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중앙일보 박인택 사장 ‘자살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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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은 미주 한인언론계로서는 충격적인 달로 기억될 것이다.
미주한인사회의 대표적인 신문사의 하나인 중앙일보 미주본사  자살하는가 하면, 또 한편 대표적인 방송사의 사장이 전격 해임되는 사태가 발생해 그 충격파가 만만치가 않다.
현재 LA에서 하루 150면 발행으로 가장 많은 지면을 발간하는 중앙일보 미주본사 박인택(58) 사장이
지난 7일 오전 자택에서 목을 매어 자살한 충격적인 비보가 전해진 이후 한인사회는 아직도 충격파 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인 언론계는 물론 커뮤니티의 많은 동포들까지도 그의 비보를 충격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중앙일보 미주본사(LA사장 김용일)는 지난 7일 오후 각 언론사에 짤막한 성명서를 배포했는데 그 내용은 “박인택(58) 미주본사사장이 지난 7일 오전 자택에서 별세했습니다. 향년 58세. 고인은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해 중앙일보 입사 이후 시카고, 뉴욕 지사장을 거쳐 지난 2001년부터 미주중앙일보 본사 사장으로 근무했습니다. 유가족으로는 부인 박종우씨와 선영, 윤영자매를 두고 있습니다.”였다.
고 박인택 사장의 자살에 대해 타운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는 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유족측은 아무런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으나 중앙일보의 전직 사우들이나 고인의 학교 동창들은 ‘고인의 자살이 예사스럽지 않다’는 반응이다.
한편 박 사장의 장례를 두고 중앙일보측은 ‘중앙일보사 회사장’으로 거행할 것을 유족측에게 건의했다. 유족측은 고인의 종교인 천주교 의식으로 고인이 생전에 다녔던 성삼한인천주교회 에서 거행키로 했다. 이에 따라  장례일정은 성삼한인천주교회 배기현 신부 집전으로6월 11일(목) 오후 7시30분에 입관예절, 12일(금) 오전 10시에 장례미사를 거행키로 했다.


                                                                                                        특별취재반



지난 7일은 6월의 첫번째 일요일이었다. 이날 오후 중앙일보 편집국은 월요일자 신문을 제작하기 위해 소수 인원의 당직자들만 근무하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끝난 후 얼마 후 편집국에 전달된 고 박인택 사장의 죽음 소식은 중앙일보사를 경악으로 몰아 넣었다. 지체없이 비상망을 통해 연락된 고위 간부진들이 속속 신문사로 달려왔다.
첫번 소식은 ‘이른 아침 성당미사에 참석하고 돌아온 박 사장이 글레데일 자택에서 숨졌다’이었고, 이어 ‘부인을 산책 길에 먼저 내 보내고 차고에서 목매어 자살했다’라는 충격적인 소식과 함께 ‘경찰이 사인을 조사하고 있다’면서 ‘시신은 부검을 위해 LA검시소로 보내졌다’는 내용도 전해졌다.
경찰 수사에 따르면 7일 오전 11시30분께 자택 뒷편 거라지에서 박 사장의 시신이 딸에 의해 발견됐으며 짤막한 유서를 남겼다. 유서에는 ‘미안하다’는 글을 담겼다. 경찰은 처음에 박인택 사장이 한인 언론사 사장임을 몰랐다고 한다.
이날 오후 2시가 지나면서 “박 사장 자살소식”은 타 언론사 취재진들에게도 전해지면서 각 사  기자 들이 취재에 나섰고, 일부 언론사 회장과 사장들까지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져들었다. 한편 당혹감에 휩싸인 중앙일보측에서는 처음 취재진들의 전화문의에 ‘자살 내용은 빼고 그냥 ‘자택에서 별세 했다’로 보도해주기를 요청했다.
이날 오후 5시께부터 중앙일보는 각 언론사에 팩스로 ‘박 사장의 부음’을 성명서로 작성해 전했다. 한편 헤럴드경제 서울본지 인터넷 뉴스에서는 ‘박인택 사장 자살’로 보도되면서 미디어다움.넷 사이트에 서울시간 8일 오전 10시 11분(LA시간 7일 오후 6시 11분) 제1보가 전해졌다. 그러나 이 뉴스는 3시간 30분후에 삭제됐다. 이후 라디오코리아 보도로 “박인택 미주중앙일보 사장 별세”라는 제목으로 야후 포털사이트를 포함해 여러 사이트에 올랐다.
“박인택 사장 자살” 소식은 7일 저녁 때부터 타운의 일부 단체장들에게도 알려져 ‘자살 소식’ 은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고인의 학교 동창회인 중동고 동창회 일부 간부들은 ‘고인의 자살의 동기’를 두고 서로 정보를 주고 받기도 했다. 한 동창회 관계자는 “중앙일보측이 박 사장의 사망에 대해 애매모호하게 설명해 혼선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 7일의 박 사장의 자살 사건은 처음에 극히 일부 간부직원들만 알았다. 다음날인 8일 월요일 아침 출근한 중앙일보 대부분 직원들은 ‘사장 별세’ 라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사장의 자살’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직원들은 아연실색해 일손을 놓기도 했다. 영업부의 일부 고참 여직원들 중에는 눈물을 터뜨렸다.
그러나 중앙일보측은 회사직원이나 커뮤니티에 대해서 사장 죽음에 대해 “별세했다”라는 말 이외 어떤 설명도 없었다. 한인사회에서 많은 언론사들도 이 부분에 대해 답답함을 나타낼 뿐 ‘공인의 죽음’에 대해 동포사회에 진실을 알리지 못했다.


