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재현된 ‘한국학원’ 재정파탄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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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주 한국학원과 김명배 전 LA 총영사 사이에는 질긴 인연이 있다. 1999년 9월~2001년 2월까지 약 16개월 동안의 비교적 짧은 총영사직을 수행한 김 전 대사는 처음 LA에 발령을 받기 전 스리랑카 대사를 역임했다.
전임명령을 받고 외교부 본부에 불려간 그에게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다. 미주한인사회의 자존심인 남가주 한국학원의 재정파탄이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한국학원이 몰락하면 그동안 이를 지원해온 한국정부의 위신과 미주 한인사회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결과를 낳을 게 자명했다.
LA에 부임한 김 전 대사는 해결책 마련에 들어갔다.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날, 교육 전문가인 김수안 박사가 김 전 대사를 점심식사에 초대했다. 김 박사는 한국여성으로 UCLA에서 최초로 교육학 박사를 받은 LA 코리아타운의 선구자다. 당시 김 전 대사는 교육전문가인 김 박사로부터 초대를 받자 자문을 구할 생각에 기꺼이 응했지만 정작 음식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고 헤어질 때 김 전 대사는 귀를 의심할 정도로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들었다.“김 총영사님, 너무 걱정 마시라. 저도 힘닿는 데까지 돕겠다. 우선 내가 10만 달러를 한국학원 기금모금에 내 놓겠다”는 김 박사의 제안이었다.
그 이후 총영사 관저에서 열린 남가주 한국학원의 재정 위기를 타파하는 새 이사회 구성과 87만 달러에 달하는 기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현재, 또 다시 남가주 한국학원(이사장 김종건) 산하 윌셔 초등학교가 폐쇄 위기에 몰렸다. 10년 전처럼 동포사회의 무관심 속에 학생들이 볼모로 붙잡혀있는 꼴이다.                                                                                 <성 진 취재부 기자>


지난달 29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남가주 한국학원이 운영하는 미주 유일의 한인 운영 정규 초등학교인 윌셔 초등학교가 재정난을 이유로 운영권을 개인 투자자에게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월까지만 해도 마린 밀러 교장은 “월셔 초등학교를 LA 최고의 학교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혀 학부모들이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이 같은 다짐을 한 지 불과 6개월도 못돼 월셔 초등학교의 재정이 파탄지경에 이르렀다는 소식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6년부터 사립 윌셔 초등학교를 이끈 밀러 교장은 지난 2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교사와 학부모들 덕분에 지난 3년간 많은 과업을 이룰 수 있었다”고 자찬했었다.
특히 월셔 초등학교는 지난해 6월 전미 지역 비즈니스 협회(USLBA)가 선정한 ‘2008 LA 최고 학교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CTP IV-ERB에서 4~6학년 학생들이 작문분야 전국 5%, 언어영역 상위 10%, 수학 상위 18%를 차지해 우수한 교육열을 반증했다.
밀러 교장 개인도 학문적으로 우수할 뿐만 아니라 인성교육을 통해 바르게 행동하는 정직하고 성실한 학생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다인종 교사들이 사랑과 헌신으로 학생들을 교육해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 내고 다인종·다문화 사회를 살아가는 참된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교육하겠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었다.
월셔 초등학교 재학생들은 한국문화 뿐 아니라 타인종 문화도 존중하는 법을 배우며 글로벌 인재로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밀러 교장은 “학구열이 최고인 동시에 예술 방면에서도 실력을 발휘하는 학생들이 많은 학교를 만들고 싶다”며 “학생들에게는 가고 싶은 학교, 학부모들에게는 보내고 싶은 학교로 만들어 LA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었다.
실제 윌셔 초등학교 학부모들의 학교 사랑은 대단하다. 학부모들은 대부분 자녀가 다니는 학교를 자랑스러워하지만 이곳 학부모들의 ‘학교 사랑, 학교 자랑’은 상상 이상이다. 자녀들이 자신의 뿌리인 ‘한국’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다른 인종 친구들의 문화까지 존중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학생들을 우수한 세계 시민으로 교육하는 학교가 자랑스럽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다. 교사 당 학생 수가 적기 때문에 실력 있는 교사들이 부모처럼 학생들을 돌봐줄 수 있는 것도 큰 장점 중 하나다. 유색인종 학부모인 훔베르토 피에로씨는 “이 학교라면 우리 자녀를 훌륭한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며 “확신을 갖고 자녀의 입학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좋은 학교가 최근 폐교 위기에까지 몰렸다는 점에서 지역 사회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는 그간 알려지지 않은 월셔 초등학교 내부의 ‘불편한 진실’이 뿌리 깊게 존재하고 있다.



