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 티나 박 LACC 커뮤티니 칼리지 평의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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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커뮤니티 칼리지는 나이나 경력에 관계없이 저렴한 학비로 전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대학 제도다. 그래서 형편이 여의치 않아 학비를 마련할 수 없는 인재들이 싼 등록금으로 공부할 수 있는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에 진학한다.
현재 커뮤니티 칼리지 학생 분포는 비백인 소수계가 80%이고, 영어권이 아닌 학생도 40%나 된다. 평균 연령이 25세이고, 35세 이상도 23%나 된다.
커뮤니티 칼리지 학비는 600 달러 정도이고, 칼 스테이트 계열 대학은 2,500달러, UC계역 대학교는 5,600 달러 정도다.
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장 좋은 4년제 대학을 갈 수 없는 학생들이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열심히 공부해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하기도 한다. 현재 칼 스테이드 계열 대학교에 재학하는 학생 중 60% 정도가 커뮤니티 칼리지 출신이다.
이 같은 커뮤니티 컬리지는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에서 예산을 지원하는데 지자체가 설립된 각 지역 교육국 평의회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다.
LA 카운티에는 LA시를 포함해 36개 시관할에 총 9개 커뮤니티 컬리지가 있으며 약 13만의 학생들이 재학하는 미국에서는 최대 규모의 교육구다. 이 평의회(LACCD)는 7명의 이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4년 임기 이사들은 전원 LA시민 투표로 선출된다.
현재 LA지역 커뮤니티 컬리지로 LACC, LA Trade & Technical College 등 9개 대학을 관장하는
평의회 이사들은 매년 약 10억 달러의 엄청난 예산을 주무른다. 이처럼 LA커뮤니티 컬리지 평의회는 그 정치적 중용성도 높아 정치를 꿈꾸는 사람들이 등용문으로 여기고 있다. 전직 캘리포니아 주지사였고, 현재 주 검찰총장인 제리 브라운도 LACCD 위원직을 계기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LA 커뮤니티 칼리지 교육구 안에 상ㆍ하원 지역구가 포함돼 있어 이 지역 교육평의회 이사가 갖는 영향력이 지대하다. 자기 지역구 내 학교에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상ㆍ하원 의원들의 노력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9일은 LA 커뮤니티 컬리지 평의원 선거의 결선일이었다. 이 선거에서 한국계 티나 박(33, 한국명 박다희) 후보가 LA시 선거 역사상 이변을 일으키며 극적인 당선을 이뤄 미 주류사회로부터 엄청난 조명을 받았다.
33세의 젊은 나이로 처음 도전한 선거에서 박 후보는 경쟁자인 40대의 현직 이사 안젤라 레독을 물리쳤다. 현직 이사를 제치고 당선된 것은 평의원 선거사상 35년 만에 처음 있는 사건이었다.
당초 지난 3월 예비선거에는 5명이 입후보했었다. 박 후보는 2위로 흑인 여성인 레독 이사와 5월 결선에서 승자를 가리게 된 것. 박 후보는 결선 투표에서 14만8243표를 얻어 레독 후보를 2만3000여 표차로 따돌리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는 지난 7월 15일 정식으로 이사에 취임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당선된 후 박 이사는 “상대 후보가 현직 이사여서 승산 있는 게임은 아니었다. 내가 14만8200표를 얻어 2만3000여 표 차로 이겼는데 나를 믿고 지지해 주신 LA 동포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티나 박 이사는 LA 커뮤니티 컬리지 평의원 선거 역사상 최연소 이사로 기록됐으며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선출된 것이다. 그보다 더 의미가 있는 것은 박 이사가 LA카운티 전체 유권자들이 투표하는 선거에서 당선된 최초의 한국계라는 점이다.
                                                                                         <성진 취재부기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특히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때마다 한국 교육에 대해 언급하곤 한다. 티나 박 이사의 꿈도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교육 이슈나 모델을 성공적으로 미국 교육에 접목하는 것이다.
박 이사는 대학 시절부터 지역봉사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져 왔다. 그는 4년 임기 동안 지역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박 이사는 “오바마 대통령이 ‘희망(hope)’과 ‘변화(change)’를 키워드로 내세워 대통령이 됐듯 나는 학창시절 노숙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할 때 내세웠던  ‘희망’과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취임한지 고작 두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박 이사의 활동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커뮤니티 칼리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어 그의 일정을 앞으로 더욱 바빠질 전망이다.
박 이사는 “경제 위기로 학비가 거의 들지 않는 커뮤니티 칼리지에 학생들이 많이 몰리자 오바마 대통령은 커뮤니티 칼리지를 위한 예산을 200억 달러 더 늘리기로 했다”며 “시민의 세금을 커뮤니티 칼리지를 위해 어떻게 운용할지 여부가 현재 미국 고등 교육의 큰 이슈”라고 말했다.
그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커뮤니티 칼리지의 특성화 및 전문화다. 박 이사는 “한국 전문대학의 경우 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직업전선에 뛰어들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돼 있는데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면서 “LA 카운티 내 칼리지의 간호학과나 건강관리학과, 녹색성장산업 관련 학과들을 집중 육성해 저소득 계층이 많은 칼리지 학생들이 졸업과 동시에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이자 최연소 여성 이사로 등극한 그이기에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의 사기가 오르는 것은 당연지사다. 아시아계 학생들은 박 이사에게 ‘관내 학교를 방문하는 캠퍼스 투어를 언제 할 것인지’ 등을 묻는 이메일을 쏟아보내고 있다.
한인 학생들을 향한 지극한 관심은 당연하다. 그는 조만간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위한 여러 지원책을 강구할 예정이다. 기업이나 환경 단체 등과 연결해 커뮤니티 칼리지 졸업생들의 일자리를 늘리는 사업도 진행할 생각이다.




