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옥 대령 ‘명예훈장’ 물건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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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 김영옥 대령

<한국인으로 세계2차대전 당시 미군에 입대해 일본계 미군부대 442부대를 지휘해 유럽전선에서 혁혁한 전공으로 미국과 한국을 비롯해 이태리 프랑스 등에서 ‘영웅’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고 김영옥 대령의 명예훈장(Medal of Honor) 추서 운동은 특별한 조치가 없는 한 미국정부로서는 더 이상의 훈장 추서 심사는 없는 것으로 보여 이를 기대했던 한인들에게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이미 미국은 지난 2000년 6월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이 442 부대 요원 일본계를 포함해 21명에게 미 최고의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수여했으나, 이 부대를 지휘했던 김영옥 대령에게는 지금까지 수여되지 못하고 있다. 미주 한인사회는 지난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김 대령의 정신을 기리는 작업의 일환으로 미국 정부의 ‘김영옥 대령의 명예훈장(Medal of Honor) 추서 및 장군 추증’ 운동을 전개해왔다. 한국에서는 국회와 일반사회에서도 동참에 나섰다. 특히 LA의 일본계 커뮤니티에서
김 대령의 ‘명예훈장’ 추서에 남다른 열성을 보여왔다.
하지만 미국방부 육군성 공훈심의부(Military Awards Branch, Department of Army, DOD)는 지난 2006년 10월 13일자로 한미의원연맹 미국측 대표인 에드 로이스 의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고 김영옥 대령에게 ‘명예훈장’ 추서에 대한 심의를 한 결과, 새로운 공적사항이 발견되지 않아, 훈장 상신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마감한 상태이다”라고 밝혔다. 로이스 의원은 미의회에서 김 대령의 ‘명예훈장’ 추서를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린 의원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새로운 공적사항이 증명되지 않는 한 김 대령의 ‘명예훈장’ 추서는 더 이상 미국 정부 당국이 추진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국과 미주한인 커뮤니티는 김 대령의 ‘명예훈장’ 추서와 장군 추증 운동을 벌이고 있으나 다른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성진 취재부 기자


미국방성 자료에 따르면, 2차대전 당시 유럽 전쟁터에서 영웅적인 전과로 무공훈장을 받을 당시, 김 대령은 자신을 ‘명예훈장’에 상신할려는 부대장에게 “나는 더 원하지 않는다. 나의 부하들에게 훈장을 수여하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방부는 김 대령이 이미 ‘수훈십자훈장’(Distinguished Service Cross)과 ‘은성무공훈장’ (Silver Star) 등을 수여받았기에 공훈에 합당한 수훈을 받은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05년 당시 미하원 외교위원회 헨리 하이드 위원장이 럼스펠드 국방장관에게 김 대령의 ‘명예훈장’ 추서를 추천했다. 또한 2006년에는 한미의원연맹 미국측 대표의원인 에드 로이스 의원이 하원 본회의 연설에서 직접 김 대령의 ‘명예훈장’ 추서를 강력하게 추천했다.
또 로이스 의원은 2006년 9월에 미국방부에 김 대령의 ‘명예훈장’ 추서를 위한 추천서를 보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공훈심의부는 ‘추가적인 공훈자료가 제출될 경우 한번만 재심을 할 수 있다’면서 ‘현재로서는 재심을 할만한 조건을 구비하지 못했다’며 ‘더 이상 훈장추천 심의는 없다’고 회신했다.
이같은 국방부측의 조치를 보면 이미 2006년 9월에 김 대령의 ‘명예훈장’ 추심은 더 이상 진행시키지 않겠다는 방침이 내려졌던 것이다.


