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강댐 방류로 임진강 참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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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조대원들이 6일 보트를 타고 경기 연천군 임진강 임진교 부근 등에서 야영이나 낚시를 하던 중 갑자기 불어난 물을 피하지 못하고 실종된 6명을 수색하고 있다. 당국은 북한이 예고 없이 황강댐 수문을 열어 물을흘려보내는 바람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6일 새벽 우리측에 아무 통보도 하지 않은 채 임진강 상류의 황강댐을 방류한 것은 남북 간 기존 묵계(默契)는 물론 국제법까지 위반한 사실상의 ‘범죄행위’나 마찬가지다. 특히 우리 국민 6명이 실종되는 큰 피해까지 발생했기 때문에 정부의 단호하고 철저한 대응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북측의 이번 ‘도발’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사전 예고 없이 수문을 열면 남측에 큰 피해를 줄 것이라는 사실을 북측이 잘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군 관계자는 “황강댐은 저수량이 팔당댐의 1.5배인 3억~4억t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북한도 갑자기 수문을 열면 하류인 남측 지역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모를 리 없다”고 했다. 우리측이 2007년 12월 황강댐 건설로 피해가 우려된다고 북측에 항의한 적도 있다.
그렇다고 북측에 댐 수문을 급히 열어야 할 만큼 급박한 자연환경적 이유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최근 임진강 상류에 댐을 방류해야 할 정도로 많은 비가 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지사 = 박희민 기자>



북한은 이번에 임진강과 북한강 댐 관리에 대한 남북 간 묵시적인 합의를 깨버렸다. 북한은 2002년 5월과 2004년 7월 북한강 상류 금강산 댐을 방류하면서 우리측에 미리 알려줬다. 2005년 7월 남북경제협력추진위 10차 회의 때는 “올해 홍수철 피해 대책을 위해 임진강과 임남댐(금강산댐)의 방류 계획을 남측에 통보한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두 달 뒤 “임진강 댐은 ‘무넘이 언제(堰堤)'(물이 차면 자연적으로 넘치는 댐)이기 때문에 방류 전 사전 통보가 어렵다”고 하긴 했지만 다시 2006년 6월 임진강 수해방지를 위한 우리측과의 실무접촉에 응했다. 모두 남한에 하류가 흐르는 강의 댐 문을 열 때는 남측에 미리 알려야 한다는 묵계를 북한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들이지만 이번에 그것을 무시한 것이다.


국제법 위반


북한의 이번 조치는 국제법에도 저촉된다. 1997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국제수로의 비항행적 이용법에 관한 협약’은 “한 수로국이 다른 수로국에 불리한 효과를 끼칠 수 있는 어떤 조치를 취하거나 허가하려면 반드시 사전에 ‘적기 통고’를 해야 한다”(제12조) “손해가 일어났을 때에는 보상을 위해 피해국과 협의해야 한다”(제7조)고 못박고 있다. 유엔 회원국인 북한은 당연히 이 협약의 적용을 받는다.
그러면 북한은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을까.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북한이 온갖 유화 공세를 펼쳤지만 비핵화 우선이라는 정부의 ‘원칙’이 흔들리지 않자 새로운 형태의 압박 카드를 꺼낸 것일 수 있다”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국책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북한이 ‘실수’라고 하면서 앞으로 이런 일을 막기 위한 협상이나 대가를 요구해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북한 내부가 뭔가 손발이 안 맞는 것 같다”(남주홍 경기대 교수)는 관측도 적지 않다. 남 교수는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쌀이나 비료를 요구해야 할 북한이 수공(水攻)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며 “금강산 피격 사건처럼 북 내부 의사결정 과정의 난맥상으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의 댐은 민간이 아니라 야전군이 관리한다는 점에서 “군 훈련 과정에서 갑자기 물을 빼야 할 상황이 생긴 것 아니냐. 해당 지역 군부의 돌발적 결정일 수 있다”(군 소식통)는 시각도 있다.
댐에 기술적인 문제가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 소식통은 “황강댐은 2007년 10월쯤부터 담수를 시작했는데 최근 댐을 채우고 보니 균열 등의 문제가 발견돼 댐 보수를 위해 물을 뺐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 댐의 이상 여부는 물론 북한의 고의 여부 등 모든 상황을 배제하지 않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금강산 피격 사건에 대한 공식 사과가 없는 상태에서 또다시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북한은 방류 원인을 설명하고 사과도 해야 한다”고 했다.




