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탄생에서 대통령 당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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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의 미국도 백인의 미국도 라틴계의 미국도 아시아계의 미국도 없습니다. 오직 미합중국만이 있을 뿐입니다.”
케냐 출신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의 혼혈아로 태어나 어린시절 손가락질을 받고 마약에 까지 손을 댔던 열등감에 가득 찼던 소년.
그러나 `희망’을 가슴에 품고 하버드 법대를 졸업, 지역 활동가와 인권변호사, 주 상원의원, 연방 상원의원을 거쳐, 정치입문 12년만에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 `대담한 사나이’ 버락 오바마.
솔직함과 진정성으로 대중을 사로잡으며, 미국인들이 가장 갈구하던 화두 `변화’를 내세워 흑색 돌풍을 일으킨 그를 미국인들은 `검은 케네디’라고 부른다.
미국 제44대 대통령이자, 미 건국 232년만에 첫 흑인 대통령이 된 그의 47년 인생 여정은 굴곡 많은 한편의 인간 승리 드라마였다.
                                                                                                      <특별취재팀>













 ▲ 오바마 부모
불우한 출생과 성장


오바마는 1961년 8월4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당시 하와이 대학으로 유학온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 버락 오바마와 캔자스 출신의 인류학도였던 백인 어머니 스탠리 앤 던햄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랍어로 `축복받은’이란 의미를 지닌 `버락’이라는 이름을 물려 받았지만, 어린 시절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부모는 오바마가 두살때 이혼했고, 어머니는 그 후 인도네시아 남자와 재혼하면서, 오바마는 유년기 4년을 인도네시아에서 보내게 된다. 어머니의 두번째 결혼이 다시 파경에 이르자 그는 외조부모가 살고 있던 호놀룰루로 돌아와 최고 사립학교인 푸나호우 스쿨에 들어갔다.
이 때부터 외조부모는 그의 인생에서 부모와 마찬가지 존재가 됐고, 그가 촌분을 아끼던 대선 장정의 와중에도 외조모의 병세가 위중하자 지난달 23일 이틀 일정으로 하와이를 다녀오고, 대선 전날 외할머니의 임종 소식에 슬픔을 감추지 못하며 “우리 집안의 주춧돌이었고, 특별한 성취와 힘, 겸손을 갖춘 여성이었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도 그의 각별한 애틋함을 반영한 것이다.
흑인 아버지, 인도네시아인 양부, 백인 어머니, 거기에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인도네시아의 생활과 미국이면서도 미국이 아닌 하와이에서의 어린 시절, 다양한 인종과 종교로 얽혀 있던 이부.이복 형제들.
이 속에서 극심한 정체성 갈등을 겪으면서 마약까지 접하게 됐던 그지만, 이 같은 내적 갈등과 방황이 오히려 훗날 그에게 문화적 이해와 관용의 토양을 만들어준 양분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성숙..`지역 활동가’로의 변신


오바마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옥시덴틀 대학에 들어가 반(反) 아파르헤이트(인종차별정책) 집회에 참가하면서 처음으로 정치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고등학교까지 사용해오던 배리라는 이름 대신 버락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 부터다.
그는 시야를 넓이기 위해 뉴욕에 있는 콜럼비아 대학으로 편입해 정치학 학사를 받은 뒤 1982년 생부의 사망소식을 듣고 `뿌리를 찾아’ 케냐 여행을 단행한다. 그는 훗날 “아버지의 땅에서 나의 미래를 그리게 됐다”고 술회한 바 있다.
케냐에서 돌아온 오바마는 시카고 흑인거주 지역에서 도시 빈민운동에 투신하면서 대선 과정에서 `갓 뎀 아메리카’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불러 일으켰던 제레미아 라이트 목사와 인연을 맺었고, 라이트 목사는 그의 결혼식 주례를 했을 정도로 가까운 정신적 스승이자 영적 지도자였지만 발언 파문이 계속 확산되면서 결국 두 사람은 결별의 길을 걷게 됐다.
시카고 지역활동가 생활을 통해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지역환경 뿐 아니라 국가의 법과 정치체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뒤늦게 하버드 법대 대학원을 진학, 법학박사를 받고 변호사가 됐다.
하버드 법대 시절에는 법대 학회지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하버드 로 리뷰’의 흑인 최초 편집장이 돼 언론으부터 집중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버드 법대시절 시카고에 있는 법률회사에서 연수를 하면서 부인이 된 미셸 로빈슨을 처음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흑인 소방관 가정에서 태어나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 법대를 나온 미셸은 이번 대선에서 오바마의 정체성에 회의적 반응을 보였던 흑인표를 결집시키는데 큰 몫을 했다.
미셸 오바마는 대선 유세 지원을 위해 시카고 대학병원 대외업무 담당 부원장직을 그만 두었다. 슬하에 두 딸 말리아(10)와 사샤(7)를 두고 있다.


