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 단소리

이 뉴스를 공유하기





인생의 막가파의 길 “Sue쑤“


사람이 한 평생 살아가면서 못할 것이 없고, 못 갈곳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한 평생동안 한번도 가지 말아야 할 곳, 갈 필요도 없는 곳, 또한 가고 싶지도 않은 곳이 있다. 안 가봐도 후회가 되지 않는 곳, 그 곳은 경찰서와 병원이다. 그곳이 직장이 아닌 이상 일반인으로 자주 가면 갈수록 심신이 망가져 있는 것이다. 어떤이는 병원은 자주가면 갈수록 건강하다고 할 것이지만(사전종합검진) 잘못된 생각이다. 어딘지 모르게 건강에 자신이 없으니 자기 자신을 몰라 첨단 의술에 의존하려는 것이다. 건강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 병원을 찾고, 사회의 정도를 걷지 않는 사람이 경찰서를 찾는다. 인간들이 살아가는 데는 도리(道理:길도,다스릴리)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 스스로 자신과 상호와의 연결되는 길을 잘 다스리지 않고 있어 도리를 잘 지키도록 규정을 만들어 놓은 것이 법이다. 도리에는 사랑과 배려가 따르고, 법에는 규칙과 처벌이 따른다. 법은 최후의 수단이다. 아프리카 밀림 속의 각종 수많은 동물들이 뒤엉켜 살아가지만 그 동물들의 세계에도 우리 인간이 알 수 없는 그 들 나름대로의 도리가 있어 밀림의 질서가 유지된다. 경찰 검사 판사가 없어도 그 들의 세계에는 질서가 유지된다. 한국은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말한다. 예의(禮儀:예도예, 거동의)란? 예(禮)는 나와 남은 보이지 않는 인연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으니 이 또한 나와 다름이 없으니 좋은 것 나쁜 것 모두 넓은 마음으로 품어 앉는다는 의미이고, 의(儀)는 내가 먼저 몸을 낮추고 경의를 표하며 솔선수범 함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의한다. 필자가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항상 “남들과의 관계에는 항상 조금 손해보는 듯 하게 살아라.”하시던 말씀, 어머니 말씀대로 살아보니 어떤 놈은 조금 모자란 인간으로 보고, 어떤 놈은 대 놓고 사기를 치고, 간단히 말해서 물로 보는 놈이 많았다. 그러나 마음은 편해지고 중도사상(좋고 나쁜 것에 분별을 두지 않는 것)을 얻었다. 10여년전 미국에 오니 지인이 찾아와 주의 할 일을 알려주었다. 어두워지면 길거리에 나가지 말 것. 집안에 있을 때도 모든 문은 잠가놓을 것. 길을 가다가 쓰러져 있는 사람이 있어도 일으켜 세워 주지 말 것. 등등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겁주려고 하는 소리겠지 하면서도 약간의 이해는 되는데 “길에서 쓰러져 있는 사람을 일으켜 주지 말라.”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필자는 한국에서 길을 가다 노인을 만나면 업어 드리고 무거운 짐 보따리 덜렁 메어다 드리고 싸움판에 뛰어들어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 등등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지인이 미국에서는 하지 말라는 충고이겠지 했는데 이곳에서 살아가면서 지인이 처음에 한 말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길에서 자기가 잘못해서 쓰러져 놓고 누가 일으켜 주면 “고맙습니다.”가 아니라 “당신 때문에 쓰러졌다.”라고 SUE쑤(고소告訴)를 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빈번함을 보았고 오늘 라디오코리아 뉴스에서 이와 유사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노점상 허락한 한인업주 어처구니없는 소송 휘말려” 지난해 5월 13일 사우스 LA 버몬트와 센츄리 블러바드에 위치한 버몬트 오토 정비공장 한인업주 권모씨가 운영하던 이 정비공장에서 음료회사 펩시에 근무하던 20대 남성이 몰던 차량이 갑자기 돌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차량이 정비공장의 울타리와 충돌하면서 지탱하던 기둥이 정비공장 옆 길가에서 꽃 장사를 하던 50대 남미계 여성 메를린 헤로드 덮쳐 숨지게 했다. 이 사고를 두고 헤로드의 가족은 권씨를 상대로 숨진 헤로드에게 노점을 허락한 것은 위험을 방조한 행위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한국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미국의 법에는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이 사건은 민족과 인종 문화가 틀리니  어처구니없어도 그럴 수 있구나 하는 큰 교훈이다. 그런데 먼 이국 땅에서 우리나라 사람끼리 툭하면 “Sue쑤”한다. 회사 여직원이 잘못해서 회사가 막대한 손해를 입어 사장이 화가 나서 손바닥으로 2번 책상을 치며 여직원을 조금 꾸짖었는데 “공포를 조성했다고 사장을 “Sue쑤””하는 한국의 딸, 비즈니스 은행구좌 업무로 일주일에 2~3번 찾아가는 고객과 낯익은 창구직원과 서로 몇 마디 주고받은 농담을 성희롱으로 문제삼아 “Sue쑤”하겠다는 한국계은행. 좁은 비즈니스 장소에 수시간 자리 차지하고있는 약간 나이 먹은 어른들께 자리 좀 비켜 달라니 “노인 학대라고 Sue 쑤”하고, 세탁소에서 찾아온 와이셔츠 입고 목 주위에 물집 생겼다고 세탁소를 “Sue쑤”한다하고, 식당에서 반주 한잔하다 실수로 바닥에 컵을 떨어뜨려 깨어지며 옆 테이블에 튀어가니 “시끄럽고 공포감을 느꼈다며 경찰을 부르고 Sue 쑤를 하겠다”는 옆 테이블의 한인. 이 자질구레한 일들은 한국사람과 타민족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고 한국사람과 한국사람간에 일어난 일들이다.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난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망가졌는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조금만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라는 한마디씩의 말로도 해결될 일들을 “Sue쑤”로 해결하려 한다. 쑤는 한국표기로는 고소(告訴)다. 한국에서는 하는 사람도 부끄럽고 당하는 사람도 부끄러운 것이 고소이다.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금전적으로는 도움을 주고받지는 못해도 서로간 마음만이라도 넉넉하게 주고받았으면 한다. 늙은이 젊은이 어린이 모두가 조금만 배려하고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갖는다면  “살만한 아니 영원히 살고싶은 한인타운”이 될 것이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