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노벨상 수상 위한 로비 완벽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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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로비의혹을 주장해 온 김기삼 전 국가정보원 직원은 지난 3일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해리스버그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김대중 전대통령이 노벨평화상에 눈이 어두워 우리의 조국에 반역행위를 했다”고 말했다.
이날 약 2시간에 걸친 기자회견에서 김 씨는 준비된 성명서와 자신이 지니고 있는 900페이지의 자료를 근거로 작성한 A4용지 10페이지 짜리 ‘노벨상 수상 공작 개요’를 배포한 후, 일지 형식의 메모를 토대로 설명해 나갔다. (박스첨 참조)
김 씨는 이날 주로 워싱턴DC의 한국특파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정부 초창기부터 ‘노벨상 수상공작’이 시작됐으며 처음에는 국정원에서 시작해 나중은 청와대 주도로 진행됐다” 면서 “국가의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노벨상 수상에 초점을 맞춰 동원했는데 청와대 전 부속실장인 김한정씨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날 “‘노벨상 수상 공작’을 위해 김대중 정권은 노르웨이를 중심한 북구지역, 북한 그리고 노벨상과 관련된 외국 지도자 등을 상대로 크게 3개 분야에서 주도면밀하게 공작이 이뤄졌다”고 밝히면서 이에 관련된 증거문서들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날의 김 씨 회견은 라디오코리아가 전과정을 녹음 중계 했다.
특히 그는 “DJ가 주창한 ‘햇볕정책’ 자체가 ‘노벨상 수상 공작’을 위한 정책이다” 라면서 “6.15선언에 명시된 ‘비전향장기수 북송’도  공작 차원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노벨상위원회에 DJ를 위한 추천서를 받는 조건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전력이 있는 외국 지도자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거액의 뇌물은 국내 굴지의 S기업 등이 제공한 것으로 안다고 김 씨는 밝혔다.
한편 김 씨의 주장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 측 최경환 비서관은 4일 보도자료를 내고 “김기삼 씨의 주장은 무지 또는 음모의 소치”라면서 “노벨상이 금전이나 로비, 또는 공작에 의해 받을 수 있는 상이라면 노벨상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또 최 비서관은  “노벨상 수상 8년이 지나도록 정치적 음모가 계속되는데 더 이상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 배후와 책임을 추궁할 작정”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김한정 전부속실장도 일부 언론사에 이메일을 보내 “국정원 내에 노벨 공작팀은 없었다”면서 “나는 국정원 재직 중 불법적인 일, 국가의 체면을 실추시킬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성진 취재부 기자>









김기삼 씨는 3일 기자회견에서 배포한 ‘공작 개요서’를 시종일관 열띤 목소리로 설명해 나갔다. 그는 ‘노벨상 수상 공작’은 DJ가 대통령에 취임(1998년 2월 25일)한지 불과 3개월만인 그 해 5월에 이종찬 국정원장이 DJ공보비서 출신인 김한정씨(나중에 청와대 부속실장)를 특채하여 ‘노벨상 공작 담당관’으로 임명하면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김한정 씨는 지난 1988-92년까지 DJ의 공보비서였으며, 미국 뉴저지주 럿거스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김한정씨는 99년 2월 LA동포 치과의사로서 DJ 측근인 강대인 박사와 함께 DJ 부인 이휘호씨의 ‘내일을 위한 기도’의 출판관계를 논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국정원의 ‘노벨상 공작팀’에는 DJ의 측근 전대법관 조승형의 조카인 조준오씨, 현 외환은행 부행장인 김형민씨 등이 활동했다고 밝힌 김기삼씨는 자신도 그해 8월에 구성된 ‘노벨상 공작’ 부서인 <대외협력보좌관실>에서 함께 활동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기삼씨가 밝힌 ‘공작 개요’의 설명을 요약해본다.