구조조정의 애환


최근 미국전역에 불어닥친 공황에 버금가는 금융위기로 한인언론사들이 어려움에 처해있다. 중앙일보도 예외가 아니어서 창사이래 처음닥친 경제위기로 곤란을 겪고 있었다. 지난 1월1일 아틀란타 지사장에서 LA본사 사장에 취임한 김용일 신임사장은 1월5일 시무식 겸 취임식서 선임자인 박인택 사장과 봉원표 대표를 포함 전체 직원들을 모아놓고 ‘구조조정’을 예고하는 발언으로 새해 벽두 분위기를 냉랭하게 했다.
당시에 그 자리에 있던 여러 직원들은 한결같이 새해 처음 맞는 시무식은 보통 덕담으로 시작하는 법인데 구조 조정을 예고하는 싸늘한 느낌을 받았다”면서 “박인택 사장과 봉 대표의 얼굴이 무척이나 경색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1월 15일 단행된 미주중앙일보의 매머드 급 구조조정은 한마디로 “목요일의 대학살”이라는 별명이 나돌정도로 대규모 감원조치가 이뤄졌다.
이같은 중앙일보의 구조조정에 대해 내부에서조차 “마치 점령군이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다” 면서 구조조정의 핵심은 ‘위상을 파괴시킨 구조조정’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이런 여파로 사기를 잃은 직원들이나 감원을 당한 직원들은 중앙일보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2선으로 물러난 박 사장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떠나는 직원들의 인사를 받은 박 사장은 “모두가 내 잘못 때문에
당신들을 붙잡지 못했다”면서 매우 아파했다고 한다. 직원들이 떠나는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무척이나 괴로워해 오히려 떠나는 직원들이 “사장님 잘못이 아닙니다”라고 위로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후로도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는 것에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상심을 받았다는 것이 박 사장 주변인의 전언이다.




