수사 대상에 오를 가능성도 높다.
이미 한국검찰은 DJ와 측근들의 미국 내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조 씨가 DJ의 세 아들과 깊은 관계를 맺어왔으며, DJ의 재산 일부를 관리해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한국정가에서는 이번의 조 씨의 갑작스런 입국이 ‘기획입국’ 논란으로 번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의회조사국 정보자료에 따르면 DJ의 미국 내 비자금은 일부 알려진 사실만도 8,000만 달러에 이르고 있어 현재 광범위한 내사가 관계 부처 간에 실시되고 있으며, 뉴욕과 LA지역의 DJ와 그 가족들의 측근들을 대상으로 탐문 수사가 실시되고 있다는 정보가 지난해부터 나돌았다.
이번 조 씨의 출국정지와 함께 검찰은 앞으로의 수사에서 조 씨로부터 DJ 미국 내 비자금과 대우 관련 여부 등 광범위한 금융부정에 대한 증거와 관련해 조 씨를 압박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미 지난 2003년부터 한나라당은 조풍언씨 케이스와 관련해 이를 ‘김대중 정부 의혹사건’으로 규정해 국정조사를 요구해 왔었다.  
조 씨는 김대중 정권 말기인 2002년 10월경부터 대우정보 시스템 보유주식 163만주를 매각하기 위해 매입 대상자를 물색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조 씨는 대우정보시스템과 함께 삼일빌딩(지하 2층, 지상 31층)도 매각하려고 부동산 시장에 내놓았다. 조씨는 2001년 502억원에 매입한 삼일빌딩을 800억원에 매각할 경우 2년여 만에 세금 등을 제하고도 200억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올릴 수 있다.
이때 조씨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삼일빌딩은 내가 주도하여 12명의 투자자를 모아 매입한 것이며, 이 때 설립한 회사가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였다”고 말했다. 원래 삼일빌딩은 전소유주였던 한국상업은행이 2001년 3월2일 ‘스몰록 인베스트먼트 컴퍼니’라는 회사에 매각했는데 이 회사의 주소가 홍콩 헹샨센터 23층인데 이 회사는 페이퍼 컴퍼니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당시 한나라당 측은 “조 씨가 설립한 ‘스몰록 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가 삼일빌딩을 매입한 과정에 특혜의혹이 있다”며 대우정보 시스템의 주식매입과정과 함께 국정조사를 요구했었다.
한나라당 측은 조 씨가 이 당시 DJ의 특혜를 받아 대우정보 주식매입과 삼일빌딩 매입과 나중에 매각으로 얻어진 시세차익 중 일부를 DJ의 미국 내 비자금 조성에 쓰여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대중 정권 말기에 DJ 측근인 조 씨가 벌인 대우정보 시스템과 삼일빌딩 매입자금과 매입자금 출처가 불투명하다는 점이 의혹의 대상이다. 
검찰은 지난 2005년 6월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상대로 김 전 회장이 대우 해외금융법인을 통해 1140억원을 빼돌려 그 중 4430만 달러를 조 씨 측에 전달한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범죄 혐의가 확정되지 않아 당시 미국에 체류 중이던 조 씨에 대해 범죄인 인도청구 절차를 밟지 못했고, 대신 미 사법당국에 “조 씨를 조사해 달라”는 형사사법공조 요청을 했었다.
당시 검찰 수사에서 김 전 회장은 그 돈의 출처에 대해 “조 씨가 예전에 빌려준 돈을 갚은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때문에 DJ와 친밀한 사이였던 조 씨가, 경기고 동문인 김 전 회장을 위해 대우 구명 로비를 펼치면서 그 돈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김 전 회장은 1999년 10월 출국하는 과정에서 당시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 등으로부터 “대우자동차 등 6개 계열사 경영권을 보장해 줄 테니 출국하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대검 중수부는 ‘대우 퇴출저지’ 로비 의혹의 중심에서 DJ와 실질적인 가교 역할을 담당하며 핵심 키를 지녔던 무기중개상 조풍언(69)씨가 자진 입국함에 따라 조씨를 전격 출국금지 조치시키고 지난 5년간 중지되어 있었던 대우그룹 김우중(71) 전 대우그룹 회장과의 관계를 전격 재수사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 2004년 대우그룹에 관한 수사를 사실상 종결할 당시 이례적으로 수사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김우중 씨가 재미동포 전 무기중개상인 조풍언 씨에게 1999년 대우그룹의 해외 비밀금융 조직인 BFC에서 약 526억의 거액을 송금된 사실을 확인하면서 김우중과 조풍언의 비밀 거래 관계를 언급하며 김 씨를 횡령혐의로 추가 기소해 수사를 사실상 종결한다”고 발표하면서 미국으로 도피한 조풍언씨를 기소 중지시키고 사건을 종결했었다.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조풍언씨가 지난 10일 느닷없이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귀국하자 별의 별 소문이 난무하며 4월 총선을 앞두고 기획입국설이 제기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학교 동문이자 동창인 조풍언씨는 이번 귀국에 앞서 지인들에게 ‘MB와 이미 이야기가 끝났다’ ‘처음 몇 일만 고생하면 된다’ 라고 말하며 이번 귀국과 관련해 이명박 신정부와 모종의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기소 중지되어 있던 조풍언씨가 무슨 이유로 갑작스럽게 귀국하게 된 배경추정과 함께 조풍언 관련사건 전모를 추적해 본다.
                                                                                          리챠드 윤(취재부기자)


조풍언, ‘MB가 봐준다고 했다’


조풍언씨의 이번 귀국은 여러모로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조씨는 귀국에 앞서 한국에서 온 인사들과 수차례 회동하면서 귀국을 저울질했다. 특히 조씨와 경기고등하교 동창이자 장관을 지낸 이태섭씨가 귀국 한달전 LA에와서 조씨가 소유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컨트리클럽에서 골프회동을 하며 약 1주일간 조씨 집에서 머물고 돌아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더욱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과 친분관계가 두터운 LA인사들과 귀국과 관련한 사전 조율이 있었던 흔적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조 씨는 지난 2004년 당시 대검 중수부(부장: 박영수)에 의해 기소중지 되었다. 그런 조 씨가 느닷없이 한국으로 전격 귀국한 이면에는 ‘정권 차원의 밀약’설이 제기되고 있다. 정권 차원에서의 귀국 보장 없이 어린아이도 아니고 느닷없이 귀국을 서둘렀다는 것은 분명히 석연치 않은 다른 의혹이 내포되어 있다는 증거다. 또 다른 이유는 대검중수부가 기소중지가 이미 입국해 체류해 신병이 확보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긴급체포’도 하지 않고 단순히 ‘출국금지’하고 조만간 소환조사를 하겠다는 발표는 이상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더욱 이상한 일은 조 씨가 귀국 2개월전 본지 기자와 캘리포니아컨트리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나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고려대학교 동기동창이고 2년 후배지만 학교를 같이 다녀 친분관계가 두텁다’고 말하며 ‘지난 번 한국에 나가서도…’라는 묘한 뉘앙스의 말로 이명박 대통령과의 만났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시사해 이 같은 말이 사실로 확인될 때는 많은 파장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조 씨의 처지를 보아 조 씨가 이명박 대통령과 만났다는 사실은 모두 거짓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한국에는 언제 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지난 번에도 한국에 다녀왔다. 3일 동안 고향에 가서 제사도 지내고 돌아왔다’ 라고 말하며 기소 중지에 관한 질문에 ‘나는 자유롭게 한국을 다닌다’고 기소 중지 사실을 부인하기도 했다.












 ▲ 지난 2003년 한인타운 내 가든 스윗 호텔(인터뷰 당시 부인소유)에서 본보 전발행인(연 훈)과 만난 조풍언 씨 모습. (사진: 연 훈)


‘한국에 다녀왔다’ 주변에 자랑


조 씨는 김대중 대통령의 일산집 매입과 3남 홍걸씨 부부가 거주한 팔러스버디스 호화주택의 사준 인물로 유명하며 DJ정권의 숨은 실세로 알려진 거물 무기중개상이다. 그 동안 조씨는 주변 지인들에게 만날 때마다 ‘한국에 가서 잘 놀고 왔다’ ‘누구랑 만나 골프도 쳤다’라고 말하며 한국을 다녀 온 것을 의식적으로 말하며 한국에 아무런 일도 없음을 과시하고 다녔다. 그러나 조씨의 말이 전혀 거짓은 아닌 듯 보였다. 세계적인 무기중개상이며 미국 시민권자인 조씨가 제3국 발행 여권으로 얼마든지 한국을 드나들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특히 홍콩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조 씨기 제3국 여권을 발급받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조씨의 말이 전혀 거짓이 아니고 실제로 한국을 드나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한국 검찰은 해외에 체류 중인 조 씨의 신병확보가 어려워 수사를 중단하고 수사를 종결한다고 발표했다. 더욱이 조씨 같은 DJ정권 ‘비리 게이트’의 핵심인사인 조씨를 상대로 범죄인 인도요청 조차 하지 않은 사실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다.
그렇다면 조씨의 귀국은 ‘기획입국’이라는 추정일 수도 있다는 가정도 성립된다. 조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권 차원에서의 ‘신변보장’이 확실하고 그 반대 급부로 모종의 거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4월 총선을 불과 수주 앞둔 시점에서 DJ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조씨가 아무런 보장도 없이 무조건 귀국을 했다는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조풍언씨의 부인 이덕희씨는 남편 조씨가 문제가 되어 앞으로 조사가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조씨는 귀국 전 검찰과 사전에 모종의 교감설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 지난 2004년 5월 샌디에고의 이글 크레스트 골프장 매입을 시점으로 그 해 11월에는 캘리포니아 컨츄리 클럽(C.C.C.)과 팜스프링의 팜 데저트 골프장을 동시에 인수해 화제를 뿌렸던 조풍언 씨다


