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르포] 성접대 장소로 변한 평양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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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성직자나 평신도가 하루아침에 얼굴색이 바뀌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북한의 술책에 제대로 말려들어 변절을 결심한 경우가 가장 흔하다. 이 중에는 섹스를 미끼로 한 ‘미인계’에 걸려 든 인사도 상당수다. 최근 탈북여성들이 당의 압력에 의해 외부 인사를 상대로 ‘강제 섹스’를 강요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학교육까지 받은 엘리트 여성지도원이 성접대의 도구로 전락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인생역경은 북한 체제의 비극이자 인권유린의 현장이다. 당시 35세의 중산층 주부였던 강영희(가명·51)씨를 통해 가슴 아픈 생생한 경험담을 들어봤다.
                                                                                                <데이빗 김 객원기자>



탈북여성인 강영희씨는 북한에서도 제법 부유한 생활을 했다. 1995년 봄 성실한 남편과 어린 두 자녀와 함께 평양의 ‘강남’인 보통강구의 한 아파트에서 살던 강씨. 그의 남편은 대남선전부 소속 일꾼이었고 강씨는 평양의 한 고급호텔 관리자였다. 40여 명의 호텔 종업원을 관리하는 여성지도원인 강씨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엘리트로 능력 있는 당원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강씨의 운명을 바꾸는 기막힌 사건은 그 해 5월 초 일어났다. 북한 경제가 피폐해져 변방에서는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는 소문이 들려올 무렵이다. 그날 강씨는 호텔 로비에서 객실 손님을 맞는 종업원들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날 호텔에는 드물게도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얼굴 새까만’ 손님들이 많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들은 무기장사를 하는 거물급 무역일꾼으로 북한을 자주 출입하는 자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우두머리 되는 인사는 데스크에서 강씨 쪽을 바라보면서 무언가 ‘요구’를 했고 강씨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얼마 후 상관이 그를 불러 해당 손님을 위해 투숙기간 동안 직접 서비스 하라고 지시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강씨는 상관의 지시가 곧 ‘성매매’를 뜻하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이미 상관은 평양 보위부에 이 같은 사실을 보고했고 강씨는 몹시 당황했다. 가정이 있고 자녀가 있는 주부에게 외국인 손님에게 몸을 팔라는 명령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강씨는 그날 평양 보위부로 호출돼 ‘당과 나라를 위해 몸으로 충성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그리고 “관계를 맺되 당의 ‘10대원칙’대로 김정일의 권위를 지켜 교제하고 화대는 최대한 많이 받아내라”는 지시도 받았다.
만약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이 올 지는 너무도 확실했다. 강씨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희생하는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양에서는 호텔 내에서 흔히 성매매를 즐길 수 있다. 일례로 ‘서산호텔’은 자본주의식으로 경영되는 곳으로 당의 지시에 따라 미모가 뛰어난 북한 여성들을 ‘성매매 전문 요원’으로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 씨는 호텔의 요구가 있으면 이곳에 연락해 여성들을 불러오는 역할을 했다.
이와 관련해 강 씨는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성매매 사업은 평양 보위부가 직접 관장하고 있고 중요한 외화벌이 수단”이라는 것이다.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화대로 미화 3만 달러가 오갔고 이미 경험이 있는 부유한 외국인들은 그 비용에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는 얘기다.
강씨도 그날 밤 화대로 3만 달러를 받았다. 문제는 그 손님이 2만 달러를 따로 강씨에게 건넨 것이 화근이었다. 북한과 무기거래를 하는 그는 돈다발이 가득한 가방을 열어 보이며 2만 달러를 푼돈처럼 던져 준 것. 강 씨는 3만 달러를 보위부에 전달했지만 2만 달러는 개인적 용도로 썼다.
강씨는 그 돈으로 집에 고급 소파를 들여놓고 명품 옷을 사 입는 등 호화생활을 즐겼고 이 사실을 당이 알면서 강씨 가족은 하루아침에 자강도 전천지역으로 쫓겨나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강 씨는 보위부에 불려가 40일간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당의 돈을 편취했다는 죄목으로 교화소에서 1년 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객실 내 몰래카메라까지