9.11 테러에 목숨 잃을 뻔


티나 박 이사는 6살 때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다. 어린시절 독실한 기독교식 교육을 받으며 항상 남을 도와주는 박애정신에 깊게 물들었다. 커뮤니티 봉사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박 이사는 방과 후 자신보다 어린 학생을 가르치는 과외봉사를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뉴욕 롱 아일랜드 호프스트라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취직한 그는 당시 전국에서 12명 중 한 명으로 뽑히며 유능함을 뽐냈다. 어려서부터 자기주장과 성취욕이 강했던 그는 회사 동기들이 시골 작은 마을로 출장을 다닐 때 혼자 대도시를 돌며 굵직한 업무를 도맡아 처리했다.
2001년 9.11 테러 사건 때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당시 거래소에서 회계감사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는데 피해를 당한 월드트레이드센터(WTC)에 자리 잡고 있는 한 업체를 방문하기 위해 현장으로 가다 극적으로 목숨을 구한 것.
그가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나왔을 때는 WTC 북쪽 건물이 이미 공격을 당한 뒤였다. 박 이사는 현장을 빠져나가기 위해 급히 택시를 타고 이동하다 WTC 남쪽 건물이 두 번째 공격을 받아 무너져 내리는 장면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박 이사는 참혹한 역사의 순간을 경험한 뒤 ‘나눔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5분만 빨리 도착했더라면 박 이사 역시 9·11 테러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는 이 같은 행운을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살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직감했다.
당시 박 이사의 어머니는 ‘뉴욕은 위험하니 LA로 오라’고 했다. 그는 2005년 LA로 이주해 3년간 다운타운에 있는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에서 일했다. LA로 건너오기 전 그는 2003년 NYSE와 증권거래위원회 등 3개 금융기관이 참여해 미국 내 7개 대형은행들 간 14억 달러의 빅딜을 성사시킨 글로벌 세틀먼트 작업에도 참여했다.
그러다 2008년 11월 미 대선 직후 민주당 정가 모처로부터 LA카운티 커뮤니티 칼리지 교육구 교육평의회 이사로 출마하라는 제의를 받았다. 힐러리 클린턴 진영에서 선거자금을 모으는 일에 참여하면서 보여준 능력을 높이 평가받은 것이다.




봉사정신이 기반으로 정계 진출


박 이사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동기도 커뮤니티 봉사정신이 밑바탕이었다. 그에게는 LA로 터전을 옮긴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지난해 대선 때 힐러리 클린턴 후보 캠프에서 일하며 모금 활동을 담당했던 그를 정계 인사들이 눈여겨본 것. 많은 정치인과 만나면서 그들로부터 LACCD 평의원 선거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처음에는 LACCD 평의원이 워낙 중요한 직책이라 망설였지만 커뮤니티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굳은 신념에 의지해 선거에 출마하게 됐다. 뉴욕 증권가에서 활동한 경험으로 LACCD 이사직에 나서라는 권유였다.
유력 정치인들의 지원도 잇따랐다. 이뿐 아니라 한인사회의 강력한 지지와 후원을 받았으며, 특히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에 많은 힘을 얻었다. 지난 5월 당선이 확정된 박 이사는 이튿날인 5월 20일 LA 한인타운의 상징인 다울정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커뮤니티 칼리지의 교육 수준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박 이사는 최우선 당면과제로 LA카운티 내 9개 칼리지에 대해 감사를 실시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자신의 전문분야인 감사를 통해 재정 상황을 파악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임기 중 가장 역점을 두고 싶은 사업으로 LACCD 교육의 질 향상을 꼽았다. 또 2년제 대학을 졸업해도 쉽게 취업할 수 있도록 교육 수준을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이사는 “한인 커뮤니티가 한마음으로 성원해줘서 당선될 수 있었다. 특히 투표에 많이 참여해주신 노인들께 감사한다”며 한인사회에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한인들이 공직에 더 많이 진출해 우리가 (미국에) 이민 온 것이 아니라 이 나라가 우리 땅이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힘과 더 많은 목소리, 더 많은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박 이사는 연합뉴스와 별도 인터뷰에서 “결선에 진출한 후 LA카운티에서 안 다닌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시민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또 과거 회계감사를 했던 제 경력이 당선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많은 한인 2,3세들이 공직에 진출하기를 바란다”면서 “열정을 가지고 그곳에 몸과 마음을 모두 던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저 또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당부했다.
박 이사는 지난달 한국의 여성부와 인천광역시, 매일경제신문사 공동주최로 하얏트리젠시인천 호텔에서 열린 제9회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에 참가해 한국 언론들로부터도 집중 조명을 받았다.
박 이사가 LA 전역을 커버하는 선거에서 당선됐다는 사실은 앞으로 그의 정치 도전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현재 한인사회는 LA시의회에 한인 의원을 진출시키지 못한 상태다. LA지역에서 주하원이나 상원에 진출한 한인도 없다. 우리는 그에게서 한인사회의 주류사회 정치도전의 새로운 리더십을 발견할 수 있다.
박 이사는 신학대학 총장인 아버지와 한의사 어머니 사이에서 1남 2녀 중 차녀로 태어났으며 미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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