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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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병찬 원장


(지난주에 이어)
필자가 무엇이냐고 여쭈어 보니 약 2주전에 한 피검사 결과가 어제 나왔는데 콜레스테롤의 수치가 290정도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담당 양의사가 앞으로 식사는 채소와 생선 그리고 과일을 많이 먹어야 하며 육류는 피해야 한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할머니께서는 필자와 양의사의 식사법이 정반대가 되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필자는 할머니께서 말씀을 하실 때의 표정이 ‘일반 상식인 양의사의 말을 따라 채식위주의 식사를 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 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 제 치료는 여기서 중단을 하고 양의사의 말대로 채식위주의 식사를 하시고 만약 다음 검사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좋아지지 않거나 더 악화되면 다시 연락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체질의학(體質醫學) 이론으로는 목양체질(태음인)이 푸른 채소를 많이 먹으면 절대 건강에 좋지 않으니 혹시 눈이 더 악화되거나 다른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연락을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치료를 중단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약 10일이 지난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는데 할머니께서 다시 저에게 치료를 받고 싶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필자가 권했던 육식위주의 식사에서 양의사가 권유한 채식위주의 식사로 바꾼 후부터 눈이 다시 나빠지고 몸은 전 보다 더 피곤하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필자에게 오신 할머니는 다시 체질 치료를 시작하고 육식위주의 식사로 바꿨더니 눈이 다시 좋아지면서 피곤함도 많이 줄었다고 했습니다.
하루는 할머니께서 오셔서 흥분된 목소리로 전날 저녁에 운동 구경을 갔었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전에는 시야가 좁아 한눈에 운동장이 다 보이지 않았는데 어제는 운동장이 한눈에 다 들어왔으며 잔디의 색깔이 오랜만에 초록색으로 보였다고 하셨습니다. 필자는 8체질 치료법으로 녹내장과 같은 난치병이 치료가 되어 좋아지는 것을 경험할 때면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의 굉장한 희열감을 느끼며 사상의학(四象醫學)의 창시자이신 동무 이 제마선생님과 8체질의학의 창시자이신 권 도원 선생님께 무한한 존경심과 감사함을 잊지 않습니다.


 


48. 촌로 이 후락 봄나들이


며칠 전 모 주간지에 위와 같은 제목의 기사가 있었습니다. 이 후락 씨는 박 정희 정권이었던 제3공화국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과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하였고 당시 실세 중에 실세였으며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3공화국 시절의 비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일 것입니다. 이 후락 씨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전후해서 평양에 박 정희 전 대통령 밀사로 파견되었습니다. 그 당시 밀사로 파견됐을 때 김일성 주석과 나눈 밀담내용과 밀사 파견과정 등은 아직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또한 중앙정보부장 시절인 1972년 박 정희 전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위한 유신 개헌을 주도했으며. 이에 대한 비화도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1973년 12월 해임된 이 후락 씨는 3공화국의 극비 문서를 챙겨 한때 해외로 도주했었습니다. 이후 박 정희 대통령과의 타협으로 국내에 다시 들어오긴 했지만 당시 들고 나갔던 3공화국 극비 문서의 내용은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밖에도 ‘정 인숙 여인 피살 사건’ ‘김 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등 3공화국시절 미궁에 빠진 각종 사건의 열쇄를 쥐고 있는 장본인입니다. 이처럼 3공화국 시절 최고 권력의 핵심이었던 이 후락 씨는 역사의 산증인입니다. 특히 몇 년 전 김 종필 자민련 명예 총재는 “1973년 일본에서의 김 대중 납치사건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인 이 후락의 단독 범행이었고 나와 박 정희 대통령은 전혀 몰랐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이 후락 씨는 입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이 후락 씨는 오랫동안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피해 왔습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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