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러기 가족의 안타까운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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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과 9일 뉴질랜드에서 한 한국인 기러기 가족이 사흘간의 시간차를 두고 잇따른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뉴질랜드 한인사회 뿐만 아니라 현지 언론에도 크게 보도됐다.
이 일가족은 지난 2002년 장기사업비자로 뉴질랜드로 건너가 남편 백 모 씨는 한국에 돌아온 채 아내와 두 딸만 현지에 남아 생활했다. 하지만 2008년 모기지론을 받아 산 주택의 대출금 상환이 어려워진데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며 생활비를 보내던 가장의 사업도 동시에 힘들어지면서 이들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최근에는 비자 연장이 어려워지면서 뉴질랜드 이민국으로부터 압박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사건은 기러기 가족이 많은 LA 한인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LA 한인사회에도 기러기 가족들과 연관된 각종 문제들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인 사회 커뮤니티가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에 힘쓰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사건이 이 곳 LA에서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한 기러기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을 취재했다. 
                                                                                    <데이빗 김 객원 기자>



지난 5일 오전 10시 50분 뉴질랜드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 에이븐헤드(Avonhead) 주택가. 백 씨 아내 조 씨와 두 딸의 시신이 뉴질랜드 이민국 직원에 의해 발견됐다.
이민국 직원이 조 씨의 집을 방문했던 이유는 비자 문제 때문이었다. 몇 차례나 약속을 정해 만남을 시도했지만 조 씨가 나타나지 않아 직접 찾아 나섰던 것이다. 경찰은 유서는 없었지만 타살에 의한 흔적이 없었던 점으로 미뤄 가스중독에 의해 자살로 결론 내렸다.
한국에 있던 ‘기러기 아빠’ 백 씨는 가족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7일 뉴질랜드로 왔다.
5일 현지 공관 관계자로부터 가족의 죽음을 전해 들은 백 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을 보였다고 한다. 부인과 두 딸의 죽음 소식을 백씨에게 처음 전한 주(駐)뉴질랜드 한국대사관 우석동 영사는 “수화기 건너편의 백씨는 천지가 내려앉는 느낌인 것 같았다”면서 “죽을 준비를 하고 뉴질랜드로 온 사람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백 씨는 9일 오전 7시 30분쯤 숨진 채 발견됐다. 백 씨는 “집이 경매로 넘어간 만큼 아내가 사용하던 침대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싶다”고 주위를 안심시킨 뒤 다음날 새벽 몰래 집을 빠져 나와 인근 쇼핑몰 주차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뉴질랜드 대한민국 대사관과 교민들에 따르면 백 씨 가족은 지난 2002년 ‘장기사업비자’로 뉴질랜드에 왔다. 장기사업비자란 미국에는 없는 제도로 3년 동안 직접 사업체를 운영할 수 있고 3년 후 이민심사 기준에 큰 하자가 없으면 영주권으로 갱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업이 자리잡지 못하면 1번 연장할 수 있고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장기사업비자로 체류하는 동안 자녀들의 학비는 모두 무료다. 그러나 백 씨는 처음에 무역업을 하며 정착에 애썼지만 사업이 실패하며 얼마 뒤 가족들을 남긴 채 홀로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에 대해 현지 한인 사회의 분위기는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백 씨가 무역업을 시도했지만 신통치 않자 가족을 남기고 본인만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백 씨 가족이 유학 목적으로 장기사업비자를 받았을 뿐 사업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주권 문제 걸림돌






누구의 말이 맞던 간에 백 씨 가족은 최근 영주권 문제로 강한 심적 압박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비자 만료를 코앞에 두고 강제출국 위기에 처했다. 그 동안 백 씨 가족은 장기사업비자와 취업비자로 두 차례 비자를 갱신해 체류를 연장해왔다. 하지만 이민국은 최근 백 씨의 비자 연장에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민국은 질랜드 취업비자를 소지한 백 씨가 장기간 한국에 체류하면서 사업을 하고 있었다고 판단해 비자 갱신을 거부했다.
교민 사회에서는 백 씨가 지인을 통해 취업비자를 편법적으로 취득했다고 보고 있다. 회사에 이름만 걸어두고 월급과 세금을 본인의 돈으로 충당해 취업비자를 받는 이른바 ‘페이퍼 취업’ 방식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대사관 관계자는 “월급과 세금을 본인의 돈으로 충당하는 상황에서 한국으로부터 송금이 원활하지 않아 비자 연장이 힘든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는 최근 뉴질랜드에도 불어닥치 경기 침체의 영향이 컸다. 극심한 경기불황으로 현지인들의 실업률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 인력에게 더 이상 일자리를 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학교를 졸업한 뒤 일자리를 찾으려는 유학생 등 해외 인력의 취업기회는 더욱 좁아졌다.
현지 언론은 “조 씨가 남편의 도움 없이 비자 문제를 혼자 떠안아 항상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대사관 관계자도 “비자 요건이 강화돼 조 씨와 두 딸이 출국해야 할 처지에 놓여 더욱 궁지에 몰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에 온 한인들도 그렇듯 뉴질랜드의 한인사회에서도 비자 문제는 큰 문제로 작용했다. 게다가 자녀들이 이미 8년 간 뉴질랜드의 학교를 다니며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만큼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