조여오는 실적감사


한 지인은 “지난 2007년부터 시작된 중앙일보 서울본사 감사팀의 실사가 3년 연속 계속되면서 박 사잔 입지를 조금씩 조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감사는 계속 강도를 높혀가면서 해마다 실시해 그 때마다 책임을 박 사장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박 사장은 지난해 감사 결과의 책임으로 지난해 말 2선으로 물러나게 됐다.
지난해부터 경기가 더 악화되면서 중앙일보도 영향을 더 받게되기 시작했다.의욕으로 시작된 중앙라디오 방송도 경기악화로 애초의 계획과는 다르게 실적이 부진했다.
본사 감사팀은 미국경제의 악화에 따른 부진한 실적은 고려없이, 결과적으로 모든 실적부진의 책임을 최고경영자인 박인택 사장에게 부담을 주었다고 한다. 일부 전 직원들이 전하는 내용에는 감사폭이 강화되면서 그동안 조사를 받아 왔던 일부 직원들이 박 사장의 책임론을 제기하기도해 박 사장은 배신감으로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다.
한 직원은 ‘감사팀은 미국본사에서 행한 관행들을 도외시하고 그들의 기준에서 모든 것을 따졌다’면서 ‘이런 감사들을 통해서 서울본사의 책임추궁에서 박 사장은 극도의 묘멸감도 느낀 것 같다’고 털어 놓았다. 지난해 감사 결과로 박인택 사장과 봉원표 대표가 LA본사 경영에서 손을 떼게 되고 김용일 신임사장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박인택 미주본사 사장의 직책은 단순한 명칭이고 인사권과 재정권을 박탈당했다.
한 지인은 “누가 보아도 이런 조치는 박 사장을  ‘토사구팽’을 시킨 것으로 밖에는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울 본사는 김용일 신임사장 체제를 앞세워 리모트 컨트롤로 구조조정을 계속하면서 박 사장이 이뤄논 모든 체제를 부셔버렸다. 서울본사에서 온 관리팀들이 ‘총독’처럼 미주중앙일보를 요리해 나갔다.
문제는 이 같은 혹독한 감사가 서울본사의 의도적인 것인가, 아니면 신임 경영진들의 성적표 올리기였는가라는 것이 중앙일보를 잘 아는 지인들의 공통적인 의문이다. 또 타운에서는 신문사와 방송국의 패키지 광고, 업소록 광고 등의 미수금 조치, 수익사업의 형태, 매출실적 평가 등을 놓고 박 사장과 감사팀간에 이견이 있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영광은 사라지고


지난 2001년 이후 박인택 사장 체제하에서 미주중앙일보는 고속성장을 이루었다. 부임 4년만에 숙원이던 경쟁사를 앞지르는 성과도 올렸다. 멀티미디어 구축을 위한 사업도 성공적으로 추진해 나갔다. 커뮤니티와 함께하는 중앙일보의 다양성 있는 사업도 다이내믹하게 창출해 나갔다.  독자들도 광고주들도 중앙일보를 다시 보게 됐다.
따라서 박인택 사장은 역대 미주중앙일보 경영진 중에서 가장 실적이 우수한 사장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지난해 중앙 라디오를 출범시키면서, 곧이어 불어닥친 예기치 못한 글로벌 경기침체로 라디오 방송에 대한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가 않았다. 신문도 어려운 형편에 방송라디오 영업은 더 힘든 과정이었다. 경기침체가 올 줄을 예상 못하고, 확장 사업을 벌여 온 것이 이제는 크나큰 부담이 되어 지난 동안 이룩한 성과도 흐리게 할지도 모를 정도가 된 것이다.
매번 실사감사가 끝나면서 한바탕 폭풍우처럼 구조조정을 하면서 이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떠 앉게 되는 박 사장의 입지는 더할 수 없이 급속히 쫄아들었다. 2009년에 들어와서도 감사는 계속되고 곧이어 대규모 감사가 다시 예고되었다.
특히 올해는 중앙일보 미주 진출 35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불과 3년전만 하더라도 2009년의 창사35주년은 박인택 사장에게 ‘월계관’이 준비되는 영광의 해로 기대됐었다. 그러나 미주중앙 일보의 영광은 사라지고 박인택 사장에게는 감사반의 또 다른 칼 끝을 기다리는 것에 지난지 않았다.