조풍언은 누구?  재산 1억달러 넘어


조 씨의 개인 재산은 현재 1억달러가 넘는다는 것이 조 씨 주변 인사들의 공통된 추산이다.
현재 조풍언 씨는 캘리포니아 컨츄리 클럽과 샌디에고의 이글 크레스트 골프장을 포함 3개의 골프장을 소유, 다운페이먼트만도 약 2,000만 달러에 이르고 수개의 한인은행에 약 1,000만 달러의 예금, 그리고 부인 명의로 미래은행의 최대주주(우호지분 포함 30%)이며 현재 팔로스버디스 인근에 약 50,000 스퀘아피트에 달하는 대저택(시가 2,000만 달러 상당으로 알려짐) 거주 등 미국 내 재산 평가액이 줄잡아 1억달러를 넘는다는 평가다.
지난 80년대 초 미국으로 이민 와 세탁소와 수개의 리커 스토어를 경영하다가 전두환 정권 시절 허삼수,허화평을 비롯 정권의 실세들을 등에 업고 무기 거래상을 시작 기흥물산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에 기반을 닦으며, 웨스턴과 7가에 가든 스윗 호텔을 매입해 15년 동안 경영하다가 최근에 매각했다. 한때 5공의 핵심 주역인 허화평 씨가 공동 파트너로 참여했다가 후일 허화평 씨의 지분을 사들여 단독 운영했었다.
김대중 정권의 숨은 실세로 알려졌던 무기중개상 조풍언 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산 자택을 사준 것으로 유명하다.  2000년 총선 직전 이신범 한나라당 의원이 김대중 대통령의 3남 홍걸 씨 부부가 미국 LA 인근의 호화주택에서 살고 있다고 폭로했는데, 나중에 이 주택이 조풍언 씨 소유로 밝혀지기도 했다. 그는 언론에 끊임없이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여전히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유일하게 알려진 사실은 조풍언씨가 소유한 회사가 홍콩의 페이퍼컴퍼니 ‘스몰록 인베스트먼트(Small rock Investment LTD information)’와 KMC 정도라는 것. 스몰록 인베스트먼트는 2001년 3월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있는 삼일빌딩을 산업은행으로부터 502억원에 매입해 특혜시비를 불러 일으켰다. 삼일빌딩은 2000년 4월 한국감정원의 감정평가액인 563억원보다 61억원이나 싸게 조풍언씨 손에 넘어갔다. 2002년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조풍언씨가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이라 삼일빌딩을 시세보다 200억원 이상 싼 가격에 샀다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조풍언 씨가 대표인 KMC는 대우정보시스템의 최대주주라는 점 이외에는 별로 알려진 사실이 없다. 단지 KMC가 계속 대우정보시스템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 정도만 외부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이런 천문학적인 재산을 가지고 있는 조 씨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즉흥적인 판단으로 자진 귀국 했다면 ‘과연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의문이다. 
 













조풍언씨의 입국에 관심이 모아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미완의 수사로 끝난 ‘대우그룹 정관계 로비의혹’의 키를 조 씨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 2005년 대우그룹 관련 의혹을 수사하면서 핵심참고인인 조 씨가 외국에 있다는 이유로 그를 조사하지 않은 채 사건을 마무리했다.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조 씨가 DJ의 핵심 측근이란 이유로 수사를 중단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조 씨의 입국으로 검찰은 당시 풀지 못했던 대우그룹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조만간 조 씨를 소환해 대우로부터 받은 돈의 사용출처와 로비 여부 등을 수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총선을 불과 한 달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조 씨가 입국함에 따라 이명박 정권의 지난 10년간의 여러 사건들에 대한 본격적인 선긋기 작업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최근 본국 검찰에서는 DJ 정권 시절의 게이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의원에 대한 내사 등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오는 4월에 있을 총선에서 중요한 변수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특별취재팀>


조풍언 씨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조 씨에게 전달했던 526억원의 사용처가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이 돈의 행방이 밝히는 것이 대우그룹 로비 의혹을 푸는 단서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수사 결과가 밝혀지면 DJ 정권의 치부가 드러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검찰, 사용처 불분명한 526억 밝히나


검찰은 2005년 김 전 회장의 횡령 혐의를 수사하면서 김 전 회장이 대우그룹의 해외 금융조직인 BFC(British Finance Center)를 통해 4430만달러(당시 환율로 약 526억원)를 조씨에게 전달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어떤 명목인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당시 검찰은 조씨의 로비 가능성에 대해 수사했으나 미국시민권자인 조 씨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해 수사를 중단하고 ‘입국 시 통보’조치를 취해둔 상태였다.
김 전 대우그룹 회장은 수사 과정에서 조풍언 씨에게 4430만불(526억원)을 송금한 경위에 대해 “지난 96년 4월 조 씨의 중개로 외국인의 돈 7500만불을 BFC을 통해 관리하다가 조 씨를 통해 4430만불을 반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풍언 씨는 지난 2005년 12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며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데 이 돈을 갚지 않을 수가 없어 내가 김 씨를 대신해 변제했다’고 주장했다. 인터뷰 당시 조풍언 씨는 “세계적 유명인이 누구냐”라는 질문에 끝까지 침묵을 지키며 이름을 함구했다. 그러나 평소 조 씨는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이 러시아의 실력자에게 7,500만 달러를 김우중 씨에게 차용하게 해 주었으며 이 돈으로 IMF 당시 한미은행의 전환사채를 매입해 대우그룹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고 말해 이 돈의 임자가 러시아의 실세이거나 마피아 조직의 거물인 것으로 간접 시사해온 바 있다.
당시 대검 중수부(부장 박영수)는 “김우중 씨가 BFC의 계좌에서 99년 6월 조풍언 씨가 대표로 있는 홍콩소재 KMC와 미국 LA소재 라베스(조풍언씨 소유 추정의 페이퍼 컴퍼니) 회사에 2,430만 달러와 2,000만 달러를 송금한 사실을 확인했으나, 김 씨는 이 돈을 조 씨에게서 빌린 돈을 변제했다고 주장하나 채무 변제의 근거를 밝히지 못해 김 씨는 BFC의 자금을 횡령한 것으로 보고 김 씨를 횡령혐의로 추가 기소했었다.
다음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내용 중 일부분.
<‘김씨가 조씨에게 송금한 돈은 BFC의 자금 중 281억원을 KMC에게 송금했으며,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258만주(71.59%)를 위장 매입했으며 이중 95만주를 처분, 291억원을 홍콩에 반출했으며 LA소재 라베스 회사를 통해 대우통신 전전교환기(TDX)사업을 900억원에 인수 계약한 후 230억만을 납입하고 현금 94억원을 홍콩으로 반출했다’ >
이 같은 검찰의 발표는 지난 2001년 11월 예금보험공사가 대우사태 조사 결과 발표 당시와 거의 비슷했다. 조풍언 씨는 지난 2002년 6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지금까지의 정황상으로 미뤄보아 김우중 씨가 조풍언 씨에게 송금한 돈은 모두 김우중 씨가 세계적 유명인으로부터 차용한 돈 7,500만 달러를 모두 변제한 것으로 보여져 조 씨가 세계적 유명인의 이름을 밝힐 것인지도 의문이다.













경기고 2년 선후배 사이인 김 씨와 조 씨의 은밀한 거금 거래에 있어 조 씨는 김 씨의 해외 은닉 재산관리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 씨는 지난 9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산집을 매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DJ 정권의 보이지 않은 권력의 핵심 노릇을 했으며 실질적으로 DJ와 김우중 간의 메신저 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과연 김 씨가 조 씨에게 송금한 526억원이 세계적 유명인에게 변제가 되었는지가 의문이다.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있는 방도가 없고 당사자들이 그 동안 주장해 온 말과 검찰, 그리고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의 발표 내용을 종합해 보면 7,500만 달러 변제 액수가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조풍언 씨가 김우중 씨를 대신해 5,000만 달러를 변제했다는 주장과 99년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매각 대금을 홍콩 KMC로 송금한 금액을 합하면 충분히 7,500만 달러의 금액이 산출된다.


