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주한인사회와 관련된 북한 간첩망 ‘커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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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체포된 여간첩 원정화는 한인사회에서 과거 적발된 미주출신 간첩이 북한을 위해 정보를 빼돌리다 처벌된 비슷한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미주사회에서 시민권자로 북한의 지령을 받아 정보제공 혐의 등으로 처벌된 경우는 소위 ‘일심회사건’에 연루된 간첩 장민호(46·미국명 마이클 장)와 예정웅(64·미국명 존 예) 등이 있다. 장씨는 한국에서 체포돼 지난해 12월 북한 지령을 따른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상고심에서 징역 7년, 추징금 19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돼 현재 복역 중이다.
예씨는 지난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북한 정보당국 사주를 받아 비밀리에 북한과 내통해 미국 내에서 불법 에이전트로 활동한 혐의로 지난 2003년 2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됐다. 2004년 11월15일 LA소재 미연방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과 보호관찰 2년 그리고 벌금 2만 달러를 선고 받아 지난 2005년 1월10일 연방 교도소에서 복역을 시작해 지난 2006년 5월 15일 출소했다.
                                                                                      <조현철 취재부기자>


당시 LA를 기반으로 친북·통일운동을 해오던 예씨가 ‘북한을 위한 정보제공, 간첩혐의(나중 간첩혐의는 제외)’로 미연방수사국(FBI) 요원에게 전격 체포된 사건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한국에서 ‘일심회’ 핵심멤버로 간첩혐의를 받고 현재 복역 중인 장씨는 지난 1985~87년 샌프란시스코(SF)에서 중앙일보 지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당시 중앙일보 SF지사장이었던 김한길 (전열린우리당 원내 대표) 전의원과 함께 7개월 동안 함께 지내기도 해 이들 관계가 의혹으로 남겨 지고 있다.
김씨는 장씨가 고정간첩으로 한국에서 활동할 당시 그가 부친상을 당하자 장례식에 직접 참석해 문상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김정일의 고정간첩 지령은 유명해 재미동포가 연관된 장민호씨의 간첩혐의 사건도 김정일의 작품으로 전해진다.
1987년 샌프란시스코 중앙일보 지사 기자 생활을 청산한 장씨는 1989년 처음 북한을 방문했으며 미국에 돌아와 영주권자 신분으로 미군에 입대해 4년간 주한미군으로 용산기지에 파견돼 근무했다. 그는 제대와 함께 1993년 시민권을 취득했다. 1989년 장씨가 북한에서 모종의 지령과 훈련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이력이다.


장민호 ‘일심회’ 핵심멤버


장씨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자생활을 그만 둔 1987년 북한 대외연락부 소속 김형성(가명)에게 포섭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씨는 성균관대 국문학과 재학 중이던 1982년에 미국 유학길에 나섰다. 그러나 그가 미국에서 어느 대학을 다녔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당시 김한길 씨는 중앙일보 지사를 운영하면서 문학청년의 기질을 발휘해 기자로 입사한 장씨와 여러모로 가까웠다는 것이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함께 생활한 지인들의 증언이다. 그러나 장 씨가 1989년에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장씨는 시민권을 취득하고 IT전문가로 변신해 샌프란시스코 남쪽 실리콘 밸리에 나타났다. 실리콘 밸리 방위산업체와 정보업체는 취업이 쉽지 않다. 그러나 시민권자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장씨는 지금은 iPark로 변경된 당시 정보통신부 산하 기관인 KSI에서 1998년부터 99년까지 마케팅매니저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간 동안 장씨는 ‘일심회’를 구축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국정원은 장씨가 이때 한국 IT정보를 북한으로 보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 정보당국과 가까운 한 소식통은 “장씨가 미군에 입대한 것은 방북 때 북한에 포섭돼 지령을 따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면서 “당시 시민권자가 되기 위해 가장 빠른 방법이 미군에 입대하는 것 이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당시 시민권을 받기 위해 일부 한인 불법체류자들이 편법으로 미군에 입대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미 시민권자가 되면 북한방북도 영주권자보다 수월하고, 첨단 방위 산업체에도 근무할 수 있다.
장씨는 주한 미군에 근무하면서 정보를 북한에 제공했을 것으로 보인다. 용산 미 8군기지에 근무한 그는 남한에서 암약하고 있는 고정간첩들과 쉽게 접선했을 것으로 정보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한 정보관계자는 “미군 소속인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고정간첩과 접촉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역 후 시민권을 취득한 그는 미국에 돌아와 LA를 포함해 샌호세, 시애틀, 뉴욕, 워싱턴DC, 필라델피아 지역 등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지역들은 미주지역에서서도 친북세력들이 주로 활동하는 도시들이다.
당시 본보 취재진이 취재를 통해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장씨는 1989년 방북 이후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 정보전문가는 “고정간첩일 경우 거의 노출이 안되는 것이 특징이다”면서 “남에게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에 정보제공한 예정웅씨


