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그룹 정태수 회장 넷째아들, LA서 칩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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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3000억에 달하는 세금을 내지 않아 수년 째 국세청 고액체납자 명단 가장 윗머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그간 묘연했던 정 전 회장 일가의 행방이 최근 <선데이저널> 레이더망에 걸려들었다.
본지는 정 전 회장 일가와 관련한 첩보를 입수하고 지난 몇 주 간 미국 동?서부 지역을 오가며 집중 취재를 벌였다. 그 결과 정 전 회장의 아들 정한근 동아시아가스 회장이 몇 해 전 이름을 바꿔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씨는 취득한 시민권을 가지고 여러 차례 본국을 자유롭게 오간 것으로 드러났다. 고액 체납자에 대한 한국의 출입국 관리 행정에 심각한 허점이 드러난 셈이다.
정태수 전 회장을 비롯해 장남 정보근씨와 정한근씨 일가는 지난 1997년 이른바 ‘한보사태’로 인해 몰락하면서 3000억 원의 세금을 체납해 국세청 고액 체납자 명단에 줄줄이 이름을 올렸다.
정 전 회장은 2007년 교비 횡령 혐의로 항소심 재판을 받던 중 해외로 도피했다. 아들 정한근씨 역시 1996년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 등을 목적으로 설립한 동아시아가스주식회사(EAGC)의 자금 320억원을 빼돌려 재산 국외도피 및 횡령 등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었다.
정 씨 일가는 해외 도피 중에도 가족 소유의 학교 법인 돈을 횡령해 도피 자금으로 사용하는 등 범죄 행각을 일삼아 물의를 일으켰다.
3000억원의 세금을 ‘나 몰라라’하고 해외에서 수년째 초특급 호화 생활을 하고 있는 정 씨 일가의 도피생활을 단독 추적했다.
                                                                                         <리차드 윤 취재부기자>



동아시아가스 회장 정한근씨는 회사 임직원들과 짜고 1997년 11월 이 회사가 1996년 직접 투자했던 러시아의 한 석유회사 주식 900만주(5790만 달러)를 매각해 대금 일부인 3270만 달러(약 323억5000만원)를 스위스 소재 은행에 차명계좌로 빼돌렸다. 검찰은 이 같은 혐의를 확인하고 정씨를 기소했다.
검찰은 정씨가 한보그룹이 부도나면서 동아시아가스가 채무 변제 명목으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것을 우려해 돈을 미리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정씨는 동아시아가스가 보유했던 러시아 석유회사 주식을 또 다른 러시아 회사인 ‘사단코’에 5790만 달러에 매각했다.
그러나 검찰조사 결과 정씨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를 만들어 2520만 달러에 판 것처럼 허위로 서류를 꾸며 국내에 신고하는 방법으로 차액(3270만 달러)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는 1998년 수사가 시작되자 잠적, 이후 10년 가까이 수배 상태에서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나는 점을 감안해 그의 신병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씨를 불구속 기소한 바 있다.
정씨는 또 294억원의 국세를 내지 않아 고액체납자로 기록돼 있다. 정씨와 아버지 정태수 전 회장(2천127억), 형 정보근씨(645억원)의 체납액를 합치면 3066억원에 이른다. 검찰과 국세청에게 있어 정태수 회장 일가의 행방이 초미의 관심사인 이유다.


신들린 해외 도피 행각


하지만 정씨 일가는 현재 10년 넘도록 해외를 돌며 신들린 도피행각 중이다. 정 전 회장은 2007년 5월 일본에서 치료를 받겠다며 법원에 진료계획서 등을 제출한 뒤 출국, 현재까지 귀국하지 않고 있다.
정 전 회장은 카자흐스탄 등을 거쳐 현재 키르기스스탄에 머물며 재기를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아들 정한근씨가 대표로 있던 동아시아가스의 러시아 현지 유전회사인 ‘사단코’와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자흐스탄 현지 관계자들은 정 전 회장을 비롯해 아들 정한근씨를 자주 목격했다고 전하면서 특히 정씨는 미국 독수리 여권을 소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그가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다.
정 전 회장은 해외 체류 중 한국에 있는 한보 소유 대학의 교비를 횡령해 도피자금으로 사용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법무부는 지난달 키르기스스탄에 범죄인 인도청구를 한 상태다.
그동안 정 전 회장 일가에 대한 소식은 본국 언론을 통해 간간히 흘러나왔으나 정한근씨의 행적에 대해서는 그가 미국에 머물고 있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구체적으로 드러난 적이 없다.
이런 가운데 최근 <선데이저널>은 정씨의 구체적인 행적에 대한 첩보를 입수했다. 그를 잘 알고 있는 LA지인들은 “10년 전에는 자주 LA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약 5년 전부터 행방이 묘연해 졌다”고 말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씨가 평소 가깝게 지내던 LA 지인들을 멀리 하다 최근 아예 모습을 감췄다는 것이다. 한 인사는 “정씨가 형 정근씨와 함께 LA인근 뉴포트비치에 살았다”고 증언했다. 두 형제가 나란히 LA에 거주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근씨는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자주 LA를 왕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한근씨에 대한 소재파악은 검찰이 수사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국검찰, 한근씨 수사에 무관심


