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폭동과 한인들의 정체성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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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폭동 특집 기획연재
(1) 잊혀진 4.29폭동’의 진실
(2) 4.29 폭동성금의 진실(상·중·하)
(3) 한인정체성 확립과 4.29
(4) 4.29와 흑인민권운동
(5) 4.29와 미주한인사회


코리아타운 6가와 카탈리나 코너에는 MBC 아메리카 미주법인 건물이 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 건물에는 4.29폭동 기념관이 들어서야 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이 건물은 다른 사람에게 매각됐고 이제는 방송국 사옥이 되었다.
4.29폭동 당시, 직접 피해를 당하지 않은 한인 동포들은 신문, 방송 등 각 한인언론사로 달려가 성금을 내놓기 시작했다. 고국에서 수해가 났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누구보다 먼저 이곳 동포들은 고국으로 수재의연금을 보냈다. 이런 동포들이기에 4.29폭동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빼앗긴 이웃들의 참상은 자신의 아픔 그 이상이었다. 
4.29폭동은 우리 한인 미주이민 역사에서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최대 수난이었다. 하지만 그 고통으로부터 한인 커뮤니티는 귀중한 정신적 자양을 발견했다. 바로 한인 정체성의 자각이다. 미국 일간지 사상 최초 한국인 기자로 활동했던 원로 언론인 이경원 기자는 “4.29폭동을 겪은 한인사회는 비로소 1세대와 2세대가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그전까지 1세대는 ‘한국인’이었고, 2세들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서로를 다르게 보았다. 하지만 폭동을 통해 “과연 우리의 뿌리는 어디인가”를 생각하면서 ‘하나의 뿌리’임을 인식하게 됐다는 얘기다. 4.29폭동은 용광로 속에서 분출된 ‘한인 정체성’이라는 귀중한 얼과 혼을 새로 발견한 계기였다.
                                                                                                  <성진 취재부기자>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는 어바인 시 수장으로 선출돼 동포들의 자긍심을 일깨운 강석희 시장은 “4.29폭동은 내가 한인사회를 위해 무언인가를 봉사해야 한다는 자각심을 불어 넣어준 계기였다”고 말했다.
입양아로 미국에 와서 인종차별의 벽을 깨고 미 주류사회의 정치인으로 성공한 신호범(폴 신) 워싱턴주 의원도 “한인사회와 담쌓고 살았던 내가 4.29폭동을 보면서 나의 뿌리를 새삼 찾게 되었다”고 말했다.  
미국사회 곳곳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던 한인들이 4.29폭동이란 상처를 통해 내면에 숨겨진 ‘정체성’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뉴욕대학, 드류대학을 졸업하고 프린스톤신학원에서 기독교 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박길재 목사는 “정체성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어 지는 것이다. 있는 것을 끌어 올리는 것이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체성이 중요한 것을 알지만 인기가 없다”면서 “정체성이라는 말 자체가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난 동계올림픽대회에서 김연아의 피겨 모습과 이상화의 스피드 스케이팅을 비롯해 한국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 우리는 환호했다. 그리고 선수들과 우리가 같은 한인이라는 점에서 행복해 했다. 우리는 올림픽을 통해 한인이라는 정체성을 발견했다. 또 ‘앞으로 우리는 더욱 번영할 것이란 자신감을 지니게 됐다. 이처럼 정체성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줬다.
4.29폭동 이 발생하고 일주일도 안 된 시점에 올림픽가 아드모어 공원(현재 서울 국제공원)에서 시작된 ‘평화대행진’은 우리 동포사회는 물론 국내 동포들이나 미국사회에 크나큰 감동을 주었다. 폭동에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한인사회가 “우리는 모두를 용서합니다.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합시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코리아타운을 행진하자, 한인들 스스로 우리의 단결이 이처럼 거대한 힘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눈으로 되었다. 미국 사회도 ‘코리안’을 더 이상 변방의 소수민족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4.29폭동 1주년을 기념해 USC.정치학과 주최로 1993년 3월 19일 USC 캠퍼스에서 ‘한인사회의 새방향’이란 주제의 대회에서 당시 스티브 샘플 총장은 “LA한인사회는 USC 대학 100년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인 커뮤니티의 비중을 인정했다. 