정치 입문 12년..변화와 희망으로 대권을 잡다













 ▲ 오바마 가족사진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후 풍족한 생활이 보장되는 로펌을 포기한채 시카고로 돌아온 그는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시카고 대학 법대에서 헌법을 가르치며 미래를 차근 차근 준비해 나갔다. 당시 그는 학생들에게 미래의 미국을 얘기하는 독특한 법대 강사로 기억되고 있다.
1996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본격적인 발을 디딘 그는 2000년 연방하원의원 선거에 낙선하면서 다시 고난의 시절을 보내기도 했지만, 2004년 여름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존 케리 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연설을 하면서 일약 전국적 정치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당시 그는 `미국인은 모두 하나’라는 기조 연설을 통해 민주당 대의원은 물론, 전국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으며 스타 정치인이 됐고, 곧 이어 대선과 함께 치러졌던 상원의원 선거에서 70%의 득표율로 미국 역사상 흑인으로는 세번째이자, 현역으로는 유일한 흑인 연방 상원의원이 됐다.
놀라운 성공이었지만, 그의 꿈을 위한 행진은 멈출 줄을 몰랐다.
오바마는 한파가 몰아치던 2007년 2월10일 일리노이 스프링필드에 있는 일리노이 주의 옛 주정부 청사 앞 광장에서 “우리 세대가 이제 시대적 소명에 답할 때”라면서 대권도전의 출사표를 던졌다.
그가 대선 후보 출마를 선언했던 장소는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전(前) 대통령이 지난 1858년 “내부가 갈라진 집은 서있지 못한다”는 명연설로 흑인노예 해방의 정치투쟁을 시작했던 곳이다.
오바마는 올해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바로 이곳에서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조지프 바이든 상원의원과 함께 처음으로 합동유세를 벌였다.
오바마는 올해 1월 처음으로 시작된 대선후보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최대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꺾고 승기를 잡은 뒤 그 여세를 몰아 슈퍼화요일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지난 6월 3일 몬태나와 사우스 다코타 주를 끝으로 막을 내린 5개월간의 경선레이스에서 승리를 확정 지은뒤 8월 덴버 전대에서 민주당의 첫 흑인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됐다.
이어 본선 무대에서 그는 “아직 흑인이 미국 대통령이 되기에는 이르다”, “경험 미숙으로 대통령직에는 역부족이다”는 등의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존 매케인과 조지 부시 현직 대통령을 한통속으로 묶으면서, `지금 미국에 필요한 것은 변화’라고 외치며 민심을 사로잡았다.
또 새라 페일린 돌풍에도 끝까지 페이스를 잃지 않으면서 3번의 TV토론에서 완승을 거두고,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해결의 적임자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해 결국 대권을 낚아 챘다.
그의 인생역정, 열등감을 희망으로 바꾸고 목표를 향해 쉼없이 나아가는 그의 열정이 이룬 이번 승리는 오바마 개인의 성공 스토리가 아닌 전세계인의 `희망 이야기’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오바마를 지지한 도산 장녀 안수산













