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 터트린 월가, 노동자 목숨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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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끝났나. 미 금융가가 다시 흥청이고 있다. 지난달 14일 미국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이하 다우지수)가 1만 포인트를 회복했다. 이날 다우지수는 전날보다 144.80포인트 상승한 1만15.86을 기록했다. 우량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지수도 이날 18.83포인트 상승한 1092.02로 장을 마감했으며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도 32.34포인트 오른 2172.23으로 마감했다.
겉으로 보기엔 미 금융권에 불어 닥친 경제위기 먹구름이 완전히 걷힌 모양새다. 금융권은 연말을 맞아 대대적인 보너스 잔치를 준비 중이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팍팍한 서민 경제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다우지수와 함께 치솟은 실업률은 서민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수치다.




다우지수 53% 급등, 실업률은 17%까지







다우지수가 1만 포인트를 돌파한 것은 금융위기의 암울한 그림자가 월스트리트를 공황 상태로 몰아간 지난해 10월 3일 이후 1년여 만이다. 다우지수는 지난 3월 10일 6547.05까지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이후 반등에 성공, 1만 포인트까지 돌파했으니, 7개월여 만에 무려 53%나 치솟은 셈이다. 같은 기간 S&P 지수와 나스닥도 3월 초 대비 각각 61%와 71% 반등했다.
이날 증시가 상승세를 이어간 원동력 중 하나는 거대금융사 JP모건체이스의 3분기 실적 발표다. 자산 규모로 미국 제2대 은행인 이 업체는 3분기에만 35억9000만 달러의 수익을 냈다고 밝혔다. AP통신은 이를 두고 “증시 안팎의 예상치보다 7배가량 높은 수치”라고 전했다.
과연 샴페인을 다시 터뜨려도 좋은 걸까?
“지난 9월 한 달 동안 미 50개 주 가운데 23개 주에서 실업률이 상승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부문을 중심으로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43개 주에선 평균임금 하락세가 이어졌다.”
워싱턴타임스는 지난달 22일 보도에서 미 노동부에 딸린 노동통계청(BLS)의 자료 내용을 바탕으로 이렇게 전했다. 금융위기를 극복한 듯 경쾌해 보이는 월스트리트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실제 미시간주(15.3%)를 비롯한 14개 주에서 실업률이 두 자릿수를 넘어섰다. 플로리다주(11%)·로드아일랜드주(13%)·네바다주(13.3%) 등지에선 ‘사상 최악’이란 말이 되풀이해 흘러나오고 있다.
미 전체를 놓고 봐도 실업률은 지난 8월에 비해 0.1%포인트 상승한 9.8%를 기록했다. 지난해 9월 미국의 실업률은 6.0%였다. ‘26년 만에 최악의 상황’이란 말도 괜한 소리가 아닌 게다.
노동통계청의 자료를 좀더 살펴보자. 9월 말 현재까지 미국의 실업자는 모두 1510만에 이른다. 이 가운데 35.6%는 6개월 이상 일자리가 없는 장기실업 상태다. 실업률 통계에서 빠지는 ‘숨겨진 실업자’도 무시할 수 없다.
나빠진 경제 상황으로 인해 파트타임 일자리를 전전하는 불완전 고용인구가 약 920만 명에 이른단다. 여기에 통계조사에 앞선 4주 동안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실망 실업자’도 약 220만 명에 이른다.
진보적 시사주간지 ‘네이션’은 지난달 16일 인터넷판에서 “불완전 고용인구와 실망 실업자들까지 실업률에 포함시키면, 미국의 공식 실업률은 17%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면서,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을 가압류당하는 사례도 ‘사상 최고치’를 웃돌고 있다. CNN은 지난달 15일 “3분기에만 미 전역에서 93만7840채의 주택이 가압류됐다”며 “특히 실업률 13.3%를 기록한 네바다주에선 23가구당 1가구 꼴로 주택 가압류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암담한 소식이다.
이 같은 현실은 지난 9월 30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하트리서치가 내놓은 설문조사 결과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업체가 경제정책연구소(EPI)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조사결과, ‘지난 1년 새 가까운 주변 사람 중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7%가 ‘그렇다’고 답했다.
같은 기간 ‘가까운 사람 중 경제위기로 노동시간이 줄거나 임금이 깎인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엔 응답자의 61%가 ‘그렇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85%가 ‘미국이 여전히 경기침체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답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골드만삭스 평균 상여금 65만 달러 넘어