정권 숙청 작업


이번 조 씨의 입국은 최근들어 여의도 정가에서 떠돌고 있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숙청설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관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이명박 정부 사정기관이 모두 TK 라인으로 채워지면서 지난 10년 정권의 각종 의혹들을 본격적으로 수사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입법부를 장악하기 위한 새 정부의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최근 검찰에서 다시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 이용호 게이트 사건, 친노의원 A씨에 대한 의혹 등이 그 구체적인 증거로 거론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조 씨의 귀국은 DJ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최상의 카드라는 것이 정치권의 시각이다. 조 씨의 돈이 DJ의 비자금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라는 주장을 한나라당이 계속해온데다 조 씨만큼 이 부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 씨의 입국은 최근들어 다시 불거진 DJ의 숨겨진 딸 논란에도 불을 지필 것으로 보인다. DJ의 숨겨진 딸이 본국 언론을 통해 보도될 때 조풍언 씨도 함께 이름이 오르내렸었다. 조 씨는 이 딸이라고 알려진 여인의 후견인이라는 소문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조 씨는 지난 2005년 본보 전 발행인과의 인터뷰에서 이 부분에 대해 묘한 여운을 남긴 바 있다. 다음은 인터뷰의 일부분.
▲ 김대중 前 대통령의 숨겨진 가족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는 말인가
– 다시 말하지만 내가 ‘사실이다 아니다’라고 말할 입장이 아니다. 또한 그 분은 노벨 평화상을 받은 한국이 낳은 위대한 정치인이다. 한국에서 그런 정치인이 또 나올 것 같은가. 그런 분을 보호는 못해 줄 망정 언론이 이런 식으로 까발려서 국가에 무슨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되겠는가. 기자의 양심을 가지고 보도를 해야지 아직 정확한 사실로 밝혀진 것도 아니고 그 분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도 아닌 것을 까발려서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 숨겨진 가족에 대해 도움을 준 적이 있나
– 할 말이 없다.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다. 후일 말할 때가 올 것이니 그때 가서 이야기하자.


이처럼 조풍언 씨는 김 전 대통령과 관련해서 많은 부분들을 알고 있을 것으로 보여 그의 귀국과 그에 따른 검찰 조사가 가져오는 후폭풍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본보 431호에 게재된 조풍언 관련 기사입니다.


본보의 수차례에 걸친 재미교포 무기중개상 조풍언씨와 김대중 정부의 특혜의혹 집중보도 및 조풍언씨 단독인터뷰가 보도된 이후, 본국의 일요신문 등 각 언론사들은 앞다투어 이를 보도하기도 했다.
당시 조풍언씨의 특혜의혹 사건은 조풍언게이트 라는 이름이 붙어져 DJ 정부의 7대 의혹 사건 중 하나였다.
현재 조풍언씨는 자신과 관련한 이러한 보도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






본보의 수차례에 걸친 재미교포 무기중개상 조풍언씨와 김대중 정부의 특혜의혹 집중보도 및 조풍언씨 단독인터뷰가 보도된 이후, 본국의 일요신문 등 각 언론사들은 앞다투어 이를 보도하기도 했다.

당시 조풍언씨의 특혜의혹 사건은 조풍언게이트 라는 이름이 붙어져 DJ 정부의 7대 의혹 사건 중 하나였다.
현재 조풍언씨는 자신과 관련한 이러한 보도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김우중씨를 미국으로 방문하게 하기도 했고, 남미 등지에 병원, 호텔, 골프장 등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본보의 취재결과 밝혀졌다.
또한 샌디에고의 ‘힐 크리스트’ 골프장을 5백만불에 매입했고 또하나의 골프장 매입을 서두르고 있어 본업인 무기중개상은 그만 둔것으로 보여진다.
당분간은 한국 방문을 하지않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본국의 대표적인 월간지 <월간 조선> 8월호는 본보에서 보도한 <조풍언씨와의 단독 인터뷰 및 의혹제기 기사>를 골자로 하여 본보에서 제기한 의혹이외에도 드러나고 있는 몇 가지 의혹을 제기하면서 특집으로 게재하였다.

<편집자 주>


조풍언씨는 최근 국내재산 처분중

재미교포 무기중개상 조풍언씨가 국내 재산을 처분 중이다. 조씨가 보유하고 있는 국내 재산 규모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도 삼일 빌딩(서울 종로구 관철동),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등 약 1400억원(시가 및 예금보험공사의 추정액)에 달한다.
문제는 조풍언씨가 삼일빌딩과 대우정보시스템의 주식을 매입한 과정과 매입자금 출처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정치권에서는 조씨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산 집을 매입하고 김 전 대통령의 세 아들과도 각별한 관계라는 점을 들어, 삼일빌딩과 대우정보시스템 주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특혜를 받았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2003년 초부터 조풍언씨의 국내 부동산 매입 등의 과정에 상당한 특혜의혹이 있다며 이른바 조풍언 게이트라는 이름을 붙여 대북 송금 의혹과 함께 DJ 정부의 7대 의혹사건으로 규정하고 국정조사를 촉구해 왔다.
조풍언씨가 대우그룹 계열사였던 대우정보시스템을 실질적으로 매입한 시기는 1999년 6월이다. 조씨는 이 당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으로부터 대우정보시스템의 주식 258만주(전체 주식의 71.59%)를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홍콩 소재 투자회사 홍콩 KMC의 명의로 매입했다 매입 가격은 주당 1만 885원이었고, 전체 매입 가격은 281억원(2,430만 달러)이었다.
조씨가 매입한 대우정보시스템의 주당 가격은 대우그룹이 대우정보시스템의 주식 일부를 계열사 직원들에게 우선 매각했을 때의 가격(1만 5000원)보다도 낮다. 이 때문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주식을 조풍언씨에게 매각할 당시 저가 매각 또는 특혜 매각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주식 팔아서 650억원 수익 예상

조풍언씨는 대우정보시스템의 주식을 매입한 8개월 뒤 보유주식 중 95만주를 주당 3만 5,407원에 처분했다. 예금보험공사 측은 “조씨가 주식 매각 대금 중 세금 등을 제외한 291억원을 자신의 외환은행 계좌를 통해 해외로 반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씨는 현재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163만주(전체 주식의 42.99%)를 자신이 설립한 홍콩 소재 투자회사인 <홍콩 KMC>명의로 보유하고 있다. 예금 보험공사는 조씨가 보유한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163만 주의 시장가격이 6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조씨는 결과적으로 대우정보시스템에 투자한 원금(281억원)은 이미 회수했고, 650억원의 투자수익을 남길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풍언씨는 김대중 정권 말기인 2002년 10월 경부터 대우정보시스템 보유 주식을 매각하기 위해 매입 대상자를 물생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우정보시스템 전직 임원은 “조풍언씨는 DJ정부 임기가 끝나기전에 국내 재산을 처분하기 위해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GM사의 국내 한 협력업체와 주식 매각협상을 벌렸으나 가격과 대금지불 방법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무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임원은 “당시 조풍언씨는 자신의 국내 대리인(변호사)을 통해 주당 2만5000원에 매각하려고 한 반면, GM사의 국내 협력업체는 1만5000원을 제시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했다.
조풍언씨 측은 GM사의 국내 협력업체간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매각 협상 과정에서 매각 대금을 한국이 아닌 제3국에서 지급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 업체는 “한국에 본사를 둔 기업의 주식을 취득하는데, 그 주식 매입대금을 제3국에서 지급할 경우 한국의 관련 법규에 위배될 우려가 높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풍언씨, ㈜모디아와 주식 매각 협상 중






대우정보시스템 주식매각 무산 본보 보도 이후 모디아/KMC 딜 깨져

조풍언씨가 대표이사로 등재되어 있고, 일종의 Paper 컴퍼니로 알려진 홍콩 KMC 소유 대우정보시스템 지분 45.3%에 해당되는 1,747,450주에 대한 매각이 이뤄진 것이 아니냐라는 추측까지 나돌고 있다. 하지만 취재결과 비밀리에 추진했던 코스닥 기업 ㈜모디아로의 지분매각건은 무산된 것으로 밝혀졌다.

㈜모디아는 지난 7월 31일 공정공시를 통해 가격상 협상에 이견을 보여 대우정보시스템 인수를 포기했다고 밝힌 것이다. 항간에서는 한때 코스닥 대장주로 군림했던 ㈜모디아(구 모디아소프트, 대표 김도현)가 대우정보통신을 인수한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지난 6월 3일자 ㈜모디아는 공시를 통해 “당사는 현재 대우 정보시스템의 지분 46%을 보유중인 홍콩 소재법인 KMC의 대리인 충정법무 법인과 주식 양수도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였으며, 삼일 회계법인을 통한 회계실사와 태평양 법무법인을 통한 법률실사를 완료 하였다”라고 밝혔었다.