강씨는 당시 호텔에서 일하며 알게 된 몇 가지 사실을 전해주었다. 북한 호텔 객실에는 몰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24시간 작동된다. 특히 외국인 손님에 대해서는 직접 보위부의 담당이 붙어 철저히 감시한다.
북한 정권 입장에서 활용도가 높은 손님은 반드시 미모의 여성 일꾼을 붙여 온몸으로 서비스하게 하고 깊은 남녀관계를 맺게 해 그 증거를 녹화하고, 이를 약점으로 이용하기까지 한다는 것. 한국에서 건너 간 교회 목사들이 평양에서 순진하게 당한 여러 사건들도 이런 음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강씨는 전했다.
실제 이 같은 사건은 미주한인사회에도 있었다. 1992년 북한을 방문한 C목사는 미주 지역 인사 가운데 북한 측 ‘미인계’에 몰락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당시 코리아타운 중심가에서 잘나가던 목사였다.
LA로 돌아온 지 약 1주일 뒤 C목사의 교회로 우편물이 도착했다. 봉투를 뜯어 본 교회 관계자는 안에서 쏟아져 나온 수십 장의 사진에 기겁했다. 문제의 사진 속에는 C목사와 젊은 여성의 성관계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교회는 발칵 뒤집어졌다. 사건의 책임을 지고 C목사는 퇴출당했을 뿐 아니라 아예 교회가 없어지기까지 했다. 그는 한때 한국에서 노조활동을 한 인사로 알려졌다. 문제는 그가 방북 중 ‘미인계’에 넘어가 북한당국의 협박을 받았고, 이를 거부하는 바람에 불거졌다. 협박에 응하지 않자 북한 당국으로부터 ‘사회적 매장’을 당한 것이다.
한인타운에서 활동하는 70대 K목사는 1995년 이산가족상봉 차 방북해 아찔한 경험을 했다. K목사는 당시 평양 고려호텔 한 객실에서 미주서 동행한 목회자와 한 방을 쓰게 됐다. 숙소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탁장을 지나야 하는 구조였다.
하루는 행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방으로 향하는데 세탁장을 지나게 됐다. 순간 K목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문이 열린 세탁장 안에 벌거벗은 젊은 여성이 유혹하는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황급히 방으로 들어 온 K목사는 가슴을 쓸어내린 뒤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갑자기 방문이 열렸고 아까 잠들어 있던 여성이 들어왔다. “빨래 가지러 왔다”면서 K목사의 바지를 벗기려고 하는 바람에 간신히 뿌리치고 위기를 넘긴 그는 “북한 여성 복무자들의 ‘미인계’는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였다“면서 ”교계에서는 이런 일을 당한 사례가 많지만 쉬쉬하는 형편이다“라고 말했다.
 




탈북, 그리고 남한행

한편 교화소에서 옥살이를 한 강씨가 석방되어 남편을 찾았을 때 딸은 이미 죽고 없었다. 그는 “어린 것들이 죄 많은 이 엄마를 찾아 자강도에서 평양까지 가겠다며 천리 길을 나섰다”며 “다섯 살 딸은 길에서 굶어 죽었다. 열 살 난 아들도 죽어갈 즈음 다행히 고마운 분이 데려다 목숨만은 건졌다”고 말했다. 
강씨는 지금도 이 일을 생각하면 가슴을 치며 운다고 했다. 당을 믿고 지시대로 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가정파탄뿐이었다. 이 기막힌 결과에 후회와 분노가 겹쳐 미칠 지경이란 얘기다.
강씨는 남편과 별거를 결정했다. 이후 ‘장사꾼’으로 변신한 그는 장마당 사업에 눈을 뜨게 되었다. 늘 장사에 분주했지만 그는 꽃제비들을 모아 먹여 살렸다. 몇 년 사이 거상으로 소문이 나자 자강도 보위부원들이 들이닥쳐 조사할 게 있다는 핑계로 전 재산인 콩을 몰수했다. 강씨는 다시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2000년, 평양으로 들어와 마침 호텔 화폐교환소에서 일하는 친구의 제안으로 김정일의 비자금을 밑천삼아 담배 장사를 시작했다. 북한의 가짜 담배를 신의주를 통해 중국 단동에 팔아 상당한 이윤을 남긴 것.
장사 수단이 좋았던 그는 몇 년 되지 않아 수만 달러를 벌었다. 이 돈으로 강씨는 남동생들이 살 집을 세 채 마련해주었고 남편과 함께 사는 아들의 양육비를 아낌없이 지원했다. 그러나 더 이상 이런 식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생각에 탈북을 결심했다.
1990년경 재미동포들의 북한 방문단으로 평양에 온 이모는 가족과 상봉했을 때 몰래 성경책을 건넸다. 천주교도인 이모는 어린 강씨에게 예수님을 의지하라며 손바닥만한 십자가를 주었는데 그 십자가가 힘이 되었다. 남몰래 숨긴 십자가를 쓰다듬으며 힘들 때마다 기도했다.
강씨는 2008년 12월 중국으로 탈북했다. 그러나 며칠 뒤 중국 화룡에서 공안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꼼짝없이 북송될 처지에 생각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잡혀온 200명이나 되는 탈북민들 속에서 조선족 공안국장이 강씨를 지목하여 “아까운 여자다. 당신을 도와주겠다”며 나선 것.
그는 아무 조건도 없이 5일 만에 강씨를 풀어줬다. 그는 이 과정에서 교인들과 한 가족처럼 생활했던 화룡의 조선족교회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이 교회는 강 씨가 한때 평양에서 가짜 교인으로 훈련을 받고 참석했던 장춘교회(평양 장춘구)나 선교교회(평양 선교구)와는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당시 강 씨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예배에 외국인들의 동태를 감시하며 교인 행세를 하기 위해 함께 참석했다. 이들 교회는 가짜였다. 그러나 조선족교회는 달랐다. 피아노도 치고 찬양도 하며 노인들을 보살피며 강씨는 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따뜻한 사랑과 감사를 깨달았다고 한다.
눈물을 훔치며 긴 이야기를 마친 강 씨는 남한에서도 성공한 사업가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다행히 남동생과 조카가 남한에 함께 오게 되어 외롭지는 않다며 장차 돈을 벌어 북의 형제를 구원하는 북한선교에 나서겠다고 했다.
<출처: 미래한국신문(futurekorea.co.kr)>







