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후 후계구도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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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Sundayjournalusa






최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나돌면서 후계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70을 바라보는 김 위원장의 나이와 건강 문제 등이 겹쳐 후계 문제가 북한으로서도 새해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나는 80세, 90세까지 산다”며 측근들에게 후계자 문제를 거론하지 못하게 했다. 그의 부친 김일성이 61살 때 당시 30세였던 자신을 후계자로 지명했던 것에 비해 자신의 후계구도를 확정함에 있어 매우 늦은 셈이다. 최근 북한의 권력 세습과 관련,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김 위원장이 아들이 아닌 군부를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를 구상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다.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장남 정남과 차남 정철, 그리고 삼남 정운이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북한 관영매체들이 최근 부자세습을 시사하는 구호와 주장을 더욱 자주 언급한다”면서 이를 3대 세습을 위한 ‘분위기 만들기’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여름부터 불거진 장남 김정남의 평양 복귀설과 차남 정철이 조직지도부 요직을 차지했다는 설 등은 권력 세습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성 진 취재부 기자>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가장 유력한 인물은 만수대 예술단 출신 고영희와 사이에서 태어난 차남 정철(26)이다. 장남인 김정남은 지난 2001년 가짜 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 물의를 빚은 뒤 김 위원장의 신임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삼남 정운은 아직 나이가 어려 후계자 경쟁에 나서는 것은 이르다는 평가다.
자유아시아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정철과 정운은 김일성 군사 종합 대학을 나왔으나 장남인 정남은 그 과정을 거치지 않아 일부에서는 정철이 군사학를 공부했다는 사실을 놓고 후계자로서 중요한 조건을 충족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정철이 현재 노동당 조직지도부에서 활동하고 있어 정철의 나이가 30세가 되는 2011년이나 김정일의 나이가 70살이 되는 2012년경에는 후계가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장남인 김정남이 권력을 승계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김 위원장은 큰아들이 자신의 첫사랑인 영화배우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태어나 그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품은 것으로 알려졌다. 큰아들을 중시하는 유교적 전통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란 관측도 적지 않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 체제가 유교적인 색채를 많이 띠고 있어 장남 선호주의와 함께 김일성에 대한 확고한 숭배를 바탕으로 김정남에 대한 혁명 1세대들의 지지가 잇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정남이 그동안 중국과 마카오 등 해외에 머물면서 대외정보들을 수집하고 김 위원장에게 많은 외화를 벌어 줬다는 공로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집단지도체제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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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이 아버지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자연스럽게 권력을 이어받은 데 비해 이번 상황은 여러모로 간단하지 않다. 권력 계승이 3대째로 넘어갈 경우 내부 반발과 국제사회로부터의 비난 등에 봉착한 가능성이 높아 북한이 ‘집단지도체제’를 내세울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저명한 북한 전문가인 란코프 교수는 김정일이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세습은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견해를 밝혔다.
란코프 교수는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마지막 위기에 직면할 때, 김정일의 아들이 나라의 최고 지도자 자리에 있다면 그의 아들 뿐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도 어려운 상황을 겪게 될 것”이라면서 “어쩌면 살아남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의 미래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게 될 후계구도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그 답은 김정일 위원장만이 알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북한에서 태어난 남자라면 군복무는 의무다. 그것도 10년이란 긴 세월이다. 북한에서는 군복무를 하지 않으면 당원이 될 수 없고 출세길도 막히게 된다. 하지만 군부대 시찰을 다니며 선군정치를 강조하는 김 위원장 본인은 정작 군복무를 하지 않았다.
김정일은 김일성 종합 대학을 졸업한 직후 곧바로 중앙당에 들어가 정치 수업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자료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대학시절 잠깐 군대에서 훈련을 받았던 적이 있으며 취미 생활로 사격을 즐긴다.
그럼에도 김정일이 군대에서 받은 계급은 ‘원수’다. 이는 북한 군대에서 가장 높은 계급이다. 즉 김 위원장은 소장-중장-상장-대장 등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원수’ 계급장을 단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또 북한 군대를 총 지휘하는 국방위원장의 직책도 지니고 있어 현재 북한 군대에서 최고의 위치를 자랑한다.
군복무를 하지 않은 것은 그의 세 아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만약 주민들이 이 같은 사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경우 정치범 수용소로 직행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과거 김 위원장 아들들의 병역문제에 의문을 말했던 사람들은 모두 행방불명 됐다. 이에 대해 북한에서 김정일과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금기사항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정남의 경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군복무를 하지 않았음에도 군대 계급이 보위부 소속 ‘대장’으로 알려졌다. 그의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김 위원장이 계급장과 군복을 선물했다. 즉 김정남의 21번째 생일은 소장, 22번째 생일은 중장, 23번째 생일에는 상장, 24번째 생일에는 대장 등으로 군 계급을 선물 받았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김정남의 계급이 공식적인 직책이 아니라 가족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차남 정철과 삼남 정운도 모두 군대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김정일의 유력한 후계자 후보로 이들이 어떤 직분을 받고 활동하게 될지 더 지켜봐야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정통성 없는 김일성 정권