하지만 실사를 통해 ㈜모디아와 KMC측의 딜이 깨졌고, ㈜모디아가 제시한 신주인수방식을 KMC측이 받아들이지 않아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실질적으로 46%대의 지분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조풍언 씨 소유 대우정보시스템의 지분이 예금보험공사에 가압류되어 있다는 월간조선 송승호 기자와 본보의 의혹제기 보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가압류 의혹이 제기되자 ㈜모디아 측은 구주가 아닌 신주인수 방식을 제안했고, 구주를 정리해야 할 조풍언 씨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KMC가 대우정보시스템 소유지분을 매각하는 것을 막을 법적 근거는 없으며, 사후 법적조치만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조 씨는 비밀리에 새로운 인수자를 물색 중이며, 이미 협상에 들어가는 등 발빠른 움직임이 여기저기 포착되고 있다.
한편 조씨가 본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12명의 투자자와 함께 매입했다고 밝힌 삼일빌딩은 매입당시 502억에 빌딩을 구입했으며, 현시세 800억원을 감안할 때 300억원 가량의 시세차익이 가능한 상태다. 조풍언씨는 주식 매각 협상이 결렬된 뒤 2003년 3월 국내 시스템 통합업체인 ㈜모디아(대표이사 김도현/36)와 주식 양수도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모디아의 관계자는 지난 7월 7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대우정보시스템에 대한 삼일회계법인을 통한 회계실사와 태평양법무법인을 통한 법률실사를 마친 상태”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다만 주식 양도자와 양수자 간 주식 양수도 가격에 대한 이견이 있어 양사간에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충청법무법인의 지인으로부터 대우정보시스템을 매각하려고 하는데 인수할 곳이 있으면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당시 우리 회사의 상황으로 볼 때 시너지 효과가 많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인수의사를 밝혔다”면서 “그 후에 1대 주주가 홍콩의 KMC라는 것과 그 법인이 조풍언씨의 소유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조씨가 대우정보시스템 주식을 매각했을 경우 주식 매입자는 소유권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조씨가 홍콩 KMC명의로 대우정보시스템 주식을 매입한 자금의 출처가 불분명 하기 때문이다.
조씨가 대우정보시스템 주식을 매입할 당시 매입대금은 대우그룹의 런던계좌(BFC: British Finance Center)에서 처음으로 빠져나와 조풍언씨가 설립한 홍콩 KMC법인계좌로 들어갔고 이자금은 다시 대우 그룹측으로 넘어갔다는 것이 예금보험공사 측의 주장이다.
예금보험공사는 조풍언씨의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매입자금이 대우그룹의 런던계좌에서 처음으로 인출됐다는 점을 들어, 이 자금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조성한 비자금 중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예금보험공사 측은 주식 매입 대금이 공적자금을 투입한 대우그룹 자금 중 일부라고 단정하고 이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조풍언씨의 홍콩 KMC 명의 주식에 대해 2001년 9월 가압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예금보험공사 측은 홍콩 KMC명의 주식에 대한 가압류 조치만 해놓았을 뿐, 지금까지 본안소송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대우정보시스템이 증권시장에 등록돼 있지 않아, 홍콩 KMC의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지분만 주주명부에 등재돼 있을 뿐 주식의 실물에 대해서는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 KMC 명의의 대우정보시스템 지분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매각돼 국외로 빠져나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러나 주식 인수 의사를 갖고 있는 ㈜모디아 측은 “우리가 확인한 바로는 예금보험공사의 가압류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만일 가압류가 사실이라면 근본적으로 거래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부실채무기업 특별조사단 특별조사기획부 이성우 팀장은 “지금으로서는 홍콩 KMC가 대우정보시스템 소유 주식을 매각하는 것을 사전에 막을 방법은 없다”면서 “확실한 주권 소유자가 나타나면, 그 소유자를 대상으로 <채권 취소소송> 등 법적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예보와 전혀 다른 조씨의 주장: 세계적인 유명인사의 돈

조풍언씨는 예금보험공사의 발표와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조씨는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인교포 대상 주간지인 <선데이 저널 USA>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매입자금과 관련,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을(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게)소개해 주었고, 김회장은 그 사람으로부터 7,500만 달러를 빌렸다. 김회장은 IMF직 후 이 자금으로 국내 금융기관의 전환사채를 매입했고, 이 전환사채를 담보로 다시 다른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빌렸다.
그러나 김회장은 대우그룹의 자금난이 심화되면서 차입금을 상환할 수 없어, 결국 전환사채가 <백지사채화>할 지경에 처하자 대우정보시스템을 비롯한 대우그룹 계열사의 김회장 소유 주식(4500만 달러 상당)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에게)넘겨주었다.
당시 김우중 회장은 <한 달뒤에 주식 가격이 배로 뛸 것이니 그때 주식을 팔아 본전을 챙겨 가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주식이 폭락하면서 2,500만 달러만 찾아갔으며, 이 2,500만 달러는 나와는 알무런 상관이 없다.”
조풍언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조씨가 홍콩 KMC 명의로 사들인 대우정보시스템 주식의 실질적 소유주는 조씨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매입자금을 포함한 돈의 경로도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볼 수 있다.
<김우중 회장, 유명인에게 7,500만 달러 차입 → 7,500만 달러를 대우그룹의 런던 계좌에 입금 → 런던계좌에 입금된 자금 중 일부를 조풍언씨가 관리하던 홍콩 KMC계좌로 입금 → 홍콩 KMC계좌에 입금된 자금 중 일부로 대우정보시스템 주식(253만주, 전체주식의 71.59%)취득 → 홍콩 KMC명의의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중 95만 주 처분 →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처분 자금 중 291억원 해외반출 → 홍콩 KMC 명의의 대우정보시스템 주식(163만주, 전체 주식의 42.29%)매각 협상 중>






믿기 어려운 조풍언씨의 주장

조풍언씨가 <선데이 저널 USA>와의 인터뷰를 통해 주장한 내용을 그대로 믿기에는 의문점이 너무 많다.
첫째, 조씨는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매입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 상무의 주장은 조씨와는 전혀 다르다. 김 전 상무는 “1999년 6월 김우중 회장이 대우정보시스템 주식을 조풍언씨에게 넘길 것을 지시했고, 그에 따라 주식 양수도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월간 조선과의 인터뷰 (2001년 12월호)를 통해 밝힌바 있다. 김우일씨는 “대우정보시스템 주식의 양수 계약서를 작성해 조풍언씨에게 보여주었더니, 내용도 읽어 보지 않고 곧바로 서명을 했다”고 주장했다.
둘째, 조풍언씨의 주장대로, 조씨가 대우정보시스템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조씨는 왜 대우정보시스템의 회사 운영에 깊이 관려했느냐는 점이다. 조씨는 대우정보시스템의 주식을 홍콩 KMC 명의로 사들인 직후, 대우정보시스템이 사장을 직접 만나 “사장직을 그만두어야 겠다”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조씨는 자신과 친분 있는 인사를 대우정보시스템 감사로 영입했고, 수시로 회사의 운영상황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셋째, 홍콩 KMC명의로 돼 있는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일부의 매각 대금이 왜 홍콩 KMC법인 계좌가 아닌, 조풍언씨 개인 명의의 계좌로 입금됐느냐는 것이다. 조씨가 대우정보시스템의 보유 주식 중 일부를 처분할 당시, 이 회사의 임원으로 근무했던 한 인사는 “주식 매각 대금이 조풍언씨 개인 명의의 계좌로 입금됐다”고 증언한 바 있다.
넷째, 조풍언씨의 주장대로 김우중 회장이 세계 유명인에게 7,500만달러를 빌린 뒤, 실질적으로 2,500만 달러만 상환했다면, 나머지 5,000만 달러는 어디로 사라졌느냐는 점이다.
홍콩 소재 “홍콩 KMC”는 서류형태로만 존재하는 이른바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인 것으로 확인됐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홍콩 KMC에 대한 자료에는 이 회사 대표이사가 미국 국적의 라고 기재돼 있다. 홍콩 KMC의 법인 소재지도 <홍콩 완차이 퀸스로드 이스트 145 헹샨센터 23층>으로 등록돼 있다.
홍콩 KMC의 설립 시기는 1992년 11월이며, 업종은 M&A 및 투자전문회사로 기재돼 있다. 월간조선의 확인 결과, 홍콩 행샨센터 23층에는 <LOUSICH, & Lau Negan(Lousich Co.에서 상호 변경)이라는 사무실만 있을 뿐 홍콩 KMC라는 회사는 없었다. 사무실의 직원은 “조풍언씨가 페이퍼 검퍼니를 달라고 부탁해 와 변호사 사무실 주소지로 한 회사를 만들어 주었다”고 말했다.

