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한미은행 대출책임자’ 존 박 전무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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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미주중앙일보 박인택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데 이어 또 한 명의 한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한미은행의 대출 최고 책임자인 존 박 전무가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것. 인기 배우 최진실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는 등 본국을 강타한 ‘자살풍조’가 이곳 한인사회까지 번져 동포사회는 충격과 당혹감에 휩싸였다.
현재 부실대출 문제 등으로 곤경에 처한 한미은행(행장 유재승)에서 전무 겸 최고대출책임자(CCO)로 재직 중이었던 존 박(57)씨가 지난 14일 라크레센터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이가 한미은행 대출 최고책임자여서 한인사회에서는 자살 이유를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고질적으로 벌어진 한인은행가의 융자 브로커 사이에서 빚어진 갈등이 원인일 것이란 추측도 나오고 있다.
금융계와 지은들을 통해 전해진 박씨의 자살 동기는 은행 부실대출과 관련한 사후정리를 두고 자신과 관계없는 여러 책임에 대해 이사회와 경영진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준 탓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주변인에 따르면 박씨는 평소 내성적인 성격으로 한인은행권 보다는 미국 금융권의 ‘스탠다드’한 근무 여건에 익숙한 인물이었다. 여기에 아내와 별거를 하는 등 가정불화도 박씨를 괴롭힌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해당 은행이 박씨의 죽음을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실무 책임자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릴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는데 한미은행은 내부쇄신과 근무환경 개선은커녕 약점 감추기에만 여념이 없다는 얘기다.
사건이 발생하자 한미은행은 긴급회의를 소집해 입장을 정리하기 위한 격론을 벌였다. 하지만 결론은 ‘조용히’ 아무런 입장도 발표하지 않고 고인의 사망 사실만 공식적으로 알리는 수준에서 결론이 내려졌다.
고인의 장례는 지난 19일 오후 3시 위티어의 로즈힐스 메모리얼팍(3888 Workman Mill Road)내 힐사이드 채플에서 가족 및 은행 동료들과 커뮤니티 조객들이 참석한가운데 엄수됐다.
                                                                                               <성진 취재부기자>







지난해 9월 박씨가 영입될 당시 한미은행은 부실대출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유재승 신임행장이 부임하며 구조조정이 한창이었다. 특히 박씨가 입사하기 2개월 전인 지난해 7월 미국 주택시장의 호황을 이끌던 인디맥 뱅크의 주가가 10센트로 급락하며 연방정부에 의해 전격 폐쇄되는 대형 사건이 터져 금융권이 어지럽던 때였다.
이 여파로 한인은행권이 주로 취급하던 상업용 대출에 상당한 차질이 생겼고 한미은행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당시 분위기로는 상장은행으로 연방정부 구제금융을 받지 못한 한미은행에 대해 파산가능성 조차 언급될 정도였다. 유재승 신임행장을 맞이한 한미은행은 한인은행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인 65명의 직원을 해고해 업계 안팎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었다.
당시 한미은행은 60명을 해고한다는 기본방침에서 특정부서를 통폐합한다는 명분으로 일부를 자른 뒤 중간계층을 가지 치듯 감축, 목표 인원수를 채웠다.
평소 상사에게 직설적으로 ‘직언’을 한 행원이나, 은행에서 바른말을 했거나, 또는 상사에게 ‘괘씸죄’에 찍힌 행원들이 해고 대상에 포함됐다는 이야기다. 이들에 대한 살생부가 공공연히 거론되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특히 한미은행 이사들의 ‘자기사람 봐주기’는 유명했지만 당시 사태를 지켜보는 행원들은 이를 실감했다는 후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한미은행은 증자를 해야 할 형편이지만 여러 가지 여건이 녹록치 않았다. 더구나 대출을 중단한 채 부실대출을 정리해야 하는 존 박 전무로서는 미국은행에서 익숙한 분위기와 전혀 다른 직책을 맡아 ‘막막한’ 심정이었을 것이란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부실대출로 어려움을 겪어 온 한미은행은 박씨가 부임한 이후 지난 1년간 신규대출을 거의 중단한 상태였다. 그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부실대출 사후관리였다. 한미은행 내부 생리상 부실대출을 야기한 경영진이나 여기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이사들의 눈치를 봐야했다는 얘기다.
박씨는 그동안 근무했던 미국계 은행의 분위기와 시스템과는 생소한 한미은행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끝내 ‘왕따’를 당했다는 게 주변인들의 말이다.
여기다 부실대출 정리를 위해 거액의 채권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일부 브로커들 사이의 알력다툼이 박씨를 벼랑으로 내몰았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이해관계에 얽힌 브로커들의 모함으로 이사회에까지 관련 보고가 올라가 해당 직원이 내사 대상이 되는 경우는 과거부터 쭉 있어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박씨는 은행 안팎으로부터 “뒷돈을 받았다” “공금횡령을 했다”는 악성 루머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부 이사들과 경영진의 부담스러운 시선도 문제였다. 박씨의 자살이 이 같은 은행 안팎의 병폐에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한인은행권 스스로가 폐단의 상태를 점검하고 정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게 업계 종사자들의 전언이다.