전세계 상대 로비













 ▲ 노벨상 수상자 동티모르 라모스 호르타
1999년 5월 이종찬 국정원장이 ‘차기 대권을 넘본다’라는 구설수로 DJ의 눈밖에 나서 경질되는 바람에 신임 천용택 국정원장이 김한정씨도 해임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오히려 직책으로 인한 제약이 없어진 김한정씨는 이후 노벨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인사들을 접촉하는 한편 DJ의 이미지를 높이는 홍보·출판, 문화 행사 등에 주력한다.
김한정씨를 포함한 ‘노벨상 공작’에 관련된 DJ정권의 관계자들은 ‘노벨상 위원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노벨상위원회 부위원장인 거너 스톨셋 주교, ‘노벨상’에 버금가는 ‘라토프 상’을 주관하는 잔 람스터드 라토프 재단 부위원장, 세계적 이벤트 기획사이며 노벨상 문화행사를 주관하는 ‘월드뷰라이츠’의 루네 허쉬빅 사무총장, 잰 엘리아손 스웨덴 외무차관, 분데빅 전총리 등등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 말하자면 노벨상과 관련 인사들에 대한 전방위 로비 작전였던 셈이다.
‘노벨상 공작’에서 99년 7월4일 김한정씨의 로비로 미국의 유력 의원인 토마스 포글리에타의 지원을 받아 DJ가 ‘자유의 메달’ 수상에 성공한다. 이 메달을 받은 수상자 중 과반수가 노벨상도 받아 이 상이 ‘노벨상의 지름길’이란 말도 나올 정도였다. 이 상을 수여한 후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 공작은 보다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이 수상에 공헌한 포글리에타는 필라델피아 민주당 출신 다선 의원으로 오랫동안 김대중 추종자로 활동해왔는데 당시 클린턴 정부의 주 이탈리아 대사로 재임 중이었다. 그는 김대중 노벨상 수상 행사장에 참석한 2명의 외국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한편 김한정씨는 DJ가 수상으로 받은 상금 10만 달러를 격려금으로 받는 등 DJ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받음과 동시에 노벨상 수상 공작에 대한 전권을 부여받게 된다. 99년 12월 4일 김한정 씨는 당시 36세 나이로 청와대 제1부속실장에 파격, 임명되면서 청와대에서 ‘노벨상 공작’을 주도해 나가게 됐다.
김한정 부속실장은 이후 스웨덴 정부고위관리와 친밀한 현지 의사 한영우 박사, 박경태 노르웨이 대사, 문정인 연세대 교수, 박노O 국정원 북구팀장 등에게 직접 공작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박경태 대사는 가이르 룬데스타드 노벨연구소장과  스톨셋 주교 등을 접촉했으며, 국정원 북구팀장은 허쉬빅 사무총장 등을 집중적으로 로비해 분위기를 잡아갔다.
김한정씨는 ‘자유의 메달’ 수상 작전을 앞두고 99년 6월 노벨상 수상식 후 축하 콘서트를 담당하는 기구인 노르웨이 단체 월드뷰라이츠의  루네 허쉬빅 사무총장 과 에릭 숄하임 의장을 자신이 관장하는 FDLAP 포럼에 초청해 마이클 잭슨 공연 을 관람케 했다.  원래 마이클 잭슨 서울 공연은 김한정씨가 노벨상 공작의 문화 예술 진흥의 일환으로 기획했던 행사였다.
2000년 새해가 되면서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은 허쉬빅 사무총장의 방북과 관련 하여 모종의 협의를 진행시켰다. 허쉬빅 총장은 북한에서 구성된 ‘윤이상 앙상블’ 의 노르웨이 초청 공연과 남북한 판문점 평화 콘서트 공연을 협의하기 위해 윤이상의 장녀 윤정(뉴욕 거주)씨를 대동하고 방북해 당시, 북한에 있던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 (평양 거주)를 방문했다. 북한 방문을 마친 허쉬빅 총장은 “이수자씨가 ‘윤이상 앙상블’ 공연과 관련 김용순과 협의했다”고 언급했다고 국정원 파견관은 서울에 보고했다.
이같은 작전은 남북간의 평화무드를 조성시키는 분위기를 세계에 알리자는 홍보 수단인 셈이다. 김기삼씨는 “이수자씨는 한국 측으로 볼 때는 사실상 간첩이나 다름없는 인물”이라며 “이같은 대상을 두고 로비를 벌였다는 자체도 문제”라고 밝혔다.