‘과거 명성은 어디로···’ 인기 잃은 학교


현재 서머 프로그램을 운영중인 윌셔 초등학교에 따르면 올 서머스쿨 등록 학생 중 한국에서 온 학생들은 겨우 4명. 작년의 절반밖에 안 되는 수다. 지난 2006년까지는 5~6개월짜리 단기전학 학생들이 몰려들어 이들 때문에 다른 학생들의 학업에 지장을 준다는 주장까지 나왔었다. 이에 한국에서 오는 학생들은 1년 이상 체류할 학생만 입학허가를 내줄 정도였다.
남가주 한국학원 이사회는 매년 누적되고 있는 운영 적자 해소책의 하나로 윌셔 초등학교 운영권을 개인 투자자 또는 학부모 출신의 재력가에게 넘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김종건 이사장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재정난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고려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김종건 이사장은 지난 2006년도에도 해당 학교 이사장을 맡은바 있다. 당시 K~6학년 과정의 사립학교인 윌셔 초등학교와 12개 주말 한국학교의 한해 적자폭은 30만 달러에 달했다. 그런데 그가 두 번째 이사장에 취임하며 또 다시 재정이 악화된 것이다. 문제는 김 이사장 조차 학교가 처한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윌셔 초등학교와 함께 남가주 지역 12개 주말 한국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남가주 한국학원은 정규 초등학교 학생수가 해마다 줄어들면서 지난 2006년 이후 매년 30만 달러에 가까운 적자를 보고 있다.
남가주 한국학원 이사회 자체 현황 자료에 따르면 한때 재학생이 180여명에 육박했었지만 지난해 재학생수는 불과 67명뿐이다.
학교 운영권을 개인에게 매각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적자폭을 보전하는 조건으로 학교 운영권만을 위탁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아예 학교 건물을 포함해 온전히 넘기는 방법이 있다. 현재 일부 학부모가 학교 운영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가운데는 이사회 관계자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래전부터 한국학원 상황에 정통한 C씨는 “현재 학교 관계자들 사이에서 운영권을 넘어 학교 부지 매각도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 있다”면서 “학교부지는 한인타운에서도 알아주는 ‘금싸라기’ 땅”이라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부동산 투기 세력에 월셔 초등학교가 휘말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얘기다.
학교 이사회는 또 지난해 11월 사직한 촬스 김 전 이사장을 학교운영 개선을 위한 컨설턴트로 선정해 올해부터 월 3000달러씩을 지급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김 전 이사장은 지난 99년 학원재정 위기 때도 ‘파산신청’이라는 최악의 방법을 제안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학교 회생 자문역으로 적 이사장을 선임했다는 점에 대해 또 다른 전직 이사장은 “현재 학교가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중에 거액의 컨설팅 비용을 퇴직한 이사장에게 지급했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라면서 “오히려 이사들이 학교 발전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자문역으로 고용된 김 전 이사장은 이번 재정위기 상태가 언론 보도를 탄 것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특별한 의도를 갖고 흠집내기를 한 것’으로 치부했다는 전언이다. 김 전 이사장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재임할 때 이사회 운영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C이사 등 일부  관계자들을 제명시켰는데 이번 일이 한인 사회 전반에 알려진 것도 학교 매각에 반대하는 J이사가 언론에 일부러 소스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종석 전 이사장 재임 때 학교는 이사장과 이사진 사이에 심각한 반목과 갈등이 문제가 된 바 있다. 이사회 참석 인원이 5~6명에 불과할 만큼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학교 발전을 위한 재정 지원과 방향 설정을 책임져야 할 이사회가 임무를 방기해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결국 이 전 이사장도 중도에 하차 할 수밖에 없었다.