조풍언씨, 삼일빌딩 매각될 경우 200억원 이상 시세차익 예상

조풍언씨는 대우정보시스템과 함께 삼일빌딩(지하 2층, 지상 31층)도 매각하려고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고 한다. 서울 종로구의 Y부동산 사장은 “삼일빌딩이 2002년 10월께 매물로 나왔으나 지금까지 매각되지 않았다.”면서 “삼일빌딩 소유주 측의 매각 희망가격이 800억원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조풍언씨는 2001년 502억원에 매입한 삼일빌딩을 800원에 매각할 경우 2년여만에 200억원(세금 등을 제외한 금액) 이상의 시세차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일빌딩의 등기부 등본에 따르면, 이 빌딩의 소유주였던 한국산업은행은 2001년 3월 2일 삼일빌딩을 <스몰록 인베스트먼트 컴퍼니>라는 회사에 매각했으며, 실제 소유권은 2001년 8월 7일 이전됐다.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사의 등기부 등본상 주소도 <홍콩 KMC>와 같은 홍콩 헹샨센터 23층이며, 이 회사 역시 페이퍼 컴퍼니인 것으로 확인됐다.
조풍언씨는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사의 실질적 경영권자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선데이 저널 USA>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삼일 빌딩은 내가 주도하여 12명의 투자자를 모아 매입한 것이며, 이때 설립한 회사가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측은 “조풍언씨가 설립을 주도한 <스몰록 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가 삼일빌딩을 매입한 과정에 특혜의혹이 있다”며 대우정보시스템의 주식 매입 과정과 함께 국정조사 실시를 주장하고 있다.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사의 삼일빌딩 매입과정에서 제기되고 있는 특혜의혹은 우선, 수의계약에 의해 매매계약이 체결됐다는 점이다. 이 빌딩 소유권자였던 한국산업은행은 2000년 5월과 6월 두차례 공개경젱 입찰을 실시했으나, 유찰시켰다.

한국산업은행 관계자는 유찰시킨 이유에 대해 “최소한 한국감정권의 감정평가액(2000년 4월)인 563억원보다는 높게 매각해야 한다는 은행측의 방침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산업은행측은 2개월 뒤 삼일빌딩을 한국감정권의 평가액보다 61억원이 적은 502억원에 수의계약을 통해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사에 매각했다.
둘째, 한국산업은행은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사가 삼일빌딩 매각 잔금을 최종 남부한 2001년 8월 7일 이전에 한국산업은행 종로지점을 이 건물에 입주시키기로 약속을 했다는 점이다. 한국산업은행 관계자는 “스몰록 인테브스트먼트사와 2001년 3월 삼일빌딩 매매계약을 맺은 뒤 이 회사측으로부터 한국산업은행의 지점을 입주시켜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산업은행은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사가 삼일빌딩 매입 잔금을 마지막으로 지불한 2001년 8월 7일, 이 건물의 2개층을 5년간 보증금 100억원에 임대해 종로 지점을 입주시켰다. 한국산업은행이 임대 보증금 100억원에 대한 근저당권을 설정한 시점도 2001년 8월 7일이다.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사가 한국산업은행이 지불한 임대 보증금 100억원을 포함해 삼일빌딩의 매입 잔금을 지불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한국산업은행의 임대 보증금 지금 날짜와 삼일빌딩 잔금 지급 날짜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사는 조풍언씨의 경기고(54회) 동기인 H변호사를 통해 한국산업은행과 매매계약을 체결햇고, 매매 대금도 H변호사를 통해 한국산업은행에 지급했다. 한국산업은행 관계자는 “H변호사가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사의 위임장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H변호사와 매매계약을 체결했다”면서 “매각대금은 계약 당시 50억원을 받았고, 그 후 중도금 명목으로 100억원을 받았다. 그리고 잔금 352억원은 2001년 8월 7일에 받았다”고 말했다.
셋째, 조풍언씨는 <선데이 저널 USA>와의 인터뷰를 통해 조씨 자신을 포함한 12명의 투자자 자금을 모아 삼일빌딩을 매입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 빌딩 매입을 위한 자금이 국내에 유입됐다는 흔적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기자는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사와의 삼일빌딩 매입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 회사의 대리인 H변호사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의혹의 당사자인 조풍언씨에게도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조씨 역시 연락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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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의 이해를 돕기위해 2003년 5월 게재되었던 조풍언 인터뷰 기사를 올립니다.


 





“나는 김대중 아들들의 여자편력,최규선 관계 등 거론하다 오래전 烹 당했다.”

삼일빌딩 매입설은 사실 12명 파트너와 공동명의 구입


조풍언 씨는 김대중 정부들어 자신은 특혜를 본 사실이 단 한 건도 없다고 항변 했다.

(지난호 407호 5월 11일자) 자신이 실질적인 사주로 있었던 기흥물산이 무려 40배에 가까운 성장을 한 것은 김대중 정부의 배려가 아니라 김영삼 정권때 구입한 F-16 비행기의 전자장비와 관련한 계약이 IMF로 진행되지 못 하다가 2000년 경기회복에 따라 계약대로 전자부품을 납품,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이전부터 기흥물산은 매출이 수천만불에 달했으며 98년 매출이 1백만불에 불과했던 것은 IMF이후 계약이행이 되지 않아 한 해만 국한되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DJ정부의 특혜를 받아서 성장했다면 야당이나 언론 등에서 그 정도로 끝났겠느냐고 주장했다.

2조 2천억원에 달하는 차기유도 무기 사업 선정과정과 관련 1천만불의 커미션을 받은 부분에 대하여도 자신은 이스라엘 무기업자( 이름은 밝히지 않음)의 대리점 역할에 불과 했다. 차기유도 무기사업과 같은 중대한 사업은 모두 미국이 국가와 국가간에 하는 계약이며 특히 FMS(Foreign Military Service)에서 메인 콘트롤을 하는 지극히 극비 사항이라서 현재는 그 구체적인 사항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조풍언 씨는 김대중 가(家)와의 정경유착 관계에 대해 자신의 무기 사업에 단 한 차례도 혜택을 받은 사실이 없다. 다만 김대중 씨가 대통령에 취임 하고나서 정치권에 휩쓸려 다니며 엔죠이를 한 것은 사실이나 그외에 달리 특혜를 받은 사실이 없다. 국방부 예산 집행서를 보면 그와 같은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명 할 수 있다고 말했으며 ‘야당이나 언론에서 그렇게 나를 잡기 위해 뒤졌지만 결국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조풍언 씨 자신은 이미 무기장사를 그만 둔지 오래되었으며 김대중 정부 들어서 자신이 실질적인 소유로 되어 있던 기흥물산을 전 직원들에게 육/해/공군으로 나눠주었으며 현재는 경영과 관련이 없다고 했다.

(인터뷰 : 연 훈 본지 발행인)

*407호 인터뷰 전문:

5월 8일 아침 8시

기자는 조풍언 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조 씨의 부인이 경영하는 한인타운 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가든 스위트호텔로 성급하게 들어가 프런트(front)에서 조 씨를 찾았다.

그러자 뒤에서 “연 사장” 하는 정겨운 소리가 들려왔다. 커피샵에 들어가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아침 시간이라 우리 외는 다른 손님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할 때 두사람이 무엇 때문에 만나나 하는 의아심이 드는 것은 자명한 노릇이니까/ 이번이 벌써 3번째 만남이었다. 3번째 만남 이라는 의미는 이번 선데이저널에서 조 씨와 김대중 일가와 관련된 의혹기사를 수차례에 걸쳐 보도하고 부터이고 조 씨를 알고 있는 것은 10여년전부터였다.

첫번 째는 우연치 않게 한 교포인사의 주선으로 만났으나 오랜 만에 만나는 의미 이외는 달리 없었고 두번째도 역시 그분의 주선으로 만났다. 그때 조 씨는 ‘기자들은 쓸 것은 다 쓰고 만나야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기가 쓰지 못하면 다른데 팔아 버리기 때문이다. 골프가 싱글이라는데 언제 기회가 되면 골프나 한번 치자”라고 말해 그동안 조 씨가 언론에 얼마나 시달렸었는지 짐작이 가는 듯 했다. 그러면서도 조 씨는 ‘농담 반 진담 반’ 그만 써 달라고 애교 있는 주문을 하기도 했고 기자는 ‘그럴 의사도 있다. 그러나 내가 기사를 중단할 명분을 달라’고 하여 자연스럽게 세번째 만남을 갖게 되었다.

군납과 무기장사

일반 사람들은 보통 군납과 무기장사 하면,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 씨가 말하는 그 의미는 전혀 달랐다. 군납은 군대에 무 배추 두부 밀가루 등 생필품을 파는 것이고 무기장사는 이름 그대로 방위산업과 관계된 무기, 비행기나 그와 관련한 부품을 파는 것이다라고 조 씨는 친절히 말해주며 “나는 지난 45년간을 군대에 있는 사람들과 동고동락을 같이 해 왔다. 경기 고등학교 시절 집안이 망해 갖은 고생 끝에 고려대학에 진학 했고 학비와 생활비가 없어 남산에서 잠을 자기도하고 가정교사를 하기도 했다” 지난 어려웠던 날을 들려주며 “ 학교를 졸업하고 나이 20대 중반에 군납을 하기 시작했다”고 술회했다.

