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5탄 : 마사 최 빌 게이츠 자선재단 최고행정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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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0일 한국의 단국대학교 졸업식장에 빨간 외투와 은발 머리칼을 지닌 우아한 여성이 연단에 올랐다. 그는 졸업생들에게 “용기와 도전은 세상을 변화시킨다”면서 “대한민국의 젊은이로서 세상의 변화를 위해 위험을 헤쳐 나갈 용기를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름은 마사 최(54·Martha Choe). 한인 2세인 그는 지난 1990년 평범한 은행 직원에서 美 주류 정치계로 뛰어들었다. 20년이 지난 오늘 그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세운 세계 최대 자선단체(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에서 인사·홍보를 책임지는 최고행정국장(CAO)에 올랐다.
세계 최대 자선단체의 실무책임자에 오르기까지 최 국장은 미국 주류사회에서 정치인으로서 지도력과 능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 해왔다. 그의 유능함에 반한 빌 게이츠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재단을 맡겼다.
“세계를 변하게 하려면 사람을 키워야 한다”는 빌 게이츠의 신념을 바탕으로 그와 일하고 있는 마사 최 국장은 원래 평범한 교사였고, 은행 직원이었다. 타고난 일솜씨로 단숨에 은행 부행장까지 승진한 그는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시애틀 시의원에 도전했고 정계 진출은 최 국장의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켰다. 시애틀 워싱턴대학(UW)에서 인종학과 언어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오리건주 유진 처칠고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했다.
이후 은행원으로 변신한 그는 시애틀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과정을 마친 뒤 1990년 시의원 선거에 도전해 미주한인이민 역사상 최초로 한인 시의원 당선 기록을 세웠다.
첫 번째 시의원 임기 당시 재정경제 분과위원장을 맡은 최 국장은 재선 후에는 교통분과위원장을 맡아 능력을 발휘했다.
시의원 2선 경력의 그는 당시 아시안 최초의 주지사가 된 게리 록 워싱턴주 주지사의 권유로 주정부 무역경제개발부 장관에 전격 임명되기도 했다. 그는 세계최대 규모의 보잉 항공사가 2004년 동부로 본사를 이전하면서 여객기 787 드림라이너 조립 생산 공장 이전 계획을 세우자 이를 저지시켰다.
보잉 787 조립 공장을 워싱턴주 에버렛에 유치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그는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해 워싱턴주에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물론 엄청난 세수(20년간 32억 달러)를 확보하는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 낸 주인공이다.
이런 그의 역량을 오랫동안 지켜본 빌 게이츠는 자신의 재단을 세계화 시키는데 최 국장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최 국장은 빌 게이츠의 러브콜을 정중히 고사했지만 끈질긴 권유 끝에 빌 게이츠의 자선 프로젝트에 전격 동참하기로 마음먹었다.
1948년 유학생으로 미국에 건너온 부모에게서 1955년 뉴욕 출신으로 태어난 최 국장은 공학자인 아버지 최기순 교수가 보잉사에 입사, 시애틀로 이주하면서 워싱턴주와 인연을 맺게 됐다.
최 교수는 본국에서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공과대학 학과장을 지낸 엘리트다. 그는 교환교수로 프린스턴대학과 콜롬비아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시애틀에 건너 온 뒤 자녀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쏟았다.
최 국장의 모친인 최양자 여사는 본국에서 이화여대를 졸업한 재원이다. 미국유학 시절 남편 최 교수를 만나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국장의 양친은 한인사회 봉사에도 열성을 보였다.
부모의 기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최 국장은 뱅크 오브 캘리포니아에 근무하면서 정치행사에 자원봉사자로 활약했다. 그의 활동에 감동한 지역 상원의원 보좌관이 ‘정치에 나서서 사회를 변화시켜라’는 권유를 했고 최 국장은 정계 진출에 눈을 돌리게 됐다.
시의원 임기 8년과 주정부 장관 4년을 지내면서 그는 클린턴 대통령 시절 백악관 아·태 자문위원회 위원장에 선정될 정도로 아시아계 여성 정치인 가운데 두각을 나타냈다.