멀티미디어 제국 꿈꾼 언론인













 
故 박인택 사장은 1950년 4월22일생으로 충청북도 청주가 고향이다. 중동고와 성균관대학교(대학원)를 졸업해 故 홍진기(현 홍석현 회장의 부친)회장 시절 중앙일보에 입사해 시카고 중앙일보와 뉴욕 중앙일보 지사장을 거처 2001년 LA미주 본사 사장에 취임했다.
LA사장으로 부임한 이래 정력적인 활동과 탁월한 리더십으로 중앙일보 미주본사를 ‘뉴에이지 멀티미디어’(새시대 종합미디어)로 성장시키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가 사장으로 오기 전 중앙일보는 미주 지역 ‘2등 언론’으로 굳어져 있었다. 그가 생을 마친 지금 중앙일보는 라이벌 한국일보를 따돌리고 ‘정상의 신문’임을 표방하고 있다.
2006년 10월 중앙일보 서울본사에서 발간된 ‘사보중앙’에는 ‘LA미주본사 특집-LA중앙일보 매일 150면 발행… 3년째 1위 독주’라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 박 사장은 인터뷰에서 “넓은 미 대륙을 모두 아우르는 중앙일보 미주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게 우리의 가장 큰 목표였다. 우리는 미주 시장에 후발주자로 진출했지만, 이제는 선발주자를 앞질러 정상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앞으로 5년, 10년 정상을 지켜야 진정한 승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야심찬 언론인의 전형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언론사로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만큼 이제는 수익 창출을 위한 사업 다각화를 본격화할 것이다. JMN 이미지에 손상이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다양한 사업을 펼쳐갈 계획이다. 우선 엔터테인먼트와 교육사업에 투자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개최한 축제와 이벤트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또 교육열이 높은 한인 부모들의 갈증을 우리가 채워 줄 것이다”라고 자신감을 내비쳤었다.
당시 ‘사보중앙’은 <LA본사를 가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박 사장의 업적과 야망을 조명했었다.
당시 기사는 <2004년부터는 앞서 자리 잡은 경쟁사를 제치고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2006년 개최된 제1회 대학 박람회(college fair)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수많은 한인 학부모와 학생들이 몰려 행사장은 콩나물시루 같았다. 애초 2000여 명의 참가를 예상했는데 4000여 명이 몰려 주차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행사는 현재까지 계속 성공적인 행사로 자리잡고 있다. 당시 행사를 집행한 이종훈 편집국장(당시 사업국장)은 “한인들의 관심사에 적중한 행사가 된 것 같아 성공적으로 평가한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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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라디오 개국은  ‘시대적 열망’


전 세계 네트워크 꿈꾼 언론인의 야망과 좌절













故 박인택 사장이 생전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펼친 사업 중 하나가 라디오방송이었다. 그는 1980년 군사정권에 의해 중단된 TBC 동양방송의 정신을 계승하고 고품질의 방송을 제공하기 위해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고, 이는 장차 TV방송을 염두에 둔 발판이었다.
JBC 중앙방송(AM 1230)은 2006년부터 착실한 준비를 해오다 지난해 6월부터 시험방송을 송출한 데 이어 그해 7월7일 오전 7시부터 뉴스방송을 시작했다.
방송을 시작하면서 박 사장은 “FTA협정 발효와 미국 무비자 협정을 앞두고 미주 한인사회는 새로운 성장시대를 맞고 있다”면서 “한인사회와 손잡고 나가는 친구 같은 신문, 친구 같은 방송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각오를 다졌었다.
라디오 방송을 개국한 박 사장은 같은 해 10월 24일 한국 최초의 인터넷 신문인 조인스닷컴과 공동으로 ‘조인스 아메리카’를 출범시켜 전 세계 어느 언론도 갖지 못한 대규모 네크워크 형성을 이룩했다.
조인스 아메리카는 미주중앙일보 직영지사와 전국 프랜차이즈 지사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국과 미국을 연결하는 종합 IT(정보통신) 업체로 발돋움하게 됐다.
조인스 아메리카는 현재 미주중앙일보가 관리하는 코리아데일리닷컴(koreadaily.com)과 중앙방송 마이제이비씨닷컴(myjbc.com)의 운영을 맡아 미주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포털사이트로 성장시킨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글로벌 시대를 맞아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연결시키는 네트워크로 조인스 아메리카가 새 시대를 열어가는 선도자로 자리 잡겠다는 박 사장의 꿈이었다.
그러나 막상 중앙방송을 시작하자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불경기 여파는 중앙일보에도 파고처럼 몰아쳤다. 중앙일보 뉴욕지사에서 자금을 차입해 시작한 방송은 갈수록 손실이 눈덩이 처럼 불어났다.
급기야 경영부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일선에서 배제되자 박 사장은 심한 좌절감으로 인한 우울증에 지병까지 겹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여 주위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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