“그때만 해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었지/ 64년부터 군납을 했는데 매일 저녁 군인들과 술 먹는게 일이었지/ 60만 대군 생활 필수품을 대주다 보니 별의별 일이 많았다”면서 그때가 재미 있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 갔다.

“내가 이런 얘기하면 안 되는데 – 옛날에는 말이야, 물건도 없고 가격이 없어 거짓말을 해서 가격을 정하다보니 매일 술 타령이고 돈을 짚차에 푸대로 싣고 다니며 뿌리지 않으면 군납을 할 수가 없었지 / 물건은 없고 파우치에 군인들이 도장을 찍어주면 짚차에 싣고간 돈에서 미리 반을 주면 군표(국고 수표ㅡ를 일컬음)를 받고, 나머지 반은 바꿔서 주는 그런 장사를 했는데 그게 바로 군납이라는 거야” 조풍언 씨는 군납을 하던 시절을 회고하며 그런데 바로 그 이유로 해서 무기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노라고 말을 이었다.

다른 군납업자나 군인들은 모두 조 씨가 야간중학을 나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고 똑똑해 보이면 건방지다라는 소리에서부터 모두 적개심을 갖고 끼어 주지를 않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을 하고 다녔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날 한 군납업자가 조 씨에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느냐고 물어 무슨 일인데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을 찾느냐고 하니까 “너 같은 무식한 사람은 몰라도 되는데”하면서 “사실 해군에서 7백만불 어치를 구매했는데 영어를 몰라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하더란다 .

그래서 겨우 설득하여 그 내용을 알아보니 해군에서 그 군납업자에게 엔진 제네랄 펌프 등 함정에 필요한 부품을 구매하기 위한 계약서였던 것이다.

그 때 조 씨는 그 군납업자에게 사실을 고백했다 ‘사실 나는 경기 고등학교를 나오고 고려 대학교를 나왔는데 같이 한번 해 보자’고 하니 믿지를 않더라는 것이다. 당시 7백만불 돈이면 하늘 색깔이 바뀔 정도의 큰 액수였다.

그 인연이 바로 조풍언 씨를 오늘의 무기장사 조풍언으로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노태우-김영삼 시절에 번 돈이다. 김대중 정권땐 한 건도 없었다”

조풍언은 샌프란시스코, 뉴욕 등지를 돌아 다니며 부속품을 구했다. 당시 한국 해군이 소유하고 있는 함정은 모두 미군들이 남기고 간 오래된 것 들이라 부속을 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대부분 회사가 없어지거나 중단된 것 들이라서 구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어렵사리 구해보니 모두 중고들 뿐이여서 수리비가 엄청 많이 들었음에도 6백만불이 남았단다. 당시 조 씨의 나이 불과 28세 때였다.

그 때부터 조풍언은 군납을 때려 차우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 장사’ 인 무기장사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 했다.

“당시 내돈 안 먹은 사람 없었지 / 그래서 여러 번 보안사 정보부 검찰 등에 끌려 다니며 고초도 많이 겪었는데 나는 술만 먹었지 절대로 돈은 준 적이 없다고 하니 몇 날 몇 일을 때리고 고문 하다가 포기하고 내보내더라” 그뒤로 군인들은 조 씨의 돈을 먹어도 탈이 없다고 생각, 내놓고 봐주기 시작 했다고 털어 놓는다.

기자가 그의 어려운 시절에 언급하는 것은 그에 대한 인간성이나 사업 철학 등에 관한 이해를 얻기 위해서였다.

기자는 조 씨에게 본격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 했다.

기자
: 김대중 정부 시절 군납이권을 26건이나 했다는데

조풍언
: 그건 무기사업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군납과 무기사업은 별개다. 나는 김대중 정권 들어 단 한건도 계약을 한 사실이 없다. 그런 일이 있다면 한나라당에서 지금까지 가만이 있었을 턱이 없다. 나는 노태우 김영삼때 돈을 벌었지 김대중 시절에는 없다. 내가 잘못이 있다면 평생을 군인들과 정치인 들에게 굽실거리며 살다가 김대중 씨가 대통령이 되고나서 우쭐거리고 폼을 재고 다니며 장관 정치인 할 것 없이 욕지거리를 하고 엔죠이 한 건 사실이다. 그것이 죄라면 죄이고 그 죄를 달게 받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 씨가 나를 필요로 했던 것은 모르기는 몰라도 홍일(김홍일 의원)이 때문인 것으로 안다. 단 한 건이라도 있으면 갖고 와봐라

기자
: 지난 98년 기흥물산의 매출액이 1백만불이었는데 99년 무려 40배에 가까운 성장을 했다. 정경유착 없이 가능한 이야기인가

조풍언
: 무기사업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특히 한국언론과 한나라당에서 나를 공격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다. 국방부 예산 집행서를 보면 알수 있는 일이다. 98년 이전 것은 거론치 않고 있는데 나는 그 때 벌써 수천만불의 매출을 했다. 김영삼 정권때 F-16 비행기 120대가 들어왔는데 나는 연도 별로 전자장비와 관련한 계약을 했었으나 IMF 여파로 40대의 전자장비 예산밖에 없었다가 99년 2000년에야 경기가 회복돼 다시 계약대로 추진했고 그로 인해 매출이 뛴 것이지 다른 별도의 사업을 통해 신장 된 것이 아니다 국방부 예산 집행서를 보면 알 수 있다. 남들 보기에는 그것을 의혹으로 보는데 나는 결백하고 김대중 씨를 만나서 언론에 부각 되면서 사실이건 아니건 기사화 되면서부터 무기장사로서의 수명은 끝난 것이다

기자
: 2조 2천억 규모의 차기 유도 무기 사업 선정과 관련하여 커미션으로 1천억을 벌었다는데 사실인가

조풍언
: 차기 유도 무기사업 같은 중대한 거래는 군원(FMS: Foreign Military Service) 에서 관장하는 데 이는 국가와 국가 사이끼리 극비밀로 하는 것 이기 때문에 뭐라고 말을 못 하겠다. 나는 평생을 비밀적인 사업을 해 왔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위해 할말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이야기 할 단계가 아니나 분명한 것은 나는 이스라엘의 하청업자(이름은 밝히지 않음) 의 대리점 노릇을 한 것이고 불과 수십만 불의 커미션을 받았을 뿐 더 이상의 거래는 없다.

기자
: 수조원의 사업을 진행하면서 수십만불의 커미션을 받았다고 하면 누가 믿겠느냐

조풍언
: 사실이다. 무기거래의 메인 콘트롤은 모두 미국이 한다. 차기 유도 무기를 수입할 예산이 한국에는 없다. 한대에 1억불이나 하는 것을 수십대씩 사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1대는 있다

기자
: 그럼 그 1대는 조풍언 당신이 관여 했느냐

조풍언
: 말할 수가 없다. 이런 말은 모두 린다 김이 떠들고 다니는 이야기에 불과 하다.
나는 대한민국의 무기장사 1호다. 린다 김이 언제부터 무기장사를 했다고 하며 떠들고 다니는데 참으로 가소로운 이야기이다. 누구라고 밝힐 순 없지만,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군 고위층이 침이 마르도록 부탁해 한구석 끼워 준 것 밖에 없는데 자기가 수십년 전부터 무기장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이가 없어 웃었다. 정말 웃기는 이야기다. 내가 린다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조풍언 씨는 느닷없이 린다 김에 대한 대목에서 몹시 흥분하고 가소로운듯 열변을 토했다. (린다 김과 관련한 조풍언씨의 인터뷰 내용은 다음호에 기재할 예정임)

기자
: 무기장사나 방위사업에 문외한인 기자가 생각해도 김대중 정부에서 단 한가지 혜택도 받지 못 했다면 누가 믿겠는가

조풍언
: 사실인 것을 어쩌 하겠느냐. 무기사업은 다른 사업과 달리 하루 이틀에 이뤄 지는 것이 아니다. 물건을 팔려면 평균 5년이 걸린다. 어떤 정권이 봐주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도입계획과 시험기간이 5년 걸린다. 그것이 끝난 다음에야 계약을 할 수 있는데 그런 사실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김대중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은 양 말 하는 것 자체가 결국 내가 김대중씨 집안과 가깝다는 색안경을 끼고 보기 때문이다. 무기시장은 체계가 있고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미국이 통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사고 싶어도 못 사는 무기가 많다. 군납은 특혜가 있을지 모르지만 무기장사는 특혜가 없다 그 이유는 국방과학연구소 (ADD)에서 조사 연구하여 치밀한 과정을 거쳐 하기 때문에 5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 이유는 한국을 비롯하여 외국에 파는 무기가 대부분 연구 결과 문제가 많기 때문에 국방과학연구소가 이를 철두철미 하게 조사하고 불량품을 팔 수도 있기 때문에 사전 예방하는 업무를 하는 것이 ADD의 역할이다.