미국정부는 북한 공산주의의 본국 침투나 자국 거주자가 북한 공산주의 정권을 동조하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제제하겠다는 입장이다. 그 중 하나가 북한을 위해 정보를 제공했던 LA동포 예정웅(64)씨를 처벌한 경우다.
그는 지난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북한 정보당국의 사주를 받아 비밀리 북한과 내통해 미국 내에서 불법 에이전트로 활동한 혐의로 지난 2003년 2월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됐다. 그는 2004년 11월15일 LA소재 미연방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과 보호관찰 2년, 벌금 2만 달러를 선고 받았다.
예씨 사건을 담당한 조지 킹 연방판사는 선고공판에서 예씨가 ‘북한에 정보를 제공한 것은 남북통일 에 기여하고 싶은 순수한 행동’이라고 한 주장을 일축했다. 정보의 질보다 북한정권을 위해 활동했다는 점을 유죄로 확정한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예씨가 북한에 보낸 정보들은 일반 신문·잡지 등 기사로 기밀정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킹 판사는 예씨가 정보를 제공한 시기에 북한은 그와 같은 정보를 아무나 쉽게 습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다시 말하면 북한에 보내는 정보의 등급이 문제가 아니라 ‘공산국가인 북한정권을 위해’ 활동한 사실 자체가 위법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판결은 미 시민권자일지라도 테러 적성국인 북한정권을 위해 조금이라도 유익한 활동을 한 경우는 처벌 대상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예씨가 수사를 받을 당시 많은 친북계 한인들이 내사 대상에 올랐고 일부는 참고인으로 소환되기도 했다.
이 중 일부는 자신들의 활동을 반성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해 기소면제 처분을 받기도 했다. 한 정보 소식통은 예씨 사건과 별도로 FBI에서는 미국 내 친북단체나 조직 구성원 또는 개인적으로 북한정권과 연계를 갖고 있는 대상을 광범위하게 내사했다고 전했다.
예씨는 지난 1980년 미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는 1996년 12월부터 2000년 6월까지 외국정보원 감시법에 의거 FBI의 감시를 받아왔다. 예씨의 친북 행적이 노출돼 미국법에 의해 특별 감시대상에 들어간 것이다.
연방검찰 기소장에 나타난 예씨의 행적 중에는 북한정권으로부터 지령을 받아 미국 내 정보를 수시로 북한으로 보냈으며 실제 북한으로부터 지급 받은 활동자금으로 밝혀진 액수가 1만8천 달러에 이르기도 했다.


한인 타운에 아지트













예씨는 또 북한 지령에 따라 최모씨와 이모씨(여) 등 2명의 정보원을 포섭해 언론계에 침투시켰다. 최씨는 한때 LA지역 한인 일간지 기자로 활동했으며 이씨는 인터넷 기자로 활동했다. 언론계에서 활동할 경우 미국정보를 습득하는데 유리하게 때문이었다.
예씨는 지난 1997년 2월과 1999년 1월 각각 중국을 거처 북한을 방문했으며 당시 북한에서 벌어진 김정일 생일 축하파티 행사에도 참석했다. 지난 1998년 4월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하는 도중 현지 북한대사관과 접촉했으며, 자신이 포섭한 정보원들을 1998년과 1999년에 각각 북한에 보냈다.
그는 한인 타운 내 8가와 후버 근처에 사무실을 두고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북한 정보기관이 지시한 중국 베이징 아지트에 팩스를 통해 정기적으로 제공했다. 1997년 한 해 동안 보낸 팩스 문건 만도 160건이나 됐다.
예씨는 부인 예정자씨와 함께 지난 2000년 4월 30일 스위스 취리히 발 스위스 항공편으로 LA국제공항에 도착할 당시 현금 1만8179달러에 대한 외환신고를 하지 않은 혐의로 전액 압류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이들은 그 돈이 결혼 25주년 기념여행으로 유럽을 떠나면서 가지고 갔던 현찰 일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FBI의 감청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예씨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북한 대사관 직원들과 교류했음이 밝혀진 것. 그는 체코 내 북한 대사관측과도 교신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예씨는 처음 연방검찰의 기소내용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그는 미국정부가 자신을 정치적으로 체포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2003년 10월 연방법원에서 열린 심리에서 간첩혐의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소사실에 대해 시인해 심경의 변화를 보였다.
그는 에이전트 등록법위반 혐의와 유럽 여행 후 재입국시 신고하지 않은 외환관리법 혐의 등에 대해서도 모두 유죄를 시인했다. 그의 행적은 FBI 감청조사와 잠복근무, 사무실 검색을 통해 드러났다.
미 정보계의 한 소식통은 예씨가 한인사회에서 민주화운동과 반독재운동 등을 한 인물로 알려졌으며, 1990년 이후 운동권을 떠나 개인 사업에만 몰두한 것으로 행세했으나 실상은 북한에 포섭돼 위장 활동을 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가 90년대 들어서 친북계열과 거리를 두었다고 주장했지만 오히려 북한에 정보를 제공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던 사실도 수사결과 드러났다. 그의 사무실에서 발견된 비밀암호문에는 ‘비밀임무’ ‘CIA’ ‘원자핵시설’ ‘펜타곤’ 등의 한국어 코드 단어가 있었다.
예씨의 사무실에서 발견된 북한 지령문에는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어라’  ‘요원을 포섭하라’는 문구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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