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검찰 소환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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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3번째로 검찰에 소환됐다. 5공화국 청문회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몰아부쳐 스타가 됐던 그가 전 전 대통령과 똑같은 뇌물죄로 검찰의 조사를 받은 것이다. 소환 현장에서 기자가 직접 본 노 전 대통령의 표정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대통령직을 물러난 지 1년 2개월만에 검찰청 포토라인 앞에 자신이 서게 될 줄 누가 예상했던가. 인생 최대의 굴욕이었다.
노 전 대통령과의 착잡한 분위기와는 별개로 그에 대한 신병 처리를 둘러싼 검찰의 기류가 복잡하다. 당초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출석이 신병 처리에 대한 마지막 방점이 될 것으로 여겨졌으나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이번 주에 결정하기로 했던 신병 처리는 다음주로 넘어갔고 검찰 수뇌부는 4일 수사결과를 보고받은 상태지만 수사는 진행 중이다. 법무부 수뇌부는 구속기소가 정치적 혼란만 가져올 뿐 실익이 없다는 입장을 조심스레 내비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청와대 측은 전 정권에 대한 사정 작업이 자신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박연차 회장에 대한 수사가 이명박 대통령의 50년 지기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에게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8~9면) 자칫하면 이번 수사가 현 정권의 치명적인 악수로 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지사 = 박희민 기자>




노무현의 굴욕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환 당일이던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은 노 전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하는 보수단체와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노사모(이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간의 장외 전쟁으로 불꽃이 튀었다. 두 단체는 심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으며 저마다 자신의 주장을 외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청사로 들어서던 오후 1시 17분. 이들의 싸움은 극에 달했다. 노사모 회원들은 순식간에 도로를 점거한 채 ‘노무현 화이팅’을 외쳤고, 보수단체 회원들은 노 전 대통령의 탄 버스에 신발과 달걀을 던지며 그를 비난했다.
버스 밖에서 버스 내부가 보이진 않지만 버스 내부에서는 분명 외부에서 일어난 일을 고스란히 지켜봤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광경을 지켜봤기 때문일까 버스에서 내려 포토라인에 선 노 전 대통령의 표정은 만감이 교차해 보였다.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중에 합시다’라고 짧게 말한 노 전 대통령은 묵묵히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노 전 대통령은 특수조사실 1120호에서 10시간여에 걸쳐 조사를 받았다. 조사 종료시점은 오후 11시20분이다.
노 전 대통령은 조사 중간 두어 차례 휴식시간을 가졌고, 오후 6시30분께 조사실 옆방으로 옮겨 문재인 전 실장 등 보좌진과 저녁식사를 했다. 메뉴는 달걀부침이 곁들여진 ‘곰탕 특(特)’으로, 노 전 대통령은 밥 한 공기를 거의 다 비웠다.  7시30분부터 시작된 조사는 11시께 끝났다. 이후 검찰은 600만달러에 관한 노 전 대통령의 진술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달라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대질조사를 하려 했으나 불발됐다. 노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아니고, 시간도 너무 늦었다”는 이유로 대질신문을 거부한 것. 조사가 끝난 직후 이인규 중수부장과 인사를 나눈 노 전 대통령은 사무국장의 안내에 따라 조사실을 나섰다.
12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노 전 대통령에게는 그야말로 인생 최대의 굴욕이었다. 국민들은 그를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같은 선상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다. 5공 청문회 당시 자신이 그토록 몰아붙이던 전직 대통령과 훗날 같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될 지 누가 알았겠는가.



구속과 불구속


이제 국민들의 관심은 과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두 전직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수의를 입게 될 것이냐에 쏠려있다. 이는 전적으로 검찰의 판단에 달려있다.
법정 진실 게임에 앞서 검찰은 구속과 불구속 사이에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600만달러 진실게임’에서 검찰과 노 전 대통령 측 모두 자기 쪽이 승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모순(矛盾·창과 방패)’이 돼버린 형국이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1일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재소환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이 새로운 주장이나 증거자료를 제시한 게 없어 곧바로 수사기록을 정리해 신병처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혀 혐의 입증에 문제가 없음을 나타냈다. 노 전 대통령 조사가 검찰이 예상했던 시나리오대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반면 조사 직전까지 신중한 모습이던 노 전 대통령 측은 검찰 조사로 인해 확실히 승기를 잡았다는 분위기다.
노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인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검찰은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 간의 통화기록조차도 확보하지 못한 것 같더라”며 “박 회장의 진술을 뒷받침할 물증이 없다면 결국 믿을 수 없는 진술 아니냐”고 말했다.
그동안 박 회장의 진술에 ‘무한 신뢰’를 보내왔던 검찰의 허를 찌르는 발언이다.
이어 “이번 조사를 통해 검찰이 갖고 있는 박 회장의 진술내용 등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며 “현재까지는 노 전 대통령의 진술을 반박할 만한 수준의 증거들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검찰의 ‘히든카드’는 없었고, 검찰이 확실한 물증이 부족한 상태에서 노 전 대통령 소환조사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는 주장이다.