훈장 추서운동 계속


그러나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계속 김 대령의 ‘명예훈장’ 추서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해 2월 당시 김 대령 하와이 펀치볼 국립묘지 안장(2006년 2월3일) 1주년을 계기로  ‘김영옥 프로젝트’에 대한 연방 의회 로비와 한인사회의 지원 노력이 한층 활기를 띠었기 때문이었다.
‘영웅 김영옥’을 집필한 뉴 아메리카 미디아의 한우성 한국부장은 지난해 3월 워싱턴을 방문해 연방 의회를 중심으로 김 대령의 최고 훈장 추서 및 장군 추증을 본격화 시켰다고 했다. 이를 위해 한 부장은 한국을 방문해 한국내 정치권 인사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한편 미 의회관계자들에게 전달할 캠페인 책자와 김 대령의 다큐멘터리 DVD를 제작하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마쳤었다.
당시 한국의 임채정 국회의장도 워싱턴을 방문 미의회 지도자들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했다고 했다. ‘김영옥 프로젝트’를 주관하고 있는 UC리버사이드의 장태한 교수도 “김 대령의 최고 무공훈장 추서 및 장군 추증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존재하는 인종차별을 극복하는 민권운동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프로젝트 외에도 고 김영옥 대령을 알리는 캠페인에 일반 한인들도 속속 동참했다. 코리아타운의 카페 맥의 쟈니 박 사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업소에서 25달러하는 전기를 10달러에 판매하는데 나머지 15달러는 매칭 형식으로 지원해 지난해 2월까지 7000달러(450여권)를 쾌척했다. 풀러턴소재 카페 베로니스도 ‘김영옥’ 전기 판매를 통해 김영옥 대령 알리기에 나섰다. 이밖에 전기를 10권씩 다량으로 구입해 주위에 선물하는 방법으로 ‘영웅 알리기’에 작은 힘을 보태는 등 동참 의사를 밝힌 한인들이 많았다.












 ▲ 명예 훈장


‘김영옥 동포연구소’도 설립


이와 함께 ‘김영옥’ 이름을 붙인 연구소의 설립이 추진되어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 UC 리버사이드는 2008년 신규사업으로 동 대학 소수인종학과 내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가칭) 설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 연구소의 명칭은 ‘김영옥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UC리버사이드 장태한 교수와 한우성 뉴 아메리카 미디어 한국부장의 아이디어로 고 김영옥 대령이 미주 동포들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상징적인 인물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연구소 설립은 전세계 어디에도 700만 해외동포의 이민역사 생활 문화 등을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소가 없는 현실 속에 미국땅에 세워지는 최초의 동포연구소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특히 최대 한인 밀집지역으로 100여개 이상의 소수 민족이 이주해 살고있는 LA에 설립한다면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동포연구소 설립 비용은 총 700만 달러가 소요될 예정으로 기금은 UC리버사이드 대학교측과 한국 정부 및 한인들의 기금으로 마련될 계획이다. 설립 비용은 700만 달러 가운데 300만 달러는 UC리버사이드에서 제공하고 300만 달러는 지난 번 재외동포재단측에 신청해 놓은 상태며 나머지 100만 달러는 한인들의 모금으로 채워질 계획이다.


문무겸비한 영웅


고 김영옥 대령의 삶은 그 자체가 대하 드라마였다. 현재 그의 일대기가 중앙방송(AM 1230)에서 방송되고 있으며, 중앙일보에서도 그의 일대기가 연재되고 있다. 김 대령의 일생은 조국애와 군인정신, 그리고 인도주의로 요약된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미국으로 망명해 대한동지회 북미총회 소속으로 독립운동을 한 김순권 선생의 아들로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김 대령은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41년 미 육군에 사병으로 지원했다가 다시 장교 후보생 학교로 나와 소위로 임관했다. 임관 후 그는 일본계 2세로 구성된 100부대 소대장으로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됐다. 김 대령은 볼투르노 강 전투에서 크게 활약했고 독일의 전선을 붕괴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다시 남프랑스에 투입돼 브뤼에르와 비퐁텐 지역의 해방에 앞장섰다. 그는 이때 공으로 프랑스 국가 최고훈장인 레종 도뇌르(Legion d‘Honneur)를 수상했다. 또한 이태리 정부로부터도 국가 최고훈장인 ‘나이트 그랜드 크로스’(Knight Grand Cross Military Order)를 수상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예편해 세탁소를 운영하던 그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51년 대위로 다시 입대했다.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는 것이었다. 김 대령은 미군 사상 최초의 유색인 야전 대대장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또 전쟁 중 고아원을 설립하고 대대 장병들의 봉급을 갹출해 수백 명의 전쟁고아를 돌보기도 했다. 그는 금병산 전투에서 중공군 공세로 사기가 떨어진 부대원을 독려하기 위해 총탄이 빗발치는데 팔짱을 끼고 태연히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1963년에는 군사고문으로 다시 한국을 찾아 국군 최초의 미사일부대를 창설하는 등 우리나라의 국방력 신장에 기여했다.
그는 1972년 대령으로 예편한 이후 ‘노군리 사건’ 조사를 위한 민간인 위원으로도 활동했으며, 2005년 12월 29일 작고할 때까지 한인사회 1.5세와 2세들의 커뮤니티 봉사 단체의 활성화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리는 등 빈민, 고아, 노인, 입양아, 장애인, 청소년, 가정폭력 피해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도주의적 활동을 전개했다.








