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국 대선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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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실린 ‘미국 대선 관찰기’입니다>







미국 사회 내부에서 오바마 현상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 중 하나는 소수자와 이민자에게 여전히 ‘백인들의 나라’인 미국을 ‘나의 나라’로 변화시키는 힘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살다보면 누구나 소수로 존재할 때가 있다. 때로는 경제적으로, 때로는 출신지역이, 때로는 학교나 학력이, 때로는 신체적으로 소수이거나 약자일 수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이지 않은 자신의 조건과 경험을 숨기고 살기도 산다. 이때 감정적으로 소통되는 어떤 인물이 대중의 지도자로 떠오를 때는 자신의 일처럼 느끼며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물론 주류에 속한 이들은 이를 보고 ‘한풀이’라고 부르며 그 위험을 지적하기도 한다. 또 약점을 가진 사람일수록 다른 약점을 가진 사람을 더욱 무시하거나 미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 많은 사람들은 공동체 내부에서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또 사람은 항상 ‘밥’이 해결되면 ‘도’를 논하기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는 그런 점에서 미국 내 소수들의 정서를 자신의 몸속에 상징적으로 융합시키면서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듯하다.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덴버에 소재한 ‘인베스코 스타디움’에서 미 민주당의 대선후보수락 연설을 하는 날이다. 지역명 대신 회사명인 인베스코를 붙인 것에 대해 그 동안 논란도 좀 있었다고 한다. 다들 일찍부터 입장을 서둘러야 한다며 난리다. 경기장에 7만 5천명이 들어가려면 당연히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 그것도 보안검색이 촘촘히 이뤄진다면 말할 것도 없다.
경기장에 도착하니 정말 장사진에 인산인해다. 얼핏 포기할까라는 생각도 스쳤지만 끝까지 줄서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전날 상원의원도 꿈쩍 않고 줄을 섰다는 것이 일행의 설명이다. 하기야 지지자여서인지 호기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람도, 끼어드는 사람도 도통 보이지 않는다.
일행 중 한 명인 김창종씨가 아침에 오바마의 동생인 마야와 비록 짧지만 인터뷰를 했다고 좋아했다. 독립 저널리스트이자 한인유권자운동을 돕는 김창종씨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기록에 대한 책임을 맡고 있다.
그의 인터뷰는 오바마 캠프 측에서 아시아권의 미디어 3곳을 선정해 이 순차적으로 인터뷰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오바마 측에서 정치적 내용을 제한하다 보니 가벼운 토크형태가 되었다 한다. 대략 내용을 정리하면 오바마는 한국 음식 중에 ‘비빔밥’을 좋아한다고 했다. 또 농구를 좋아하지만 야구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취미는 글쓰기라 했다. 오바마는 기독교인이지만 어머니가 종교의 편협성을 반대했기 때문에 배타적 태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단다.
오바마는 여동생 마야에게 항상 아버지로서 보호자로서 존재했다고 한다. 이들 남매에게 전해진 어머니로부터의 가르침은 ‘봉사’였다. 대신 경제적으로는 항상 빠듯하게 살았어야 했다. 오바마 내외는 두 사람 모두 하버드 출신의 변호사지만, 사회봉사와 관련된 직업 때문에 여유 있게 살아본 기간이 거의 없다. 그러고 보니 오바마에 대한 좋은 얘기만 잔뜩 나왔다.


