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3탄] 연평도 사태는 MB의 대북정책 실패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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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연평도에 포 공격을 감행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정부는 국방비 증강, 연평도 화력 보강 등 갖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국민이 느끼는 안보 불안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국민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현 정부의 대응책에 진저리를 느끼고 있다. 불과 몇 개월 전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을 때도 MB 정부는 서해 5도의 국방력을 증가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몇 개월 뒤 대한민국에 돌아온 것은 무엇인가. 
                                                                                              연 훈<본지 발행인>



아이러니 하지만 평화는 강력한 힘을 전제로 한다. 강력한 힘이 바탕이 될 때 적군이 우리를 함부로 넘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힘은 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행동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힘은 행동이 아닌 그 잘난 입에서만 목격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10년 만에 정권을 재창출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경제 살리기에 대한 구호에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동조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제불황 만큼이나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컸고 보수세력은 이 틈새를 파고들어 보수 세력을 결집시켰다.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10년 간 대북 ‘퍼주기’ 정책이 국가 안보의 불안을 가져왔다며 진보세력을 맹공 했다.
하지만 보수정권의 집권 3년 동안 우리는 진보정권 기간 겪지 못했던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먼저 지난 3월 북한의 잠수정이 서해 5도 해상까지 잠입해 해군 천안함에 어뢰를 발사했다. 이 공격으로 수 십 명의 젊은 목숨들이 미처 꽃도 피우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가야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사건 이후 대국민담화를 통해 이후 ‘어떠한 적의 도발에도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불과 8개월 뒤 북한은 또 다시 도발했다. 이번에는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육지에 대한 도발을 감행했다. 이 공격으로 두 명의 해병대 후배들과 두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북한은 천안함 사태 이후 대국민담화문까지 발표한 이 대통령의 발언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한민국 영토에 포탄을 쏟아 부었다.
이런 일련의 사태 속에서 현 정권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이어져 온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으로만 그 책임을 돌리려 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은 전적으로 현 정권의 안보 무능에서 왔다.
현 정권이 그렇게 욕해 마지않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북한과의 두 차례 교전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때야말로 우리 군대는 도발해오는 적군에 두 세 배의 피해를 입히며 북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우리는 압도적인 전력을 북한 해군에 보여줌으로서 평화적 대북정책의 밑바탕에 강한 군대가 있음을 말로 아닌 행동으로 보여줬다.
하지만 대북강경책을 내세우고 있는 현 정권은 두 차례에 걸친 북한의 도발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안함 사태 때 북한의 잠수함이 서해까지 침범해 어뢰를 쏘고 도망갔을 때도 우리 군은 새떼에다 대응사격을 하는 웃지 못 할 일을 벌였다. 이번 연평도 도발 때 우리는 13분이 지나서야 대응사격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대비 태세를 보였다. 전시에 13분이면 서울이 불바다가 되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나마 연평도에 있던 k-9 자주포 중 세 문은 고장으로 인해 사용조차 하지 못했다. 그나마 우리 군의 발표와는 달리 생각만큼 북한 측의 피해도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능 좋다고 자랑하던 자주포가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권을 잡은 이명박 정권의 현주소다.
필자가 본지 지면을 통해 몇 차례 강조해왔지만 MB정권의 안보 무능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왔다.
군비 감축이나 인력감축은 이미 노무현 정부 때부터 있어왔다. 노무현 정부는 ‘군의 과학화’라는 명목 아래 지속적인 군 인원 감축을 추진해왔다. (4~5면 참조) 하지만 군 장비의 과학화에는 여기에 따른 예산이 집행되는 탓이 국방 예산 감소 폭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적어도 분단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유지되어야 할 금기의 영역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국방예산 삭감