“만델라는 거액 요구”


노벨상 공작팀은 DJ를 노벨상위원회에 추천하는 추천서를 받는 조건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전력이 있는 외국 지도자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제공하는 공작도 폈다. 노벨상 수상에는 과거 노벨상 수상자들로부터의 추천서가 다른 어느 추천서보다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공작팀의 표적으로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만델라의 딸도 한국으로 초청을 했으나 추천장을 받을 수가 없었다. 알려진 바로는 만델라가 수백만 달러 정도의 기금을 요구해 포기했다는 것이다. 다음 표적이 한국인들도 잘 모르는 동남아의 동티모르가 지목됐다. 김한정씨는 이미 99년 6월부터 수차례 동티모르를 방문했다. 
2000년 2월 27일 동티모르의 사나나 구스마오 총리와  노벨상 수상자인 주제 라모스 오르타 외무장관을 초청되어 한국에 왔다. 김기삼씨는 “이들에게 노벨상 추천 대가로 쇼핑백 몇 개에 돈을 담아 건넸다”고 주장했는데  “이 돈은 국내 S 기업으로부터 받아 건넸다”고 덧붙였다. 당시 김대중 정권은 동티모르에 200억원 상당의 국회의사당을 건축해 주기로 했으며, UN평화군으로 한국군이 파병되기도 했다. 한국의 국익과는 거리가 먼 정책이었다.
‘노벨상 공작’에서 압권 중에 속하는 사건은 ‘남북정상회담’이고 또 하나는 DJ의 인도주의 이미지 고창이었다. 그 중 하나가 ‘남북이산가족상봉’이다. 이같은 한반도 평화의 리더십이 바로 ‘노벨 평화상’ 이미지에 걸맞는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 현장에 극비로 노벨상 에 영향력이 있는 분데빅 총리를 초청한 것이나, ‘비전향 장기수 북송’을 권유하는 스톨셋 주교의 거론을 6.15선언문에 담아 준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됐다.
이 일이 있기전 2000년 3월18일 북한과 가까운 스웨덴의 잰 엘리아손 외교 차관이 방북했다. 엘리아손 차관은 북한에서 김영남 의장, 백남순 외상 등과 면담했다. 엘리아손 차관은 방북전에 이미 한영우 박사나 국정원 담당관과 접촉을 가졌다.
그해 4월 국정원 북구 담당관은 DJ에게 올해의 노벨상 수상 전망 보고서를 보내면서 “노벨위원회 측은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돌파구가 있어야 김대중 대통령의 수상이 가능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돌파구는 바로 ‘남북정상회담’이었다.


“DJ의 반역”






 “국정원 서류를 어떻게…”

지난 3일 2시간여의 기자회견에서 김기삼씨는 ‘공작 개요’를 설명하는 도중 기자들로부터 여러차례 질문을 받았다. 이날 취재진들의 가장 큰 관심사항은 ‘노벨상 공작’의 증거물 존재 여부였다. 이에 대해 김씨는 “국정원 자료를 그냥 공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책임있는 정부 기관이 나서야 한다는 점을 되풀이 했다. 왜냐하면 외교문제나 국익 그리고 한국의 체면이 손상되는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도 국정원을 사랑한다”면서 “이런 나의 행동에 동료들로부터 ‘배신자’ 소리도 듣고 있어 괴롭기도 하다”면서도 “진실을 가릴 수야 없지 않은가”라고 자문했다.
기자들이 자료문제로 계속 의구심을 나타내자, 김씨는 “내가 갖고 있는 자료들 중에 스톨셋 주교의 방한 관련 영수증이나, 홍보책자 관련해 삼성이 까탈스럽게 나오자 DJ가 ‘손 떼라’고 지시한 사항 등도 지니고 있다”면서 “국정원 자료 중 최고의 기밀사항 서류 등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다시 기자들이 ‘그처럼 중요한 서류를 어떻게 수집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자, 김씨는 “민감한 사안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다. 당시 나는 신임을 받은 편이고 그래서 ‘친전’이라는 구분의 비밀서류도 나중에 열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 수집경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았다. 김 씨는 “박지원 씨는 내가 7급 직원인데 어떻게 기밀서류를 지닐 수 있었겠는가라고 했으나, 직급이 정보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의 기자회견의 목적이 “지난 몇 년간 외쳤는데 아무도 귀담아 주지 않았다”면서 “국민이 알아야 하기 때문에 회견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자회견이 끝난 후 국내 언론들이 자신의 회견의 내용을 간단하게 처리했으며, 일부 언론들은 아예 취급도 안하는 분위기에 “압력을 받는 것이 아닌가”라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기자들 질문 중에서 ‘정주영 소 떼몰이 방북’과 관련한 노벨상 화제에 대해 김씨는
“당시 정 회장이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소몰이 방북’을 했는데, 청와대에서 언론 플레이로 분위기를 낮추었다”는 화제의 한 토막도 공개했다.
그는 자신의 외침에 대해 언론계의 무관심을 미리 짐작한 듯 이날 회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아직 절망하긴 이른 것 같습니다. 저는 권세에 의아하여 만고에 처량해지기보다는 양심을 지키다 일시적으로 외로워지는 길을 택했습니다. 저는 진실과 양심에 비춰 부끄럽지 않게 행동했다고 믿습니다.”