 









 ▲ 수자기

미국의 ‘명예훈장’은 미국의회가 의결해 대통령이 수여하는 미국정부의 최고 무공훈장이다. 
이 훈장은 1861년 남북전쟁 때부터 유공자에게 수여하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3,464명이 수훈했다.
한국전쟁과 관련해서는 133명의 미군 장병에게 수여됐으며, 흥미있는 사실은 19세기 ‘신미양요’로 불리는 1871년 한국과 미국간의 무력충돌에서 당시 참전했던 미국 장병 15명에게도 ‘명예훈장’이 수여됐다.
‘신미양요’는 1866년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에 나타나 조선군과 충돌한 사건을 다시 조사키 위한 사건이다. 당시 조선측은 쇄국정책 시기라 셔만호를 상대로 썰물 때를 이용해 작은 배에 연료를 싣고 불을 지른 다음, 그 배를 셔먼호 쪽으로 보내 셔먼호를 소각시켜버리고, 2문의 대포 까지 노획했다. 이때 셔먼호의 승무원은 전멸되었으며, 조선측에서는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미국은 이 사건을 기화로 함대를 편성해 1871년 로저스 아시아함대사령관을 조선에 파병했다. 로저스 사령관은 기함 콜로라도 호를 위시해 5척 함정에1,230명의 해군 및 해병대를 싣고 그해 6월 1일부터 강화도를 위시한 주변 도서를 공격했다. 이 전투에서 미군은 미미한 피해를 당한 반면 조선군은 약 400명이 전사했다.
지난해 10월 미국이 한국측에 전달한 ‘신미양요’ 강화도 전투시 미군이 노획한 조선군의 어재연 장군기 ‘수자기’가 화제가 되었는데 그 깃발이 1861년 당시 ‘신미양요’때 광화도 전투에서 조선군이 빼앗긴 것이다. 어 장군은 강화도 광성진에서 6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미국 해군과 맞서 싸우다 순국했다. 미군 전사에서 ’48시간 전쟁’으로 기록된 신미양요의 광성진 전투 때였다.
본보가 수집한 미국방부 관련문서에 따르면, 강화도 침공 ‘48시간 전투’에서 성벽을 타고 올라가 어재연 장수기를 노획한 해병 일병 휴 퍼비스(Hugh Purvis)는 그 공로로 ‘명예훈장’을 수상했다.
또 윌리암 루쿠스는 성안으로 진격해 들어가 육탄전으로 조선군을 사살해 ‘명예훈장’을 받았다.
당시 미군은 6월 10일 포함 2척을 앞세우고 육전대원 644명을 강화도의 초지진에 상륙시켜 무력으로 점령했으나  6월 11일의 광성진 전투에서 미군 역시 피해가 많아 이튿날 물치도로 철수하였다. 미군은 이곳에서 조선정부를 상대로 위협적인 외교적 수단으로 조선을 개항시키려 하였으나, 흥선대원군의 단호한 쇄국정책과 조선군민의 저항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결국 미국의 아시아함대는 조선에서 아무런 성과없이 일본으로 철수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흥선대원군은 서울의 종로와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워 쇄국정책을 더욱 강화하였다.
한편 6?25전쟁 때 뛰어난 무공을 세운 인디언 출신 육군 상사에게 26년만에 미국 군사 분야 최고 훈장인 명예훈장이 추서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3일 AP통신에 따르면 우드로 윌슨 키블 상사는 3일 수(Sioux)족 인디언으로는 최초로 명예훈장을 받았다. 그는1982년에 사망했으니 26년이나 늦게 도착한 국가의 보답이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훈장 추서식에서 “이제서야 그의 공로를 기리게 돼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키블은 한반도 중부전선에서 중국군과 싸우면서 혼자 기관총 진지 3곳을 부수고 소대원들의 목숨을 구했다. 수류탄 파편에 맞아 코가 내려앉고 무릎이 뒤틀린 상태에서 거둔 전과였다. 키블은 이때 당한 부상으로 나중에 반신이 마비되고 말하는 능력을 잃었다. 키블은 1950년대 두 차례 명예훈장 수훈 대상으로 추천받았지만 관련 서류가 분실돼 급이 낮은 ‘수훈십자훈장’을 받는데 그쳤었다.
고 김영옥 대령도 현재까지 ‘수훈십자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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