흥미로운 것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이 여러 경제주체에 미친 영향을 묻는 질문에 대한 반응이다. ‘거대은행’에 관해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응답자의 62%는 ‘큰 도움이 됐다’거나 ‘상당한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54%가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하지만 일반 노동자 가정에 도움이 됐다는 응답은 13%에 그쳤고, 응답자 자신이나 그 가족에게 도움이 됐다는 답변은 10%에 그쳤다. 바야흐로 ‘불만의 계절’이다.
다우지수가 1만 포인트를 돌파한 다음날인 지난달 15일, 또 다른 거대은행인 골드만삭스가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골드만삭스가 이날 내놓은 11쪽 분량의 실적보고서를 보면, 2분기 종료일인 지난 6월 28일부터 3분기 종료일인 9월 25일 사이 이 업체가 올린 수익은 모두 123억7000만 달러에 이른다. 가히 눈부신 성장세다. 하지만 미 언론이 정작 주목한 것은 보고서의 ‘지출·비용’ 항목에 등장하는 ‘임금 및 상여금’ 내역이었다.
지난 상반기까지 이 업체는 전체 수익의 48.3%에 이르는 약 114억 달러를 ‘임금 및 상여금’으로 책정해둔 바 있다. 이 업체는 3분기에도 수익의 43.3%에 이르는 약 54억 달러를 같은 명목으로 떼어뒀다.
CNN방송은 지난달 16일 “이로써 9개월 만에 약 168억 달러를 임금과 상여금으로 쌓아놓은 셈”이라며 “이는 3만1700여 명의 임직원에게 1인당 52만6814달러씩 지급할 수 있는 액수”라고 전했다.
4분기에도 성장세를 이어간다면 연말까지 임금을 포함한 각종 상여금으로 이 업체 임직원 1인당 65만 달러 이상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금융위기 당시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을 통해 1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았다.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금융기관은 임직원의 임금과 상여금 지급에 일정한 제한을 받게 되는데, 골드만삭스는 이미 지난 7월 이를 모두 변제했다. 이 업체는 심지어 “애초 구제금융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는 말까지 시장에 흘리고 있다. 살 만해진 모양이다.
‘대마불사론’에 기대 금융위기를 버텨낸 거대금융사들은 위기 이전에 비해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이 나아졌다. 첫째, 리먼브러더스·베어스턴스 등 경쟁업체들이 파산했다. 출혈 경쟁에 나설 이유가 없어진 게다.
둘째, 투자은행에서 은행지주회사로 탈바꿈하면서 연방정부의 자금을 끌어다 쓰기가 수월해졌다. ‘제로금리’로 자금을 빌려올 수도 있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지급보증을 받아 채권을 발행할 수도 있게 됐다.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 형국이다.
물고 물렸던 ‘투기판’에서 ‘판돈’을 회수할 수 있게 해준 ‘숨겨진 구제금융’의 도움도 컸다. 지난해 미 연방정부는 최대 보험사인 AIG에 850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구제금융을 쏟아 부었다.
지난 3월15일 뉴욕타임스 보도를 보면, AIG는 이 자금으로 자사가 운용하던 파생금융상품에 무분별한 투자를 했던 골드만삭스(129억달러)·메릴린치(68억달러)·뱅크오브아메리카(52억달러)·시티그룹(23억달러)·와코비아(15억달러) 등의 투자금을 되갚았다. 잘못된 투자로 본 손해를 세금으로 메운 셈이다.


구제금융에 숨통 튼 대형은행, 과거로 회귀?


기력을 회복했으니, 당당히 과거로 돌아가려는 모양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22일 지면에서 “금융권이 정치권 로비활동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이 전한 내용을 보면, 지난 9월 한 달에만 모건스탠리가 11만 달러를 민주·공화 양당에 뿌렸고, JP모건(5만 달러)·뱅크오브아메리카(4만4천 달러)·골드만삭스(3만7천 달러)가 그 뒤를 이었다. 미 의회는 금융서비스 개혁 법안을 놓고 한창 격론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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