 ▲ 김기삼씨가 기자회견에서 ‘노벨상 공작’을 설명


 


 


 


 


 


 


 


 


 


 


 


 


 


그동안 숱한 우여곡절을 끝에 3일 기자회견에 나선 김기삼씨는  “저는 지난 김대중 정권 5년간 국가 통치권자에 의한 반역이 있었다고 믿는다” 라고  말하며 기자회견을 시작한 김기삼씨는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적을 이롭게 하고 우리의 안보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DJ가 노벨상 수상을 공작하기 위해 ‘햇볕정책’이라는 기만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했다”면서 “노벨위원회가 자신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기 위해서는 민주화와 인권만으로는 부족하고, ‘남북관계에 어떤 획기적인 돌파구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것이 바로 ‘남북정상회담’이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무리하게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김정일에게 비밀리에 15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뇌물을 갖다 바쳤다”고 주장했다. 이같이 말한 김씨는 “저는 이것이 민족에 대한 배신이고 국가에 대한 반역이라고 믿는다”면서 “저는 김대중 씨를 “악마적인 사기꾼”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는 “DJ의 노벨상 수상 자체를 반대하거나 비판하고 싶진 않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중에 누구라도 노벨상을 받을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자랑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다만, “제가 문제 삼는 것은 햇볕 저편에 감추어진 DJ의 노욕”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햇볕정책은 처음부터 김정일 개혁 ? 개방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었다”면서 “햇볕정책은 대한민국 국민을 속여 김정일에게 무한정 퍼주기를 정당화하기 위한 기만 술책이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햇볕정책은 국제사회 와 노벨위원회를 속여 한반도에 평화가 조성되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노벨평화상을 타기 위한 속임수였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노벨상 위원회가 관심을 표명한다는 이유만으로, 비전향 장기수를 조건 없이 대거 북송 했다”면서 “정작 우리의 납북자나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못했으며, 대통령 자신의 명예를 건지기 위해 우리나라의 명예는 처참하게 망가졌다”고 비난했다.
김 씨는 또 “김한정씨가 국정원 대외협력실에 재직할 당시인 1999년에 국정원 자금으로 김 대통령의 옥중수기를 스웨덴어로 번역 출간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김 대통령이 1999년 12월 3일 ‘노벨상 100주년 기념전시회'(2002년)의 경비 20억원을 국내 S 대기업에서 부담토록 하라고 김한정 씨에게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김 씨가 공개한 자료는 98년 3월부터 2000년 12월 DJ의 노벨상 수상 때까지 자신이 공작이라고 주장하는 각종 행사와 관련 인사들의 발언 등이 담겨져 있다.
다만 김 씨는 정권 차원의 공작을 입증할 수 있는 국정원의 내부문건을 공개할 지 여부에 대해서는 ‘자신이 무슨 주장을 해도 반박을 할 것이기 때문에 문건 공개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상을 수상한 후 2002년 서울에서 ‘노벨상 100주년 행사’가 호화롭게 개최됐다. 이 행사에 스폰서는 다름 아닌 삼성그룹이었다.







“김대중 정권의 노벨상 수상공작” 중요 일지 전문


<아래 요약된 일지는 전국정원 직원 김기삼씨가 ‘김대중 정권의 노벨상 수상 공작’에 관해 수집한 약 9백 페이지에 달하는 자료를 중심으로 작성한 개요를 바탕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지 형식으로 요약 편집한 것이다-편집자 주>


1998년
3월 3일   이종찬 국정원장, 스웨덴 미카엘 슐만 노벨재단 이사장과 만찬 회동.
5월         이종찬 원장, 김대중의 공보비서였던 김한정 특채, 국정원 내
              ‘노벨상 공작 담당관’으로 임명
6월10일  양세훈 노르웨이 대사, 가이르 룬데스타드 노벨연구소장과 만찬 회동.
              김대중의 대내외 업적을 설명.
6월11일  양세훈 대사, 프란시스 세제르스테드 노벨위원회 위원장과 오찬 회동 방한초청
7월 6일   양세훈 대사, 헬게 파로 노벨위원회 고문과 만찬 회동해 DJ 정부 포용정책 설명
8월         이종찬 원장, 국정원 내 ‘노벨상 공작 팀’으로 대외협력보좌관 신설.


