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재판에 여야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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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뇌물수수 의혹 사건이 6·2 지방선거의 중요 변수로 떠올랐다.
지난 8일부터 시작된 재판 내용이 알려지면서부터다. 공판 과정에서 검찰 기소의 결정적 증거인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진술이 오락가락한데다, 검찰의 ‘표적수사’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여야의 공수가 뒤바뀌었다.
곽 전 사장은 사건의 핵심인 5만달러 돈 봉투 전달 경위와 관련, 검찰 조사에선 “(돈 봉투를) 한 전 총리에게 바로 건네줬다”고 진술했지만, 11일과 12일 법정에서는 “식탁 의자 위에 두고 왔다. 한 총리가 봤는지는 정확히 모른다”고 발을 뺐다.
결국 1심 선고가 예고된 ‘4월9일’에 정치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곽씨의 진술 번복으로 한 전 총리가 무죄 선고를 받을 경우, 민주당 후보로서 한 전 총리의 서울시장 선거 항로는 탄력을 받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곧장 한나라당의 경선 구도를 격동시킬 수밖에 없다. 물론 한 전 총리에 대해 유죄가 나오면 민주당은 후보 교체가 불가피해지고, 한나라당의 경선은 현재의 구도 속에서 진행될 소지가 농후해진다. 여야가 한 전 총리 재판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도 서울시장 선거판도 자체를 뒤흔들 폭발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한국지사 = 박희민 기자>



검찰이 수세에 몰린 것은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형두) 심리로 진행된 2차 공판부터였다. 검찰 조사과정에서 한 전 총리에게 5만 달러를 직접 건냈다고 진술했던 곽 전 사장이 돌연 “5만 달러를 직접 준 것이 아니라 의자에 두고 나왔고, 한 총리가 봤는지, 챙겼는지는 모른다”고 답한 것이다.
수사부터 공소유지까지 모든 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권오성)는 곽 전 사장 진술 이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곽 전 사장은 이후 공판과정에서도 계속 검찰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왜 총리공관에서 주려고 했느냐”는 질문에는 “(평소) 총리를 만날 수가 없어서”라고 답변, 한 전 총리와 곽 전 사장이 두터운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검찰의 주장과 배치되는 발언을 이어갔다.
“돈봉투를 양복 윗도리에 넣고 총리공관을 방문했다”는 곽 전 사장의 진술을 입증하려 했던 검찰의 노력도 사실상 수포로 돌아갔다. 검찰은 5만달러를 넣은 양복 윗도리를 준비했지만, 곽 전 사장이 이날 휠체어를 타고 링거를 주사한 채 법정에 출석한 탓에 그 옷을 입혀보지도 못했다.


강압수사 의혹 제기

특히 곽 전 사장은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로 너무 힘들었다”며 “조사받을 때 검사가 너무 무섭게 조사해 죽고 싶었다”고 밝혀 검찰을 재차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후에도 “12시까지 검찰청에서 조사받고, 새벽 1시까지 면담을 했다. 구치소로 돌아가면 새벽 3시가 될 때도 있었다. 심장병 수술 한 사람에게 너무 힘들었다”며 지속적으로 이 부분을 언급했다.
이에 검사는 “조사 받다가 아픈 날은 쉰 날도 있었다”고 반박했지만, 검사의 반발에도 곽 전 사장은 “그때는 검사가 호랑이보다 더 무서웠다”고 맞받아 쳐 일순간 법정이 술렁이기도 했다.
승기를 잡은 한 전 총리 측은 “곽 전 사장이 오찬 당시 한 전 장관의 의상, 동석자들의 도착 순서, 당시 나눈 대화 등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유독 검찰 조서에는 한 전 총리가 정세균 당시 산자부 장관에게 자신을 잘 부탁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기록돼 있다”며 검찰 수사 자체에 이의를 제기했다.
한 전 총리 측의 이의제기와 곽 전 사장의 발언으로 당황한 검찰은 공소시효가 완성돼 공소장에 기재하지 않은 ‘골프채 선물 의혹’ 카드를 뽑았다. 검찰은 “곽 전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1000만원대 골프채 풀세트를 선물했다”며 그 증거로 골프용품 매장의 지출내역서와 대한통운 서울지사계좌에서 10만원짜리 수표 99장이 지급된 내역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같은 상황을 보고받은 검찰 수뇌부는 당황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돈봉투를 (의자에) 둔 것은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며 “주요 공소사실이 번복되거나 부인된 상황은 아니다”는 입장을 내놨다.




