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KAL기 폭파사건 “22년만에 세상밖으로 나오나?”

이 뉴스를 공유하기














 ▲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의 범인인 김현희 씨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 씨 가족의 면담이 11일 부산 벡스코에서 예정된 가운데 김현희 씨가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이후 22년만에 공식석상에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의 범인인 김현희(47) 씨는 11일 “KAL기 사건은 북한이 한 테러고, 저는 가짜가 아니다”라면서 “일부 유가족이 의혹을 제기하는데, 22년이나 지난 사건인데 아직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답답하다”라고 말하며 사건은 북한지시에 의한 테러임을 주장하고 나서 그 배경에 대해 의혹이 일고 있다.
또 그녀는 ‘노무현 참여정부와 국가정보원이 자신에게 당시 사건은 전두환 정권이 조작했다는 내용의 진술을 강요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 놓으며 ‘현 정부가 지난 정부에서 있었던 일을 조사하고 있다고 하니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으나 김씨의 발언 파문은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번 김현희씨의 갑작스런 인터뷰 배경에 대해 일각에서는 그 배경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건발생 22년만에 다시 불거져 나오는 이면적 배경과 함께 “과연 북한의 테러인지 아니면 전두환정권의 자작극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조현철(취재부기자)


김 씨는 이날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BEXCO)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씨 가족을 면담한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KAL기 폭파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에 응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다구치 씨에 대해 김 씨는 “제가 87년 1월부터 10월까지 북한초대소에서 생활하며 들은 것은 ‘다구치 씨를 어디로 데려갔는데 어디 갔는지는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사망한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간 것으로 생각했고, 86년에 결혼시켰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김 씨는 북한에 의한 또 다른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다 메구미 씨와 관련, “저의 공작원 동지인 김숙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쳤고, 87년에 남조선 사람과 결혼해 딸을 낳았다는 얘기도 들었다”면서 “메구미 씨가 사망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납치문제 해결방안에 대해 “일본 정부가 북한의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계속 노력하면 북한은 죽은 사람이 살아 있기도 하니까 기적이 있을 수도 있다”면서 “북한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된 만큼 최소한 가족이 만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만남을 제의해 눈길을 끌었다.


‘전두환 조작극’ 진술강요 파장


노무현 참여정부시절 국정원으로부터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이 조작됐다는 증언을 하도록 강요받았다는 김현희(47)씨 주장의 진위가 국정원 내부 조사에서 어떻게 가려질지 관심을 모은다. KAL기 폭파범인 김씨는 11일 일본인 납북 피해자 가족과 만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최근 언론을 통해 주장한 국정원의 증언 강요설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긴 그렇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나 그는 “현 정부에서 지난 정부에서 있었던 일을 조사하고 있다고 하니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자신의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 해 11월 남편을 통해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에게 전한 편지에서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국정원 등이 자신에게 방송에 출연, `KAL기 폭파를 북한 김정일이 지시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고백을 하도록 강요했다는 주장을 폈다.
참여정부 초반 과거사 진상규명이 활발히 이뤄질 당시 KAL기 사건 유족 측과 진보진영 일각에서 강하게 제기해온 전두환 정권의 자작극설(說)이 사실이라고 말하라는 강요를 받았다는 얘기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참여정부 초반까지 국정원에 몸담았던 한나라당 이철우 의원은 국정원의 `결백’ 입장을 대변했다.
그는 작년 11월 당 최고위원.상임위원장단 연석회의에서 “김현희씨가 TV에 출연해 KAL기 사건은 조작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해 달라는게 당시 국정원의 입장이었다”며 “김씨가 20년간 칩거하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피해의식을 갖게 돼 그런 주장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KAL기 사건 조작극의 실체


