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DJ, 적자 경쟁 불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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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후계 경쟁이 불붙을 조짐이다. 국장이 마무리되자마자 DJ의 적자로 인정받기 위한 야권 `잠룡’들의 물밑 경쟁이 벌써부터 가시화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DJ는 민주개혁 진영의 대부이자 호남의 정신적 지주로 통한다. 따라서 ‘포스트 DJ’ 자리는 호남의 새 맹주이자 민주개혁 진영의 리더로 입지를 확고히 다질 수 있는 유리한 고지나 다름없다. 대망론을 꿈꾸고 있는 범야권 잠룡이라면 누구나 욕심나는 자리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DJ의 정치적 자산을 계승·발전시킬 뚜렷한 적자가 부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호남 맹주 자리는 그야말로 무주공산인 상태고 민주당내 계파 갈등은 여전히 수면 아래서 꿈틀 거리고 있는 실정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불붙고 있는 DJ 적자 경쟁을 쫓아가봤다.
                                                                                      <한국지사 = 박희민 기자>



DJ 복심으로 불렸던 박지원 의원이 24일 “민주당은 정세균 대표 중심으로 단결하고 야 4당과 단합하라”는 것이 DJ의 유언이라고 소개한 것이 적자 경쟁에 불을 붙였다. 정 대표가 DJ의 정치적 정통성을 이어받는 `적자(嫡子)’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 측은 이날 박 의원이 언급한 `정세균 중심론’으로 당내 입지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전북 출신의 정 대표는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정국에서 상주를 자임, 친노 끌어안기를 통해 지지세력을 불린 데 이어 이번에도 운구 조에서 선두에 서는 등 상주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정 대표는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 처리 이후 의원직을 던지고 전국을 순회하면서 장외투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정 대표의 강성 행보 배경에는 ‘미스터 스마일’이라는 유연한 이미지를 벗어나 야성을 키우고,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대중적 지지도를 높이기 위한 중장기 대권 전략이 투영돼 있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정 대표는 25일 의원들을 이끌고 DJ의 고향인 전남 신안 하의도를 방문하는 등 DJ의 유지 계승작업을 본격화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야권 내 정 대표의 위상 강화와 더불어 DJ의 유훈을 지닌 박 의원의 정치적 영향력도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정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가 ‘DJ 적자론’을 기치로 민주개혁 진영의 대통합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정 대표를 정점으로 한 신주류 측이 당 주도권을 쥐고 있긴 하지만 당 안팎에 다양한 계파가 포진해 있고, 친노그룹 일각에서는 ‘친노 신당’ 창당작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세균 VS 정동영


이런 가운데 4.29 재보선 공천을 놓고 정 대표와 정면충돌, 탈당했던 정동영 의원이 자신이 진정한 DJ의 적통임을 강조하는 듯한 행보에 나서면서 시선을 끌고 있다. 정 의원은 SBS 라디오에서 “김 전 대통령을 국부(國父)로 모셔야 한다”며 “저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민주개혁세력의 대선 후보를 지낸 사람”이라고 말했다.
8월 8일 미국 내셔널프레스클럽 초청강연을 목적으로 미국으로 출국했던 정 의원은 DJ의 병세가 악화됐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12일 급히 귀국해 병원을 찾았다. 정 의원은 이날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은 DJ 때문이다. DJ는 정치적 사부였다”고 말해 DJ와의 정치적 인연과 존경심을 부각시켰다. 정 의원은 또 “DJ가 이루고자 한 남북평화와 한반도 냉전 해체 과업을 참여정부에 참여하면서 계승하려고 노력했다. 다시 쾌차하셔서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정 의원 측은 또한 “정 의원이 2007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DJ를 중심으로 한 동교동계의 물밑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DJ 적자=정동영’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정 의원도 자신의 최대 현안인 민주당 복당론에 박지원 의원이 찬성하고 있다는 점에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의 미디어 관련법 무효화 서명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등 민주당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는 정 의원은 박 의원을 비롯한 동교동계와의 물밑 접촉을 확대하면서 ‘포스트 DJ’ 경쟁에 적극 뛰어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호남에서의 영향력과 인지도 등에서는 무소속인 정동영 의원이 정 대표에 한발 앞서있다. 15대 총선에서 김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으며 김 전 대통령이 천착한 남북문제에 있어서는 확고한 후계자를 자처하고 있다.
그는 특히 적자 논란에 대해 “DJ의 유지를 실현하는 모든 사람이 적자이지, 누가 적자인가 하는 논쟁은 무의미하다”고 전제하면서 “결국 핵심은 민주, 진보세력이 어떻게 울타리를 더 튼튼하게 하고 더 넓게 하느냐의 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아침 일찍 지지자 100여명과 함께 현충원 내 DJ 묘역에 참배했다.
다만 지난 4월 재보선에서 DJ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아직 당내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향후 경쟁구도에서 제약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손학규도 가세