비자 문제와 함께 경제적 어려움도 비극적 선택의 원인이 됐다. 백 씨 가족은 지난해부터 주택담보대출상환 등 심각한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경매 처분돼 이달 말 새 주인이 입주하기로 되어 있는 백 씨의 집은 이미 지난해 11월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가격은 뉴질랜드 달러로 59만 9000달러(약 4억 8500만 원).
이 부동산은 결국 은행에 의해 강제 경매에 부쳐졌다. 현지 언론은 “(백 씨 가족이) 주택경매 과정에서 큰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고 보도했다. 크라이스트처치 부동산 중개인들은 현 시세보다 10만 달러(약 8000만 원) 정도 낮은 가격에 경매에서 낙찰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결국 80만 달러 주택을 급매물-경매를 거쳐 30만 달러나 밑지고 팔아넘긴 셈이다.
백 씨는 이 집을 부동산 시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2008년 은행으로부터 상당액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구입했다. 현지 부동산 중개인은 백 씨의 집이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데다 넓은 대지(674㎡·약 204평)와 방 5개, 화장실 2개, 주차장 2개를 갖춘 만큼 구입 당시 80만 달러(약 6억 4700만 원)를 호가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주변에서는 백 씨가 한국에서 경영하던 물류회사가 경영난을 겪으면서 모기지 대출상환금을 내지 못했고 학비와 생활비를 제때 송금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대사관 관계자는 “오랜 기러기 생활로 가족이 붕괴 위기에 처해 송금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아 조 씨 모녀가 경제적으로나 비자문제로 큰 어려움에 처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조 씨는 남편 명의로 돼 있는 주택을 하루빨리 처분하기를 희망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백 씨 가족이 처음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백 씨의 두 딸은 장기사업비자가 있어 만 5세부터 17세까지 자녀 학비가 전혀 들지 않는데도 두 딸을 1인당 연간 학비가 1만 5000달러(약 1214만 원)에 달하는 사립학교에 보냈다. 그 동안 뉴질랜드는 미국과 영국 등지에 비해 학비와 생활비 부담이 적어 이민과 조기유학 국가로 꾸준한 인기를 얻어왔다.
백 씨 가족 역시 처음에는 자녀를 사립학교에 다니게 하는 등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으나, 체류가 장기화하면서 학비와 생활비 대출상환금 등 연간 억대의 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송금이 끊기자 조 씨 모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살던 집마저 경매로 넘길 정도로 경제적 곤란이 심각했고 결국 이 문제가 가족의 숨통을 조여 온 원인 중 하나인 것으로 추정된다.
뉴질랜드의 한 한인언론은 조 씨 모녀가 죽기 직전까지 절절하게 느꼈던 고통은 큰딸이 남긴 미니홈피의 글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고 전했다.



세 모녀가 자살하기 전날 오후 큰딸은 자신의 미니홈피에 힘든 심경을 토로하는 글을 올렸다. 자신들의 아픔과 외로움을 외면하는 주변에 대한 불신과 원망을 드러냈다. 비자 만료에 따른 심적 불안감, 경제적 압박…. 그 와중에 도움을 받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철저히 고립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세 모녀를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좋아한다는, 사랑한다는, 생각해주고 있다는, 소중하다는 말들 다 가식이었다. 필요할 때만 찾고 쓸모가 없어지면 눈도 안 마주칠 사람들….’ ‘아프다고, 힘들다고, 외롭다고, 죽겠다고 말 한마디 안 하고 꾹 참고 있으니까. 난, 우린, 하나도 안 아프고, 안 힘들고, 안 외롭고, 안 죽을 것 같은 줄 안다.’ ‘무섭다. 그래도 따라가기로 했다. 많이 무섭다. 누가 우릴 제일 먼저 찾아줄까?’
현지에서는 백 씨 가족의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유학산업과 이민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뉴질랜드의 한 언론은 “8년간의 기러기 생활이 한 가족을 비극으로 몰아넣었다”면서 이민국이 이 같은 문제점을 간과한 채 무분별하게 이민과 취업, 학생비자 등을 발급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보도했다.
한편, 뉴질랜드 현지에서는 “한국에서 혼자 살던 백씨가 바람을 피워 현지 가족들을 모른 척했다”는 등 온갖 소문이 돌아 한인회가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현지 한인회는 홈페이지에 “직접 관련되지도 않은 사람들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소문들을 옮겨 사태를 왜곡시키고 교민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며 “교민 각자는 특정인을 비난하거나 근거 없이 판단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는 당부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LA 한인사회도 비슷

뉴질랜드 한인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던 이번 사건은 LA 한인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LA 한인사회는 규모면에서 뉴질랜드와 비교되지 않는다. 최근 LA 한인사회에서는 기러기 가족들 내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점이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다. 특히 지난 2008년 경제위기로 인해 한인 경제가 급속하게 위축되면서 문제는 더욱 커지고 있다.
<선데이저널>이 그 동안 수차례 보도했던 것처럼 기러기 엄마들은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만약 한인사회가 이런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방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LA에서도 제2 제3의 기러기가족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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