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동강 LA한인회’ 국내서도 大망신

이 뉴스를 공유하기














‘두 동강 난’ LA한인회의 추태가 또 다시 국내 언론에 오르내리며 미주한인사회가 도매금으로 망신을 당하고 있다. 망신 정도가 아니라 ‘한국인 유전인자 속에 분열 DNA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모욕적인 언사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한국 최대 일간지인 조선일보는 지난달 31일자에서 양상훈 부국장의 “LA 두 한인회장과 100년 전 닭싸움”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 칼럼은 “국민이 갈라져 대립하는 일은 어느 나라에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유독 심하다고 느낀다. 사소하다고 할 수도 있는 LA 한인회 문제를 두고 우리 DNA에 분열 인자가 새겨져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며 “생활에 바쁜 교민들에게 한인회는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이기만 하면 너무도 분열하는 한국인들의 특성을 한인회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고 두 동강난 LA한인회 사태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신문은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각지의 한인회 상당수가 이와 비슷한 내부 분열을 안고 있다고 지적하며 앞으로 재외국민이 국내 선거에 투표하게 되면 이 분열 양상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국내에까지 망신살을 톡톡히 뻗친 LA한인회 분열 사태에 뒷짐만 지고 있는 김재수 총영사의 태도 역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저마다 한인사회의 봉사자라 자칭하는 수많은 한인 단체장들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인사회의 목소리라는 현지 한인언론들 역시 “강 건너 불구경”이란 비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성진 취재부기자>



최근 여름 방학을 이용해 국내에서 실시하는 연수회의에 참가하고 돌아 온 한 교사는 “서울에서 대학 교수들이 LA한인회의 분열상을 꼬집는 질문을 해 곤혹스러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얼마 전 업무차 한국 본사가 위치한 서울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상사 주재원도 “LA한인회장 자리가 무엇인데 이조시대 당파처럼 싸우는가”라고 해서 무안했다는 후일담을 전했다.
LA한인회 분열 파문은 지난 5월부터 연합뉴스를 통해 국내 언론에도 보도되어 한 차례 홍역을 앓은 바 있다. 이번에는 국내 최대 언론사인 조선일보에 중요 칼럼으로 회자돼 다시 미주동포사회가 도매금으로 치부된 것이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LA동포사회뿐만 아니라 해외동포 모두가 한통속으로 욕을 먹고 있다. 한 네티즌은 “그들은 원래 조국을 버리고 간 사람들”이라고 악담을 퍼부었으며, 또 다른 네티즌은 “나도 늘 개탄하던 바이다. 서로 피 터지게 싸우도록 저주 받은 민족은 아닌가 하는 비감이 든다. 죽어봐야 저승을 아는 어리석은 중생들”이라고 꼬집었다.
‘두 쪽 한인회’는 LA한인사회의 분열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과거 미주한인상공회의소도 두 개로 갈라져 진흙탕 싸움을 한 바 있다. 노인회도 두 개로 분열된 적이 있고, 상조회도 두 개로 갈라졌던 적이 있다. 심지어 동창회가 두 개로 쪼개지는 웃지 못 할 사건도 있었다. 상공인 총연 분열 사태때는 당사자들이 전직 한인회장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책임이 컸다.
이처럼 자칭 봉사자라는 사람들이 분열의 중심에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이들 몇 사람들의 감투욕이 전체 한인사회를 먹칠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인사들의 이기적인 사리사욕이 전체 한인들을 멍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인회 내분 사태는 양측에 관련된 사람들끼리의 개인감정이나 단체 간 갈등으로 빚어진 양상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어 쉽사리 해결되기가 힘들다. 연관된 단체 기관도 한인사회에서는 무시못하는 단체들이다. 한인회를 포함해 한미동포재단, 노인복지센터, 축제재단, 노인회 등의 관계자들이 관련되어 있는 탓이다. 여기에 일부 언론들이 대리전쟁에 나서기까지 했다.




한인회는 ‘마이동풍’