그런 이유로 5년의 기간이 소요되며 모르는 사람들이 단지 단기간에 무기 판매가 가능한 것으로 생각해 김대중씨가 나에게 어떤 방위산업의 특혜를 준 것으로 오해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기자
: 만일 훗날 지금 인터뷰한 내용에 대해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에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조풍언
: 물론이다. 나는 평생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다만 입이 험해서 욕지거리를 자주 하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흠이라 주변 사람들이 나를 험담할 지언정 나 자신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믿어달라.

기자와 조풍언씨는 화기애애하게 오랜 시간을 인터뷰 했다. 조씨는 인터뷰 중간 중간 “할말이 많지만 지금은 말 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언젠가는 조씨 스스로가 말할 때가 올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어 그가 지니고 있는 폭발력을 짐작 할 수 있었다.

*408호 인터뷰 전문:
나는 김대중 아들들의 여자편력,최규선 관계 등 거론하다 오래전 烹 당했다.

– 김대중 정부들어 정치권 사람 들과 엔죠이를 했다는 것은 무슨 소리며 그로 인해 지금까지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다는 말은 무엇인가?

나는 평생을 군납과 무기장사를 하면서 군인들과 정부 고위인사 들에게 고개만 숙이고 다녔다. 그런데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고 나니 평생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장관 고위장성들이 형님 형님하고 부르며 술자리를가던 어디를 가던 나를 상석에 앉히며 대접을 받으니 우쭐해져 안하무인이 되었었다. 그들에게 반말은 차치하고 욕지거리를 해대기도 했으니 그거야말로 엔죠이가 아닌가. 그 당시야 조풍언을 통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로 나를 실세 중에 실세로 대해줄 때다. 그러나 실제로는 되는게 하나도 없었다. 그것이 오늘날 내가 세상사람 들에게 난도질을 당하고 있는 이유의 전부다.

-김대중 정부들어 단 한건도 특혜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하는 데 누가 그 소리를 믿겠는가?

DJ 정권 들어서 나는 돈만 썼지 정말로 아무런 특혜를 받지 못했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속성을 모르고 하는 소리 같은데 나와 김대중 씨간의 관계는 세상이 알고 있어 불을 켜고 볼 때인데 야당이나 언론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내 얼굴과 이름이 너무 팔려 무기장사를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무기장사라는 것이 알려지지 않을 때 하는 것이고 참모총장이나 국방부장관 등 군 고위층이 나보다 연로할 때 하는 장사지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그 자리에 가면 무기장사로써의 생명은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김대중씨는 원래 누가 이권에 관계 된 것을 요청하면 금새 태도가 돌변하는 사람이다. 돈이 들어와도 쥐도 새도 모르게 부인과 둘이서 관리하지 누구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김대중씨 집안과 다시 인연을 맺었으며 홍일, 홍업, 홍걸의 후견인 행세를 하고 다녔나.

김대중 씨는 항상 새 사람을 좋아한다. 지난 93년 김대중 씨를 다시 만날 때 주변에는 이렇다할 사람이 없었다. 특히 돈 있는 사람이 없었고 오랫동안 보아온 사람들 속에 내가 나타나니 신선했을 것이다.

그리고 호텔도 가지고 있고 돈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부친과의 관계도 있으니 우리의 만남은 자연 스러운 것이였다. 특히 당시 홍걸이가 학교 문제 등 거취 문제 등이 있어 내가 필요 했을 때였다. 그리고 김홍일 의원의 병 때문에 더욱 내가 필요했다.

-김대중 씨를 처음 본 것은 언제인가?

국민학교 시절로 기억된다. 당시 김대중 씨는 빨갱이로 몰려 우리 아버지 밑에 와 있을 때였다. 당시 빨갱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었나 / 그때 대한 청년단 단장은 이범석 씨 였는데 우리 부친은 전라도 단장을 하고 있었다.

6.25가 터지면서 방위군으로 바뀌고 현지에서 별을 달아주는 그런 때였다. 그 때 김대중 씨는 내 부친의 도움으로 해양방위대에 근무하기도 했다.

바로 그 때 김대중 씨를 처음 뵌 것이고 지난 93년 LA에 방문, 내가 주관한 만찬에서 나를 소개하니 반갑게 만난 것이다. (조풍언씨는 그동안 김대중 씨를 어릴적부터 관계해 왔으며 그로 인해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 많은 박해를 받아 온 것처럼 이야기 했다고 한국의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었으나 이는 전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음)

이런 사실 하나 만으로도 나는 평생을 고생했다. 김대중 씨와 내 부친과의 관계로 인해 대통령 선거 때마다 요주의 인물로 사찰 등으로 인한 피해를 받기 일수였고 사업을 할 때도 단지 목포 사람이라는 이유로 은행 융자는 꿈도 꾸지 못했으나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DJ에게 고맙다고 하고싶다.

– 한국의 언론 보도에 의하면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 너무 탄압이 심해 미국으로 온 것으로 되어 있는데 정말 김대중 씨로 인해 고초를 겪었는가?

말이 와전된 스토리다. 77, 78년 나는 서빙고 보안사에 끌려가 무지하게 매를 많이 맞었다. 군인들에게 돈 준 사실을 불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내 돈 먹지 않은 군인이 없을 정도였는데 그걸 다 불면 국방이 흔들릴 정도였다. 그걸 내가 불 리 없었고 그로 인해 전기고문까지 받았으나 결국 나오지 않자 상처를 치료해주고 나가라고 해서 나왔다. 그 뒤로 그들은 적어도 조풍언이 돈은 먹어도 뒤탈이 없다고 생각했던지 친해 졌다.

그리고 한 번은 당시 군대는 파벌이 많았고 경상도가 다 해먹을 때라서 전라도 사람 참모총장을 만들어 보려고 운동하다가 또 한번 보안사에 끌려가 치도고니를 맞았다.

그때 윤필용 씨가 나보고 미국에 가라고 권유해 81년 전 미8군 참모장 출신인 제네랄 스미스 장군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온 것이다. 스미스는 나의 은인이다. 나는 그로 인해 무기장사를 배웠으며 그를 통해 미국이나 한국의 고위층을 접할 수 있었다. 당시 스미스 씨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매월 한 차례씩 독대를 했는데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도청기를 설치하여 한미관계에 심각한 상황까지 야기시켰던 이른바 청와대 도청사건이 터졌는데 그때 나는 스미스와 친분이 있을 때여서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조사를 받다가 스미스가 CIA의 책임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 사건 직후 스미스는 미국으로 건너 갔다가 방위산업 회사인 E-Syetem의 아시아 책임자로 부임하였다. (E-System 회사는 당시 전군이 사용하는 PRC-77이라는 라디오를 납품하는 방위산업 회사였다)

그런 이유로 보안사에 두 번, 중앙정보부에 한번 끌려가 고초를 겪었을 뿐 김대중 씨와는 무관한 일이다.

– 제네랄 스미스를 은인이라고 했는데 어떤 도움을 받았나?

당시 무기장사는 나에게 있어 무풍지대나 다름이 없었다. 나는 전군에 레이다를 비롯 각종 통신장비, 무기 등을 팔았다. 당시 내 손 거치지 않은 무기는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런 나에게 스미스는 미국 최대의 무기회사인 록히드 회장 등을 내게 소개시켜주는 등 무기장사로서의 발판을 마련해 준 사람이다. 그는 공군 3성 장군 출신이며 이름 까지 ‘김대호’로 바꿀 정도로 한국을 사랑했다. 이른바 청와대 도청사건 이후 한국을 많이 도와 주었는데 이럴 수가 없다는 배신감에 필리핀으로 떠나 버렸다. 나는 그의 도움으로 미국에 올 수 있었고 시민권도 받을 수 있었다.

– 지금까지 말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대한민국의 국방 관계자들과 군인들은 모두 부패하고 썩었다는 이야기인데 너무 심한 표현이 아닌가?

그래도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하면 무지무지하게 깨끗한 편이다. 무기장사라는 것이 시간이 많이 필요한 비즈니스다보니 비용도 많이 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복마전이나 다름이 없다. 부패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속성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로비 없이는 불가능한 사업이기 때문에 말도 많은 것이다.

조풍언 씨는 결국 김대중 정부 들어 군납이나 무기장사에는 단 한 건의 혜택을 받은 일이 없으며 오히려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다만 김대중 정부들어 분위기에 휩쓸려 정치인들과 어울려 다니며 자의 반 타의 반 실세 행세를 하고 다니다가 혜택 한 번 보지 못하고 여론에 떠밀려 곤욕을 치루고 있다고 주장한다.
조 씨는 무기사업과 관련해 지금과 같이 메인 콘트롤을 미국이 하는 상황에서 한 건으로 돈을 벌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자신은 연장 선상에서 계속해 온 일이며 30년 비즈니스에 매년 부속품만도 3천만불을 팔았다. 그외 차기유도 무기 사업과 같은 중대한 사업은 개인이 할수 없는 국가와 국가간의 일이며 대리점 역할을 통해 한건에 고작 5만불 정도(미국 방위산업 커미션을 법으로 정한 액수)가 전부라는 것이다.