본지는 2009년 9월 국방비 삭감을 둘러싼 국방부 장관과 차관과의 충돌 내막을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사건은 이미 사람들의 뇌리 속에 잊혀져있지만 필자는 이 사건은 현 정부의 안보에 대한 인식을 가장 잘 나타내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권 취임 후 경제관료 출신인 장수만 조달청장을 국방부 차관에 임명했다. 장 차관은 경제부처(재경부·재경원)에서 오랫동안 일한 경제통으로 2007년 이명박 후보의 경선 캠프에 합류한 뒤 현 정부 출범 후 조달청장에 발탁됐었다. 2009년 1월 국방부 차관으로 옮긴 장 차관은 국방 예산 감축을 주도해왔다.
민간출신 차관과 이상희 국방장관은 사사건건 충돌하자 급기야 지난 2009년 9월 예산안을 놓고 대충돌했다.
국방부는 당초 내년 증가율을 7.9%로 잡은 30조7817억원의 예산안을 청와대에 제출해 놓고 있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에 앞서 장 차관은 이 장관에게 보고를 하지 않은 채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3.4~3.8% 증가로도 충분하다는 취지의 예산 삭감안을 보고했었다.
장 차관의 이런 정책에는 어려워진 경제상황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제 논리를 우선시하는 것이 근저에 깔려있었다. 경제관료 출신 차관이 ‘경제 논리’ 운운하면서 예산삭감을 주도하자 안보 논리를 내세운 국방부 측의 불만은 거셌다.
갈등이 불거지자 청와대가 나서 사태를 일단락 시켰지만 사실상 청와대가 장 차관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이 군 내부의 기류였다.
이는 장 차관이 올 1월 방위사업청장으로 보직이동 한 것에 잘 나타난다. 방사청은 매해 수십조의 국방예산을 사실상 좌지우지 하는 기관이다. 예산삭감을 주도했던 장 차관이 이곳으로 옮긴 것은 국방예산 삭감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라는 현 정부의 의지가 반영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장 청장은 현 정부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된 차관 정치의 핵심인물 중 하나였다.
‘차관정치’란 정부 부처에 차관으로 포진한 핵심 실세들이 장관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정책을 주무르는 것을 빗대어 하는 표현이다.
여기에는 이 정권 최고 실세로 통하는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당시 차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전 차관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장수만 차관도 이 멤버 중에 한 사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예산 삭감 문제도 이 모임에서 논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가 그동안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막대한 규모의 재정을 지출과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인해 향후 정부의 재정 운용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이 적자를 메워야했던 것이 국방비 예산 삭감의 출발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국방부 예산이 전체 정부 예산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떄문에 국방비 예산을 조금만 삭감하면 엄청난 규모의 재정적자를 메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군이 엄청난 국방비를 쓰고 있으나 비리나 비효율적인 부분이 적지 않아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한 요인인 것이다.
즉 국방비를 절감해 경제 살리기나 4대강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실세들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나 현 정부 실세들이 가지고 있는 안보에 대한 안이한 생각들이 오늘날의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그러면서도 마치 이번 사태가 전 정권의 퍼주기 정책에 있는 것처럼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그야말로 국민을 두 번 기만하는 일이다.


병역 미필자가 전반

뿐만 아니라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병역 미필자들이 주요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도 큰 문제다. 연평도 도발이 벌어지자 이 대통령을 비롯한 안보 기관 관계자들은 청와대 지방벙커에 모여 대책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8명 중 절반이 병역 미필자였다. 천안함 사태 때 열린 벙커회의 참석자 중에서는 12명 중 국방부 장관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필자였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보여 안보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질리 없다. 이런 차원에서 주요 안보 관계자들 중에 병역 미필자는 제외해야 한다는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고 본다.
국가 안보는 말로만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말뿐인 대응책으로는 국토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번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도발로 인해 경험했다.
서두에도 말했듯 진정한 평화는 강력한 힘을 가졌을 때 이뤄진다. 다시 한 번 말로만 외치는 안보는 오히려 더 큰 전쟁을 불러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연평도 도발로 인해 안타까운 목숨을 잃게 된 해병대 두 명의 후배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비상벙커회의는 미필자들 회의?






북한의 ‘연평도 도발’이 벌어지자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3일 청와대 내 지하에 위치한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긴급 안보관련 수석회의와 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열었다. 그는 합참, 해작사, 공직사와 화상 회의를 통해 실시간 보고를 받으며 사태 파악에 나섰다.
이 자리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김태영 국방부 장관,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현인택 통일부 장관,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 임채민 국무총리실장, 임태희 비서실장 등이 참석했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 및 정치권 인사들 사이에서는 ‘지하벙커’에서 ‘어떤 회의 내용이 오고 갔는가’보다는 ‘회의를 주재한 인사들의 군필 여부’에 더 큰 관심이 집중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역으로 병역을 온전하게 마친 사람은 절반에 불과하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965년 ‘기관지확장증 고도 및 폐활동성 결핵 경도’로 군면제를 받았다. 애초 이 대통령은 1961년 대학 입학 후 신체검사에서 현역 판정을 받고 1963년 논산훈련소에 입소했었다. 하지만 훈련소 내에서 실시한 신체검사 결과 질병이 발견돼 귀향 조치됐다. 이후 이어진 검사에서 징집면제 판정을 받았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도 군 면제자다. 원 정보원장은 1973년 행정고시 합격 후 이듬해 행정사무관 채용 신체검사에서는 정상 판정을 받았지만 1976년 병역신체검사에서는 ‘하악관절염’으로 병역이 면제됐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 대통령이나 원 정보원장과는 달리 ‘보충역’으로 군대는 다녀왔다. 흔히 말하는 방위 출신인 김 장관은 보충역 판정을 받는 과정에서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그는 1975년 징병검사 때는 정상 판정을 받았지만 2년 뒤 재실시한 검사에서는 ‘턱관절 장애-저작장애’ 판정을 받아 보충역으로 병역을 마쳤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1978년 입대했으나 1980년에 상병으로 제대를 하며 병역기간 전부를 채우지는 못했다.
반면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과 임채민 국무총리실장은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임태희 비서실장도 공군 중위로 전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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