LA지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한근-정근 형제는 한보사태 이후 LA로 건너와 자주 룸살롱에 드나들었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와도 수차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지인들에 따르면 이들은 처음 주변사람들을 의식해 뉴포트 비치가 인근 수백만 달러짜리 저택을 구입해 거주했지만 곧 LA 한인타운과 밀접한 베버리힐스의 호화콘도로 옮겨 지인들을 자주 초대했다.
당시 한근씨는 한국 국적의 여권 외에 카자흐스탄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미국 국적을 취득한 것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 검찰은 그를 기소 중지시키고는 이후 별다른 후속조치를 하지 않아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본지가 입수한 정한근씨에 대한 기소장에 의하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를 만들어 2520만 달러에 판 것처럼 허위 서류를 꾸며 국내에 신고하는 방법으로 그 차액(3270만 달러)을 빼돌렸다. 이는 명백한 범죄행위다.
또 무려 294억원의 세금을 체납한 그에 대해 한국 검찰은 미국 수사기관에 범죄인 신병인도 요청도 하지 않았다. 다른 정보에 의하면 정씨는 국내의 한 코스닥 상장업체와 공모해 자신이 추진하던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권을 제3 회사에 우회 상장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최근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을 빌미로 막대한 차액을 챙긴 코스닥 상장업체 T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아직 사실로 확인된 것은 없다. 그러나 정씨와 T사 대표 B씨가 오래 전부터 깊은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전혀 터무니없는 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끝나지 않은 한보 사태







지난 1997년 당시 한국의 재계 서열 14위던 한보그룹이 부도를 맞음에 따라 이와 관련된 권력형 금융 부정과 특혜 대출 비리가 드러났다. 이 사건은 건국 이후 최대의 금융부정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대기업인 한보그룹이 부도를 내면서 불거졌다. 부실 대출의 규모가 5조 7000억여 원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여서 온 나라가 술렁거렸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이 전 국민적인 관심을 모은 것은, 정태수 당시 한보그룹 총회장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대출하는 과정에서 정계와 관계, 금융계의 핵심부가 서로 유착해 엄청난 부정과 비리가 행해졌기 때문이다.
한보그룹은 1990년부터 5조원 규모의 당진제철소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 차원의 견제를 받은 일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건설부가 부지매립 허가를 9개월 만에 내주었음은 물론, 통상산업부(지금의 산업자원부)는 검증도 되지 않은 코렉스 공법의 채택을 적극 권유하기까지 했다.
철강업계에서는 한보의 경영능력으로는 이 같은 거대 프로젝트의 실행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음에도 한보는 1조원 규모의 코렉스 설비를 도입해 계속 철강사업을 밀어붙였다.
한보는 처음 제철소 투자비를 2조2800억 원으로 책정하였으나, 2년 만에 5조7000억 원으로 불어났다. 이 액수는 한보철강이 1994년 말 산업은행 주도로 11억2900만 달러의 외화를 대출받은 이듬해부터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해 1995년 1조4300억원, 1996년에 2조원이 늘어났다.
이렇듯 대출금 규모가 늘어난 것은 정부와 채권은행단이 한보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투자비를 계속 지원했기 때문인데, 한보는 이 와중에도 18개의 회사를 인수하거나 설립하는 등 계속해서 사업을 확대하고 있었다.
결국 은행들은 한보철강에 거액을 물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금융계는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상세한 검토도 없이 외압에 따라 대출을 결정하였다고 주장하였고, 실제로도 3개의 시중은행이 사업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은행감독원 등 금융감독기관도 동일인 여신한도를 넘어선 한보철강에 대한 제일은행의 편법 지원에 대해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고 가벼운 문책만 함으로써 감사원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더구나 조사 결과 한보철강이 금융기관 대출금 가운데 유용한 자금이 2136억 원에 불과하다고 밝혀짐으로써 조사의 신빙성에 대한 의문은 물론, 한보 부도와 관련한 각종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1997년 5월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이 공금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한보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과 전직 은행장 등 10명이 징역 5~20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는 정태수 회장이 얽힌 부정·비리행각 중에서도 빙산의 일각이라는 평가와 함께 사건은 시간 속에 묻혀버렸다.
사건이 발생하면서 제철소가 있는 충청남도 당진 지역은 부도 여파로 인해 171개의 영세업소와 외상 거래자들이 빈털터리가 되었고, 국가 대외신용도가 급격히 하락해 국가 경제가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됐다. 금융계에도 여파가 크게 미쳐 시중은행장들이 쫓겨나거나 구속되었다.
국회에서는 한보사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열려 58명의 증인과 4명의 참고인이 채택되었으며, 이른바 ‘정태수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 33명이 줄줄이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와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운영차장 김기섭씨 역시 이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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