지난해 총선 후 강원도 춘천에서 칩거해온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도 야권 통합 의 방향타가 될 10월 재보선을 앞두고 서서히 정치적 기지개를 켤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손 전 대표는 북한 조문단의 국회 조문 때 유족과 나란히 서서 이들을 맞았다.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당시에도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등 정책적으로 공통분모가 적지 않다. 김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박지원 의원이 친 손학규계라는 점도 향후 경쟁에서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장외에선  김근태 전 장관, 친노 진영의 유시민 전 장관 등이 정통성 경쟁에 가세할 수 있다. 김 전 장관은 재야(在野)와 민주화 투쟁의 상징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유 전 장관은 진보 진영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대중 흡입력이 떨어진다는 점, 유 전 장관은 안티 세력이 적지 않아 통합을 이룰만한 인물로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밖에도 김 전 대통령과 동향인 4선의 천정배 의원과 대구 출신의 추미애 의원,전남 고흥 출신의 송영길 최고위원 등이 차세대 후보군으로 꼽히고 있다.
때문에 야권에선 10월 재·보궐 선거가 정통성 논쟁에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승리할 경우, 정 대표의 리더십이 공고해지고 장외의 야권 인사들도 민주당을 중심으로 지방선거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패배할 경우엔 야권은 물론 호남의 지역적 정통성을 놓고 정 대표, 정 의원, 친노 등이 ‘야권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또 한 번 격랑에 휩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누가 후계자냐”는 문제보다 장기적으론 “어떤 내용으로 정통성을 인정받을 것이냐”가 중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일부에서는 “이미 거론돼온 인사들 모두 DJ를 계승하기에는 한계가 많은 사람들”이라며 “그동안 덜 부각됐던 제3의 인물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면서 급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 벌써부터 포스트 DJ가 누구냐를 놓고 경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지금 중요한 것은 민주당이 DJ의 적통을 이어받는 당으로 인정받고 이를 위해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을 대체할 절대 강자가 없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정통성 계승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조문 정국 끝나자마자 여야 기싸움 치열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이 마무리되자 여야는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정국 주도권 확보를 위한 치열한 기싸움을 펼치고 있다.
한나라당은 미디어법 강행 처리에 반발하며 장외투쟁에 나섰던 민주당이 ‘의회주의자’인 김 전 대통령의 유지에 따라 등원 명분을 확보했다고 판단하고 정기국회를 위한 협상을 거듭 제안하며 압박에 나섰다.
박희태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제 그동안 지속되던 조문정국은 끝났고 민생정국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이 자리를 비롯해서 다시 한 번 여야 당대표 회담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더 이상 (회담을) 거절할 명분도 없을 것이고, 또 돌아가신 김 전 대통령의 뜻을 받느는 것이 우리의 책무라는 깊은 생각을 가지고 빨리 회담에 응해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민주당 등원을 압박했다.
한나라당은 이와 함께 지역갈등 해소를 명분으로 내세운 선거구제와 행정구역 개편을 화두로 던지면서 정국 주도권을 회복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선거구제·행정구역 개편은 정치적 파급력이 높은 초대형 이슈로 연말까지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날 22차 라디오 연설에서 “정치개혁을 외면하는 것은 역사와 국민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고, 김덕룡 대통령국민통합특보는 라디오에 출연해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당장은 정치적으로 손해 보는 한이 있더라도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 있다면 과감하게 나라를 위해서 그 길을 선택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김 전 대통령의 국장이 끝나자 곧바로 ‘지역경제 살리기’ 민생탐방을 이어갔다. 민생경제를 위해 일하는 여당상을 보여줘 민심을 끌어안겠다는 것이다. 민심탐방을 통해 수렴된 각 지역의 의견들을 취합해 9월 정기국회에서 각종 법안 개정에 반영할 예정이다.
잇따른 2명의 정치적 지도자를 잃은 민주당은 ‘포스트 DJ’ 정국을 이끌어갈 구심력 회복에 고심하고 있다.
정치적 스승이자 풍향계와도 같았던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지지층을 재결집시킬 또 다른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다.
흩어진 전통적 지지층인 ‘집토끼’를 결집시키기 위해 당내 통합과 혁신위원회를 이번 주 내로 구성키로 했다.
또 사실상 중단됐던 민주정부 10년의 재평가 작업도 서두를 방침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친노신당으로 이탈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지방선거 이전에 ‘민주대연합론’으로 지지층이 재결집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이와 함께 여권의 등원론 압박에 대해서는 “국민·서민의 편에서 분명하게 야당답게 투쟁하고 활동하라는 요구가 훨씬 많았다”며 조건없는 등원요구를 일축했다.
우상호 대변인은 또 여야 대표회담 제의에 대해 “환영하지만 그 전제는 한나라당과 집권세력이 야기했던 갈등의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며 “미디어법 문제 등 그동안 여야간 교착상태에 있었던 수많은 현안에 대해서 납득할 만한 양보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그런 문제에 대한 태도 변화 없이 정기국회 일정을 협의하자는 식으로 대화를 제안하는 것은 오히려 여야간 관계를 보다 악화시킬 수 있는 태도”라며 여야 대표회담을 사실상 거절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장외투쟁 원동력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인데다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명분이 약해져 9월 정기국회 전략을 조속히 수립하고 병행투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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