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규환 현장에 ‘정부는 없었다’

이 뉴스를 공유하기














천안함 침몰사고가 일어난 지 2주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사고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정부와 국방부는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현재까지는 북한 어뢰에 의한 침몰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정부 측의 입장 표명이나 대응에 대해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북한과의 연루 가능성에 대해서 사전차단을 하며 마치 북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부는 사고 발생 후 지금까지 ‘북한이 연루됐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연관 가능성이 없다고 한 적 없다’는 식의 말 바꾸기로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구조 과정에서도 가장 중요했던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해군 측은 사건 발생 후 가장 먼저 사고현장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20분 간 우왕좌왕 하다가 결국 나중에 도착한 해경의 구조 작업을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이처럼 원인 규명 과정이나 사고 수습에서 미숙한 대응으로 일관한 정부에 대해 국민들은 불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정부는 없었다’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지사 = 박희민 기자>



사고 발생 후 현재까지 2주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정부는 아직까지 분명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청와대와 군의 해명이 엇갈려 불신만 키우고 있다.
사태가 이쯤 되자 국민들도 “이명박 정권이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음모론’에 귀가 솔깃해지고 있다.
이런 국민들의 의구심은 사건 발생 3일 만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 즉각 반영됐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불과 사흘 만에 11%포인트(3월 26일 51.1%→3월 29일 40.0%)나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천안함 침몰 정국이 앞으로도 이 대통령의 지지율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이번 사태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안일한 혹은 오락가락한 태도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 대통령은 최근 천안함이 두 동강 난 것과 관련해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 파도에도 그리 될 수 있다. 높은 파도에 배가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과정에서도 생각보다 쉽게 부러질 수 있다. 사고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통령이 아무리 개인적 경험이 많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중대한 문제에 대해 자신의 사적 견해를 일방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근거도 없고 신중하지도 못한 자세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즉 국가의 중대 안보 정국에 임하는 대통령의 ‘입’이 너무 가볍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현재 지방선거를 앞둔 정국 현황이 맞물려 있다는 것이 정치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정치권에서는 북한의 공격으로 결론이 날 경우 국가 안보에 구멍을 낸 장본인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거론되면서 ‘책임론’이 부각돼 선거전이 여권에 불리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 원인으로 밝혀지면 이 대통령에게는 더욱 큰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안보 전도사’를 자처하며 각종 군 행사에 직접 참석하는 등 군 기강 확립에 역점을 둬온 이 대통령에게 더 큰 책임론이 덧씌워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권 일각에선 “차라리 북한 공격으로 결론이 나는 게 우리로선 더 낫다”라는 넋두리도 나오고 있다.


북한 공격설에 예민


실제로 갖가지 원인이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어뢰 공격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해군 측은 북한 잠수정 4척이 지난 3월 26일 전후로 백령도에서 가까운 북한 잠수함 기지를 출동한 것으로 파악됐으며, 이중 2척이 기지로 귀환하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잠수정의 움직임이 천안함 사고와는 별개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는 청와대가 “북한의 특이사항은 없다”는 입장과 궤를 같이한다. 북한군의 움직임은 있을 수 있지만,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설명이다. 군사적 긴장도가 높은 지역인 만큼 천안함 침몰에 따른 속초함 발포, 경비정 출동 등 우리 측 대응이 긴박해지면서 북측 움직임도 빨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 둘을 연계시킬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북한의 공격 가능성이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히려 북한을 두둔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의 공격으로 결론이 난다 하더라도 상황은 복잡해진다.
북한 공격설은 청와대가 가장 예민해하는 부분이다. 청와대는 31일 “확대해석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재까지 공식 입장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천안함 침몰과 북한의 연계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며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공격했다는 증거도 없고, 북한이 공격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없다는 것으니, 조사를 더 해야 한다는 얘기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는 “외부 타격이라면 어뢰 공격이나 기뢰 접촉이고, 이것은 북한 개입의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 보수층 일각에서는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날 경우 보복 공격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른바 전쟁불사론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 공격 증거가 확인되면 단호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이자 청와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증거가 확인됐는데,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다만, 단호한 대응에 앞서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호한 대응이 반드시 물리적 대응을 뜻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경우 보수층의 압박에 시달릴 것이 분명해 구체적인 대응 방식을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초기 대응 미숙


해군 초계함 천안함의 침몰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위기대응 능력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늑장 보고와 추가 위기 발생을 억제하는 능력, 국민과의 의사소통 불통 등 위기관리의 기본 체계들이 위기라는 비판이 그것이다.
먼저, 급박한 현장 상황이 발생한 뒤부터 군 최고 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되기까지 무려 28분이 걸렸다. 군의 초기 판단이 ‘적에 의한 피습’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있을 수 없는 늑장 보고인 셈이다.
군은 지진파 분석 등을 토대로 천안함의 기능이 결정적으로 무너져 내린 사고 시각을 3월26일 오후 9시22분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해군작전사령부에서 합동참모본부에 상황보고를 한 시각은 9시45분이었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이를 받아 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은 밤 9시50분이었다.
이와 관련해 사고 당일 이상의 합참의장이 보고를 제대로 받지 못해 청와대 보고까지 연쇄적으로 늦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4일 기자들과 만나 “이상의 합참의장은 계룡대에서 합참이 주관한 합동성 강화 대토론회를 주재하고 서울로 이동중이라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군사작전을 책임지고 있는 합참의장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다는 것은 국가 위기관리 체계에 중대한 결함이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이명박 정부 들어 현장의 대응 권한이 크게 강화되면서 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달 26일 밤 11시께 속초함은 북방한계선 근처에서 레이더에 잡힌 표적을 천안함 공격 뒤 북상하는 북한 함정으로 판단하고, 현장 지휘관과 군 자체 판단으로 사격을 결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때마침 청와대 안보관계 장관회의에 참석하려고 이동중이던 김태영 국방장관이 해군작전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때야 해군작전사령관은 “사격합니다”라며 결정 사실을 보고했다. 한 군사전문가는 “남북간 국지적 군사 충돌을 유발할 수도 있는 예민한 상황에 대해 국방장관이 사전 보고를 받지 못한 것은 군에 대한 문민통제 원칙에서 보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셋째, 위기관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 제공’이라는 기본 원칙도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정부와 군은 ‘군사 작전’이라는 이유 등으로 ‘기밀주의’를 고수하다가 언론의 지적이 잇따르자 열상감시장비(TOD) 화면 등을 마지못해 내놨다. 이 때문에 군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국방 분야의 한 전문가는 “사고 대응을 놓고 정무적 판단을 하는 청와대와, 사고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대처해야 할 국방부 등의 역할이 제대로 구분·조정되지 않아 다 같이 우왕좌왕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공군과 육군의 항공기 추락사건 등이 터졌을 때도 끝까지 안전문제를 챙기는 곳이 없는 등 ‘사고 나면 그때뿐’이라는 정부와 군의 타성이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