이처럼 복잡한 속사정이 얽혀 있는 탓에 웬만한 중재로서는 해결의 실마리조차 풀어나가기 어렵다. 한인사회 원로들이 있지만 100년 전 초기 이민사회에서 볼 수 있었던 도산이나 이승만 그리고 김호 등과 같은 존경을 받는 원로들이 없다.
일부에서는 “도산이 지금 살아 나타나 꾸짖어도 ‘두 명의 한인회장’은 설득하기 힘들 것”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한 편에서는 총영사관이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원래 영사(Consul General)는 외국에 주재하여 자국의 통상을 촉진하고 또 자국민의 보호를 임무로 하는 국가 공무원이다. 영사에는 총영사·영사·부영사가 있다. 영사의 파견과 접수는 보통 통상항해조약에 기하여 행하여진다. 영사의 주된 임무는 파견국의 이해관계 사항의 관찰과 보고, 그 관할구역 내의 자국민의 보호와 감독이다.
영사는 조약에 의해서 약간의 특권을 갖는다. 그 내용은 조약에 따라 일정하지 않으나 일정한 범위 내에서 체포·처벌의 면제·면세 등이 인정되고 있다. 총영사관(Consulate General)은 영사가 주재국에서 직무를 보는 기관이다. 자국민 보호, 사증 발행, 증명서 발행, 타국의 정보 수집, 그 나라와의 친선 관계, 국제회의와 교섭 준비 등을 맡아서 한다.
이처럼 총영사는 일차적 임무는 교민보호와 통상 촉진이다. 그 중에서도 일차적 임무는 자국민 보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해외 최대 동포사회인 LA총영사관에 김재수 총영사를 임명한 가장 큰 목적은 현지 출신이기에 전문 외교관보다도 어떤 면에서 자국민 보호를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에서다. 그러나 과연 이 믿음이 존재 하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김재수 총영사는 지난 2008년 한국 정부가 제18대 주LA총영사로 파격적으로 임명해 한국 내는 물론 미주에서도 크게 화제가 됐었다. OC동포 출신인 김재수 총영사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1948년 11월에 설립된 LA총영사관 60년 역사에서도 첫 번째 현지 출신 공관장 임명 케이스다.
김 총영사의 임명은 이명박 대통령이 관례를 뛰어 넘어 외교공무원이 아닌 현지 동포를 공관장으로 임명하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였다. LA총영사관은 한국의 재외공관 147개 중에서도 5대 공관에 들어가는 1급 지역 공관으로 LA총영사는 대사급이다. 현재 LA총영사관은 전세계에 39개 총영사관 중 가장 규모가 크다.   
김 총영사 임명 당시 한국에서는 “MB 대선 승리의 논공행상”이라고 논란이 계속되었으나, LA현지에서는 “동포 출신 공관장 환영”이라는 분위기가 한껏 높았었다. 김 총영사는 지난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를 신청했었으나 낙천했다.
파격적인 임명으로 앞으로 해외 참정권 실시와 함께 미주한인사회는 단체장 경력이 한국 정계 진출의 “정치바람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파급되어 또 다른 문제를 파급시키고 있다.
그 좋은 예가 한인회장 선거이고, 한국의 정당의 해외 조직체에 대한 감투 전쟁이다. 2012년 참정권 해외동포 투표 실시와 함께 국내 정치권 진출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고 생각한 동포사회가 중구난방으로 춤추고 있다. 




팔짱 만 낀 총영사

본국 정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김 총영사는 2년 전 LA국제공항에 5월 22일 금의환양 했으나, 2년이 지난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부임 당시 공항에는 거대한 ‘환영 프랑카드’와 함께 많은 환영 동포가 영접해 김 총영사를 환영했다.
김 총영사는 공항에서 LA총영사관으로 직행해 영사들과 직원들의 인사를 받았다. 하지만 영사들과 직원들의 얼굴에는 환영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치 점령군 사령관이 시찰을 나온 풍경과 다름이 없었다. 전문 외교관이 아닌 MB의 “선거보은”의 총영사라는 분위기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당시 총영사관 영사들은 노골적으로 김 총영사를 냉대했다. 그 당시 총영사관의 대부분의 영사들은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영사들이라 대선으로 정권이 MB에게 넘어간 이후에도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김 총영사는 부임한지 2일 후인 5월 24일 메모리얼 데이를 앞두고 LA국립묘지를 방문, 한국전 참전용사 묘역을 참배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총영사관의 고위 영사와 담당 홍보 영사는 보이지 않고 김 총영사와 하급직 직원 한 명만 수행했다.
또 이 같은 주요행사에 공관 측은 한미양국 현지 언론들에게 구체적 일정과 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것이 상례였으나 이를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다. 이 모두가 총영사관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당시 본지는 “김 총영사가 공관의 지휘력을 장악하지 못하면 업무 수행에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보도했는데, 2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김 총영사는 부임 후 지금까지 줄기차게 각종 동포행사에 참석하여 왔는데, 대부분 수행 영사 없이 홀로 참석하여 왔다. 주말 행사에는 거의 김 총영사가 “홀로 참석”이다. 김 총영사는 이에 대해 “매일 업무에 시달리는 영사들에게 주말까지 일을 시킬 수가 없다”라고 영사들에 대한 배려감을 나타냈으나, 해당 영사들은 ‘당신 혼자 해보라’는 입장이다.
최근 LA총영사관에 한꺼번에 많은 신임 영사들이 부임했다. 김성진 전 부총영사의 가봉 대사로 전근 뒤 공석이던 자리에 외교통상부 소속 최용진 카타르 공사가 부임했고, 부총영사 대행과 홍보를 담당했던 송금영 영사는 우크라이나 대사관으로 전근했다. 교민영사를 담당했던 강후원 영사는 외교통상부 본부로 귀임했다.
이들 영사의 후임으로 남아공 참사관을 지낸 허태완 영사와 외교통상부 본부 기획 조정실에 있던 김명은 영사가 지난 16일 부임했다. 또 류정섭 교육영사 후임으로 교육부에서 함석동 영사가 부임했으며 본국으로 귀임한 전상수 입법영사 대신 장대섭 입법관이 부임 했다.
이 과정에서도 김 총영사는 외교통상부와 마찰을 빚었다. 한 예로 김성진 전부총영사가 지난 2월에 가봉 대사로 영전된 후 부총영사 자리는 약 6개월간 공석이었다. 이 같은 장기간 공석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처럼 장기간 공석이 된 이면에는 외교통상부와 김 총영사간에 인사문제를 두고 이견을 보였기 때문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본부에서는 ‘외교 관례를 모르는 현지 공관장의 입장 때문’이라고 했다.
김 총영사가 “두 개 한인회” 문제를 조화시킨다면 그는 리더십을 회복하겠지만, 이를 실현시키지 못한다면 공관장으로서의 그의 자격에 크게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