 ▲ 안수산 여사
지난 2월 3일 로스엔젤레스 UCLA 폴리 파빌리온 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 후보 오바마 지지대회에 지팡이에 의지한 93세의 한 노인이 무대에 오르자 9000여 청중은 일제히 일어나 큰 박수를 보냈다. 바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녀 안수산 여사였다.
그녀는 마이크 앞에서 “지나온 길이 너무 멀었습니다. 누가 흑인이 대통령직에 출마하리라고 생각했겠어요.” 라고 말하자 청중들이 열광했다. 미전국적으로 한인으로 오바마 지지 공식행사 연설에 공개적으로 나선 것은 사실상 이날 안수산 여사가 처음이었다.
“너무 기뻐서 오늘밤 잠이 안 올 것 같아요”
지난 4일 밤 . 도산 장녀 안수산 여사(93)는 본보 기자의 축하전화를 받으며 “오바마의 승리에 하루 온 종일 TV 앞에 있었다”고 말했다. 또 안 여사는 “내 딸 크리스틴이 나보다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안 여사는 “우리는 오랫동안 이날을 기다려왔다”면서 “앞으로 미국사회의 소수민족 인권신장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며 기대를 밝혔다.
그리고 안 여사는 “오바마는 이 위대한 아메리카의 탁월한 지도자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면서 “미국은 이제 또 다른 변화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앞으로 우리의 2세, 3세 어린이들이 새로운 변화의 꿈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수산 여사의 딸인 크리스틴 커디는 현재 할리우드 연예계에서 잘 알려진 전문 변호사로 오바마 지원 캠프에서 중요한 자문역활을 맡아 활동했다. 그녀는 잭 니콜슨 등 할리우드 연예인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지니고 있으며, 오바마의 할리우드 연예계 지지활동에도 한 몫을 했다.
안 여사는 이번 미대선 기간 중 “최고령 오바마 지지자”로 미언론에 조명을 받아왔다. 미언론들은 “안 여사는 93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이미지로 오바마를 지지하여 왔다”면서 지난 예선전 `슈퍼 화요일’을 이틀 남겨둔 2월 3일 로스앤젤레스 UCLA 체육관에서 개최된 오바마 지지대회에서 오프라 윈프리 등과 함께 지지연설로 지지자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안수산 여사는 UCLA의 농구장인 폴리 파빌리언에서 “때묻지 않은 정치인으로서, 생각하며 행동하는 오바마를 좋아한다”고 목청을 높이며 오바마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혀 참석한 대학생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이날 약 3분 28초 동안의 안수산 여사의 오바마 지지연설 장면은 동영상을 통해 인터넷에서 인기를 모아왔다.
특히 이날 행사는 오바마의 부인인 미셸과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최근 오바마 지지를 선언한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 캐롤라인이 주관했고 팝가수 스티비 원더 등 유명 연예인들도 다수 참가해 주목을 받았는데 한인이며 미주에서 독립운동을 선도한 도산 안창호의 딸이란 점에서 특별한 관심을 받기도 했다.
오바마 진영은 안 여사의 딸인 크리스틴 커디가  참여하고 있는 인연으로 연락을 취해 왔으며 그녀가 한인사회에서 가진 영향력을 감안 이례적으로 연설자로 초대했다는 후문이다.
이날 안 여사의 연설은 공화당 매케인 후보를 지지한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자시와 반대로 오바마를 ‘깜짝 지지’하고 나선 부인인 마리아 슈라이버 만큼이나 큰 주목을 받았다.
연단에 선 안 여사는 작지만 강한 목소리로 “1942년에 해군에 입대했는데 당시만 해도 흑백의 분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며 “나는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었음에도 피부색 때문에 버스 좌석을 놓고도 차별을 받아야 했다”고 60여년 전의 경험을 털어놨다.
그녀는 지지 연설 말미에 “우리 모두 이 휼륭한 나라를 이끌 오바마에게 표를 던지자”고 말해 지지자들을 들끓게 했다.
안 여사는 최근 오바마의 연설을 듣고 아버지인 도산 안창호 선생과 공통점을 보게됐다고 연설 후 밝혔다. 그는 “오바마는 (내) 아버지 처럼 정직하며 사람들을 위해 헌신할 줄 알고 무엇보다 원칙이 확고한 사람으로 보였다”고 지지 배경을 밝히고 “1938년 중단됐던 도산의 정신이 70년만에 다시 미국 정치에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 여사는 최근 오바마를 지지하기위해 평생 적을 두고있던 공화당을 탈당한 뒤 민주당에 입당했다.