김씨 주장의 파장이 진화되지 않자 국정원도 작년 말 내부 진상조사에 착수, 당시 담당 라인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김씨 주장의 사실관계, 당시 전반적인 정황 등을 확인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이 김씨에게 TV출연을 권고한 것은 사실로 보이는 만큼 쟁점은 결국 나가서 무엇을 말하길 요구했느냐로 모아진다.
김씨 주장대로라면 진보 정권때 국정원 또는 일부 국정원 직원이 정권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전두환 정부 시절 `국기문란’ 행위가 있었음을 진술하도록 했다는 얘기가 된다.
반면 이철우 의원이 대변한 국정원 측 입장 대로라면 국정원 측은 김씨가 직접 나서서 자신들에게 쏠리는 의혹의 시선을 해소해 달라는 요구를 했던 게 된다. 2003년 11월 국정원 직원들이 KAL기 사건이 조작됐다는 내용의 실화소설을 쓴 작가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것은 국정원 측의 `결백 주장’에 힘을 싣는 정황이다.
하지만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김씨에게 진술 번복을 강요하진 않았더라도 일부 직원이 `일탈행위’를 했을 개연성은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007년 KAL기 사건 재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조작 사건이 아님을 재차 확인한 바 있다.









 ▲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을 저지른 김현희씨가 1987년 12월
바레인 공항에서 붙잡혀 김포공항으로 압송돼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고 있다.


김현희, ‘일본 언론 대서특필’ 북한 압박 


일본 얼론들이 김현희씨와 다구치 가족의 면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일본 언론들은 11일 1987년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범 김현희(47)씨와 일본인 납치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씨 가족의 면담을 대대적으로 보도해 국민적 관심을 유도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이를 근거로 북한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다. NHK 방송은 “이명박 정권이 일본의 납치문제 해결에 협조를 약속, 이번 면담이 실현됐다”고 전하며 “다양한 일본 측의 협력을 얻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가 (면담을) 수년 전부터 요구해왔으나 햇볕정책을 추진해온 노무현 정권이 북한을 자극할까 우려해 응하지 않았다”면서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이명박 정권에 의해 성사됐다”고 전했다. 한편 일본 정치권에서는 이번 면담이 일본 국민의 대북 적대 감정을 증폭시켜 자민당의 보수 성향 표를 결속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김현희 인터뷰 ‘네티즌’ 반응


김현희씨의 KAL기 사건과 관련한 인터뷰에 대해 네티즌들의 반은 싸늘하기만 하다.
한 네티즌은 “후안무치, 인두껍, 극도의 자기 중심적 뻔뻔함. 말해 무엇 합니까? 인간의 도리나 가치를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김현희”라는 한 사건에 대해 모두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겁니다”라고 비난하며 그 배경에 의혹을 제기했다.
다른 네티즌은 “본인의 말대로 김현희가 정말 남파공작원이었고 북한의 사주를 받아 칼기를 폭파시켰다면 그녀는 어디서 대중앞에 고개를 들고 나설 용기를 얻었을까요?  전두환 정권의 반공 공포 정치에 충실히 부응해서 목숨을 번 사람이지 않습니까? 한번 이쁜 얼굴로 목숨을 벌었으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겁니까? 비애를 일으킬 만한 여린 얼굴 더 이상 아닙니다. 이념의 제물로 이용만 당하다가 법정에 서게 된 어린 인생이라며 동정을 살만한 미모도 삶의 미숙함도 그녀에겐 없습니다. 2009년 그녀에게서는 독재 공안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 제 한 몸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이기와 독선의 부패한 냄새가 납니다. 온몸으로 반응할 만큼 역한 냄새가 난다”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다른 네티즌은 “아니, 이 여자 제대로 미친겁니까?  아마 과거에 국정원에서 일했다는 남편이 노무현정부에 의해 간섭을 좀 받았겠지요. 부창부수라고 제가 무슨 억압 받아온 국민인 양 분기탱천 한 듯 합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 억압을 많이 받아서 제 스스로 반공 민주투사가 된 듯 여기나 봅니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