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양상훈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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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상훈 부국장
지난 6월 30일 미국 LA에선 두 명의 한인회장이 같은 시각 다른 장소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두 사람은 한인회장 선거에 나섰으나 분란이 벌어져 결국 각각 취임식을 가졌다. 한인회는 둘로 갈라졌다. 두 취임식장은 길 하나 사이였다. 서로 LA의 유력 인사들을 초청해 상대를 제압하려고 총력전을 벌였다고 한다.
결국 LA 시장은 두 한인회장 취임식에 다 참석해야 했다. 그 광경을 본 사람은 “미국인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느냐는 표정인 듯했다”고 전했다. 이쪽 한인회장 취임식에 참석해 인사한 다음에 길 하나를 건너 다른 한인회장 취임식에 참석해 또 억지 덕담을 했을 LA 시장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생활에 바쁜 교민들에게 한인회는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모이기만 하면 너무도 분열하는 한국인들의 특성을 한인회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각지의 한인회 상당수가 이와 비슷한 내부 분열을 안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재외국민이 국내 선거에 투표하게 되면 이 분열은 더 심해질 것이다.
미국 교민들은 “다른 나라 출신들은 돈을 모아 더 중심가로, 더 큰 빌딩으로 진출하는데 한국인들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 원인은 “다른 나라 출신들은 동업하면 성공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인들은 동업하면 원수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민이 갈라져 대립하는 일은 어느 나라에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유독 심하다고 느낀다. 사소하다고 할 수도 있는 LA 한인회 문제를 두고 우리 DNA에 분열 인자(因子)가 새겨져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면 비약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올해는 조선이 분열로 망한 지 100년 되는 해다. 그 해 1910년에 일본의 한 만화가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닭들이 ‘여름 파리떼’와 같이 서로 싸우고 있는 닭장으로 그렸다. 그 싸움이란 것은 나라가 가야 할 노선을 놓고 다툰 것이 아니라 전부 국내 권력을 놓고 물고 뜯은 것이다. 그 알량한 권력이란 것이 송두리째 없어질 판인데도 우리끼리, 가족끼리 분열해서 ‘죽어라’고 싸웠다.
그 후에도 이 무서운 ‘분열 속성’이 우리 피에 그대로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일은 끊임없이 벌어졌다. 1951년 1월 4일 서울이 중공군의 손에 떨어졌다. 이번에는 중국에 의해 나라가 또 망할 그 위기의 순간에 우리는 부산에서 정치 파동을 벌였다. 한쪽은 대통령 더 하려고, 다른 쪽은 막으려고 개헌을 둘러싸고 치고 받았다. 그러고도 망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미군이 만든 기적이었다.
적 앞에서 분열하는 우리의 ‘오랜 전통’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천안함 피격이 북한의 소행인 것을 믿지 않는다는 사람들은 김정일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국내의 상대편이 이 사건으로 득을 보는 것이 싫은 것이다. 국내 상대편의 주장이 옳은 것으로 입증되는 것이 싫은 것이다. 100년 전 조선 내부도 바로 이런 식으로 싸웠다.
천안함 침몰로 우리 군인 46명이 죽었는데 대북 결의안을 우리 국회가 다른 나라들 의회보다 늦게 채택했다. 그나마 4분의 1은 반대했다. 우리 내분은 이 지경이다. 어느 당이 ‘마지 못해’ 낸 다른 결의안엔 북한의 책임을 묻는 어구가 단 하나도 없었다. 이 어이없는 결의안에 그 당의 장관 출신들이 동조했다. 어느 정권에서든 ‘장관’이라면 국정을 책임졌던 사람이다. 그 정도의 경험과 양식이라면 천안함 사건이 무엇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그 ‘결의안’에 손을 들고 나선다. 살아온 길까지 버리고 패싸움에 휩쓸려 들어 핏대를 세운다.
크게 보면 남·북도 중·일(中·日)이란 ‘역사적 적’ 앞에서 분열해 있는 것이다. 어차피 한반도의 운명은 우리 손에 맡겨졌다. 100년 전에는 가진 것 하나 없이 분열해 싸웠다. 지금 우리는 가진 것은 적지 않지만 분열해 싸우는 것만은 여전하다. 이 분열 속성이 우리가 건너야 할 마지막 강(江)처럼 보인다. 가장 물살이 거세고 제일 깊은 강이다. 우리를 무서운 위험에 빠트리고 끝까지 괴롭힐 강이다. 그러나 통일과 선진국은 이 강 너머에 있다. 이 강만 건너면 더 이상 일본에 사과 따위를 요구할 이유도 없다.
LA의 두 한인회를 가른 길 하나도 그런 강일 것이다. 두 한인회 사이를 흐르는 강을 상상하면서, 100여년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인은 자립할 능력이 없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연 자립하고 있는가. 미군 없이 우리끼리 단결해 나라를 지키고 통일할 수 있는가. 한인회장 취임식 두 곳에 가야 했던 LA 시장은 이 의문에 대해 그날 느낀 것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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