새로운 가치관

4.29폭동을 통해 우리는 한인끼리만 살 수 없다며 미국사회를 보는 눈을 뜨기 시작했다. 사우스 LA에서 흑인들의 달러를 받아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그 달러는 범죄나 마약으로 번 돈’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흑인들이 어떻게 우리를 보아 왔는지 4.29폭동을 통해서 실감했다. 그래서 우리 주위를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 것도 소중하지만 남의 것도 인정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정체성의 실현이다.
코리아타운에서는 영어를 한 글자를 몰라도 일생을 살아 갈 수가 있다는 농담이 있다. 한인 산부인과에 가서 아기를 놓고 우리 음식, 우리 옷가게 등등 “서울 특별시 나성구”라고도 불리는 타운에서 영어 한마디 안 쓰고 살다가 죽어도 한인 장의사가 한인 묘지에 묻어 준다. 하지만 4.29폭동은 우리를 “우물 안 개구리”에서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1980년대 이경원 기자는 한인사회 취재를 하면서 놀라운 현상을 목격했다. 그것은 한인들이 어려울수록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뻗어 나가는 끈기 있는 민족이라는 사실이었다. 활기차고 대담하고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것이 한인들의 모습이었다. 더욱 대단한 것은 수많은 이민 1세들이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의사, 교수, 엔지니어, 과학자, 변호사, 회계사, 기업인, 공무원으로 잘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눈부신 개인적 성공사례에 고무된 것만큼이나 이 기자를 악령처럼 괴롭힌 우울한 사실이 있었다. 그 것은 분열되고 힘없는 코리아타운, 특히 미 주류사회에서 교육을 받은 코리아타운의 대부분 엘리트 출신들이 어려운 한인 커뮤니티에 대한 봉사와 참여 정신이 없다는 점이었다. 한마디로 이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 (noblesse oblige)’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공동체 의식의 발현


그러나 4.29폭동은 이들 엘리트들에게도 정체성을 일깨워 주는 계기를 마련했다. 4.29폭동은 한인들에게 내 자신 뿐만 아니라 우리 커뮤니티가 함께 해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불어 넣어주었다. 지난날에는 나의 가족, 학벌, 나의 교회만을 주장했다. 그 것이 우리들의 커뮤니티로 확대되어 나갔다. 그래서 내가 한 일이 커뮤니티에도 도움이 되어야 보람이 있다는 가치관을 심어주게 되었다.
이경원 기자는 “4.29가 우리에게 증명한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한인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수많은 빛나는 개인적 명예와 업적을 합친다 해도 경쟁관계와 이해집단으로 점철된 이 나라에서는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 어쩌면 오히려 마이너스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사회에는 커뮤니티 의식이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정체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최초의 흑인 미국 대통령의 탄생 앞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세기 전 이 땅에는 도산 안창호라는 지도자가 있었다. 불행히도 지금은 우리 커뮤니티는 이 같은 ‘롤 모델’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미주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을 부르는 호칭이 무엇일까. 흥사단 단우이며 미주한인재단의 총회장을 역임한 윤병욱 회장은 “우리 한인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미주한인’(Korean American)으로 불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한국에서 해외한인을 동포, 교포, 교민, 재외국민 등의 여러 가지 용어를 혼용한 데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본다”며 간단한 예로 지금도 해외한인을 대표하는 기관의 이름이 ‘재외동포재단’으로 불리어지고 해외한인을 관장하는 법을 ‘재외동포법’이라고 부른다는 점을 지적했다.
윤 회장은 ‘해외한인’이라는 호칭은 나라가 패망했던 191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대한인 국민회 중앙총회 선포문에서 “대한제국은 이미 망하였으나 민주주의 국가는 바야흐로 발흥되며 대한인국민회가 중앙 총회를 세우고 해외한인을 대표하여 최고 대표자치기관으로 책임을 지고 살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할 때부터 사용해 왔다고 설명했다.
또 4월이 돌아온다. 하지만 극히 일부의 한인들만 4.29를 기억하고, 대부분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외면하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기에 모르고 지나간다. 이경원 기자는 “4.29를 잊으면 또 당한다. 엘리트 한인들이 책임을 다해 4.29 폭동진상규명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꿈이 없어진다”고 호소한다. 그 꿈이 바로 정체성을 키워가는 목표이다. 앞으로 한인정체성을 위해서라도 우리자신의 문패부터 정해야 할 것이다.







