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美 주류사회 빛내는 한인 정치인 2 – ‘위대한 한국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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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파서 별을 세었고 / 엄마가 보고 싶어 별을 세었습니다. / 잠이 안 와서 별을 세었고/ 외로워서 별을 세었습니다. / 희망이 없어 별을 세었고 / 내가 너무 작아 별을 세었습니다. / 별을 세다 보면 / 꿈을 꾸듯 희망이 생기고 / 내 자신을 망각한 채 / 별 속에 서서 별 만 셉니다.>
1950년 6.25 전쟁고아 출신인 신호범(75·미국명 Paul Shin) 워싱턴주 상원의원은 지금도 가끔씨 이 시를 읽으며 고난의 시절을 견딘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로운 힘을 얻는다. 신 의원의 신념은 ‘생각하면 꿈이 생각난다’는 것. 즉 희망과 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곳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품어왔다.
신 의원은 1935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4살 때 병으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마저 가난에 쫓겨 집을 나가 반고아나 다름없는 유년기를 보냈다. 외가에서의 고된 생활을 견디지 못해 서울로 돌아와 ‘비렁뱅이’ 생활까지 했던 소년 신범호.
서울 남대문 시장을 떠돌며 구걸을 하고 미군부대 하우스보이 등 극빈층의 생활을 전전하던 그는 우연히 미군 의무관 출신의 레이 폴 대위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마치 행운과도 같았던 미국행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레이 폴 대위에게 입양된 신 의원은 미국으로 이민해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 워싱턴 주립대 정치학·역사학 석사와 동대 역사학 박사 학위를 따 대학교수로 변신했다. 학자로서의 성공 뿐 아니라 부동산을 기반으로 시애틀이 있는 워싱턴주 최초 아시아계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을 휩쓸며 ‘아메리칸 드림’의 선구자로 우뚝 섰다.
정치인 신범호의 철칙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사회에서 정치인으로 성공하기 위해 현지 정치 문화에 순응하면서 정직과 공정성을 무기로 페어플레이를 펼쳐왔다.
그는 1992년 LA폭동 사건이 터지자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끼고 미국사회는 물론 한인사회를 위해 미 주류정치에 투신하기로 결심했다. 같은 해 11월 벌어진 선거에서 고아 출신의 한인 입양아로서는 최초로 워싱턴주 하원의원에 당선되는 쾌거를 이뤘다.
신 의원의 당선은 미국정치 명제에 충실한 정공법을 선택한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실과 정직, 그리고 겸손과 실력. 여기에 전문성과 용기까지 더한 신 의원은 입양아 특유의 유창한 영어로 당선 승리를 이끌어냈다.
신 의원이 미국 정치계에 화려하게 데뷔하자 당시 미주 한인동포 사회는 크게 고무됐었다. 동포들은 무엇보다 어려운 이민생활과 자녀교육에 새로운 자신감을 얻었다. 한국계 정치인들이 미 주류사회에서 활약하는 것은 동포의 권익보호는 물론 한인사회의 발전을 이루는데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성진 취재부기자>














 ▲ 신호범 의원
스무 살이 돼서야 뒤늦게 입양돼 미국으로 건너간 신 의원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정규 학교 입학이 거절되자 이를 악물고 검정고시 과목을 독학했다. 순식간에 중·고교 과정을 마치는 동안 그의 하루 수면 시간은 겨우 3시간 남짓. 대학 입학자격을 얻은 그는 피츠버그대를 졸업한 뒤 워싱턴 주립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이후 메릴랜드 대학와 하와이 대학에 교수로 임용된 그는 정계에 진출, 1992년 아시아계 최초 하원의원을 거쳐 1998년 동양계 최초 워싱턴주 상원의원 직함을 얻었다.
현재 워싱턴주 상원 부의장으로 활동 중인 신 의원은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을 뿐 아니라 양국의 무역 활성화에 기여해 2006년 재외동포재단에서 선정하는 ‘자랑스런 한민족’ 1호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 25일 시애틀의 최대 연례축제이자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시페어의 ‘토치라이트 퍼레어드’가 30여만 관람객 앞에서 화려하게 펼쳐진 가운데 200여명으로 구성된 한인 대표팀을 이끈 인물도 신 의원이다. 이날 110여개 팀 가운데 76번째로 행렬에 나선 한인 대표팀은 무지갯빛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동포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퍼레이드를 벌여 시민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 자리에는 신호범 워싱턴주 상원의원 뿐 아니라 이하룡 총영사와 이광술 시애틀 한인 회장, 김성일 한인 그로서리협회장, 주완식 목사 등이 각각 고대 신하복식을 입고 과거 임금의 행차를 재현하기도 했다.
상당수 한인들이 포함된 이날 관람객들은 한국팀의 화려한 전통 복장과 귀를 찢을 듯 하면서도 흥을 돋우는 사물놀이, 태권도 시범에 박수를 보내며 ‘원더풀 코리아’를 연발했다.
신 의원은 한인들이 있는 곳이면 세계 어디든지 달려가 자신의 역정을 소개하며 “꿈을 버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는 “LA폭동 사건이 나를 정계에 입문시킨 계기가 됐다”며 “미국 내 한국인의 권익을 보호하려면 누구든 주요 정치무대에서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자신의 성공비결과 관련해 “작은 일에 몸과 마음을 던져 희망을 일궈가는 ‘진지함’에 있다”고 답했다.
신 의원의 앞으로의 계획은 미국 내에서 한국인의 새로운 위치, 즉 더 넓은 활동영역을 만들기 위한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신 의원은 미군 복무시절 인종차별을 경험해 정계에 진출한 뒤인 2002년 동양인의 명칭을 ‘Oriental’에서 ‘Asian’으로 변경하는 법안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다음해인 2003년에는 동양인의 명칭 변경 법안을 전국 50개주로 확산시켰다. 오늘날 모든 문서에서 ‘Oriental’은 삭제되고 ‘Asian’이 사용되는 것은 신 의원 덕분이나 다름없다.
또 워싱턴주립대학교 한국어학부를 위한 모금 및 자금지원 법안을 통과시켜 유지시켰을 뿐 아니라 한국어 교육법 통과로 우리말을 각 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채택해 지원할 수 있게 했다.
신 의원의 인종차별 불식은 비단 한인만을 대상으로 한 게 아니다. 1992년 한 일본인이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으나 인종차별로 인해 자격증을 받지 못한 것을 법안으로 밀어붙여 문제의 청년에게 자격증을 돌려주기도 했다.
또 그는 워싱턴주 기념공원에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를 건립하는 법안을 제출해 통과시켰다. 신 의원은 “내가 정치 지도자가 된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총이요, 두 번째는 나의 은인이며 내게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준 나의 양아버지 레이 폴과 한국전쟁에 참전한 고마운 연합군 덕이라고 나는 늘 생각하고 있다”고 회고하고 있다.
워싱턴 주에서는 한국전쟁에 2만여 명이 참전하였고 이 중 584명이 전사하였다. 또한 신 의원은 한국인의 미국이민 100주년 기념행사를 계기로 매년 1월 13일을 ‘한국의 날’로 제정하는 법안을 제출해 통과시켰다. 
그는 해외에 입양된 한국인들의 진정한 희망이 되었다.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입양아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 워싱턴 주 의회 내 그의 사무실에는 서툰 그림 한 점이 걸려있다. 신 의원의 양아들이 선물로 그려 준 것이다.
쌀밥 한 그릇을 들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한 어린 거지의 모습이다. 신 의원의 아들이 8세쯤 되었을 때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쌀밥을 먹는 순간이었다고 말한 것을 그 아들이 기억하여 나중에 그가 성장하여 그 그림을 그려 신 의원에게 선물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그는 한국과 아시아계 미국인의 권익신장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펴왔다.