 







미국 역사를 새로 쓴 버락 오바마
100년 이내 한인계도 미 대통령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 탄생은 건국(1776년) 이후 232년 만에 처음이며,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끌려온 흑인들이 노예에서 해방된 지(1863년) 145년 만이다.
오바마 당선자는 “미국의 변화, 세계의 변화”를 외치며 4일 대선에서 경쟁자인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와 치열한 흑백 대결을 펄처 승리해 미국 역사의 새로운 기원을 이룩했다.


“미국이여, 지금은 우리의 순간입니다. 우리의 시간입니다. 옛 정치의 페이지를 넘길 우리의 시간입니다. 새로운 에너지와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우리가 직면한 도전에 가져올 우리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나라에 새로운 방향을 제공할 우리의 시간입니다.”


이 말은 오바마가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로서 수락연설의 한 구절이다. 변화를 추구하는 신념이 베어 있는 말이다.  그는 또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시기를 기다린다면 변화는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변화입니다.” 라고 말했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명연설이 있는 지 45주년 기념일에 맞춰 열린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선출된 오바마 당선자는 “대통령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해 8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내겠다”고 다짐했던대로 정권교체를 이룩했다.


오바마는 지난해 “언제나 새로운 세대가 등장해 필요한 일을 했다”며 “우리 세대는 다시 한번 부름을 받았다”는 말로 대선출마를 선언한지 불과 2년이 못되어 대권의 꿈을 심고 제44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오바마가 속한 민주당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놓고 경쟁해 대의원들이 일단 흑인 대통령을 먼저 선택했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사회에서 ‘여성’과 ‘흑인’이라는 역사적으로 두고두고 소외계층이었던 사람들의 변화를 추구하게 됐다.
 오바마는 상원의원이 된 지 2년 만에 대권에 도전하며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해 대권을 거머쥔 이례적인 정치인이다. 오바마처럼 승승장구한 예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이후 처음이다.


그는 변화의 의미를 이렇게 천명했다.


“변화는 이 세대에서 위협에 맞서는 것이 무력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외교의 힘도 필요함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어떻한 독재자의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고 미국의 입장과 미국의 목표를 분명하게 똑바로 전달할 수 있는 자세를 지녀랴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세계를 이끌 용기와 믿음을 새롭게 지녀야 합니다. 이는 루즈벨트의, 트루만의,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의 유산입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인들이 원하는 바입니다. 이것이 변화입니다.”


부모의 얼굴색이 다른 ‘다문화 가정’, 그리고 어린 시절 겪은 부모의 이혼…. 견디기 힘든 유년시절을 보내던 흑인 혼혈 소년의 마음속엔 늘 대통령이 되겠다는 큰 꿈이 있었다. “네 꿈 속에서나 가능하겠지…”라는 친구들의 놀림은 소년을 단련시켰고, 30여 년이 흐른 지금 소년은 마침내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변화를 추구한 오마바 흑인대통령의 탄생은 미국에서 자라나는 한인 2세들에게도 새로운 꿈을 피울 수 있는 변화를 주고 있다.  4일밤 TV를 통해 오마바의 승리를 지켜본 한 한인 가정의 10세 어린이는 “아빠! 나도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겠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어요”라는 메시지는 또 다른 100년의 이민 역사를 기록해 가는 우리 한인 커뮤니티가 미국의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꿈을 갖게 한다.
그것이 미국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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