북한 정권은 외세의 도움 없이 오로지 민족적 주체와 자주로 세워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6.25 전쟁의 진실과 북한 정권 수립의 내막을 알면 이 모든 주장이 허구라는 것이 드러난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설명이다.
일제 탄압 속에서도 조국 광복을 위한 항일 운동은 미국을 포함한 해외에서 뜨겁게 타올랐다. 미국에서는 1909년 2월 최초의 연합운동체인 대한인국민회가 탄생했고, 상하이에서는 임시정부가 수립됐으며 광복군 등이 조직돼 항일 투쟁을 벌였다.
세계적으로는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해 미국·영국·프랑스 등 연합군이 전범인 독일과 일본에 대항해 전투를 벌여 독일이 먼저 항복을 선언했고 일본은 1945년 8월 미국이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면서 그달 15일 무조건 항복했다. 따라서1945년 8월 15일은 한국이 독립한 날로 기록됐다.
그러나 북한의 김일성은 항일투쟁을 이어간다는 정통성 확립을 위해 조국 해방의 역사마저 왜곡했다. 당시 북한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독립투자들을 제치고 1945년 10월 청년 김성주(김일성의 본명)가 소련 점령군 사령관 로마네코에 의해 북한 군중에게 김일성 장군으로 소개됐을 때, 이미 그에게 정통성은 없어졌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당시 김일성은 소련군 소좌 계급장을 달고 있었고 그는 소련이 북한을 위성국가로 만들기 위한 ‘도구’로 지명된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8·15를 미국의 힘에 의한 전쟁 종결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상해 임시 정부나 국내에서 투쟁했던 민족 투사들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식으로 역사를 왜곡해온 것이다.
북한은 또 우리 민족 비극의 시작이었던 한국전쟁까지 미국과 남한이 일으킨 침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김일성이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준비한 전쟁이라는 게 정설이다. 미국의 한국역사학자 캐더린 웨더스비 박사는 “1950년 4월 김일성은 박헌영과 함께 모스크바를 찾았고 스탈린은 세계 2차 대전에 경험이 풍부한 전쟁 전략가를 소개해 주는 등 김일성의 전쟁 준비를 위한 모든 도움을 주었다. 스탈린으로부터 전쟁 허락을 받은 김일성은 중국으로 건너가 마오쪄둥(모택동)의 동의를 얻었고 소련, 중국과 사전 협의를 모두 마친 김일성은 1950년 6월 25일 남한을 침범해 6.25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고 설명했다.
조국의 해방을 이끌었다며 북한 체제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김일성-김정일 부자는 과거 일본 식민지 시대보다 더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통치를 하고 있고 한민족 비극의 근원인 분단의 책임자이기도 하다는 게 학자의 평가다.


친일수법의 북한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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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김정일 부자는 일제가 한반도를 35년 동안 지배했기 때문에 해방 뒤 친일파 숙청과 일제 잔재 청산을 철저히 했다고 주장해 왔다. 북한은 이와 함께 김일성 가계를 항일 투쟁의 영웅으로 떠받들었다.
그러나 미국 코네티컷 대학교의 김일평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최고의 지도자로 군림하고 주민들에게 이들 부자에 대한 충성과 희생을 강요하는 북한의 주체사상은 천황의 절대 권력아래 모든 국민이 복종해야 했던 일본의 제국주의 사상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조선은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 동안 지배를 받았는데 일본의 천황제도, 군사 도쿠가와 막후 정치, 사무라이 정치에서 정부와 국민은 ‘아버지와 아이들의 관계’ 라는 권위주의적 설정 자체가 북한의 주체사상으로 이어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북한 군부는 완전한 위계질서 하에 천황의 권위를 하늘같이 떠받들던 일본 제국주의 군대와 흡사한 모습이다. 북한군의 군가에도 일본군의 것을 그대로 베낀 것이 발견됐다. 일본 군가 ‘천황을 위하여’를 ‘장군님을 위하여’로 가사만 조금 바꿔 부르고 있는 것.
다시 말해 대동아 공영을 외치면서 아시아 인민들의 주권을 짓밟았던 일본 군가를 인민을 위한다는 북한군이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 후지모토는 수기 ‘김정일의 요리사’를 통해 김정일이 주도한 술자리에서 김정일과 그 측근들이 일본 군가를 자주 불러 놀라기도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북한의 직장이나 기업소에서도 일본식 통치 방식이 일본보다 더 엄한 형태로 남아 있기는 마찬가지다. 북한 직장은 최고 지도자에게 절대 복종하는 충성스런 노동자를 위해 철저히 서열식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 같은 북한 직장 내 분위기 역시 직장 상사에게 천왕에 버금가는 권위를 부여해 지시를 내릴 때도 ‘이것은 천황의 지시이며 복종하지 않으면 천황을 모욕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교육한 일본식  체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  교수는 “김일성-김정일 체제에 대해 반대하는 무리는 모두 숙청하고 주민들을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는 북한 사회의 모습은 결국 북한이 청산했다고 주장하는 일제의 잔재가 이들 부자의 우상화 근원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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