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 회장, 편법증여 무죄 판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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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의 2심 선고가 열린 지난 10일 서울고등법원 앞.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서 무죄라는 선고를 받은 이 전 회장은 분명 지난 특검에 출두하던 모습과는 한결 가벼운 표정이었다. 기자들의 카메라를 의식한 듯 입가에 웃음을 띄지 않았던 이 회장이 이 날 일어났던 해프닝에 결국 웃음을 보이고 말았다. 재판을 마치고 고등법원을 나서던 이 회장은 현관문을 나오는 순간 한 할머니가 그에게 갑작스럽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자 근래 들어 볼 수 없었던 환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특검이 시작된 후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미소였다. 그의 미소가 비록 재판 결과 때문은 아니었을지언정 이 날 해프닝은 분명 이회장에게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준 것만은 분명하다.
<선데이저널>은 지난 10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있었던 이건희 회장에 대한 2심 선고현장을  밀착 취재했다.
                                                                                      <한국지사 = 박희민 기자>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서기석)는 이날 오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해 조세포탈 혐의만 일부 유죄로 인정하고 1심과 같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했다.
헐값으로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고 해도 회사에 손해는 없었기 때문에 에버랜드 경영진이나 그 공범으로 기소된 이 전 회장에게 배임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입장이다.
제3자 인수를 염두에 두고 CB를 헐값에 발행해 결과적으로 회사에 970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삼성특검의 주장을 재판부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7700원이라는 CB 가격이 당시 에버랜드 적정 주가보다 현저하게 낮은 가격이라도 회사에 손해가 났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배임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판단인 셈.
CB와 BW 발행 과정도 그것이 주주배정이든 제3자 배정방식이든 관계없이 회사에 손해가 없다면 문제가 안 된다며 지난 1심 때 공소시효 소멸로 면소 반결한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혐의도 무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을 판결하면서 “이 전 회장이 조세회피를 목적으로 지배권을 이전한 사건으로 실정법상 무죄를 선고하지만 사회적으로 비난 가능성은 매우 큰 행위”라며 “사회지도층으로서 국가발전에 헌신해 달라”고 주문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이학수 전 부회장과 김인주 전략기획실 사장에게도 각각 1심과 같은 징역 5년에 집행유예 5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됐다. 두 사람에게 1심에서 각각 740억원의 벌금도 부과됐으나 항소심은 이 대신 32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사법정의 무너졌다” 비판도


경제개혁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참여연대는 ‘시일야방성대곡’ 수준의 성명을 냈다. 사법부가 삼성을 위해 법과 원칙을 무시했다는 비판이었다. 이들은 법원이 제3자를 위한 저가발행도 회사에 손해는 없으며 배임이 아니라는 해괴한 논리를 들고 나왔다며 정부정책에 대한 시장불신과 사법정의에 대한 국민 불신이 위기에 닥쳤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사법정의 위에 군림해온 삼성그룹의 초법적 경제권력의 불법을 묵인하면서 법과 원칙을 무시한 재판부의 판결에 분노와 참담함을 금치 못한다”며 “재판부는 10년에 걸친 삼성그룹 총수일가와 경영진의 범죄행위에 대해 총체적 면죄부를 발부했다”고 비판했다.
경영진의 준법의무와 충실의무를 규정한 대한민국 회사법은 이번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발행 항소심을 통해 ‘법전 속 공허한 개념’으로 사문화되었다고 못 박았다.
무엇보다 이들은 이번 재판부가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저가발행이 기존 주주들에게는 지분 희석화를 통한 손해를 발행시켰을 수 있지만, 회사에는 전혀 손해가 없었다고 주장해 그간 회사의 손해를 인정한 대법원 판례도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재판부는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집단의 초법적 경제권력 앞에서 이사의 충실의무를 규정한 회사법의 기본원리도 부정했다”며 “이는 단순히 재벌총수 봐주기 차원을 넘어 사법적 규율을 포기한 것으로 유사범죄의 재발과 법질서 교란행위를 방치하게 됐다”고 일갈했다.
삼성이 아무리 우리나라 최대 재벌이라 하더라도, 총수 일가와 경영진 몇 명의 안위와 맞바꿔서야 되겠냐는 안타까운 탄식도 쏟아냈다.
이들은 “오늘 우리는 참담하게 무너지는 심정을 다스릴 수가 없다”며 “기업지배구조의 선진화와 합리적 시장 질서를 위해 공들여온 지난 10년간의 노력 탑이 한순간에 와해됐다”고 서글퍼했다.
정부정책에 대한 시장의 불신과 사법정의에 대한 불신이 오늘의 위기를 불렀고 결국 이 같은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 한 민주주의와 경제 질서는 발전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왜 깨닫지 못하는지 답답할 따름이라고 성토했다.
이들은 “금융기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가 일부 원인이 된 미국 발 경제위기가 세계 전체로 확산되는 요즘 이 항소심 판결은 분노를 넘어 공포스러운 상황을 연상케 한다”고 씁쓸해했다.