검찰의 고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법 처리와 관련한 최종 결정권자인 임채진 검찰총장은 수사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검찰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합리적인 결정을 도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임 총장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끝난 이후 일선 지검장들에게 전화를 걸어 신병 처리에 대한 의견과 법조계의 의견 등을 물으면서 자신의 고민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 총장의 법적인 고민은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경우 법원의 판단을 담보할 수 있느냐와 직결돼 있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간부들이 수사결과에 흡족해했다.”고 말했지만, 수사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과 법원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인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법원이 달리 판단한다면 검찰로서는 조직의 위기다. 반대로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뒤 법정에서 무죄로 판결난다면 법원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검찰과 법원이 ‘폭탄돌리기’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불구속기소를 할 경우 그동안 전직 대통령의 비리 혐의를 둘러싸고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검찰 수사가 용두사미로 막을 내린다는 비아냥을 듣게 된다.
임 총장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내릴 판단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와도 무관치 않다. 법대로의 원칙에 따라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경우 검찰은 현 정권 실세들에 대한 수사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부담을 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수사팀이 임 총장에게 보고할 때 구속영장 청구 등의 사법처리 방안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검찰이 ‘죽은 권력’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살아있는 권력’에 관대할 경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이런저런 이유로 돈을 받은 검찰 수뇌부의 의혹과 관련된 대목에서는 검찰이 수사 주체로서 적절한지 여부에 대한 논란까지 빚어질 수 있다. 검찰 외부에서 들리는 주문성 외압도 임 총장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대목이다.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는 식의 훈수가 검찰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는 발언으로, 속내가 불편하다. 하지만 수사가 생물이듯이 외부의 목소리도 생물처럼 꿈틀거리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검찰의 이번 고민은 애시당초 정권이 던져준 문제다. 현 정권은 정권교체 후 전 정권에 대한 사정작업에 몰두해왔다. 감사원과 국세청, 검찰 등을 동원해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전방위적 사정 드라이브를 걸었다. 소기의 성과는 있었으나 만족할 만한 성과는 얻어내지 못했다.
여기에 국세청이 단초를 제공했다. 지난 7월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에 대한 대규모 세무조사를 실시한게 그것이다. 문제는 전 정권을 겨냥하고 시작한 세무조사에 현 정권 인사들의 이름도 적지 않게 나왔다는 것이다. 현 정권의 고민이 시작됐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검찰로 공이 넘어갔다. 검찰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원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박연차 게이트 막바지에 이뤄져야 했다. 그러나 올 것이 너무 빨리 와버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조사가 불가능한 상황까지 드라이브가 걸리면서 상대적으로 전현직 정치인들의 수사는 묻혀버렸다. 그리고 이 와중에 천신일 회장의 이름도 나오기 시작했다. 현 정권이 정치적인 부담까지 느낄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전직 대통령을 소환까지 한 마당에서 현정권 관련 인사에 대한 수사를 어물쩍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 온 것. 결국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 처리 여부는 다음 수사에 대한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여기에 검찰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 이제 검찰 수사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의 50년 지기인 천 회장도 검찰 소환이 불가피해보인다. 노무현의 굴욕이 이명박의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2007년 6월29일 대통령 관저로 건넨 100만 달러와 관련,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연채무적 성격을 지녔을 수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6일 확인됐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의 서면질의서에 대한 답변서에 이 같은 내용을 포함했고 지난달 30일 검찰에 소환됐을 때도 검찰이 정확한 의미를 묻자 같은 취지의 설명을 했다는 것이다.
자연채무란 채무자가 임의 변제는 할 수 있지만 채권자 측에서 먼저 갚으라고 권리주장을 할 수 없는 채무를 뜻한다.
로마법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소권(訴權,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이 없는 채무’를 말하며 우리 민법이 자연채무에 대해 규정하지는 않지만 학설상 이를 인정하는 것이 통설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달 7일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에서 `미처 갚지 못한 빚’이 있어 100만 달러를 아내 권양숙 여사가 박 회장한테 부탁하고 받아서 사용했다고 해명했었다.
문재인 변호사는 이날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이 `미처 갚지 못한 빚’이 꼭 자연채무라는 뜻으로 답변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채무적 성격도 있을 수 있다는 정도로 원론적인 말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예를 들어 과거 정치활동을 하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을 받거나 신세를 졌다면 당시로는 그것이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은 아니었지만 나중에 이쪽은 잘 돼 있고 저쪽은 처지가 어려워졌다면 갚아야 할 부담을 느끼지 않느냐”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법적으로 반환 청구를 당하거나 의무적으로 갚아야 할 것은 아니지만 인간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상환 부담을 느끼는 성질의 채무일 수 있다는 뜻이다.
문 변호사는 “오해를 하면 안되는 게 검찰조사 때까지도 노 전 대통령은 권 여사의 두루뭉술한 설명만 듣고 100만 달러의 사용처를 모르는 상태였다”며 “검찰이 무슨 빚이냐고 물으니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원론적 답변(자연채무)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100만 달러의 사용처에 대해 정리가 되는대로 검찰에 자료를 제출할 예정이며 검찰은 이후 권 여사를 재소환한 뒤 다음주 중 구속영장 청구 또는 불구속 기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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