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 다구치 만남 전격 성사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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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1일 부산에서 김현희씨가 일본인 납북자 다구치씨의 아들을 만나 울먹이고 있다.






한 동안 모습을 갖췄던 KAL기 폭파범 김현희가 얼마 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11일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의 오빠인 ‘일본인 납치 피해 가족회’ 대표 이즈카 시게오(70), 다구치의 아들인 이즈카 고이치로(32) 등과 1시간30분가량 비공개 대화를 나눈 뒤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김씨는 “KAL기 사건은 북한이 한 테러로 저는 가짜가 아니다”며 지난 몇 년간 일각에서 일었던 조작 의혹을 반박했다.
김씨가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1997년 전국 공안검사를 대상으로 한 특별강연 이후 12년, KAL기 폭파사건 후 22년, 다구치가 납치된 지 31년 만의 일이다.
김 씨의 이날 기자회견에 석연치 않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현 시점에서의 남북관계나 일본 내 정세 때문이다. 현재 남북은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어 있는 실정이다. 개성공단통행금지조치부터 미사일 발사까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지전 발발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현 상황에서 국민여론이 향후 대북관계에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인 것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현재 아소 정권이 최악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어 무언가 반전의 카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긴밀한 협의로 이번 김현희씨의 기자회견이 성사된 것이다. 기자회견을 계기로 한나라당에서는 전 정권에 대한 국정조사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지사 = 박희민 기자>



김현희 씨는 1990년 3월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가 확정된 후 보름 만에 특별사면돼 안보 관련 외부 강연과 수기(手記) 출간 등 왕성한 공개 활동을 해오다 1997년 결혼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1997년 5월 전국 공안검사 대상의 특강에서 “죗값을 치를 때까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같은 해 신변보호를 담당했던 전직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직원 정모 씨와 결혼했다. 이후 김 씨는 서울과 시댁이 있는 경북 일원을 오가며 2000년 아들, 2002년 딸을 출산하는 등 사회에 적응해 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언론과 소설 등을 통해 항공기 폭파사건에 대한 의혹이 다시 불거져 나오면서 그는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03년 하반기 한 방송사가 자택과 친척집 등을 오가는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자 같은 해 11월 중순 이후 잠적했다.
김 씨는 11일 기자회견에서 다구치 씨의 아들인 이즈카 고이치로 씨가 보낸 편지를 받지 못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한국에서) 피난 생활을 하다 보니 받을 수 없었다”고 밝혀 그동안 국가정보원 등 당국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음을 내비쳤다.
실제로 김 씨는 지난해 11월 남편을 통해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에게 전한 편지에서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국정원 등이 자신에게 방송에 출연해 ‘대한항공기 폭파를 북한 김정일이 지시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고백을 하도록 강요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007년 대한항공 항공기 사건 재조사를 할 당시에도 국정원과의 면담조사를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호의적이었던 국정원이 달라져 이 사건을 재조사하도록 결정한 것에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김 씨는 모습을 감춘 채 수도권 주변을 전전하며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8월 한 라디오 방송에서 정형근 당시 한나라당 의원(폭파 사건 당시 안기부 수사책임자)은 “김현희 씨는 경기 서쪽 접경 변두리에 꼭꼭 숨어있고 외출할 때도 (얼굴을) 잘 안 나타내려 하는 것으로 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 정국 반전 카드