북, 성급한 해명


북한은 자신들의 예고 없는 임진강 댐 방류로 우리 국민 6명이 사망·실종되는 참사가 벌어진 데 대해 사건 이틀 만인 7일 공식 해명했다. 북한의 이날 해명은 남측 여론에서 비난이 높아지자 사건을 일찍 봉합하려고 서두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정보 당국자는 “최근 임진강 상류에 큰 비가 오지 않았고, 북한 댐(황강댐)에 심각한 하자(瑕疵)가 있다는 정보도 입수되지 않았다”며 “북한이 ‘불순한 의도’로 사고를 저질러 놓고 파장이 예상보다 심각하니까 급히 무마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단순히 대남 위협용으로 새벽에 수문을 열었는데 의외로 6명이 사망·실종되는 큰 피해가 발생하자 급히 해명에 나선 것이란 관측이다.
그러나 이런 북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 6명의 목숨을 앗아간 데 대해 사과는커녕 유감 표명도 없는 대목은 문제란 지적이 많다.
작년 7월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에 대해서도 아직 분명한 사과는 없는 상황이다.
안보 부처 당국자는 “정부가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대목은 바로 이런 것”이라며 “과거 정부처럼 북한이 손을 내민다고 무조건 잡을 수 없는 이유”라고 했다.
북한도 과거에 ‘사과’를 했던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76년 8월 18일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에 살해당한 이른바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당시 미국이 전폭기 대대와 항공모함을 한반도로 급파하자 김일성 주석이 자신 명의로 유감을 표명하는 사과문을 유엔군측에 보냈다.
1968년 1월 일어난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 사건에 대해서도 4년이 지난 1972년 5월 김일성이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만나 “대단히 미안한 사건”이라고 했었다.
북측은 우리 국민을 억류했을 때는 ‘사과문’이나 ‘반성문’을 받은 다음에야 석방하곤 했다. “현 정부가 남북 관계의 ‘패러다임 시프트(전환)’를 내세우려면 북한이 해야할 기본적 의무를 다하도록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국책연구소 연구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군남댐, 물폭탄 막을 수 있나


이번 사건으로 남한에서 임진강 본류에 건설되는 유일한 댐인 군남댐이 북한 황강댐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7일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임진강 하류 홍수조절을 위해 2006년 9월 3천235억원을 들여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에 높이 26m, 길이 658m, 총저수용량 7천만t 규모의 군남댐을 건설 중에 있다.
군남댐은 당초 2012년 12월 완공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지난해 10월 군남댐에서 57㎞ 상류에 위치한 황강댐에 담수를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난해 상반기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공사기간을 1년 6개월 앞당겨 내년 6월 완공하기로 일정을 조정했다.
현재 군남댐은 본댐 콘크리트 타설 및 수문 공사 등을 진행 중으로 전체 공정률이 70%에 이르고 있어 내년 6월 준공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수자원공사는 전망했다.
문제는 이번처럼 북한이 사전 통보없이 일방적으로 댐을 방류할 경우 군남댐이 임진강 하류 홍수 피해를 막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수자원공사 측은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 황강댐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제한적이고 부족하기 때문이다.
황강댐은 북한이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 약 42.3㎞ 떨어진 임진강 본류에 발전과 용수공급 등 목적으로 건설한 댐으로 2002년 착공됐으며 2007년께 완공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저수량은 높이 34m, 길이 880m 규모로 2001년 3월 완공된 임진강 유역의 또 다른 북한 댐 ’4월5일댐(저수량 3천500만t)’의 약 10배 규모인 총저수량 3억∼4억t 규모일 것으로 국내에 알려져 있을 뿐이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황강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군남댐이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라는 식의 답변은 하기 어렵다”며 “다만 군남댐이 100년 빈도 홍수(48시간 동안 강수량 388㎜)에 대처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어 어느 정도 대응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임진강 수계에 48시간 동안 388㎜의 폭우가 쏟아져도 하류에 홍수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인 초당 1만1천800t의 물을 방류할 수 있어 큰 변수만 없다면 얼마든지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 “군남댐의 건설 목적은 임진강 하류 지역의 홍수 피해 방지와 북한의 댐 건설로 불규칙한 물 흐름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며 대응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공사기간을 1년 6개월 단축한 상황에서 더 공기를 앞당기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또 홍수기가 이미 지난 상황에서 공기를 좀 더 단축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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