12년 사건 종지부


이 사건은 벌써 12년 전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96년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아들 이재용씨 남매가 에버랜드 CB를 헐값에 대량 인수한 뒤 주식으로 교환해 이 회사의 최대주주가 됐다는 게 문제의 발단이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와 민주법학연구회 등의 지속적인 문제제기로 이 사건은 2003년말 검찰이 허태학 박노빈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죄로 기소하면서 기나긴 법정싸움이 시작됐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당시 이 사건에 대해 각각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가 적용돼 유죄가 선고됐었다. 이 사건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가운데 김용철 변호사의 2007년 폭로로 지난 4월 다시 이건희 회장이 공범으로 기소됐다. 결국 속전속결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이제 대법원이 이 사건을 어떻게 종결할지가 관건이다. 대법원마저 대한민국 최대재벌 삼성 이건희 일가에게 면죄부를 주고 끝낸다면, 오른쪽엔 칼 왼쪽엔 저울을 들고 선 정의의 여신 디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경영권 편법승계 혐의와 관련해 그동안 판결이 수차례 엇갈리면서 대법원의 최종 판단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헐값 발행해 이 전 회장의 자녀인 재용씨 남매가 인수하도록 한 혐의로 에버랜드 경영진이 기소돼 1ㆍ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정작 공범으로 기소된 이 전 회장이 상반된 법리를 토대로 무죄 판결을 받은 상황이라 상고심이 어떤 법리를 택할지가 관심사다.


엇갈린 판결


에버랜드 경영진에 대한 1ㆍ2심 판결이나 이 전 회장에 대한 1ㆍ2심 판결 모두 1996년 있었던 에버랜드 CB 발행이 경영권을 이전하려는 것이었다는 데는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비상장법인이 CB를 헐값 발행해 특정인에게 대부분을 인수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회사 경영진이 배임죄의 형사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판단이 엇갈렸다.
비상장회사의 이사가 그 회사 주식의 적정가보다 현저히 낮은 금액의 전환 가격으로 CB를 발행해 자신이 혹은 제3자가 인수하도록 했을 때 이익이 생긴 만큼 회사에 손해가 난다고 보는 것이 기존의 대법원 판례였다.
에버랜드 경영진에 대한 1ㆍ2심 판결은 모두 이 판례를 토대로 에버랜드 CB가 헐값 발행돼 3자인 재용씨에게 인수됐다고 보고 재용씨가 헐값 인수로 얻은 이익만큼 회사에 손해가 났다고 판단해 유죄 판결했다.
그러나 이 전 회장에 대한 1심은 에버랜드 CB 사건이 주주배정 방식이었다고 보는 한편 CB가 헐값 발행됐어도 회사 자산은 늘어나기 때문에 경영진에게 회사에 손해를 끼친 배임죄를 물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에 대해서는 1심은 제3자 발행으로 유죄라고 봤지만 배임액이 50억원 미만이어서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면소 판결했다.
항소심은 에버랜드 사건에 대해 판단을 같이했지만 제3자 배정이었던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혐의에 대해서도 회사에 손해가 없다며 무죄 판결해 기존 판례를 깨고 한발짝 더 나갔다.


상고심 쟁점은


판결이 엇갈림에 따라 결국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어떤 판단을 할지가 관심사다.
상고심에서는 신주나 다름없는 CB나 BW를 저가로 발행했을 때 적정가로 발행했을 경우의 차액만큼 회사가 손해를 입는다는 `회사손해설’과 회사에는 손해가 없고 기존 주주는 손해를, 신규 주주는 이익을 얻는다는 `주주손해설’이 막판 경합을 벌일 전망이다.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 외국에서도 CB나 BW의 저가발행 사건과 관련해 형사처벌된 전례가 없을 뿐 아니라 국내 학계도 오랫동안 회사손해설과 주주손해설을 두고 팽팽한 공방을 벌여와 대법원 판결이 관련 사건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셈이다.
회사손해설이 인정되면 배임액 5억 원을 기준으로 나뉘는 형법상 업무상 배임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가운데 어떤 쪽이 적용될지가 다시 쟁점이 된다.
배임액을 계산해내려면 비상장회사 주식의 적정가를 먼저 계산해야 하는데 이 적정가를 계산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상당한 공방이 지속돼왔다.
대법원이 주주손해설을 택하면 에버랜드 CB 발행과 관련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된 이 전 회장의 무죄가 확정된다.
그러나 삼성SDS BW 사건은 제3자 배정방식의 저가 발행이었을 때 회사에 손해가 난다는 기존 판례와 이를 뒤집은 항소심의 판결이 맞서고 있어서 상고심의 또 다른 쟁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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