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당선 미 230년 역사 새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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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의 당선은 자체 경쟁력뿐아니라 외부의 우호적인 환경이 결합된 필연적인 결과로 볼 수 있다.
만약 흑인출신인 오바마가 이번 대선에서 패했다면 `피부색’ 이외로는 설명할 길이 없을 만큼 오바마를 둘러싼 대권 도전 환경은 최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외부환경은 절묘하리만큼 민주당에 유리했다. 미국은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이라는 두 개의 전쟁을 수행하느라 국론이 분열되고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이 85%에 달할 정도로 미국인들은 `변화’를 열망했다.
오바마는 이런 국민적 욕구에 화답한 후보였다. 그가 대권출사표를 던지면서 내건 메시지는 `희망(hope)’과 `변화(change)’였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곪아터진 월가발(發) 경제위기는 희망과 변화의 키워드를 유권자들의 뇌리에 더욱 깊게 각인시켰다.


부시의 실정













통상 대선이 과거 정권의 심판과 미래 정권에 기대를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한다면 이번 대선은 분명 이런 교과서적 의미에 딱들어 맞는다.
오바마 당선의 `일등공신’이 부시라는 역설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부시 집권 8년이 드리운 그림자가 결국 오바마라는 변화를 택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부시는 대량살상무기 존재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명분없는’ 이라크전쟁을 감행, 미국 내부의 국론분열과 국제사회에서의 지도력 상실, 경제난 초래라는 트리플 악재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베트남전 이후 `수렁’이라는 단어가 이라크전에 꼬리표처럼 붙어다녔다. 이 같은 부(負)의 유산은 결국 존 매케인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한 반면, 오바마에게는 더없이 좋은 호재가 됐음은 물론이다.
40대 초선 상원의원 출신인 오바마가 일천한 정치경력에도 불구,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일방통행식 워싱턴 정치와 탐욕한 월가를 극복하고 변화를 가져올 적임자로 유권자들에게 어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경제문제는 종반 대선의 모든 주제를 빨아들이다시피한 최대화두였다. 경제위기는 오바마에게 결정적인 뒷심을 보태줬다. 9월초 공화당 전당대회 직후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역전을 허용했던 오바마는 9월 중순 경제위기가 터진 후 실시된 170여 차례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단 한번도 매케인에게 추월을 허용하지 않았다.
매케인이 선거운동 중단과 제1차 TV토론 연기라는 배수진을 치고 경제문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경제실정=부시·매케인 공동책임’이라는 구조에 갇혀 발을 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틈을 비집고 오바마는 경제회생을 위한 7천억달러 구제금융에 대국적 차원에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서민들을 위한 감세공약, 향후 10년내 에너지 독립 등을 전면에 내걸어 대세론을 굳힐 수 있었다.



지상전과 공중전의 극대화


미 동부전선의 격전지 중 한 곳인 버지니아주의 비엔나 전철역 앞. 이곳에서는 선거 직전까지 항상 오바마 진영 선거운동원들이 진을 치고 전철 이용객들을 상대로 후보등록과 오바마 지지를 호소했다.
지난 1964년 대선 이후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던 버지니아 공략작전은 이렇듯 `낮은데로 임한’ 오바마의 선거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국 선거사에서 오랫동안 기억될만한 이 같은 장면 한컷은 어떻게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이 영글고 왜 그 열매가 맺게됐는지를 보여준다.
지역운동가 출신인 오바마는 유권자들을 어떻게 묶고, 민심의 동심원을 어떻게 넓혀가야 하는지를 체득했고, 이를 실천에 옮겨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한마디로 이기는 방법을 아는 `동물적 감각’의 소유자라는 얘기다. 당내 경선에서는 대의원이, 본선에서는 선거인단이 승부를 결정짓는 핵심이라는 사실을 오바마는 일찌감치 간파하고 선거운동원들을 대거 투입해 밑바닥부터 표심을 다지는 `지상전’에 치중한 것이다.
“여러분 한명 한명이 마을을 바꾸고, 나라를 바꾸고, 세계를 바꾼다”는 그의 유세 메시지는 이런 민초의 힘을 하나로 묶어냄으로써 구심력을 극대화했다. 선거운동원들을 동원한 호별방문, 집중적인 전화구애, 인터넷선거운동 등은 오바마식 `소매정치(retail politics)’의 힘을 보여줬다. 오바마는 여기에다 인터넷 모금을 통해 개민군단이 십시일반으로 거둬주는 선거자금을 공중전에 쏟아부었다.
오바마는 인터넷을 활용해 310만명의 개미후원자를 끌어들이고 이를 토대로 조성한 선거자금으로 대선을 치러낸 미국의 최초 대선후보로 기록될 것이다.
공중전에서도 오바마는 엄청난 화력을 과시했다. 그가 10월 29일 황금시간대에 내보낸 30분짜리 단발 TV광고는 무력 300만-400만달러에 달했다. 선거방송과 광고에 전체 선거비용의 70% 이상인 2척3천300만달러가 투입됐다. 소수인종인 흑인출신이면서도 백인 주류사회를 상대로 막대한 선거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는 자금동원력을 확보한 오바마는 이미 대통령 당선을 예약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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