조 씨의 이런 주장을 기자는 달리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을 조 씨의 입을 통해 알릴 뿐 객관적인 증거나 물증을 제시해 따지고 들 수가 없다.


3.1빌딩 매입과 스몰 락 의 실체

본보는 지난 405호(4월27일자)에서 <조풍언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삼일빌딩 매입의 진상 의문 그 실체를 추적한다> 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의혹을 제기 했다. 그동안 한국의 정치권과 언론들은 수없이 그 실체를 알아 보려고 노력했으나 지금까지 의문만 제기되었지 그 진실은 규명하지 못했다. 삼일빌딩은 1970년 개발연대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그 빌딩이 한 홍콩계 회사로 넘어 갔는데 과연 그 건물을 매입한 사람은 누구이며 그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해 했다. 아무도 이와 관련해 입을 열지 않았다. 매각환 산업은행도 그리고 등기업무에 관여한 법무법인 충정등 모두 모르쇠로 일관했다. 본보는 이에 대해 베일 속에 숨어서 은신 할 것이 아니라 삼일빌딩 매입 의혹과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라고 보도했었다.

조풍언 씨는 삼일빌딩 매입과 관련, 처음으로 본보 기자에게 명확하게 자신의 입장을 표명 했다.

-삼일빌딩의 실질적인 주인은 누구이며 매입 과정을 이야기해 달라.

솔직하게 말하겠다. 삼일빌딩은 내가 주도하여 12명의 투자자를 모아 매입한 것이다. 단독으로 매입한 것이 아니다. IMF이후 내가 한국정부와 가깝다고 알려지면서 미국업자들이 많이 찾아 왔었다. 그 때만해도 고층 건물들이 모두 헐값으로 내놓아도 팔리지가 않았고 연쇄부도로 말미암아 파산이 속출 할 때였다. 그럴 즈음 삼일빌딩이 매각 물건으로 나왔는데 그때까지 삼성생명이 매입을 시도, 4번의 유찰 끝에 가격을 더 떨어뜨리려고 하다가 나한테 걸린 것이다. 당시 470억이면 살 수 있었던 것임에도 결국 502억에 매입했던 것이다.

– 매입 과정에 특혜는 없었는가?

특혜는 무슨 특혜 당시 502억에는 살 사람이 없었다. 4번이나 유찰돼 우리가 매입 했는데 무슨 특혜며 이권인가. 당시는 3백억에도 살 사람이 없었다. 그 이유는 입주자가 전무할 정도로 텅텅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 스몰락 인베스트먼트 컴퍼니는 어떤 회사이며 왜 홍콩의 변호사 사무실을 통해 매입 했는가?

홍콩이나 싱가폴은 우리와 같은 업종의 사업가에게는 더 없이 좋다. 미국이나 한국처럼 까다롭지 않고 자유롭기 때문이다. 더욱이 매입투자에 참여한 6명이 모두 중국인이기 때문에 홍콩의 변호사를 고용 매입 했던 것이다. 한국인은 나 혼자이고 그때 만든 회사가 스몰락이라는 회사다.

– 왜 회사 이름을 스몰락 이라고 지었는가. 혹시 학교 다닐 때 소암(小岩)이라는 자신의 호를 따서 영어로 작은 바위의 의미로 만든 이름이 아닌가?

꼭 그런 의미 만은 아니다. 우리 파트너 6명은 세계 각국에 교회를 많이 짓고 있는데 모두 똑 같이 돈을 대서 교회사업에 사용한다. 성경 말씀대로 초석이 되라는 이유로 스몰락으로 짓게된 것이지 다른 의미는 없다. 6명의 파트너는 이런식으로 돈을 모아 골프장이고 건물에 투자하고 있다. 싫다는 사람은 빠지기도 한다.

– 매입 과정에서 김우중 씨의 돈이 유입되거나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가? 김우중 씨와는 아직도 관계가 있는지 알고 싶으며 대우정보시스템 등 알짜배기 회사만을 인수했는데 어떤 방법으로 인수했으며 김우중과 김대중 사이에서 모종의 메신져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역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달라.

김우중 씨와 삼일빌딩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지금도 김우중 씨 와는 자주 연락하지만 그가 어디에 있는 지는 밝힐 수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김우중 씨야 말로 한국의 영웅이 아닌가. 가슴 아픈 일이다. 당시 대우는 정말 어려웠다. 나는 김우중 씨와 오랫동안 선후배 사이로 관계가 돈독 했고 그에게 많은 신세를 졌다.

그런 연유로 하여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름은 밝히지 않음)을 소개해 주었고 그 사람은 7천5백 만불을 김우중씨에게 빌려 주었다. 김우중 씨는 그 돈을 가지고 한미은행의 ‘전환사채’를 매입했다. 그 이유는 자금을 더 쓰기 위해서였는데 IMF 직후 자금난으로 곤경에 처한 김우중 씨는 전환사채를 담보로 자금을 썼으나 갚지 못해 결국 담보인 전환사채가 백지사채로 돼버려 김우중 씨는 엄청난 곤경에 빠졌다.

그 때 담보력이 제일 있는 물건이 바로 대우정보시스템과 힐튼 호텔, 아도니스 골프장 뿐이었다. 김우중 씨는 그 돈을 갚지 않으면 안되는 중대한 사항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대우정보시스템과 관련한 주식파동이었다.

김우중 씨는 자신의 소유주식 4천 5백만불을 주면서 한달 뒤에는 배로 뛸 것이니 그 때 주식을 팔아 본전을 챙겨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주식이 폭락하면서 2천 5백만불만 찾아가는 소동이 있었다. 김우중 씨는 마지막까지 대우를 살려보려고 발버둥 친 건 사실이다. 그와 김대중 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나역시 아무런 메신져 역할을 한 적이 없다.

– 지금까지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파동과 관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 회장이 40%의 경영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대우 GM 컴퓨터에서 조 회장에게 경영권을 인계하려고 주당 12,000원(삼일 회계법인 평가)에 인수 제의했으나 팔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최근에는 독일계회사인 독일 유로피아 사가 15,000원에 매입을 하려고 시도 했었다는데 관계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내가 대우정보시스템의 주식을 산다고 소문이 나니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주당 3만원에 매입을 했었는데 사고 나서 불과 몇 개월 만에 1만원 대로 떨어진 모양이다. 그러나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 혹시 2천 5백만불의 당사자가 조 회장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나와는 상관이 없다.

조풍언 씨는 대우정보시스템과 관련된 대목에서 잘라 말하며 상당히 말을 아끼는 것 같았다. 김우중 씨 사이에 무언가 석연치 않은 관계가 있는 것을 직감적으로 인식하고 계속 반복되는 질문을 했지만 말 꼬리를 잡히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나온 말은 ‘당시 대우정보시스템의 사장이 중앙정보부 출신이었는데 이 사람이 말을 흘려 정보기관 출신 인사들이 대거 주식 매입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대우정보시스템 주식파동에 정보기관 관계자들이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풍언 씨는 자꾸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다른 약속이 있는지 휴대폰으로 전화가 계속 걸려 왔다. 금새 끝날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자리에서 일아나려고 했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두가지 질문 밖에 더 할 수 없었다.

– 김대중 씨의 세 아들과 관련해 이야기 해 달라 / 김홍일의원의 UCLA 병원 입원비를 대 준 적이 있느냐?

나 한테까지 차례가 오지 않는다. 돈 댈 사람들이 줄줄이로 있다. 대통령 아들의 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막강한지 몰라서 하는 소리다. 나는 밥값도 못 낼 정도다. 그런데 내가 입원비를 대납해 주었다니 있을 수 없는 소문이다. 당시 홍일이는 이런 소문을 예견했는지 1천불짜리 여행자 수표를 준비해 와 입원비를 냈다. 나와 관련된 소문은 모두 추측일 뿐이다.

– 아직도 김대중 씨와의 관계가 있는가?

홍걸이가 최규선이하고 다니면서 많은 잡음이 있어 김대중 씨에게 최규선이는 사기꾼이니 조심시키라고 주의를 주었는데 그것이 DJ의 미움을 사서 그 날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최규선은 이름이 최 사기라고 할 정도로 나쁜 놈이다. 권노갑 의원도 꼼짝 못하게 만들 정도로 어린 친구의 사기술이 대단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에게 감사한다 / 최규선이가 나를 살려준 꼴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DJ와 소원해진 것은 ‘아들들의 여자문제가 너무 복잡해 말들이 많다’고 DJ 측근에게 말했던 것이 영원히 멀어졌고 더 이상의 왕래나 연락이 없다”고 말하며 “DJ 아들들의 복잡한 여성편력이 오늘날 이런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누구를 원망 하거나 탓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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