기적을 이룬 꿈


신 의원은 미군복무 시절에 뼈저린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식당에 동료 군인들과 들어갔다가 쫓겨난 것. 이 때 신 의원은 절규했다.
“하나님, 당신이 계시다면 대답 좀 해주십시오. 왜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서서 가는 곳마다 차별받고 멸시 천대를 받게 하십니까? 하나님!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내 운명이라면 살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오늘 밤에 내 생명을 거둬가 주십시오. 이런 세상에 정말 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새벽 여명이 밝아 오자 신 의원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네가 인종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면 된다. 네가 정치지도자가 되어라. 너를 멸시하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라.”
신 의원은 상처를 한 차원 승화시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마치 과거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의 인권을 위해 헌신했듯 신 의원 역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치가가로 변신했다.
그는 지역구 2만 9000가구를 매일 하루 150가구씩 직접 방문하는 노력 끝에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위대함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은 연방하원의원과 워싱턴 주 부지사에 출마하여 고배의 쓴잔을 마시고 난 후이다.
그는 1998년에도 발로 뛰는 선거운동을 펼쳐 워싱턴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이 때부터 신호범 의원이 정치인으로서 위대한이 빛을 맛보게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어바인 시 강석희 시장의 든든한 정치적 스승이기도 하다. 강 시장의 주류사회 도전에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정치선배가 바로 신범호 의원이었다. 신 의원은 “21세기는 한민족의 시대”라며 “지금은 아이디어가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인재가 많은 한민족이 더 넓은 무대로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약관의 나이에 미국에 건너가 워싱턴 주립대에서 역사학 박사를 받고 주 상원의원이 되기까지 독학으로 버텼다”며 “한국 젊은이들도 목표를 향해 정진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신 의원은 “나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해외 동포 700여만이 어디에서 살든지 민족 언어와 문화와 뿌리를 알고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자신들이 살고 있는 나라의 문화 속에서 훌륭하게 적응하며 살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 이중문화에서 겪는 문화적 충돌에서 좌절하지 않는, 적어도 모든 문화의 우수한 점을 흠뻑 빨아들여 열등감을 뛰어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문화를 일찍이 다문화예술작품(Tapestry)로 표현한 바 있다. 미국 워싱턴 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로 근무하면서 한국의 친부와 상봉하는가 하면 몇 년에 걸쳐 부친을 비롯해 새어머니와 동생들을 모두 미국으로 초청해 정착시켰다. 뿐만 아니라 자신도 두 자녀를 입양했으며 처남들의 뒷바라지도 도맡았다.
독립신문 정창인 발행인은 신 의원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한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단순히 역경을 딛고 일어서 출세했다든가 또는 큰 업적을 남겼다는 차원을 뛰어 넘는 것이다. 그것은 한 개인이 자신의 성공 이야기를 승화시켜 보편적 가치로 전환하여 인류보편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을 때 붙여질 수 있는 최대의 찬사다. 이런 의미에서 신 의원은 ‘위대한 한국인’이란 칭호를 붙여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우리는 흔히 역사의 발전 또는 사회제도의 발전이 어느 특정 개인과는 무관한 객관적 역사 또는 제도 자체의 발전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 뒤에는 반드시 어느 특정인의 위대한 이상과 헌신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 신호범 의원 주요경력
▶ 1955년 미국 입양
▶ 미국 브리검 영 대학교 정치학 학사
▶ 워싱턴주립대학교 대학원 석사
▶ 워싱턴주립대학교 대학원 박사
▶ 미국 하와이대학교 교수
▶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교수
▶ 1992 미국 워싱턴주 하원의원
▶ 1998 미국 워싱턴주 상원의원
▶ 2006 제1회 자랑스런 한국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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