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임2년 김재수 LA총영사, 시름 깊어지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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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 3년 차인 김재수 LA총영사에 대한 시각은 천차만별이다. 최초의 현지 출신이 LA총영사로 부임하자 60만 LA 동포들은 ‘기대 반, 우려 반’ 심경으로 그의 행보를 지켜 보았다. 부임 초부터 그는 전임 다른 총영사들과 달리 LA동포들의 문제라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참석하면서 구시대의 총영사 이미지를 털어 내는데 성공했다. 재임 2년 김 총영사가 만난 사람은 무려 2만 명 이상이며 각 단체나 모임에 참석한 회수만도 1천회가 넘을 정도로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에게는 ‘외교관 김재수가 아닌 정치인 김재수’의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임기 만료가 다가 오자 그의 일거수 일투족 행보에 대해 정치적 시각으로 몰아 붙이는 일단의 반대세력들의 모함과 음해가 잇따르면서 적지 않은 구설수와 곤혹을 치르고 있다.
이번 한나라당 4명 의원 LA강연회 논란에서도 피할 수 없게 된 것도 그가 분명한 입장을 피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거져 나왔다. 김 총영사는 동포사회에서 사사건건 문제가 발생하면 그가 “관련자”로 구설수에 오르내린다. 다른 소소한 잡음은 둘째치고 세계교육자총연합회(IKEN) 창립과 이서희 LA평통회장 선임 잡음, 그리고 홍준표 의원과 관련된 구설수가 대표적인 예다.
전임 총영사들은 오히려 김재수 총영사보다도 구설수와 잡음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는데도 김 총영사는 현지인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구설수에 시달려야 했다.
원래 ‘LA총영사’라는 자리가 “잘하면 본전”이라는 말을 들어온 직책이다. 재외공관장 중에서 가장 많은 ‘투서의 대상자’가 LA총영사이다. 이런 자리에 김 총영사는 현지 출신 변호사에서 공관장으로 임명되는 바람에 더 말이 많아졌다. 다른 전임 총영사들보다도 우리의 관심이 더 많이 받고 있다. 김 총영사가 부임한지도 2년이 지났다. 관례로 보면 언제 명을 받고 떠날지 모르는데 향후 그의 거취문제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세력들이 적지 않다. 재임 2년 김재수 LA총영사의 ‘얻은 것과 잃은 것’에 대해 <선데이저널>이 종합 취재해 보았다.
                                                                                        성진 <취재부기자> 



그는 최근 본국에서 “발로 뛰는 총영사 상”을 수상했는데, 일각에서는 공관장으로 보지 않고 ‘정치인으로 보려고 하는 바람에 구설수가 떠나지 않고 있다. 많은 동포들이 알다시피 김 총영사는 대한민국 60년 외교 역사상 최초로 공관장에 임명된 해외동포 출신이다. 당연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 했다. 실용주의를 표방한 MB가 단행한 현지 출신 공관장 임명이었다. 그러나 질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임명 당시부터도 그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영주권자인 김 총영사의 임명은 불법이다” “BBK 사건 해결사에 대한 논공행상이다” 등등 말이 많았다.
하지만 MB 정부는 그의 임명을 강행했다. 외교부 규정에도 ‘미 영주권자가 공관장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조항이 없었다. BBK건도 불법사항이 아닌 것이다. 선거기간 중 MB를 도운 것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대통령이 선거기간 중 자신을 도운 인사들을 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예는 다반사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나쁜 속담처럼 김 총영사에게도 이 속담은 비켜 나갈 수 없었다. 공연히 욕을 먹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나의 적의 친구도 나에게는 적이다”라는 못된 행태가 국내나 해외 한인동포사회에서 예외가 아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과거 어느 때보다 해외동포들의 본국 정계 진출 붐이 거세어 질 전망이다. 그러나 해외동포가 본국 국회의원 금배지를 단다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다. 한 예로 해외동포들이 본국 국회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지역구 선거에 나서기는 무척이나 힘들고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비례대표제가 지역구보다는 조금은 가능성이 있다. 또 과거에도 이런 식으로 본국 정계에 진출한 케이스가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해외동포 참정권이 보장된 지금은 해외동포사회에 대한 비례대표제 진출의 문이 과거 보다는 더 열려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정치 외교관의 힘 겨루기