1999년
1월 4일   김한정, 한영우 박사 방한 초청
2월10일  김한정, LA 동포 DJ지지자인 강대인과 이희호 저 “내일을 위한 기도” 출판 논의
2월25일  김한정, 건너 스톨셋 노벨위원회 부위원장 방한 초청해 김대중 예방 주선.
5월22일  김대중, 이종찬 국정원장 전격 경질. 
5월31일  신임 천용택 국정원장, 김한정을 국정원에서 해임.
              김한정은 아태민주지도자회의 (FDLAP) 사무부총장으로 복귀.
              ‘노벨상 공작’은 FDLAP 명의로 진행.
6월22일  김한정, FDLAP 주최 버마 민주화 전략을 위한 국제 비민간기구 포럼 개최
              김한정은 얀 람스타드 라프토 재단 부위원장 방한 초청하고, 김대중 예방을 배석.
6월-9월  김한정은 동티모르 수차례 방문.
6월23일  김한정, 노르웨이 단체 월드뷰라이츠 루네 허쉬빅 사무총장, 에릭 숄하임 의장방한
7월 4일   김대중, 필라델피아 자유의 메달 수상.
              김한정은 토마스 포글리에타 의원의 지원을 받아 동 메달 수상에 성공. 
8월28일  김한정, 스웨덴어 판 “감옥에서 대통령까지” 출간.
              한영우 박사가 동 출판 공작에 핵심 중계인 역할을 담당.
              출판 소요 경비는 김한정이 국정원 자금 .
8월31일  김한정, 이종찬 전 원장 대동, 스웨덴 ? 노르웨이 출장.
              노벨상 위원회 부위원장 스톨셋 주교 및 기타 유력 인사들과 면담. 
9월 29일 박경태 노르웨이 대사, 가이르 룬데스타드 노벨연구소장과 오찬 회동해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문의.
12월14일 김대중, 김한정을 청와대 제1부속실장으로 임명. 이후 ‘노벨상공작’ 청와대 주도


