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탈북자의 가슴 아픈 ‘탈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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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망명자 지원회’(회장 로베르토 홍)는 지난 5일 타운 내 LA한인침례교회에서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탈북동포들의 문제를 다룬 타운홀 모임을 갖고 한인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는 탈북자들을 비롯해 탈북자 사역을 하는 교역자, 인권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또한 강석희 어바인 시장이 참석해 탈북자들을 격려했다.
모임에서는 두 명의 탈북자들이 자신들의 탈북과정과 미국에서의 삶에 대한 간증을 전했다.
한 50대 여성 탈북자는 미국에 와서 가정부로 돈을 벌어 신학교에 입학한 과정을 토로해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탈북 이후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유학생으로 미국에 온 다른 젊은 여성 탈북자는 “우리는 더 이상 비주류 인생이 아니다”면서 “탈북자 중에서도 국회의원이 나와야 한다. 나도 열심히 살아 통일한국의 교두보가 되겠다”고 말해 청중들의 공감을 얻었다.
탈북망명자지원회 실행위원인 김동진 목사는 “현재 LA지역에서만 2005~2007년 사이 40~50명이 망명을 신청했고 이 중 일부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망명을 신청한 것”이라며 “이들이 성공적으로 망명할 수 있도록 지원회 차원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 탈북망명자지원회는 지난동안 탈북자들의 의료문제를 인도적인 배려로 무료 치료를 한 버몬치과종합병원의 류근주 원장, 미션종합치과병원의 정원중 원장 그리고 기독 한의사 협회 박동우 회장 등 3명에게 감사패를 증정해 고마움을 표했다.
탈북자들이 가장 고통을 받고 있는 질환중의 하나가 치아문제이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어금니가 없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하지만 미국에서 보험도 없는 탈북자들이 치과치료를 받는다는 것이 힘든 일이다. 이같은 사정을 전해들은 류근준 원장 등은 탈북자들의 치과질환을 무료로 치료해주었다.
                                                                                             <성진 취재부 기자>



이날 행사에 특별연사로 초청된 강석희 어바인시장은 “지금까지 나는 탈북자들과 어떤 대면도 없었는데 오늘 이자리가 너무나 감동적이고 의미가 있다.”면서 “오늘 두 분의 간증에서 100여년 전 이 땅에 사탕수수농장 일꾼으로 온 선조 이민들이 겪은 어려움과 일맥상통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성경 말씀에서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수많은 열매를 맺듯이 “탈북자 여러분이 뿌린 씨앗이 통일시대를 여는 열매가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그는 이날 “탈북 망명자들에게 주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서 “개성 상인 부친으로부터 ‘너희들은 신의로 살아가라’는 좌우명으로 살아왔다. 이것이 오늘 나를 이자리에 있게 만들었다.”면서 탈북동포들에게  “절대로 희망과 꿈을 버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극히 평범했던 자신이 이민1세로서 오늘날 미국에서 잘 알려진 어바인시의 시장이 된 것도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강조했다 .
강 시장은 한국에서 성장해 이민와서 겪었던 어려움과  비즈니스로 성공해 정치인으로 성장하게 된 동기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면서 “우리는 남과 북에서 따로따로 미국에 왔으나 통일한국과 북한 동포를 위한 밀알이 되자”고 호소했다.


탈북망명자자원회는 어떤 단체


현재 미국에는 북한을 떠나온 탈북자들이 200여 명 정도가 머물고 있으며 그 중 100여명이 LA 등 서부지역에 살고 있다. 이들은 2004년 미 국회에서 통과된 북한 인권법에 따라 망명자로 이민을 신청을 하게 되면 영주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이민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정치적인 문제도 있거니와 연방이민국에서는 제 3국, 특히 한국을 거쳐 온 탈북자들에게는  영주권을 부여하는데 주저하고 있는 실정이다.
탈북망명자 지원회는 탈북 망명자들의 미 정착 지원활동을 하고 있는 봉사단체 중의 하나다. 대표인 로버트 홍 변호사와 김동진 목사가 앞장서고 있다. 지원회는 탈북자들 문제를 위해 세미나나 토론회 등을 개최해에는 탈북자들에게 도움을 주어왔다.  그런 결과로 영락교회 등 지원 단체들은 탈북자들에게 장학금을 약속했고 버몬 치과병원 등은 무료치료를 약속했다.
그리고 지원회는 세미나 등을 통해 탈북자들을 위해  미국 내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험혜택, 주거문제, 음식제공, 공교육에 대한 프로그램을 안내했다.



이 단체는 지난 7월에도 LA기독교윤리실천운동(공동대표 홍진관)과 연대해 탈북자지원을 위한 포럼을 개최했다. 당시 포럼에서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 망명자는 200여명이며 이중 약 50여명이 LA 일원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으며 이 중 70여명이 미 정부에 망명 또는 난민지위 신청을 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로버트 홍 변호사는 포럼에서 10명 미만의 탈북 망명자들이 영주권을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많은 탈북자들이 망명 또는 난민지위 신청을  했으나 수 년 째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히면서 이들을 위한 한인 사회의 체계적인 정착지원이 절실하다고  한인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또 홍 변호사는 컴퓨터나 인터넷 사용에 서툰 탈북 망명자들은 한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미국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취업, 주거, 건강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포럼에는 LA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군 포병 출신의 탈북 여성 이화자(59, 가명)씨가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출석해 탈북 및 미 정착과정을 설명했다. 이씨는 “탈북자를 경원시하는 남한 출신 한인들의 차가운 시선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당시 포럼에서 한국일보 옥세철 논설위원은 북핵 문제와 탈북자 문제 등 북한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중국의 민주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탈북자지원회는 지난해 1월에 탈북자들의 망명 지위 획득을 위한 가두시위를LA다운타운 연방법원 앞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시위에는 LA기독교 윤리 실천운동본부와 탈북난민들의 망명을 도와온 워싱턴 DC의 사랑나눔의 터 조윤희 대표가 참가해 탈북민들의 인권보장을 요구했다.
이날 시위는 미의회가 지난 2004년 북한 인권법(NKHRA)을 제정해 탈북민들의 미국망명을 허용했으나 지난해 4월 이민행정법원이 이 조항을 왜곡 해석해 탈북민들의 망명 지위를 줄 수 없게 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탈북자들의 소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시위에서 홍 대표는 “미의회는 망명을 허용했으나 시행이 불가능한 모순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자유를 찾아 미국에 건너온 탈북자들이 ‘국제 미아’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탈북망명자지원회는 중국내 탈북자 강제송환 중단 결의안(HR234)을 지지해온 연방 하원 에드 로이스 의원과 마이크 혼다의원, 톰 란토스의원(작고)에게 탄원서를 전달한 바 있다.






