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회관 둘러싼 구설수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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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한인동지회관(2716 Ellendale Pl., LA)을 둘러싼 분쟁으로 LA한인사회가 떠들썩하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대표적 사적지 보존에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선조들에게 부끄러운 처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미주한인 커뮤니티가 제대로 소유하거나 보존하고 있는 유적지가 단 한 곳도 없다는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독립운동의 요람지였던 LA와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한인 이민사적지 중 현재 실질적으로 한인 커뮤니티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사적지는 전무(全無)하다. LA일원에 사적지 건물로 국민회관, 동지회관, 흥사단 단소, 클레어몬트 한인양성소, 초대 한인감리교회 건물 등이 있지만 한인 커뮤니티가 실질적으로 소유한 건물은 동지회관 뿐이다.
그나마 이 건물마저도 최근 경매를 통해 외국인에게 넘어갈 위기에 빠졌다. 현재 건물 소유권에 대해 정통성을 무시한 제3자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바람에 수년간 법정 다툼으로 치욕을 당하고 있다. (별첨 기사 참조)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한인단체들이다. 소중한 이민 사적지에 뿌리를 두고 있는 미주총연, LA한인회, 흥사단 등을 포함한 한인 단체들과 교계, 여기에 한국정부 등도 무관심으로 방치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성진 취재부기자>



미주에 창설된 흥사단은 지난 1935~1980년까지 단소(3421 S. Catalina St. LA)로 쓰던 미주위원부 건물을 1980년 미국인 개인에게 넘기는 수모를 겪었다. 부실운영이 원인이었다. 당시 흥사단 단소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내막은 지금까지도 수치스런 역사다. 심지어 단소에서 나올 때 일부 귀중한 유물들을 방치하고 도망쳤기 때문이다.
최근 흥사단 창립100주년(2013)을 앞두고 이 건물을 되찾으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성사될지 미지수다. 흥사단은 이 단소에서 나온 이후 셋방살이를 하면서 옮겨 다니다 현재 한인회관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약 50만 달러의 기금을 운영 중인 흥사단의 궁핍한 살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민 초기 LA지역 한인감리교회 건물은 1276 W. 29th Street LA에 자리 잡고 있다. 이는 1904년에 창립되어 미 본토에서 제일 오래된 LA한인연합감리교회다. 이 건물은 1945년부터 사용했으나 현재는 외국인 소유의 교회가 되었다.
도산하우스(809 W. 34th Street는 USC대학 구내)는 안창호 선생 가족이 1935~1947년까지 살던 집으로 당시 한인타운이던 제퍼슨과 버몬트 근처에 위치해 국민회, 흥사단 관계자 들 뿐 아니라 이 지역에 살던 한인이 자주 모이던 사랑방 구실을 했다.
원래 집 주소는 954 W. 37th St (McClintoch코너)였으나 USC가 확장하며 학교 구내로 편입됐고 학교 당국은 집을 철거해 학교 부지로 사용하려 했다. 소식을 접한 USC한인동문들은 이 집의 중요성을 당국에 알려 지금 위치로 이전하고 옛 모습으로 복원해 USC한국학 연구소로 사용하게 되었다.



흔적 없이 사라질 뻔했던 ‘도산 하우스’를 USC한인 동문들의 의지로 보전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건물 소유주는 USC다. 그나마 대학 당국이 이 건물의 역사적 의미를 인식하고 있어 다행일 뿐이다.
크레아몬트 한인 학생양성소(215 N. Berkeley Ave. Claremont, CA 91711)는 대한인 국민회의 지원으로 1911년 10월 14일 클레어먼트 대학촌에 2층으로 건립해 한인 학생을 가르치며 민족의 지도자를 양성하던 유서 깊은 건물이다.
이는 수많은 학생의 기숙사로 사용됐고 어린이들을 위한 한글학교도 겸해 한글, 도화, 작문, 창가 등을 가르쳤다. 이 건물은 클레어먼트 Bonita Ave와 Berkeley Ave 만나는 코너가 주소지로 되어 있으나 현재 한인학생양성소는 건물 자체가 없어지고 소방서가 위치하고 있다.