공동체 의식 표방 4.29폭동피해복구 방안

4.29폭동 당시 1천만 달러가 훨씬 넘는 성금이 모였지만 치욕적인 분쟁사태로 흐지부지 없어져 버렸다. 당시 피해자들의 재기를 도와주고 복구를 위한 자문도 했던 한인공인회계사들은 이 성금을 영원히 보전하고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당장에 눈이 어두운 폭동피해 관련 단체들의 외면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당시의 성금으로 ‘융자보증제도’를 만들어 피해복구비용을 창출하자고 했던 제안을 소개한다.


1. 융자보증제도의 필요성






가) 은행이 정상적인 심사기준으로 대출한 대부금 중 부실이 되는 대부금은 약 0.5% 정도로 통계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폭동사태로 손실을 본 상인들에게 융자심사기준을 대폭 완화하여 융자를 주어도 부실대부 비율은 정상 상태 하에서의 그것에 비하여 10배를 초과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융자보증에 필요한 기금은 보증융자 금액의 5%면 충분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 상술한 융자보증기금으로 폭동성금을 사용하면 골고루 나누어 주는 방법보다 20배의 효과를 내게 된다. 혜택범위의 상승확대를 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골고루 나누어 주는 방법은 1 대1의 효과밖에는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다) 폭동 사태로 피해를 본 한인상인 중에 자격미달로 은행거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금융의 방법으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한 사람도 많다고 추정된다. 스왑밋 상인들이 그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모국에서 가져온 관습으로 해서 장부상의 기록이 실제 영업 실적과 판이한 상인도 많은 것은 공인된 비밀이다.
이 같은 사람들은 당연히 SBA 융자를 포함해 은행의 융자를 받기 어렵다. 그래서 별도의 구제수단을 강구하지 않으면 아런 사람들은 복구대상에서 필연적으로 누락되게 마련이다.
이에 대한 구제책으로 폭동성금을 기금으로 한 융자보증제도는 최적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라) 긴급융자의 필요성(Bridge Loan)
정상적으로 은행거래를 할 수 없는 상인들은 당연히 SBA 융자를 신청하게 된다. 이유는 낮은 이자율과 긴 상환기간 때문이다. 그러나 신청서류가 까다롭기 때문에 서류작성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SBA 기관에서도 심사기간이 길다. 당국자의 말로는 접수 후 3주 이내에 실시된다고 하지만 이는 신청서류가 완벽할 때의 경우다. 대부분의 신청서류에는 미비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럴 경우 수속기간은 더 길어진다.
이런 경우 상인들이 기존 거래선을 놓이지 않고 복구하기 위해서는 긴급단기융자(SBA 융자가 나오기 전까지 사용할 수 있는)가 필요하다. 이런 융자는 그 성질상 약식심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은행에 상당한 신용을 쌓아올린 상인만이 수혜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성금을 기금으로 하여 융자보증을 하면 그 수혜대상이 확대된다.


