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와병 1년 북한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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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Sundayjournalusa






지난 1월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운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상 초유의 예비 3대세습이 탄생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월8일 삼남 김정운의 25회 생일에 노동당 조직지도부 리제강 제1부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정운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정했음을 극비리에 통보한 것이다.
이는 단계적으로 노동당과 북한군의 중상부에도 전달했고, 지난 5월말 제2차 핵실험 직후에는 노동당과 북한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과 해외공관에도 통보돼 내부적으로 사실상 공식화됐다.
김 위원장이 작년 8월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지자 후계체제 구축은 당장 체제존망을 좌우하는 급선무가 된 것이다.
와병 전까지만 해도 김 위원장은 레임덕 우려와 세습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후계문제를 외면했었는데 그의 갑작스러운 와병은 그의 사후 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것을 북한 지도부에 절감시켰다.
                                                                                <한국지사 = 박희민 기자>



수십년간 김일성-김정일 부자로 이어지는 강력한 1인 독재체제에 길들여져 있는 체제의 특성상 구심점인 김 위원장의 갑작스런 와병은 권력투쟁과 사회혼란, 나아가 체제붕괴 우려까지 낳는 사안이었다.
이에 따라 그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서둘러 작년 말 김 위원장의 삼남 정운을 후계자로 내정할 것을 건의하는 절차를 밟았고, 정운은 후계 내정 통보 이전인 작년 12월께부터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등 아버지의 현지지도에 동행하면서 본격적인 후계자 업적쌓기에 나섰다.
김 위원장이 아픈 몸을 이끌고 와병 이전에 비해 무려 2배 이상 군부대와 경제시설을 시찰하며 북한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도 후계 기반을 다지기 위한 다급한 행보로 풀이할 수 있다.
북한 당국이 김정운의 업적쌓기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선군정치’와 ‘미국과의 대결전’.
지난 4월 대북 정책을 미처 정리하지도 못한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와 우방인 중국을 자극하며 인공위성 ‘광명성 2호’라고 주장하는 장거리 로켓 발사와 5월 2차 핵실험을 `무모하게’ 단행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이 북한에 억류된 미국 여기자 2명의 석방을 위해 방북한 것을 북한은 김정운의 “탁월한 외교 업적”, “대미 결전의 승리”로 선전하고 그를 “탁월한 전략가”로 찬양하는 데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축구대표팀의 44년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 평양시 10만 가구 건설 등 올해 들어 북한에서 추진되고 있는 모든 정책과 성과도 김정운의 치적으로 포장되고 있다.
김정운을 ‘대장(계급이 아닌 우두머리 의미)’으로 부르고 그를 찬양하는 가요 ‘발걸음’도 만들어 주민들에게 광범위하게 보급해 이 노래는 공식 석상에서도 불리고 있다.
정치적 야심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김정운 본인도 고 김일성 주석의 97회 생일과 5.1절을 맞아 ‘축포야회’를 잇달아 벌였고, 김 위원장이 1974년 후계자로 추대된 직후 경제부문 업적쌓기 차원에서 벌였던 ’70일전투’를 본뜬 ‘150일전투’를 기획, 주도하고 있다.


김정운 뒤에 장성택


이러한 후계체제 구축의 전면에는 그의 ‘후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장성택 부장과 그가 주축이 된 국방위원회가 있다.
북한은 지난 2월 `김정운 후계’체제 구축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대대적인 인사개편을 단행했고 4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1차회의를 통해 헌법을 개정, 국방위원회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장성택 부장을 포함해 노동당과 군, 공안기구의 핵심 인물들을 망라한 국방위원회를 구성했다.
김정운은 이 회의가 열리기 며칠전 국방위의 지도원이라는 말단 직책을 부여받았다.
장 부장은 김 위원장의 와병 직후부터 현재도 건강이 좋지 않은 김 위원장을 대신해 사실상 국정 전반을 장악 운영하면서 김정운 후계 구축을 견인하고 있다. 김정운이 아직 어리고 정치경력과 경험이 전무해 후계자로서의 업적 만들기가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김정운의 공식 후계자 등극을 2년 뒤 또는 이른바 ‘강성대국’의 문을 열기로 목표를 세운 2012년께로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력투쟁 가능성도