본국의 한나라당 내부에서 “친李”나 “친朴”이 벌이는 집안 싸움처럼 LA도 예외가 아니다. 김 총영사가 공관장이 되기 전 한나라당 MB 대선운동에 가담하면서 당내 다른 계파로부터 견제를 당했다. 따라서 같은 MB그룹이더라도 계파가 다르면 서로 갈등을 벌인다. 그리고 일단은 “친朴”계로부터 김 총영사는 확실한 “친李”로 분류된 인물이다.
지금 LA코리아타운에서 본국 정계 한나라당을 통해 본국 정계에 진출하려는 일부 사람들은 김재수 총영사를 가상 경쟁자로 보고 있다. 타주에서도 한나라당 성향의 인물들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 야당권이나, 친북좌파 세력들은 호시탐탐 김 총영사가 ‘잘못되기를’ 바라고 있다. 김 총영사를 미끼로 하여 MB를 공격하는 소재로 삼으려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김 총영사를 “가상의 경쟁자”로 보는 측이 생각을 달리 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에서 추천하는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려면 50명 후보 중 보통 20위 이내에 들어가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 20위 중에는 여성이 50%를 점유하기에 남성에게 배당되는 숫자가 10명 정도이다. 이 10명을 당에서 직능별로 추천하는데 지역구가 없는 당 중진들, 말하자면 김대식 전 평통 사무처장, 박영준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이나 노조나 군, 기업계, 교육계 등등 인사들만 잡아도 10명이 넘는다.
이처럼 비례대표 의원이 되는 것도 지역구처럼 매우 힘들다. 따라서 비례대표의원이 되기 위해 김 총영사와 경쟁해야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틀린 생각이다. LA동포사회에서 비례대표를 꿈꾸는 사람들은 본국의 비례대표 후보군들과 겨루어야 하는 것이지 김 총영사와 겨루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지금 타운에 나돌고 있는 소문 가운데 본국 정계 진출을 꿈꾸는 사람 중에는 남문기 미주총연회장, 이용태 한나라당해외동포분과위원장, 김승리 전 미주총연회장 등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이 자신들의 본국 정계진출에 김 총영사를 “가상 경쟁자”로 보고 걸림돌로 생각한다면 본국 정계에서 볼 때 “웃음 거리”로 매도 당할 것이 확실하다. 이들의 경쟁자는 김 총영사가 아니라 본국에 있는 비례대표 후보군들이다.




이전투구 비례대표 문제

김 총영사는 현직이 공관장이기에 공무원 신분이다. 그런데 김 총영사를 “경쟁자”로 보는 측은 김 총영사를 외교관으로 보지 않고 ‘정치인’으로만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분위기를 김 총영사는 매우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몇 개월 전 김 총영사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동포단체 행사에 많이 참석하는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장차 국회의원이 되려는 선거운동으로 몰아치고 있다”라며 곤혹스러워했다. 자신은 현지 출신 총영사로서 보다 열심히 하려 해도 일부의 시각은 다르다며 힘들어 했다.
김 총영사는 당시 “내가 잘해야 뉴욕이나 다른 지역에서 현지 출신이 공관장이 임명될 수 있을 것이 아닌가”라고 했으며 “나중에 다른 지역 재외동포들도 본국 정부기관의 중요한 자리에서 일을 맡을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자신의 진심이 때로는 왜곡되고 있어 안타깝다는 말도 했다.
최근 한 언론에서 “김 총영사는 ‘관저만찬’을 많이 개최했다”고 보도한적이 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총영사의 정치적 행보로 보는 시각에 대해 불쾌감을 보였다. 이 같은 기사를 본 사람들은 김 총영사가 무슨 속셈이나 있어 ‘관저만찬’을 많이 개최하는 것으로 비쳐지기가 쉽다. 하지만 본보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김 총영사의 ‘관저만찬’은 전임 총영사들에 비하면 오히려 회수가 적었다. 전임 총영사들의 ‘관저만찬’은 언론에 잘 보도되지가 않았으나 유독 김 총영사의 ‘관저만찬’은 언론에 많이 보도되었기에 회수도 많은 것처럼 보였던 것으로 비춰졌다. 다만 ‘관저만찬’ 예산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김 총영사는 전임 총영사들과는 달리 재외동포들의 권익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 이유는 그 자신 미국에 살면서 해외동포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남가주에서 30년 가까이 생활하면서 몸소 느끼고 주위로부터 듣는 소리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2년 전 LA공관장으로 임명되어 오면서 당시 인터뷰에서 “본인은 짧은 기간의 임기 동안 근무하다 돌아가는 총영사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2년 전 당시 그는 “언제 임기가 끝날지 모르지만 임기 중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고민하고 있다”면서 “재미 한국인의 정체성과 교육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동포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교육을 통한 정체성 확립이다”라고 밝혔다. 실지로 교육관련 사항이면 그는 부지런히 돌아 다녔다. 현실적으로 재외동포들의 최대 이슈인 2세 교육에 있어서 차세대 주인공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미국에서 재미한인으로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과 문화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 그의 공관장으로서의 모토이다.