흔적 없이 사라진 유적

USC 인근 제퍼슨 가에 자리 잡은 국민회관은 ‘미주한인 독립운동 사적지 1호’로 불릴 만큼 유서 깊은 곳이다. 하지만 실제 소유주는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가 소속된 미국장로교단이다. 국민회관은 2002년 본국 흥사단, 도산기념사업회와 LA한인사회의 노력으로 그나마 복원되어 국민회관기념관으로 보전되고 있는 것을 유일한 위안으로 삼아야 할 정도다.
이처럼 LA 사적지 현황에 대해 미주한인사적지 사이트(www.koamhistory.com)를 운영하는 김지수 전 LA한국교육재단이사장은 “유서 깊은 우리의 독립운동 사적지를 우리 커뮤니티가 하나도 소유하지 못한 현실이 부끄럽다”면서 “더구나 최근 동지회관도 타인종이 경매 처분하려고 했다는 점에 심각성이 더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이사장에 따르면 LA일원 사적지 이외에도 중가주 지역의 다뉴바 한인교회, 리들리 한인교회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 초기국민회관, 공립협회, 상항한인감리교회 등도 이제는 한인들 손길에서 떠났다.



애초 샌프란시스코 938 PACIFIC AVE에서 탄생한 공립협회의 후신 대한인 국민회는 1910년 8월에 232 PERRY AVE집을 $3,500에 구입하여 회관으로 사용하다가 1914년 12월 24일 1053 OAK ST.의 3층집을 $6,500에 구입 이주 하여 1937년 LOS ANGELES로 이전할 때 까지 회관으로 사용 하였다.      
232 PERRY ST 회관은 1935년 BAY BRIDGE를 건설 할 때 헐리고 건물 자리엔 다리의 진입로 교각이 들어 서 있다. 상항감리교회(1123 Powell St. S F)도 안익태가 애국가를 작곡한 장소로 유명한데 지금은 중국인 절로 변했다.
상항한인감리교회는 미주 한인 초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교회이다. 미주한인이민100주년 기념사업회 SF100년사 편찬위원회가 2003년 발행한 “샌프란시스코한인이민100년사”는 1903년 9월 23일 안창호, 이대위와 유학생 인삼상인 등 10명이 가정집에서 첫 예배를 드리고 후에 감리교회로 발전하였다고 하였다.  
중가주 지역에 독립운동 요람지의 중심교회였던 다뉴바 한인교회는 1912년 10월 15일 204 N. O Street에 대지를 구입하여 건축했다. 이 교회는 당시 한인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위한 집회장소, 자녀들의 한국학교, 결혼식 장소 등 커뮤니티센터 역할을 하였다. 당시 중가주 지역의 과일 농장에서 힘든 노동을 하면서도 한인들은 이 교회가 있어서 이들은 서로 의지하며 역경을 이겨 낼 수 있었다.
이 교회의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한인 이민사에서 큰 역할을 한 대한여자애국단이 창단되기도 하였으며 1920년부터 매년 3.1운동 기념행사를 하고 시가행진도 했다. 특히 1937년에는 인근 지역 들인 Reedley, Sanger, Parlier, Delano등 5개 지역 연합으로 3.1절 기념식을 성대히 거행 하였다.
교인의 수는 많던 때는 150여 명이었고 적을 때는 15명에 불과 하였는데 한인의 수가 감소하여져서 1958년 2월 4일에 교회를 폐지하였다. 현재 이 교회 자리에는 1997년에 다뉴바 경찰서가 건축 되는 바람에 역사적인 이 교회의 흔적마저 사라졌다. 