오바마의 5가지 약점













그렇다면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그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타임>은 9월 1일자 기사에서 오바마의 5가지 속성에 주목했다. 그 다섯 가지는 ‘흑인’, ‘치유자’, ‘초보자’, ‘급진성’, ‘미래’다. 이중 흑인과 초보자, 급진성이라는 측면은 오바마 약점의 핵심이다.
오바마는 외모상,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시카고에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가지는 여러 가지 의미를 상징하게 된다. 김동석 소장은 미국의 흑인은 크게 보면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중심으로 한 온건그룹과 분리주의를 지향했던 말콤 엑스 계승세력으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온건그룹이 오바마를 지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난 경선과정에서 회교도인 ‘파라칸’이 이끄는 과격그룹이 오바마를 공개 지지하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미 유권자들에게 소수를 대변하는 지도자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 수 있다. 그럴 경우 오바마는 새로운 지도자가 아닌 흑인 후보로 비춰질 수 있다. 그의 오랜 친구인 라이트 목사의 ‘갓 뎀 아메리카(재수 없는 미국?)’ 발언도 그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다만 앞 기사의 글쓴이인 <워싱턴포스트>의 저널리스트 ‘데이빗 본 드레흘’은 오바마는 스스로 자신을 흑인 후보에 가두어두려 하지 않고 그렇게 규정되는 것을 극복하려 노력한다고 보았다. 다만, ‘과연 유권자들도 그를 (흑인이라는 시각을 벗어나) 그렇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또 다른 약점은 바로 ‘초보자’라는데 있다. 그가 중앙정치에 입문한 지 이제 3년 됐고 미 의사당 내부 지리도 아직 익숙지 않다는 기사가 등장했다. 그는 시장이나 주지사로 행정업무를 수행해 본 경험도 없다. 그는 번지르르한 말뿐이며 구체적 정책은 결여되어 있다고도 비판받는다.
힐러리는 경선에서 이를 두고 ‘단지 말 뿐’이라고 오바마 후보를 공격했다. 그리고 오바마에 대한 그녀의 비판은 이제 공화당 후보인 매케인 진영의 대선 TV광고에 등장해 ‘적’들에 의해 활용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상하원 의정활동에서 복잡한 문제를 풀기 위해 항상 당사자를 직접 만나고 타협을 통해 풀어나가는 훌륭한 리더십을 보여주었다고 평가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그의 경험이 실제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또 다른 공격 포인트는 그의 급진성이다. 첫 번째 통신에서도 잠깐 설명했던 ‘빨갱이’ 논란이 그것이다. 사실 ‘빨갱이 콤플렉스’가 스며 있을 수 있는 내게도 오바마가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는 생각보다 구체적이며 사실 관계도 명확해 보인다. 보수진영은 오바마가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정신적 스승을 가졌다고 공격한다.
실제 그가 교류했던 ‘프랭크 마셜 데이비스’는 시인이자 언론인이지만 급진적 노동운동을 이끌었고 실제 공산당에 가입했던 인물이었다. 또 오바마는 막시스트 사회학자인 ‘프란츠 파농’ 연구모임에 참여했으며 뉴욕에서는 사회주의자 회의에도 참여했다. <워싱턴 포스트> 드레흘 기자의 설명에 의하면 보수진영은 오바마를 ‘트로이의 목마’라고도 부른단다. 급진적 진보진영 즉 빨갱이 진영에서 중도를 위장해 내보낸 것이 오바마라는 것이다.
오바마는 이러한 비난에 대해 대개 웃으며 ‘나는 그들(옛 공산주의자)에게서 과거를 보았다’고 회상한다. 오바마가 이러한 활동을 할 즈음에 그는 역시 시장주의 경제학자나 정치학자들의 글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당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했던 기간이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다만 오바마 후보가 한국의 정치인이었다면 이러한 사실 관계만으로도 국가보안법으로 옥살이 한 번은 했을 것 같다. 만일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돼서 한국에 온다면 한국의 ‘보수’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 것일까? 여전히 극진하게 대접해야 할까 아니면 공산주의자가 왔으니 방한을 반대해야 할까? 이 외에도 오바마에 대한 비판은 수없이 많다. 그가 철저하게 계산된 출세주의자라는 비판, 그리고 이미 매케인조차도 잘못되었다고 판단해 손을 놓아버린 업체들과의 유착 등에 대한 논란도 있다.