박씨 은행 안에서 ‘왕따’


지난 15일 LA카운티 검시국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14일 오전 11시40분께 라크레센터 자택에서 목을 매 숨져있는 것을 가족들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LA카운티 검시국은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짓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박씨는 자살하기 전날인 지난 13일까지 정상적으로 출근해 일부 지점을 직접 돌아보는 등 정상적으로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변에서는 박씨가 재혼한 부인과 최근 이혼수속을 밟고 있었으며 별거상태라고 전했다. 한 지인은 “(박 전무가)은행에서 부실대출 관리로 가뜩이나 FRB 감사와 감독국의 감사 등으로 힘든 상황에서 양육권을 빼앗겨 사랑하는 딸과 떨어진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 지인은 이혼 사유가 박씨 부부의 사생활과 딸의 장래 걱정, 업무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게 아니냐고 풀이했다.
박씨의 가정불화는 2개월 전부터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재혼해 놓은 딸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다. 딸이 원하는 것은 뭐든 해 줄 정도로 헌신적인 아버지였다. 그런 딸을 양육권 문제로 떠나보내자 박씨는 큰 심리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인들에게 “딸을 지키고 싶다. 딸과 함께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를 지켜본 지인들은 박씨가 개인적으로 조용한 성품의 인물이나 때로는 ‘할 말은 하는 성격’이라고 표현했다. 일부에서는 그가 최근 조울증과 우울증을 겪었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한 지인은 “누구나 직장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가벼운 우울증은 지니고 있는 것”이라면서 “우울증 때문에 자살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자살 신드롬 우려


아직까지 박 전무의 자살 동기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 발표에서도 유서는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인들이 전하는 대로 이혼으로 치닫고 있던 가정불화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한인은행권의 고질적 병폐에서 야기된 압박감 때문이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특히 이민 1.5세로 우리말보다 영어가 더 편했던 그에겐 적응하기 힘든 한국식 직장문화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곧고 깔끔하기로 소문 난 그에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했는지는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 타운의 여론이기도 하다.
이번 박씨의 자살사건으로 올 들어 미주지역에서 한인들의 자살 사건이 끊이지 않으면서 한인사회에 자살 바이러스가 번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일보는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생활고에 지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고 한인사회 지도층에 있는 인물들이 남모를 고민을 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충격을 주기도 했다며 이런 사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여배우 장자연의 자살 등 한국에서도 유명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충격적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미주 한인들에게도 자살이 일상용어처럼 등장해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존 박 전무가 자살하기 한 달 전인 지난달 1일에는 남편과 가정불화를 겪던 김명덕(57)씨가 남편이 운영했던 자동차 정비업소를 찾아가 분신자살했다. 또 지난 8월 23일에는 LA한인타운 아파트에서 40대 윤모씨가 권총으로 자살했고 7월12일에는 하와이언 가든의 한 바디샵에서 신모(39)씨가 목을 매 자살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6월7일 박인택(58) 중앙일보 미주본사 사장이 글렌데일 자택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신문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자살과 우울증의 연관성에 대해 한인들이 개방적인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순자 상담심리학 박사는 “한국 문화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더 신경을 쓰고 자신의 지친 마음에는 소홀한 경향이 있다”며 “죽으면 더 이상 평가 받고 괴로워할 일도 없다는 생각에 자살을 선택하는 한인들이 많다”고 원인을 분석했다.
정신과 전문의 수잔 정 박사는 “45~59세 남성들의 경우 중년기 호르몬 등 신체적 변화와 사회적 지위 등 환경적 변화, 고독감 등 심리적 변화가 발생하면서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극심한 고민이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먼저 말은 못해도 식구나 친구의 도움을 원하기 때문에 관심을 보여주며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현지 언론은 금년 들어 한인사회의 자살은 급증현상을 보이고 있다며 생활고를 비관한 빈곤층의 자살뿐 아니라 사회 인사들의 자살도 늘어났다고 밝혔다.
그리고 전문가의 말은 인용해 남의 눈에는 자살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엘리트층의 자살은 ‘사회적 평가를 잃게 되면 모든 것을 상실했다는 절망감에서 온다’고 전했다.







존 박 전무는 누구?







밸리지역 라크레센터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한미은행 존 박 전무는 코리아타운 은행권에서 잘 알려진 인사였다. 한인은행들이 합심해 타운 봉사활동을 할 때도 자진해서 참여해 타운 사람들과도 잘 어울렸던 인사였기에 그의 갑작스런 자살은 타운의 경기침체와 맞물려 더욱 우울한 소식이 되었다.
존 박 전무는 하나금융, 세리토스 소재 게이트웨이 비즈니스 은행 등을 거쳐 지난해 9월부터 한미은행 CCO로 근무해왔다. 그는 영입되면서 연봉 7만 달러에 수당까지 합해 8만2000 달러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1.5세 선두 그룹인 그는 재외공관 업무를 담당한 부친과 함께 중학교 때 도미해 LA하이스쿨과 롱비치 칼스테이트 대학을 졸업하고 주 은행 감독국에 들어가 본격적인 은행 업무 수업을 받았으며 미국계 은행에 오랫동안 근무했다.
그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게이트웨이 비즈니스 뱅크에서 4년 동안 부행장 겸 최고 대출 책임자(CCO)로 근무했고, 이전에는 1998년에서 2004년까지 하나금융에서 수석부사장으로 근무했다.
또한 1997년부터 1998년까지 퍼스트 스테이트 뱅크 오브 서던 캘리포니아에서 최고대출책임자 그리고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중앙은행에서 부행장으로 근무했었다. 한편 그는 1976년부터 1981년까지 4년 동안 캘리포니아 은행국에서 감사관으로 활동했다.
그의 경력에서 나타난 것처럼 그는 미국계 은행에서 최고대출책임자로 경험이 풍부했던 은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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