하지만 김정운 후계 체제의 정착 여부는 북한의 내외 여건상 그리 밝지 않아 보이며 가장 핵심 변수는 김 위원장의 수명이라는 데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만약 김 위원장이 정운의 공식 등극 이전에 사망한다면 김정운 후계체제는 물위로 떠오르기도 전에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 사후에도 현재 권력을 장악한 장성택 부장이 정운의 후계체제를 계속 추진한다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지만, 장 부장이 그를 허수아비로 만들거나 아예 후계자에서 밀어내고 국방위원회라는 기구를 내세워 집단지도체제로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장 부장이 김 위원장 수준의 권력 기반도 갖지 못한 상황에서 일부 야심을 가진 군부 인물이 장 부장과 김정운 모두에게 총을 겨눌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94년 김일성 사망 때를 제외하고는 15년간 공개 석상에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장 부장의 부인이자 김정일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이 최근 김 위원장의 시찰에 부지런히 동행하는 것도 아직은 군부의 파워에 힘이 딸리는 장 부장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설사 김정운이 후계자로 대내외에 공식화된 후라도 김 위원장이 얼마 못가 사망한다면 ‘속성’으로 구축된 후계체제이기 때문에 김정운의 인지도와 권력기반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지배엘리트 사이에 권력투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일, 초조가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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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은 북한 지도부에 ‘초조감’을 불어넣으며 이것이 지난 1년간 대내외 정책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북한은 수령을 꼭지점으로 당과 군, 대중으로 이어지는 유일지배체제를 반세기 넘게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체제의 ‘뇌수’인 김 위원장의 와병은 북한의 지배엘리트층에 위기감을 낳을 수 밖에 없다.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김 위원장으로의 권력 승계는 김 주석의 안정된 리더십 속에 20여년이라는 준비.정착기간을 거친 데 반해 지난해 8월 중순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졌다가 후유증이 남은 김 위원장의 모습은 북한 지도부가 갑작스러운 권력 공백에 준비가 돼 있지 않은데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절감케 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먼저 대내적으로는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1차 회의를 통해 국방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을 국방업무를 총괄하는 기구로부터 국정운영 전반을 책임지는 최고기구로 탈바꿈 시키고 국방위원에 공안기관 책임자까지 포함시켰다. 후계체제를 구축하는 동시에 사후 후계체제의 유지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긴 것이다.
작년 정권수립 60주년인 9.9절 기념 열병식 행사에 김 위원장이 불참함으로써 그의 와병설이 북한사회 전반으로 급속히 퍼지자 북한은 체제균열의 확대를 방지하기 위해 사회 전반을 옥죄는 조치도 함께 벌였다.
재기한 김정일 위원장은 작년 말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를 일으킬 것을 제창했고, 그 맥락에서 지난 4월 하순부터는 주민들을 ‘150일 전투’로 내몰고 있다.
김 위원장이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를 찾아 강성대국 건설 목표 해인 2012년까지 4년밖에 남지 않았다면서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를 일으킬 것을 주문한 것은 김 위원장 자신의 초조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에 따른 ‘150일 전투’는 북한 주민들 사이에 실종된 미래에 대한 낙관과 체제에 대한 신심을 되살려 보려는 것인 동시에 고립된 북한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제개발 전략인 동원형 경제발전을 위해 주민들에 대한 고강도 통제를 가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됐다.



체제안보 극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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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도부의 초조감은 대외적으론 외부세력의 체제간섭을 배제하고 체제안보를 극대화할 수 있는 힘의 과시로 나타났다.
김 위원장이 쓰러졌던 지난해 북한의 대외적 환경은 가장 중요한 두가지 관계에서 2000년대 들어 최악의 상황이었다.
남한에서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차별화된 강경한 대북정책을 고수함으로써 남북간 경제협력을 통한 경제발전이라는 북한의 전략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졌다.
대미관계에서도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기는 했지만 검증문제에 발목이 잡혀 임기말의 부시행정부와 북한간 핵협상은 교착됐고, 올해초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우선과제에서 북한은 미국의 경제난과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밀려나 있었다.
이 같은 국제적 환경 속에서 김 위원장까지 쓰러지자 북한의 지도부는 대외 정책에서도 초조감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체제안보 문제가 급선무로 떠오르자 정책결정 과정에 군부의 입김이 대폭 강화된 가운데 북한은 최대 우방인 중국의 만류도 뿌리치고 4월 장거리 로켓 발사, 5월 제2차 핵실험 등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동원해 자신들의 `억지력’을 최대한 과시했다.
종래 한 가지 카드를 쓴 뒤 국제사회의 반응에 따라 또 한 가지 카드를 빼들던 것과 다른 북한의 이러한 행태는 우선 김 위원장의 와병으로 불거진 체제 불안을 반영, 외부의 간섭 가능성을 사전에 배제하려는 뜻으로 읽혔다.
이와 함께 핵과 미사일 등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북한문제’들의 심각성을 한꺼번에 의제화함으로써 이들 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위한 협상의 시급성에 국제사회의 눈을 돌리게 하려는 뜻도 담겼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미국을 중심으로 그 어느때보다 긴밀한 협력체제 속에 강도높은 대북 제재로 대응하고 나섰고,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마저 대북제재에 동참함으로써 북한은 사면초가 상황에 빠졌다.
김정일 위원장이 나서 미국 여기자 2명을 인질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정상회담에 준하는 예우를 갖춰 클린턴 전 대통령을 면담하고 여기자들을 석방한 것은 시간과 싸움을 벌이는 김 위원장이 이러한 국면의 전환을 위한 노력에 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클린턴 전 대통령과 면담에서 핵, 미사일 문제와 북미관계 등 다양한 현안들의 해결을 위해 일정한 조건을 제시하면서 언질을 줬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목표 속에서 현재의 제재국면을 수세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억류했던 미국 여기자들과 남측 근로자의 석방을 통해 공세적으로 타개해 나가려는 것 같다”며 “앞으로 북한이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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