국민회와 동지회는 일제 강점기 시절 미국 땅에서 조국의 독립운동을 이끌던 양대 축이었다. 특히 이들 단체는 미주독립운동의 두 거목인 도산 안창호 선생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박사가 각각 이끌어 왔다.
대한인국민회관(이하 국민회관, 1368 Jefferson Blvd., LA)은 도산이 중심이고 대한인동지회관(이하 동지회관, 2716 Ellendale Pl., LA)은 이승만 박사가 중심이다.
2010년 올해 일제 강점 100주년을 맞는 해에 두 사적지의 명암이 대조를 이루고 있어 주목이 되고 있다. 국민회관은 2003년 국내외 성원 속에 대규모 복원사업(당시 복원위원장 홍명기)이 이뤄져 국민회관기념관(기념재단 대표이사장 송재승)으로 태어나 한국정부 보훈처의 지원 아래 이민역사관으로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동지회관은 최근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개인적 목적으로 건물 증서를 담보로 하여 이승만 박사 이후 동지회 북미총회장을 지낸 송철 옹의 아들 게리 송씨가 사채를 빌리고도 청산을 하지 않아 경매 처분 통고까지 받는 해괴한 사건이 발생해 동포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그뿐 아니다. 동지회관은 동지회의 회원들 간 싸움으로 수년을 지내는 과정에서 2002년 동지회 건물에 세를 든 교회 이 모세 목사까지 동지회의 대표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이와 관련해 유적 분실, 도난 등으로 또 다른 법정소송이 지금까지 지루하게 진행되고 있다.
동지회관은 지난 2006년 당시 보수(허가없이 보수)가 된 정문현판과 입구기둥을 제외하고는 폐가나 다름없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낡은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흉가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이 같은 얽히고 꼬인 송사 때문에 한국정부나 한인 단체들이 관여하기를 꺼려했다. 하지만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2005년에 동지회 관계자들이 LA 한인회에 도움을 청했으나 “한인회 사무국 관계자의 무책임한 언동에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또 역사적 독립운동 단체라는 흥사단에라도 해보려고 했으나 흥사단 자체가 자신들 단체 꾸려가기에도 힘든 형편이라 포기했다고 했다. 총영사관에도 진정했으나 “본국 정부에 알리겠다”라는 답변만 들었다.
그러나 최근에 “경매처분” 소식이 나돌자 국민회관 복원처럼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다. LA총영사관은 물론 독립운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는 LA한인회, 흥사단, 국민회관기념재단, 한미동포재단, 도산기념사업회, 노인회, 미주광복회 등을 포함해 관심 있는 한인단체들이 한인 커뮤니티를 대신하여 지혜를 모아 대책을 강구하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동지회관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많아 한인 변호사협회 차원에서 법률팀을 구성해 자문 역할을 담당해주기를 커뮤니티에서는 바라고 있다. 올림픽 2관왕인 새미 리 박사도 동지회의 열렬한 후원자였기에 ‘복원위원회’에 참여시킨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김재수 총영사는 “우리 커뮤니티가 함께 고민하여 대책을 세웠으면 한다”며서 “한국정부 관련 부처(보훈처)와도 협의를 진행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김지수 전 한미동포재단 이사장도 “과거 한때 동지회 관계자들이 건물 유지관리를 동포재단에 의뢰한 적도 있었다”면서 “이제라도 관련 한인단체들이 합심하여 대책을 수립할 때가 왔다”고 밝혔다. 안재훈 전 흥사단미주위원장도 “동지회관은 우리 이민사에서 국민회관과 함께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면서 “다 함께 중지를 모아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산권 서류가 관건