부실수사 논란

그러나 검찰은 전날 열린 3차 공판에서 더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다. 곽 전 사장이 “검찰 조사 때 의자에 돈봉투를 두고 나왔다고 말하지 않고 법정에서 말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정신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곽 전 사장의 진술이 수사의 단초가 됐다”고 공공연히 밝혔던 검찰로서는 ‘정신없는’ 곽 전 사장의 진술에 올인한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또 곽 전 사장은 “검찰 조사 때 말한 것이 진실이냐, 법정에서 말한 것이 진실이냐”는 질문에 “법정에서 말한 것(이 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변호인은 “검찰이 공개한 곽 전 사장 진술조서에는 곽 전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돈봉투를 직접 건넨 것 같다’고 진술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는 점을 강조, 검찰 수사를 다시 한 번 근본부터 흔들었다.
급기야 곽 전 사장은 15일 열린 4차 공판에서 “한 전 총리에게 대한석탄공사나 남동발전 사장 인사와 관련, 청탁을 해본 적이 없다”며 “5만달러는 평소 고마운 마음에 준비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곽 전 사장은 검찰 조사 때 “석탄공사 사장 공모에서 떨어진 뒤 한 전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이 곽 전 사장이 만년필을 선물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고 얼마 뒤 남동발전 사장으로 가게 돼 ‘총리가 신경써줬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곽 전 사장은 이날 법정에서 “순전히 내 추측과 ‘필링(feeling·느낌)’으로 얘기한 것일 뿐”이라며 “한 전 총리가 대통령에게 추천하겠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도 없고, 한 전 총리로부터 사장인사 진행 과정에 대해서도 전혀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고 덧붙였다.
진술경위에 대해서는 “대한통운 비자금 사건으로 조사를 받다가 검사가 ‘2000년과 2004년 정치인들에게 돈을 주지 않았느냐, 대한통운에서도 소문이 많으니 묻겠다’고 했다”며 “전주고 나온 정치인들과 한명숙 전 총리 등을 물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첫 공판 하루 전인 지난 7일 곽 전 사장을 불러 진술 번복 여부를 점검한 것으로 확인됐다.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법정에서 오찬을 마친 뒤 누가 먼저 나왔느냐는 질문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 전 장관은 “당시 모임에 누가 오는지 모르고 갔다”면서도 “곽 전 사장이 올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했느냐”는 질문에는 “전혀 아니다”라고 답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검찰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재경지검의 모 검찰 간부는 “기소 단계부터 이 사건에 대해 검사들의 의견이 분분했다”며 “노 전 대통령 서거 사건 이후 또다시 검찰이 국민적 불신을 받지 않을지 걱정이다”고 밝혔다.
상황이 부정적으로 흘러가자 수사팀의 움직임도 바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 관계자는 “재판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검찰이 발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향후 공판 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며 원론적인 언급만 남기고 구체적인 대답을 피했다.
이처럼 검찰이 조심스러운 입장을 견지하며 다음 공판을 준비 중이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이 내놓을 카드가 예상보다 많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곽 전 사장에 대한 부실·강압 수사’를 반박할 영상물 열람 허용 카드를 이미 사용했으며, 골프채 구입 관련 증거도 제출했다.
이외에 검찰이 반전을 노릴만한 카드로는 현재까지 공개되지 않은 오찬 당시 구체적인 진술과 정황을 제시하는 것과 5만달러의 사용 흔적과 관련된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하는 것 등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선거 영향

민주당은 “기획된 정치수사의 증거”라며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다. 만약 내달 9일로 예정된 1심 선고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질 경우 한 전 총리가 출마를 선언한 서울시장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후보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수도권 선거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지원 정책위의장은 확대간부회의에서 “검찰이 무리하게 짜맞추고 야당, 한명숙 죽이기에 앞장섰다는 게 나타났다”고 기소 취하를 촉구했다. 민주당은 ‘뇌물수수’라는 ‘한 방’을 한숨 덜어냈다며 이번 선거에 대한 자신감도 내비쳤다. 김민석 지방선거기획본부장은 “야당 탄압의 실체가 드러나고, 정권 심판 구도로 가면 전체 선거판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검찰이 뒤집기를 시도하기 위해 숨겨놓은 게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한나라당은 표면적으로 “재판을 지켜보자”면서도 긴장하는 기류다. 한 전 총리가 수뢰 시비에 휘말린 만큼 여론이 호의적으로 흘러가지만은 않을 것이란 기대와, 무죄가 선고되면 한 전 총리 지지 여론이 비등할 수 있다는 예상이 엇갈렸다.
한 핵심 당직자는 “지난해만 해도 서울의 의원들은 강력한 야권 후보가 등장하면 오세훈 시장을 바꾸기가 부담스럽지만, 누가 나와도 이긴다면 오 시장을 교체하자는 쪽이었다”며 “그러나 재판의 여파로 오 시장조차 한 전 총리에게 안 되는 분위기가 된다면 판 자체가 흔들리면서 제3 후보론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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