마) 진정한 피해자에게 혜택을 주자
폭동성금의 무상지급은 그 상환의 의무가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양심대로만 행동하지 않는 한 무자격자와 과다 신청자가 무수히 발생할 수 있다. 또한 그 자격 심사는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극히 어렵다. 따라서 1인당 500달러 내지 1,000 달러 소액을 지급한다는 고육책이 나오게 된다. 이 돈은 당장의 생활비로 쓸 수 있으나 재해복구라는 목적에는 하등의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성금을 기금으로 융자보증의 혜택을 받은 분들은 상환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금액만을 신청하게 마련이다. 융자금도 500달러나 1,000 달러가 아닌 충분한 자금이기 때문에 사업체 복구가 가능하다. 또한 융자보증금액을 전체 대부금의 90%로 제한하게 되면 은행이 10%의 위험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에 실수요자의 심사에 있어서 은행 측이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이 방법을 채용하면 실제로 융자되는 자금은 은행의 10% 무보증 부담분이 있기 때문에 보증기금의 22.2배로 상승되는 효과가 나온다. (이는 부실대부기금을 전체 대부금의 5%로 정했을 경우를 가정한 것임)


바) 보증수수료
SBA의 보증융자가 그렇듯이 은행의 대부를 보증하는 대가로 보증 대상 금액의 1%에 해당하는 보증 수수료를 받게 되면 여기에서 발생하는 수입이 전체 기금의 20%가 된다. 이것을 또 보증기금으로 사용하면 시초 기금보다 더 많은 융자 보증이 가능하게 된다. 


사) 기술적인 문제
융자보증기금을 현실화시키기에는 몇 가지 기술적인 문제가 따른다.
– 부실대부비율을 현실성 있게 측정하는 것이 이 제도 운영의 요체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정상 대분 손실율의 10배인 5%로 책정하면 현실적이라고 판단되나 이는 전문 금융인의 심의를 거쳐 확정해야 할 문제다.
– 이 제도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은행의 협조는 물론, 은행감독국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 이 지역이 재해지역으로 대통령과 주지사가 선포한 이상, 이 같은 승인을 긴급히 받아 내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본다.      


소제 : 2. 4.29 비영리재단의 구상
성금을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 특별한 기구가 필요하다. 그 동안 여러 갈래의 경로로 모아진 성금이 한데로 모아져 통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명제는 너무 당연하다. 그러나 성금관리기구의 형태에 대해서는 마땅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가) 직접관리
자선, 비영리단체를 새로 설립해서 성금 또는 기금을 직접 관리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이 형태의 장점은 우리사회에서 낸 성금을 우리 손으로 직접 관리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비교적 대규모의 비영리단체를 운영해본 경험이 없는 우리에게는 아래와 같은 단점이 들어나게 된다.


1) 우리에게는 비영리단체를 합리적으로 운영할만한 인재가 양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비한인계 전문가를 쓰지 않는 한 관리의 실수, 허비 등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2) 독자적인 비영리단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인건비와 기타 관리 비용이 많이 들게 마련이다.
3) 상기 1)항에 언급한 것을 반복하지만 연방세법 501 C(3)조항에 의거한 비영리단체 운영은 매우 까다로운 것으로서 운영상의 작은 실수로 하여 면세, 감세 특권을 상실할 위험이 항상 있게 마련이다.


나) 간접관리
성금 또는 기금의 관리를 신용도 높고 역사가 오랜 기존의 비영리단체에게 위탁하는 방법이다.
1) California Community Foundation이 그 좋은 예이다. 이 기관은 50년의 역사를 지닌 단체로 가입단체의 지시에 따라 기금을 관리, 처분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기관은 비영리단체 운영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숙한 직접관리에서 발생하는 단점을 피할 수 있다.


2) California Community Foundation 의 경우 관리 수수료를 기금 처분액의 1%만을 받기 때문에 직접관리 비용보다 훨씬 적은 비용이 든다.


3) California Community Foundation 과 같은 주류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기관에 단시일 안에 모은 거금을 넘겨주면 우리 커뮤니티 잠재력을 과시하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주류사회에 대해서도 우리 커뮤니티가 목적하는 기금조성에 동참하라는 유언무언의 압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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