아메리칸 드림


멀리 저 밑에서 오바마가 엄청난 박수소리와 함께 등장했다. 7만5천명의 사람들이 환호했고 일어서서 그를 맞았다. 나처럼 썰렁하게 물끄러미 오바마를 지켜보는 사람이 주위에 별로 없었다.
후보수락 연설의 핵심 내용은 크게 세 대목으로 나뉘는 것 같다. ‘약속’, ‘민생’, ‘정책’이다. 다만 전략적 관점에서 보면 ‘부시=매케인’으로 몰아가는 라벨링(낙인찍기)과 민주당의 위대한 전통에 대한 연상효과 등을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행사 초반에 오바마의 약점이자 맥케인의 장점인 군경력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먼저 오바마를 지지하는 군출신 인사들을 배치했다. 이어 여전히 힐러리에 대해 애정이 더 많아 보이는 여성 중심의 백인 노동자 등 나와서 연설을 하는가 하면 행사 마지막에는 모슬렘 등에 대한 시비를 염두에 두었는지 ‘기도’로 식을 마쳤다.
여기서 약속이란 바로 ‘아메리칸 드림’을 말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을 지탱해 오던 공동체 규약의 핵심이자 사회정의이다. ‘누구든 일하고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라는 신세계 미국의 상징을 말한다. 그것은 바로 평등의 정신이다. 오바마가 아메리칸 드림을 얘기하고, 또 사람들이 그를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메리칸 드림이 위협받고 있다’는 반증이겠다.
한국은 잘 살기 위해 사회정의를 뒤로 물린 채 모두가 ‘성장’을 외치는데 그런 점에서 오바마와 미국 유권자는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자꾸 ‘이념의 시대는 갔고 이제는 실용의 시대’라고 얘기하던 자칭 민주화 세력의 정치인들이 생각난다. 오바마는 한국의 민주화 정치세력이 보기에도 ‘세계화’를 모르는 비실용의 정치인이 틀림없겠다.
다음으로 ‘민생’은 오바마 진영의 정책 우선순위를 말하는 것이겠다. 더 이상 ‘가치 없는 전쟁’ 대신 소득감소와 일자리 불안 등 국민의 어려운 살림살이 해결에 모든 노력을 하겠다는 선언이다. 특히 ‘경제의 힘은 억만장자와 500대 기업의 이익을 통해 확인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레이건 이후 미국 보수진영이 채택해 온 강자를 살려 약자도 살린다는 이른바 ‘적하모형(tricle down)’ 경제를 겨냥한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바로 이명박 정부의 기본 지향점이기도 하다. 다만 부시 정부가 10년 동안 해봤는데 별 소용이 없었던 것으로 결론지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부 정책에 대해 설명이다.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보완일 수도 있겠다. 다만, 중소기업과 신생기업에 대한 세금감면 그리고 중산층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는 등의 대목에서는 ‘현실성이 있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조금 의외였던 것은 에너지 부문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었다. 내용이야 이해되지만 어쨌든 난데없이 자세했다.
그날 현장의 분위기는 확실히 감동적이었는데, 흑인이 미국 대선 후보로 서 있는 모습, 소수그룹 출신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해 낼 수 있다는 민주당 당원들의 양심과 자긍심, 그리고 무엇보다 아메리칸 드림의 부활에 대한 환호가 그 자리를 감동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되었다.
‘아메리칸 드림’은 신대륙에 건너온 대중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었으며, 그들이 온갖 모험과 희생을 감수하는 힘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구나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을 통해 미국은 건설되었으며 이후 전 세계가 그리는 이상향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그 쇠퇴해 가는 미국정신을 루터 킹 목사 이후 수십 년 만에 미국인들은 다시 마음속에 되살리게 되었고 ‘삶에 대한 애착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감동했을 것이 틀림없다.
피부색을 극복한 이, 그런 그를 지지할 수 있는 국민, 또 공동체를 지탱했던 희망의 부활이 바로 오바마가 상징하는 것들이다. 그의 저서 <담대한 희망>의 부제가 바로 ‘아메리칸 드림의 회복을 위한 생각들’이다. 이미 2년 전에 나온 책이다. 그는 그 생각들을 잊지 않고 있는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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