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세종시 원안 고수하는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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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정부가 세종시 원안을 백지화하고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면서 이명박(李明博)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너버렸다. 세종시 원안은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시절(2004~2006) 1년여의 논의 끝에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특별법에 기초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백년대계’라는 명분으로 정운찬 총리를 앞세워 세종시 원안을 백지화하고 세종시 수정안을 제시했다.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핵심부의 구상은 오는 4월 임시국회에서 세종시 수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다. 당초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가 시한을 늦춘 것이다.
그러나 세종시 국회 처리를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인 박근혜 전 대표의 세종시에 대한 입장은 일관되게 ‘원안+α’라는 것이었다. 친박계 중진 의원은 사석에서 “박근혜 대표의 세종시에 대한 입장은 북극성(北極星)”이라고 말했다. 어떤 경우든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박근혜 의원은 정부·여당이 선거 때마다 수없이 공약한 세종시 건설법을 수정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약속위반이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세종시 수정안은 사실상 박근혜 의원의 실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게 친박계 인사들의 시각이다. 친박계 인사들로서는 결사항전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한국지사 = 박희민 기자>



물론 세종시 원안 고수가 박근혜 의원의 대선 가도에 어떤 영향을 줄지 현재로선 예측이 불가능하다. 향후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싼 홍보전에는 여러 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박근혜 의원의 완패로 끝날 수도 있다. 친박계 내부에서도 ‘상황에 따라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당장 보수층과 수도권 지지층의 이탈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통과 불가능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의원 입장에서는 일관된 ‘원안 + α’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 친박 측의 인식이다. ‘원안 + α’에 대한 입장 변경은 그야말로 ‘백기투항’이나 마찬가지의 결과를 빚는다는 것이다. 친박 측은 “여기서 밀리면 결국 박근혜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이는 노무현 정권 당시의 학습 효과라는 해석도 있다. 노무현 정권에서 차기를 노리던 정동영, 김근태의 경우 대통령의 품에 들어가 결국은 정치적 자산을 까먹는 결과만 초래했다. 특히 ‘세종시 싸움’은 지난 미디어법 통과와는 달리 충청표라는 중요한 대선 승부처와 정운찬이라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라는 인식도 갖고 있다. 박근혜의 굴복은 정운찬의 부상으로 이어지며 이는 결국 대선가도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종시 수정안은 여권핵심의 의도대로 국회를 통과할 수 있나? 결론부터 말한다면 현재 정계 지형상으로는 불가능하다.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은 169석을 갖고 있으나 ‘세종시 원안 + α’를 고수하는 친박계 의원이 60명에 육박한다. 친박연대 8명을 여기에 포함시키면 ‘세종시 원안 + α’를 주장하는 의원 수가 대략 65명이 넘는다.
여기에 민주당(87석)과 자유선진당(17석)도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를 하고 있다. 자유선진당의 경우 비례대표 1번인 이영애 의원만이 당론과는 별개로 세종시 수정안을 찬성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보면 최소 의원 160명 이상이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남은 2개월 동안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도저히 세종시 수정안은 국회 통과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MB 레임덕