2000년
1월 1일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의 방북 관련 협의
1월 15일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의 방북 결과 디브리핑
               허쉬빅은 “이수자가 윤이상 앙상블 공연과 관련 김용순과 협의했다”고 언급.
1월 20일  김대중, ‘노벨상 100주년 기념 전시회’ 재정지원 지시
1월 22일  김한정 등, 대외언론홍보 관련 핵심 인사 비밀 회동
               청와대가 모든 홍보활동을 총괄하기로 결정. 주 1회 홍보조정회의 개최 결정.
2월 1일    2000년 노벨평화상 추천 마감.
2월 3일    박경태 대사, 가이르 룬데스타드 노벨연구소장과 오찬 회동해 북한정세 설명.
2월 15일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과 전화 통화로 그의 2차 방북 논의.
2월 27일  김한정, 동티모르 구스마오 대통령, 라모스 호르타 장관 방한 초청해 국회의사당
               건립지원 약속. 노벨상 추천 대가로 국내기업 통해 거액 지원 약속.
2월 29일  김한정, 한영우 박사 ? 마이클 슐만 노벨박물관장 방한 초청
2월 31일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과 만찬 회동2차 방북과 윤이상
               앙상블의 노르웨이 초청 공연 등에 대해 협의.
3월 17일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과 오찬 회동해 2차 방북과 남북한   
              ‘판문점평화콘서트’ 논의
3월 18일  잰 엘리아손 스웨덴 외교 차관, 방북해 김영남 의장과 백남순 외상 등과 면담
3월 31일  박경태 노르웨이 대사, 스톨셋 주교 부부 초청 만찬 회동해 DJ ‘베르린 선언’과
               햇볕정책 설명. 스톨셋 주교는 박 대사에게 ‘베를린 선언’자료 요청.
4월 7일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과 통화해 북한과의 연결선 구축 요청 
4월 10일  남북 정상회담 합의 발표
4월 11일  한영우 박사, 스웨덴 엘리아손 외교 차관의 방북 결과 청취
4월 14일  박경태 대사, 랑게 룬드 전 주한 대사 초청 만찬에서, 스톨셋 주교와 면담
               스톨셋 주교, 비전향 장기수 문제에 관심 표명.
4월 21일  국정원, 김대중에게 올해의 노벨상 수상 전망 보고
4월-5월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과 통화 및 오찬 등으로 방한문제 협의
6월 5일    박경태 노르웨이 대사, 스톨셋 주교와 오찬 회동. 박 대사는 스톨셋에게 남북정상
               회담 준비 상황과 김정일의 최근 방중 동향에 대해 설명.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개최
6월 19일  박경태 노르웨이 대사, 룬데스타드 노벨연구소장과 면담
6월 21일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과 통화
6월 22일  국정원 노르웨이 파견관, 오메가 TV의 프랑크 잔센 사장과 오찬 회동.
               잔센은 “한반도에 화해를 가져 온 사람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여되지 않는다면
               놀라운 일이 될 것”이라고 언급.
6월 24일  김한정, 노르웨이 ? 스웨덴 방문해 정상회담을 노벨상 수상으로 연결 작업 
7월  6일  박경태 대사, 룬데스타드 노벨연구소장과 오찬 회동.
              박 대사는 남북적십자 회담 등 정상회담 이후 후속 조치에 대해 설명.
7월 14일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과 통화. 허쉬빅은 남북한 평화 콘서트
              장소가 판문점에서 서울로 변경되어 8.15개최될 예정이라고 전언.
8월  1일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의 방한 계획 논의.
              허쉬빅은 분데빅 전 수상과 작곡가 에릭 힐데스타드와 동행할 것이라면서,
              아태지도자회의 측과 자신들의 서울 체류 일정을 협의하고 있기 때문에 국정원에 부탁할 일  은 없다고 언급.
8월 15일  제 1차 남북이산가족상봉행사 개최, 노벨상에 영향력 있는 분데빅 총리를
               비밀리에 이산가족상봉장으로 안내해 세계적 관심사를 현장에서 시찰케 함
               (분데빅 총리의 상봉장 관람이 노벨상 수상에 결정적으로 작용.) 
8월 20일  박경태 노르웨이 대사, 스톨셋 주교 ? 룬데스타드 소장과 만찬 회동
               박 대사는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의 진전동향에 대해 설명.
8월 22일  국정원 노르웨이 파견관, 잔 람스타드 라프토 재단 부이사장과 면담
               라프토 재단 주최 “2000년 한반도 인권” 행사 관련 논의. 동 행사는 오슬로에서 
               11월 개최예정으로 국제 세미나와 회의, 라프토상 수상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계획. 람스타드는 윤현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이 수상 후보라고 시사. 
8월 23일  국정원 스웨덴 파견관, 허쉬빅 사무총장과 통화. 허쉬빅은 파견관에게 분데빅
               총리의 방북 의사를 통보하면서, 북측의 방북 초청장을 보내주겠다고 약속.
8월 25일  국정원 노르웨이 파견관, 잔 람스타드 부위원장과 통화. 람스타드는 김대중에게
               라프토 상을 수여키로 결정했다고 통보. 10월 4일 공식 발표시까지 보안을
               유지해 줄 것을 요청.
9월 5일    박경태 노르웨이 대사, 스톨셋 주교와 만찬 회동 스톨셋은 정상회담 후 김정일의
               변화 동향에 관심 표시. 스톨셋은 비전향 장기수의 대북 송환에 대해 문의. 
9월 7일    박경태 대사 ? 국정원 파견관, 잔 람스타드 부위원장과 만찬 회동.
               박 대사와 김남O 파견관은 라프토 상 수여에 감사 표시. 람스타드는 언론의
               주목을 끌기 위해 10월 4일 발표할 계획을 변경, 9월 28일 수상 발표 언급 .
9월 8일    국정원 노르웨이 파견관, 프랑크 잔센 사장과 오찬 회동. 잔센 사장은 한국의 인권
               상황 신장을 보여주는 자료를 제공해 줄 것을 부탁하면서, 어떤 위원회가
               자신에게 그 문제에 대해 조언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언급하고, 그 위원회가
               노벨위원회임을 암시. 
10월 13일 노벨위원회, 김대중 대통령에 노벨평화상 수상 결정
11월 5일   김대중, 라프토 인권상 수상
12월10일  김대중, 노벨 평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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