                                                                                         <성진 취재부기자>



마사 최 국장은  워싱턴주립대에서 인종학과 언어학을 전공하고 오리건주 유진에 있는 처칠고교에서 4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 최 국장은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평소 보수적인 부모 밑에서 엄격하게 자란 자신과 달리 자유분방한 학생들의 태도에서 적잖은 혼란을 경험했다고 토로했었다.
최 국장은 4년간의 교직 생활을 정리하고 뱅크 오브 캘리포니아로 자리를 옮겼다. 은행원으로 근무하며 위탁교육으로 시애틀 대학 경영학 비즈니스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은행 업무에서도 인정을 받아 부행장으로 고속 승진했다.
경영학 비전공자였음에도 최 국장은 특유의 성실함과 친화력으로 10년 만에 은행 No.2의 자리에 올랐다. 인문학 전공 출신자로서는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는 당초 등록금 마련을 위해 1년 만 다닐 작정이었던 그곳에서 야간 대학 수강증을 끊어가며 경영학을 공부해 업무를 익혔다. 신용·대출 부문 업무에서 탁월한 능력을 뽐낸 그는 이후 성공한 은행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캘리포니아은행에서 승승장구하던 최 국장에게 두 번째 전환점이 찾아왔다. 미국 상원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던 친구가 ‘정치에 도전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한 것. 평소 정치관련 행사 등에서 열정적으로 봉사하는 모습을 지켜본 친구는 최 국장의 리더십과 자질에서 가능성을 봤던 것이다.
그러나 최 국장의 양친은 딸의 정계 진출에 찬성하지 않았다. 부친은 딸이 안정된 직장을 버리는 것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의 만류에도 최 국장은 부행장 직함을 내려놓고 시애틀 시의원에 도전했다. 그리고 당당히 당선됐다.



한인 이민사 한 페이지 장식


시애틀 시의원 재선에 성공한 지난 1998년 최 국장은 의회에서 20억 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다루는 예산위원장으로 막강한 파워를 과시했다. 그를 지켜본 게리 록 당시 워싱턴주 주지사는 최 국장에게 무역경제개발부 장관이라는 요직을 맡겼다.
시애틀 타임스 등 주류언론에서도 파격적인 인사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마사 최 신임 장관은 준비된 장관’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가 무역경제개발부 장관으로 이룬 최대 업적은 보잉사의 첨단기종인 ‘드림라이너’ 787 항공기 생산기지를 워싱턴주에 존속시킨 것이다.
당시 시애틀에 본사를 둔 보잉 항공사 덕분에 시애틀은 물론 인근 워싱턴주도 상당한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787 생산기지의 이전이 전격 결정되면서 지역 경제가 하루아침에 고사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몰아닥친 것.
지난 날 뉴욕 태생인 최 국장은 부친의 보잉사 입사로 시애틀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경험이 있었다. 한때 경기불황으로 감원 바람이 불어 정리해고를 당한 부친이 뉴욕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고 졸지에 이산가족이 됐던 쓰린 기억이 최 국장의 뇌리를 스쳤다.
최 국장은 또 다른 비극을 막기 위해 당시 게리랄 주지사 대신 보잉사 간부들과 막후 교섭을 벌였다. 그는 보잉사에 주정부 세금감면 등 다양한 파격 혜택을 제시해 생산 공장을 워싱턴주 에버렛에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최 국장의 행동력으로 워싱턴주는 오는 2024년까지 32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주정부 세수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주의 경제안정을 이룩하는 일등공신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최근 미국을 강타하고 있는 경기침체기에도 시애틀과 워싱턴주가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도 최 국장의 과거 활약이 밑거름이 됐다는 평이 자자하다.
그는 게리 락 워싱턴주 지사 퇴임에 앞서 2004년 6월 주정부 장관직을 떠났다. 그리고 곧장 빌 게이츠가 최 국장 영입에 나섰다. 그는 같은 해 9월 게이츠 재단에 영입돼 주로 아시아와 동유럽 등지 저개발국 공공도서관에 정보기술을 제공하는 사업을 총괄했다.
당초 주정부 장관직을 사퇴한 최 국장은 1년 동안 지친 심신을 쉴 생각이었다. 그러나 퇴임과 때 맞춰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측의 러브콜을 받게 된 것이다. 전자도서관 사업 총괄책임자로 와 달라는 부탁을 처음에는 거절했다.
하지만 최 국장의 추진력을 높이 산 재단이 거듭 권유해 결국 수락한 최 국장은 낯선 사업임에도 빠르게 관련 업무를 익혀 멕시코·불가리아·우크라이나·베트남 등으로 사업을 확장시켰다.
시애틀 근교 레이크 유니언 호숫가에 세계최대 자선단체인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사무실이 있다. 약 600명의 직원들이 근무하는 이곳에서 최 국장은 행정관련 최고 책임자이다. 최 국장 외에 시애틀시 주택국장을 역임한 케이티 홍 서북미 자선 부국장과 한인 2세 젊은이 등 10여명도 그와 함께 일하고 있다.