여권 핵심부의 시간표대로 세종시 수정안이 4월 임시국회 표결에 부쳐지고 또 현재의 예상대로 부결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장 심대한 타격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주도권을 급격히 상실하고 레임덕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또한 세종시 수정안 부결은 정운찬 총리에게도 치명상을 입힌다. 세종시 수정론 총대를 메면서 차기 후보 대열에 진입한 정운찬 총리는 여권의 차기경쟁 대열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세종시 수정안 부결은 곧 세종시가 원안대로 행정중심복합도시(9부 2청 2처 이전)로 건설되는 것을 뜻한다. 세종시 원안 고수를 주장해온 박근혜 의원으로서는 ‘신뢰의 정치인’ ‘언행이 일치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하게 굳히는 효과를 얻게 된다. 이와 함께 차기 주자로서의 지지기반이 대구·경북에 더해 충청권까지 확대되는 결과를 얻는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충청권의 표심(票心)에 따라 승패(勝敗)가 갈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근혜 의원은 차기 경쟁에서 결정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올라서는 셈이다.
위험부담도 그만큼 크다. 세종시를 둘러싸고 이명박 대통령과 대립하는 모양을 보여줌으로써 ‘국정 발목잡기’로 비쳐질 수도 있다. 이미 친이계 정두언·정태근·김용태 의원 등이 박근혜 의원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이미지에 손상을 입을 가능성도 그만큼 커졌다. 그러나 친박계는 ‘사즉생’의 각오로 싸우겠다는 태세다.
‘세종시 대결’은 친이·친박 간에 감정과 논리 싸움을 넘어 국가운영에 대한 인식과 전략까지 보여주는 전면전으로 비화되고 있다. 이명박의 ‘국가장래론’과 박근혜의 ‘신뢰론’으로 대변되는 여론의 큰 줄기가 이를 보여준다. 현재 친박계 인사들은 ‘세종시 수정이 국가백년대계를 위한 역사적 소명’이라는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계의 주장에 분노에 가까운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친박계 인사들은 정부여당의 세종시 수정안이 사실은 청와대의 ‘박근혜 죽이기’ 작업이 시동을 건 것으로 판단한다. 핵심은 가장 유력한 차기 주자인 ‘박근혜 흠집내기’라는 것이다. 홍사덕 의원은 “수정안이 부결된다는 것은 청와대도 뻔히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정운찬 총리를 앞세워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붙이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외나무 다리의 결투

세종시라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현직 대통령과 유력한 차기주자. 두 사람은 세종시를 보는 관점도 다르고 해법 역시 정반대다. 이 대통령은 정책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반면 박 의원은 정치를 통해 풀려고 한다. 친박 인사들은 “현실적인 힘에서는 불리하지만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말한다. 정치의 힘을 믿는다는 뜻이다.
‘세종시 대결’의 중요한 분수령은 6월 지방선거가 제공할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대통령 지지도와 당 지지율의 쌍끌이 고공행진 속에 치러진 지난해 10월 재보선에서 수도권에서 민주당에 전패(全敗)한 경험이 있다. 정권 중반에 치러지는 역대 지방선거는 집권여당에 대한 심판이라는 유권자의 심리가 작동해 항상 야당에 유리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치러진 두 번의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두 번 다 승리했다.
특히 2006년 지방선거에선 박근혜 대표의 선거지원에 힘입어 전라남북도와 광주광역시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승리했다. 만약 이번에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된다면 여권핵심은 그 책임을 박근혜 의원에게 돌릴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에게 구원의 손수건을 흔들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계는 ‘박근혜 없이 지방선거를 치르느냐 마느냐’ 하는 중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박근혜 의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여권은 세종시 수정안 부결을 전제로 그에게 손을 내미는 ‘출구전략’을 써야 한다.
지금 상태로선 6월 지방선거와 그 이후의 정국은 시계(視界) 제로 상태다. 너무나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당장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현역 단체장이나 후보자들은 어느 쪽에 설 것인지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을 것이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박근혜 의원의 향후 행보와 관련해 갖가지 소문도 흘러나오고 있다. 친박계의 한나라당 탈당설, 민주당과의 연대설 등이 그것이다. 민주당과의 연대설은 고 김대중 대통령이 생전에 박근혜 의원에게 “동서화합의 제일 적임자”라고 말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현재 민주당 지도부도 박근혜 의원에게 “민심을 따르는 정치인”이라고 칭찬하는 등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그러나 친박계 인사들은 탈당설을 일축한다. 한 친박인사는 “대통령의 임기는 정해져 있지만 정당의 임기는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친박 측에서는 이번 기회에 당권 장악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강하다. 세종시 수정안 부결 이후 7월 전당대회에 박 의원이 출마해 당을 확실히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치러지는 19대 총선 공천권, 나아가 대통령 후보 경선과 당내 역학 구도까지 내다본 계산이다. 이러한 친박 측의 정면돌파 승부수가 통할 수 있을까. 장기 여론전의 양상을 띠기 시작한 ‘세종시 대결’의 향배를 여의도 정가가 숨죽인 채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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