이사들의 뿌리 깊은 반목, 질시


남가주 한국학원 사정에 정통한 또 다른 한 관계자는 “일부 이사들이 사명감을 망각하고 학원 운영에 지나치게 간섭한 것이 문제”라면서 “이사들 사이에도 반목과 질시가 판을 첬다”고 말했다.
한국학원은 6만 달러에 가까운 연봉을 받는 한 전직 직원에게 연간 휴가를 6주나 사용하게 하는 등 방만한 운영을 일삼아왔으며 특히 재정운영과 관련해 투명성과 효율성이 낮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학교 재정문제를 책임져야 할 이사들이 명예욕과 생색내기에만 몰두해 학교 운영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며 “이런 사람들이 커뮤니티 전체 재산인 윌셔 사립초등학교를 개인에게 넘기려 한다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학생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사회가 재정 운영을 방만하게 해온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때 재학생이 200명에 달하며 흑자 운영의 황금기를 누렸던 월셔 초등학교.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2009~2010년 학사연도에 기록된 재학생 수는 57명이다. 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포함된 숫자다.
적은 학생수 탓에 학년마다 예닐곱 명이 한반을 이루었지만 교장을 포함한 교사 숫자는 14명이나 됐다. 학교운영이 제대로 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매달 적자가 눈 덩이처럼 불어나 학교는 침몰 직전의 상황을 맞았다.
한국일보는 최근 사설을 통해 윌셔 초등학교가 살 길은 체질개선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학교 교직원과 이사회 모두 패배주의적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야 하며 과감한 수술을 통해 학교에 새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또 먼저 학교를 책임질 주체가 필요하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지금의 체제로는 앞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소신 있고 책임감 있는 교육 전문가에게 경영을 맡기고 교사들의 평가제 도입도 생각해 볼 일이라는 제언도 잊지 않았다. 아울러 적극적인 학생 모집도 필수적이라고 권고했다.
또 다른 학교 관계자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학교 운영은 교육 전문가들에게 맡겨 명성과 수준을 높이는데 힘쓰고 이사회는 학교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며 “일부 전직 이사들 가운데 지나치게 학교 운영에 간섭을 하는 듯 독단적으로 행동해 결국 학교를 망쳤다”고 전했다.
한편 월셔 초등학교에 대한 LA 총영사관 측은 태도는 분명치 않다. 학교를 살릴 수 있는 대안을 논의하겠다는 입장과 방관적인 태도가 양분된 것이다. 김재수 총영사는 지난달 28일 “과거 (한국학원이) 본국 정부로부터 100만 달러의 건축기금을 지원받아 채무를 갚는데 사용한 전례가 있다”며 “어떻게 하는 것이 학교를 살릴 수 있는 길인지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반면 류정섭 교육영사는 “한국 정부의 지원금이 들어간 학교이지만 본국 정부가 운영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며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가주 한국학원은 지난 1972년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무궁화학원으로 첫 발을 내디딘 이래 1981년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미주 최초의 한인 운영 정규학교인 윌셔 초등학교와 멜로즈 중·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 내 2세 뿌리교육 터전으로 발전해 왔다.
1999년 재정위기로 멜로즈 중고교는 폐교됐지만 당시 김명배 총영사 주도로 한인사회에서 대대적으로 전개된 ‘남가주 한국학원 살리기 캠페인’을 통해 모금된 커뮤니티 성금을 바탕으로 기사회생했다.
남가주 한국학원 이사회는 올해 초 이종석, 양석규, 김옥자, 촬스 김씨가 이사직에서 물러나고 현재 김종건 이사장을 포함해 홍명기 종신이사와 김수안, 강상윤, 고석화, 김형민, 박병철, 수지 오, 로라 전, 워렌 장, 정희님, 김진희, 박선영 이사와 류정섭 총영사관 교육관, 새로 영입된 크리스틴 이 변호사, 제인 김 CPA, 캘빈 이 전 학부모회장 등이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남가주 한국학원 연혁
▲1972년 무궁화학원 설립 ‘동지회 회관’에서 개교
▲1981년 남가주 한국학원으로 개명
▲1984년 ‘4900 윌셔 블러버드’에 학교부지 및 건물 구입
▲1985년 정규 초등학교 ‘LA 한국 아카데미’ 개교
▲1987년 LA통합교육구 제 2외국어 학점 인정
▲1992년 학원 개교 20주년 기념 예술제
▲1997년 미국 내 유명학력 인정기관 WASC 승인 인가
월넛밸리통합교육구 제 2외국어 학점 인정
▲1998년 LA 한국초등학교 ‘윌셔 초등학교’로 학교명 변경
▲1999년 재정위기 극복, 멜로즈중고교 폐교
▲2000년 학교법인 남가주 한국학원으로 개칭
▲2002년 개교 30주년 기념 대 예술제
▲2007년 어바인 통합교육구 크레딧 인정
▲2009년 재정위기 봉착, 초등학교 매각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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