마음 따뜻한 교사 시절의 경험


최 국장은 최근 빌 게이츠 회장과 동행해 멕시코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의 자선활동에 대한 열정을 온몸으로 느낀 최 국장은 올해 단국대 졸업식 연설에 나선 자리에서도 게이츠 회장에 대해 직접 언급하며 그를 높이 평가했다.
‘세계가치관을 바꿔놓은 놀라운 리더’로 빌 게이츠 회장을 소개한 최 국장은 그가 지난해 하버드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세계최고의 대학에 다니는 지성인들이 극한 상황에 처한 세상 사람들의 어려움을 모른다’고 말한 사실도 언급했다.
최 국장의 발언에는 60년 전 낙후됐던 한국이 오늘날 세계 경제대국의 하나로 성장한 책임으로서 한국의 젊은이들도 용기 있게 세계에 도전해야한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다.
게이츠 재단은 지난해 세계적 갑부인 워렌 버핏이 자신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410억 달러 기부를 발표함에 따라 내년부터 보다 활발한 자선활동을 벌이게 된다. 올해 이 재단은 총 25억 달러의 기부금을 제공할 계획이다.
최 국장이 관장하는 세계도서관 사업부는 올해 30개국에 2100만 달러, 내년 3500만 달러를 지원한다. 도서관의 정보화 사업과 함께 이를 관리할 직원교육도 지원한다.
그는 최근 게이츠 재단 최고행정책임자로 임명된 뒤 교육 개혁에 역점을 두고 있다. 최 국장은 “대학 교육을 받지 않으면 지식경영사회에 제대로 적응할 수 없는 사회가 됐다며 교육 개혁을 위해서는 교사에 대한 투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사가 바뀌어야 학생이 바뀐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교육장관에 임명한 덩컨 장관도 시카고에서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함께 교육 개혁을 주도한 인물이다. 최 국장은 “덩컨 장관이 이끄는 교육부에서 일하기 위해 게이츠 재단의 많은 직원이 떠났다”며 “재단이 추구하는 교육 방향이 오바마 행정부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바마 대통령은 787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 중 교육·훈련 분야에 1000억 달러가 넘는 거액을 배정할 정도로 교육 개혁에 관심이 많다. 최 국장은 과거 4년 동안 몸담았던 교직생활이 재단의 교육사업을 이끄는 데 활력이 됐다며 자평했다. 정부 조직에 비해 재단 규모는 작지만 교육 개혁의 선도 기관이 되겠다는 포부도 다졌다.
올 초 단국대 졸업식 연설에서도 그는 자신의 경력을 회고하면서 “우리 부모 세대가 미지의 세계로 도전하기 위해 미국에 단신으로 온 것처럼 나도 용기를 갖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부모는 미국 유학 중 만나 최씨를 낳았다. 최 국장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던 부모님은 저를 엄격하게 기르셨다”며 “한국어와 영어를 한꺼번에 배우면 어느 한쪽으로도 성공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을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최 국장은 “한국말을 못해서 죄송하다”고 또박또박한 우리말로 양해를 구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최 국장이 시애틀 시의원에 당선된 것은 미주한인 이민사에도 한 획을 그은 대사건이었다. 지난 1990년 최초로 미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된 김창준 의원이 다이아몬드 시의원에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LA한인사회의 미 주류정치 도전이 불 붙었었다. 하지만 ‘마사 최 시의원 당선’은 미국의 대도시 시의원에 도전해 승리한 값진 의미를 지녔다.
마사 최 국장은 단국대 졸업식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졸업생들에게 “젊은이답게 패기를 가지라”고 주문했다. 경제 침체로 일자리를 찾기 힘든 현실이지만 주눅 들지 말라는 당부였다. 그러면서 “위험을 감수하고 새 도전에 과감히 맞서라”고 했다. 이 말은 미주한인 우리 모두에게 값진 교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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