“北 주민들 ‘차라리 전쟁 나길 바란다”

비팃 문타폰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이 지난 15일(현지시간) “이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북한 정부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인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설 때가 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문타폰 보고관은 이날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자신의 최종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슬프게도 많은 측면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은 계속 악화됐다. ‘참혹하고 끔찍한(harrowing and horrific)’ 인권 침해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같이 촉구했다.
이어 “유엔 시스템의 맨 위에 있으면서 국제 형사재판소가 인권 침해문제를 다루도록 할 권한이 있는 안보리가 그 동안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나서지 않았다”며 “북한 인민들이 제도적이고 광범위한 인권 침해에 노출돼 있고, 북한 정부가 이들을 보호할 뜻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나의 대답은 최소한 유엔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필요한 조치로 ▲주민들이 식량작물을 직접 재배해 거래토록 허용할 것 ▲사형, 특히 공개 처형을 중단할 것 ▲북한으로 송환된 탈북자 처벌을 중단할 것 ▲북한에 의해 납치 피해를 입은 국가들에 협력할 것 ▲유엔 인권특별보고관의 방북을 허용할 것 등을 제시했다.
그는 또 이후 유엔 유럽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이 농업부문을 장기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지난해 소규모 경작을 중지하고 시장을 폐쇄했다”며 “장마당을 폐쇄하고 소규모 영농을 금지한 이후 식량 사정이 더 악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군대에 의한 식량 갈취 역시 농부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고 기아 문제를 초래하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며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은 호의호식하지만, 기층 민중들은 죽과 옥수수 등으로 연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북한 화폐개혁으로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는데, 이런 부작용 때문에 이달 들어 일부 시장들이 문을 열고 있다는 소식이 있다”며 “지난해 말 단행된 화폐개혁이 주민 반발과 높은 인플레이션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하자 북한 정부가 최근 폐쇄했던 시장들 가운데 일부를 다시 열도록 허용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북한 대표단은 “특별보고관은 인권과는 인연이 없는 정치대결 및 모략의 산물”이라며 “특별보고관과 그의 보고서를 단호히 전면 배격한다”고 반발했다.
주제네바 북한대표부 최명남 참사는 “특별보고관은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을 비호 두둔하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며 동분서주하는 자에 불과하다”며 “모든 나라들을 공평하게 대하는 보편적 정례검토(UPR) 제도가 가동되는 상황에서 특정한 나라를 골라서 문제시하는 특별보고관 제도가 병존하는 것은 합리화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북한은 거대한 교도소”

이런 가운데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조르날 데 브라질리아(Jornal de Brasilia)가 15일 북한을 거대한 교도소에 비유하면서, 공개처형과 강제노동수용소로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라고 말해 역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신문이 국제면 기사를 통해 “북한의 폐쇄성으로 인해 인권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기아와 주민들의 비참한 생활, 개인 자유에 대한 제한, 인권유린 등이 북한 정권에 대해 쏟아지는 비난의 일부”라고 보도했다는 것. 
신문은 리우 브랑코 대학의 알렉산드리 우에하라 교수(국제관계학)의 말을 인용해 “북한 주민들의 고통과 인권유린이 실재한다는 명백한 지표들이 있다”며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가족들에 대해 심각한 처벌이 행해지고 있으며,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지고 있다”고 했다.
한편 북한 당국은 키리졸브 훈련에 대한 대응으로 사회적 긴장감 고취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언론이 지난 17일 ‘NK지식인연대’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북한은 남한에서 진행하는 키리졸브 군사훈련에 대응하여 3월 6일부터 전군에 비상계엄령을 발포하고 군사훈련에 돌입했다.
북한 인민 무력부는 지난 14일 전신명령을 재차 하달, 현역군은 물론 노농적위대, 교도대를 비롯한 전군이 만단의 전투동원태세에 들어갔다. 또 주민모임에서는 “적들의 군사훈련이 완전 공격형으로 이전되었다.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긴장되고 전투적으로 생활해야 한다”며 긴장감을 고취했다.
계속해서 국방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양강도 민방위부에서는 모든 단위의 간부들을 대상으로 군사 조상학(간부대상 군사교육)을 진행하는 한편, 전체 민간무력이 군사훈련에 진입할 것을 명령했다.
현재 공장, 기업소 군사부는 점심시간과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노동자들에게 현대전에 대한 군사교육도 진행하고 비상소집훈련, 사격훈련, 대피훈련과 같은 여러 가지 군사훈련을 조직하고 있다.
이 같은 당국의 긴장감 조성에, 주민들은 ‘차라리 전쟁이 터졌으면 좋겠다. 이기든 지든 통일이 되면 지금보다는 생활이 나을 거다’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출처 : 독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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