[탈북자들의 간증요약]

미국에서 가정부로 돈 모아 신학교 입학
“북녘 동포를 위한 사역이 꿈”


이화자(59,여성, 가명)


나는 희망과 포부를 가지고 미국에 왔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감사합니다’로 시작한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계획하여 나를 이곳까지 오게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 곳에 오기 까지 가슴 아픈 사연이 많다. 
북한에서 국방분야에서 근무하다 탈북해 2004년에 한국에 도착했고, 2006년 미국에 왔다. 처음 한국도 모르고 미국도 모른 채 남한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처음 예방주사를 맞을 때 ‘나를  죽이려고 독주사를 놓는 것’ 같아 예방주사 맞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한국에 와서 책을 많이 읽게 되어 어느 정도 사회를 이해하게 되었다. 북한에서의 생활이 잘못됐음을 알게 됐다. 인간세상에서 마음과 정은 다 같은데 ‘김일성만 숭배하는 북한’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하나님을 영접하고 성경을 한자 한자 읽으며, 지난 나의 잘못된 삶을 알게 됐다
평소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의구심 등으로 미국을 꼭 가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미국 비자를 받게 되어 미국에 왔다. 이곳에서 여러 나라 인종들이 함께 사는 것을 보고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또 알게 됐다.
미국에서 무엇보다 신학공부를 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올 때 한국돈 50만원을 지니고 와서 공부할 돈이 필요했다. 처음 간병인 자리에서 일을 했으나 무리가 있어 가정부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아리조나 피닉스를 찾아가게 되었다. 어떻게 가는 것인지  몰라 경찰에게 손짓 발짓으로 쪽지를 보여주며 다운타운 버스 정거장을 찾아 2일을 걸려 아리조나로 가게됐다. 마침 내가 거주하는 집이 기독교를 믿는 분들이라 주일이면 함께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처음 3개월 계약이었으나 6개월 동안 가정부 일로 돈을 저축했으며, LA로 돌아와 다시 2년간 입주 가정부로 일해 또 돈을 저축했다. 그동안 속옷도 사입지 못할 정도로 돈이 필요했다. 오로지 신학교에서 공부하기위한 돈을 모으는 것이다.
이제는 컴퓨터도 배우고, 뜻했던 신학교에도 입학해 행복하다. 한인동포사회에 바라는 것은 우리 북한 동포들의애환을 이해하여 주기를 바라며, 우리 북한 동포들도 낙오자 없이 이 땅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보람이다.
새삼 미국 땅에 먼저 온 많은 한인동포들이 닦아 놓은 이민 터전에 내가 온 것을 다시 한 번 감사하고 먼저 온 동포들에게도 감사한다. 나중에 내 삶이 더 나아질 때 동포사회에 조그마한 감사라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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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위한 교두보가 되고 싶다
자살을 생각하며 4개국을 돌아


김연희(가명, 유학생)


한국에서 7년을 지내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미국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 왔다.
북한 회령에서 출생한 나는 북한생활이 불행했다. 외가쪽 어른들의 ‘친일’ 행적 때문에 우리 집안도 출신성분이 나쁜 것으로 되어 대학도 못가는 신세라서 어린 시절부터 사회적 모순에 꿈과 비전을 지닐 수 없는 고민 속에 지냈다.
외할머니가 기독교 집안이라  어린 시절에 영향을 받았다. 북한에 살면서 나는 두 명의 신을 지녔다. 하나는 하나님이고 또 하나는 ‘김일성’이었다. 북한을 탈출해 4개국을 거처 한국에 정착했다. 탈북해서 각 나라 국경을 넘을 때마다 ‘자살’을 준비하면서 넘었다.  국경을 넘을 때 마다 나는 ‘하나님의 도구로 써달라’며 기도했다. 그 기도를 들어주셨다. 베트남에 도착했을 때 한 식당에서 밥을 주자 ‘정말 탈북하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베트남-캄보디아-태국을 거처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에 왔지만 학연,지연, 혈연도 없어 많은 설음을 받았다.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없이 던진 말이지만 나는 그 말들에서 엄청난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더욱 하나님을 의자하게 됐다. 하나님이 나의 유일한 ‘빽’이었다. 지금 북한은 ‘인간지옥’이다. ‘클로싱’이란 영화가 아주 잘 표현했다. 하나님이 북한을 징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이제 우리도 당당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우리들이 더 이상 이 사회에서 비주류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탈북자 중에서 국회의원도 나와야 하고, 글로벌 시대에서 살아가려면 탈북할 때 초심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젊은 탈북자들이 통일을 위해 우리 자신들이 교두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쓸만큼 채워주신다’라는 말씀대로 살아가야 한다. 항상 하나님 나라안에서 통일역군이 되도록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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