본지가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LA지역에서 북미 동지회를 이끌어가던 송철 옹을 위시한 송영창, 김창하, 이상수, 최명렬씨 등과 함께 1943년에 처음으로 1112 36th St.. LA 에 동지회관으로 사용하다가 1950년에 국민회관과 흥사단 단소 인근에 위치한 2716 Ellendale Pl의 건물을 구입하게 됐다. 1924년에 건축된 2층 구조물인 회관은 대지가 16,335 sf이며 건물은 1116 sf 이다.
하지만 당시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외국인 부동산 구입 제한 규정 때문에 송철 옹은 자격이 없어 시민권자인 부인 로사 송 과 그의 언니 그리고 동지회 핵심회원인 매리 이(이범령의 부인) 등 3명의 구입했다. 동지회관에 관련된 재산 등기 서류 등을 포함해 1952년에 송철 옹에 의해 작성된 ‘리빙 트러스트’가 그 후 송철 옹의 세 아들 등 유가족들에게 넘겨졌지만 유가족들은 이 서류들을 동지회에 제출하지 않았다.
북미 동지회는 원래 1973년 10월 21일 총회에서 송철 옹이 총재로 선출되고, 총무에 이상수, LA지역회장에 송영창 등 중요임원이 결정되었다. 그 후 1984년 7월 15일 총회에서 송철 옹이 총재에 재선되고, 총무에 이상수, 재무에 송영창씨 등이 맡았다.
그러나 송철 옹이 1986년에 굿사마리탄 병원에서 사망하고, 2년 후 부인 로즈 송씨도 사망하고, 1989년에 회관 트러스트의 일원인 매리 이씨도 사망하고, 1997년 송영창 재무도 사망하고, 총무인 이상수씨도 한국에서 사망하는 바람에 동지회 후계자 선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2000년대를 맞아 법통 분규가 일어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송철 옹의 3남 게리 송씨는 어느 날 동지회관에 나타나 “이 건물이 나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동지회의 중요 임원들이 사망하면서 그들의 부인들이 나서서 동지회를 이끌어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번에 동지회관 경매 사건이 발생하자 일부 박상원 미주한인재단LA 박상원 회장, 평화재단 제임스 한 회장 등이 나서서 경매 취소를 위해 현재 이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 이 모세 목사측이 마련한 기금으로 일단 22일 경매는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문제가 또다른 문제를 불러 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한편 최근 ‘동지회관 경매설’이 나오자 USC측이 비상한 관심을 갖고 사태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USC측은 학교발전계획(Master Plan)의 일환으로 캠퍼스 인근 5마일 내 부지 확보에 관심을 두고 있다. USC 대학의 행정부속실의 한 관계자는 22일 “한인 커뮤니티의 유산을 지닌 건물이 경매에 나왔다는 소식을 부동산 업계부터 입수했다”면서 “우리 대학은 인근 5 마일내 부지확보를 꾀하고 있어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실지로 USC측은 지난 2005년도에 150만 달러로 평가해 구입을 모색했던 적이 있다. 당시 이를 간파한 일부 관계자들이 동지회관을 매각해 건물을 베이커스 지역으로 이전시키려고 했었다. 하지만 건물에 대한 등기부 등본, 비영리재단 승인서류 등등에 문제가 있어 USC측을 대리한 부동산 회사가 수속을 중단시켰다. 
동지회는 1921년 7월 21일 미국 하와이의 호놀룰루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로서 이승만, 민찬호 등이 조직하여, 상하이에 있는 임시정부 후원단체로 결성되었다. 이승만을 종신 총재로 추대하고, 임시정부의 자금후원 및 경제적 자립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자본금 7만 달러로 동지 식산회사를 설립한 뒤 하와이 오올라 지방에 동지촌 건설사업에 착수하기도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뒤 하와이 연안의 각 섬 및 시카고뉴욕 등에도 지방회를 설치하여 조직을 확대하였으며, 1929년 12월 로스앤젤레스에도 지방회를 결성하였다. 하와이 중앙부의 이사원은 김영기, 민찬호, 이범영,김노디, 곽대홍, 윤치영, 김선기였고 로스엔젤레스 북미총회는 이살음, 송철, 송헌영, 박호근, 안상학 등이 중심인물 이었다. 그러나 동지회는 대한인국민회와의 마찰로 1943년 재미한족 연합위원회를 탈퇴하고, 독자적 활동을 전개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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