이렇게 꼭꼭 숨어살던 김현희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다구치씨와의 만남에는 일본 정부의 적극적임 움직임이 배경이 됐다. 실제로 기자회견 이후 일본의 외무장관이 한국 정부 측에 깊은 사의를 표명했다.
일본 언론들은 김씨와의 면담에 보도진 300명을 파견하고, 5시간 실황중계를 하는 등 대대적인 보도전을 펼쳐, 일본 내에서는 다시 납치문제와 관련한 대대적 반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10%대의 저조한 지지율로 실각 위기에 놓인 아소 다로 총리 내각이 납치문제를 지지율 반전카드로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정국 반전에 이만한 카드가 없던 것.
<니혼게이자이신문>은 “6자 회담 등에서 납치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시선을 받는 일본 정부에 이명박 정부의 자세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고 평가했다. 아소 총리는 11일 밤 기자회견에서 “오랜 기간 마음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것 아니냐”며 속내를 드러냈다.
이명박 정부는 납치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에 ‘힘’을 빌려준 뒤 경제협력을 얻겠다는 노림수를 보인다고 일본 언론들은 분석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3·1절 경축사에서 대일 메시지를 전혀 언급하지 않을 정도로 ‘대일 중시’의 자세를 보였다.
이와 관련해 눈에 띄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 사공일 무역협회장이 기자회견 하루 전인 지난 10일 아소 다로 일본 총리를 만나기 위해 방일한 것이다. 무역협회 측은 경제협력 강화 등을 표면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아소 다로 총리를 만났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친서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통화 스와프 확대 등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일본 측의 도움을 요청하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 날이 바로 김현희씨의 기자회견이 있기 바로 하루 전이다. 김 씨와 다구치와의 만남을 주선해 아소 정권의 정국 반전을 시켜주는 대가로 무언가를 얻으려했다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한국 정부가 원하는 것이 경제적 이득이 아닐지라도 만약 있을지모를 무력 충돌시 일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두 나라 정부는 지난 16일 북한이 발사체를 추진할 때 공동대응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남북관계 염두


반드시 한일 관계 때문만이 아니라 현재 악화되고 있는 남북관계에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여론을 정부에 유리한 쪽으로 이끌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무력충돌 일보직전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상황에서 김씨의 등장은 북한을 자극하는데 충분하기에 김현희 이름 석자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일본인 납치문제를 바라보는 이명박 정부의 스탠스는 노무현 정부 때와 많이 달라졌다. 일본인 납치 문제는 북한과 일본 간 최대 쟁점이었지만 노 정권은 이 문제를 언급하기 꺼려했다. 북일 수교가 이 문제로 논의의 진전을 보지 못했고, 북핵 6자 회담에서도 일본 측은 이 문제를 줄기차게 꺼내며 이슈화했지만 노 정권은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다. 남북관계 경색을 우려했던 것.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기류는 바뀌었다. 북일 간 핫이슈인 납치문제에 우리 정부가 개입하기 시작한 것. 김현희 카드는 그 중 하나다. 우리 정부가 북한의 예상되는 반발을 감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되며, 북한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과의 공조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즉 우리 정부가 한일관계 진전과 북한 압박을 동시에 노린다는 설명이다.
김 씨 등장으로 남북관계와 북일관계의 악화는 불가피해졌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무력충돌을 피하면서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인권 카드를 꺼냈다고 보고 있다. 비군사적인 압력이란 설명이다.
또한 향후 있을지도 모르는 무력충돌에 대한 일종에 면피용 카드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재 본국에서는 남북관계 악화가 현 정부의 일방적 정책에 있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이런 상황에서 무력충돌까지 발발한다면 비난의 화살이 정부에 쏠릴 것이 분명하다. 결국 만약의 사태까지 대비해 김현희 카드를 사용한다면 북한에 대한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아질 것이라는 계산이다.
김현희씨를 국내 정치에 이용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나라당은 ‘김현희 청문회’ 개최 의사를 밝히면서 신·구 정권간 진실게임이 시작되는 모양새다. 김 씨는 노무현 정부 때 국정원이 KAL기 폭파사건이 조작됐다는 증언을 강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정원은 지난해 말 내부 진상조사에 착수, 당시 담당 라인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청문회를 열어 진상조사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16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김현희씨 사건이 노무현 정부 시절에 용공은폐 조작사건으로 밝혀지고 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국정원이 김씨에게 KAL기 폭파사건이 조작됐다는 증언을 강요했다는 주장의 진상을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일단 국회 정보위에서 국정원의 현안보고를 청취하는 방안을 추진하되, 정보위 차원에서 청문회를 개최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또한 필요할 경우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차원에서도 김 씨 증언의 진위를 파악할 계획이다.
하지만 민주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은 말도 안된다는 반응이다.
노 전 대통령 측 김경수 비서관은 “그 당시 일이 청와대에서 벌어진 일도 아니고 청문회 개최 움직임에 대한 것이나 김 씨의 주장과 관련한 입장을 (노무현)대통령께 묻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며 관련성을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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