동포권익이 우선목표

김 총영사는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4.29 폭동의 원인이 되었던 로드니 킹 사건의 대한 변호를 LA시에서 의뢰해와 재판 직전에 합의 제안을 이끌어내는 등으로 주목을 받았다. 또 DJ 정권시절 친인척 비리를 파헤치기도 했다. 그리고 미주총련의 고문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재외동포들의 권익문제에 자연히 참여하게 되었다.
총영사로 부임해 오기 전 한국에 있을 당시 그는 2005년 재외국민 참정권 제한법의 위헌헌법소원을 내어 오늘날 결실을 본 재외국민들의 참정권 회복운동 등의 주체가 되어 오늘날 재외동포 참정권의 문을 열기도 한 장본인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 참정권은 여러모로 개정해야 할 사항이 많다. 총영사가 된 이후에도 그는 이 참정권이 성공리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데 누구보다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 총영사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이민해 미 웨스턴 스테이트 법대를 졸업, 1988년에 캘리포니아 변호사 자격을 획득하고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가든 그로브시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고 생활을 해왔다. 나중에 미주총연과 함께 동포권익 활동차 한국을 방문하면서 연세대에서 국제 상거래 법을 강의했고, 인하대법대에서도 겸임교수 자격으로 법률 강의도 했다.



재외국민들의 권익을 위해 재외국민의 참정권법안, 병역법 개정안, 국적법의 국적이탈관련 개정안의 국회 제출 등에 깊숙이 관여했다. 모두가 미 영주권자들이나 시민권을 취득한 동포들이 부닥치는 사항들이다. 이 중에 국적법개정안은 복수국적을 갖게 된 청소년들이 ‘만 18세가 된 이후 3개월 이내’에 본인이 직접 국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획기적인 성과도 담았다.
김 총영사에게는 참정권의 보완에 이어 복수국적, 동포청(가칭) 등등이 동포사회와 함께 가야 하는 과제다. 다른 총영사와는 달리 누구보다도 그가 동포들의 숙원사업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동포들에게 이해시키려 할 때 가끔 색안경을 쓰고 보는 측 때문에 난감할 때가 많다고 했다. 참정권이나 동포청을 홍보하려 할 때 일부에서 “총영사가 저렇게 관심 관심을 주는 것이 다 그 자신의 정치적 미래와 연결하고 있다”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수개월 전 김 총영사와 인터뷰 할 때 그는 “내가 하는 일마다 모두 내가 국회의원 하려고 하는 일이라고 하는 바람에 안타깝다”고 했다. 지난 18대 총선 때 실지로 그는 한나라당 비례대표를 신청한 적이 있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그가 본국 정계 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두고 그는 “그 때는 솔직히 정계로 바로 나가고 싶었다”면서 “그래야만 동포청이나 복수국적 실현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 총영사는 2년 전 부임 당시 인터뷰에서 “이제 공관장으로 부임한 만큼 내 정치적 미래보다는 대한민국의 외교관으로서의 내 소임에 충실해야 한다고 마음 먹었다”고 밝혔다. 그는 수개월전 인터뷰에서 “아직도 내가 총영사로서 하는 활동을 공관장의 업무로 보지 않고 정치적 목적으로만 보는 측이 있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가 마음속에는 실제로 어떤 계획을 품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그의 속마음을 비친 적이 없다. 하지만 그의 활동에서 한국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나 야당측에서 ‘김 총영사의 활동이 선거운동에 가깝다’라는 지적을 받은 적이 없다.


‘제2의 총영사’를 위해

김 총영사는 관할지역이 넓은 LA총영사관의 문제점을 푸는데도 고민하고 있다. 뉴멕시코주, 아리조나주, 네바다주의 동포들도 LA와 동등한 민원서비스를 받도록 해야 하는데 고심하고 있다. 현재의 정부는 인력과 예산을 줄이는 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총영사관도 자생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런 문제는 자연히 2012년 재외동포 투표와도 관련이 있다. 그래서 그가 대안으로 내세운 것이 출장소이다. 그 출장소도 현직 영사들의 인원문제도 고려해 현지 동포 자원봉사자, 지역한인회의 자원봉사자 등으로 구성해 총영사관에서 처음 훈련을 실시해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나중에 명예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현지 출신들의 참여를 높이는데도 참고할 수 있는 제도로 보여지고 있다.
앞으로 해외 공관에 현지 동포가 공관장이나 이에 준하는 한국 정부 기관에서 담당할 수 있는 해외 한인 인재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이런 면에서 최초로 해외공관장이 된 김 총영사의 활동은 하나의 잣대가 될 것은 틀림없다. 따라서 그 자신이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 같은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동포사회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김 총영사가 잘하면 박수치고, 협력하고, 잘못할 경우 우정 어린 충고와 건설적인 지적이 따라야 한다. 이 모든 결과는 우리 후세들이 짊어지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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