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조영근-안승목 ‘두 아버지를 위한 훈훈한 장례식 ·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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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오늘날은 ‘아버지 상실의 시대’라고 한다. 한국의 경우 아버지의 절대적인 권위에 거절당해 온 세대들이 이제는 역으로 아버지들을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는 오늘, 아버지가 남긴 한량없는 마음이 차가운 겨울 날씨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2011년 새해를 맞는 연말연시에 조촐하면서도 엄숙한 추모식과 장례식이 거행됐다. 두 분의 아버지가 세상을 하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이 아버지들이 남겨 준 유산은 고스란히 자녀들과 그 다음 세대까지 전해지고 있다.
고인들의 2세와 3세들은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사랑을 고백해 식장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다.
                                                                                               <성진 취재부기자>



2010년의 마지막 날인 지난 12월 31일 오전 11시. 밸리 지역에 있는 가든 크리스천 펠로십 교회(20745 Nordhoff St. Chatsworth)에서는 임동선 목사의 집례로 故 조영근 목사의 추모예배가 거행됐다.
이날 한인 커뮤니티의 교회와 교육 단체 관계자들을 비롯해 많은 추모객들이 조 목사의 평소 남다른 한인 커뮤니티 봉사를 다시금 추모했다. 임동선 목사는 단상에 올라 품에서 한 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저는 지난 12월 26일 조 목사님으로부터 성탄 카드를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 위중하시다는 소식을 들어왔는데 카드에 또박 또박 글을 적은 것을 보고 ‘아하, 이제는 좀 나아지셨나보다’고 생각해, 기쁜 마음에 전화를 걸었더니, 그 날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임 목사는 “조 목사님은 태어나신 날도 12월 26일인데 가신 날도 12월 26일 이었습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또 “조 목사는 가정을 매우 소중하게 여긴 가장이었으며 특히 사모를 사랑하길 마음으로 다했습니다”면서 “한인사회를 바라보는 마음도 가정을 대하듯 자상했습니다”라고 전해 추모객들도 숙연해졌다.
고인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평소 가까이 모셨던 임동선 목사를 포함해 몇몇 지인들에게 생애 마지막 성탄카드를 직접 써 내려 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식장을 더 숙연하게 만든 것은 손자와 손녀들이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사랑을 눈물로 풀어내는 바람에 많은 추모객들이 함께 울었다.


“내 무덤을 조국에”














 ▲ 안씨의 손자인 니콜라스 안군이 할아버
지의 생정의 삶을 동영상을 제작해 추모했
다.

조 목사의 손녀는 “할아버지는 저에게는 한 그릇의 푸근한 국밥 같으신 분입니다. 할아버님은 실지로 저에게 떡국, 북어국, 김치찌개 등등 맛있는 한식을 그대로 전해주신 분입니다. 저는 한식을 통해 푸근한 할아버지의 정을 느꼈고 할아버지의 나라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식을 맛있게 먹을 때마다 언제나 할아버님에게 감사했습니다”라며 복받치는 눈물로 말을 잊지 못했다.
그는 할아버지의 솜씨로 한식을 통해 한국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할아버지가 한인 커뮤니티를 위한 봉사에 대해서도 잊지 않겠다며 할아버지가 봉사한 것처럼 자신들도 그 뒤를 이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손주들에게 조 목사는 할아버지로서, 가정의 울타리로서 정서적, 정신적, 물질적인 울타리였다. 그리고 울타리가 싸고 있는 마당과 가정 안에서 조 목사는 손자손녀들의 좋은 안내자와 친구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이날 추모식에 참석한 많은 추모객들은 “조 목사님의 생애는 그 분이 사신 것 보다 더 고귀할 것”이라며 “그 분의 뜻이 손자 손녀들에게 전해진다는 것만으로도 조 목사님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을 나누었다.
故 조영근 목사는 지난 12월 26일 우드랜드힐스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0세. 그는 LA 코리아타운의 올드타이머였다. 1968년 도미한 조 목사는 1970년부터 23년간 LA 한인타운에서 ‘A-1 오토바디샵’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면서 한인상공회의소 이사장, 남가주 한국학원 이사장, 한미교육재단 이사장, 한인동포장학재단 회장, 코리아타운 도서관후원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한인사회 봉사활동에 헌신했다.
미국에 이민오기 전 한국에서 1956년 한국항공대를 졸업하고 그 대학에서 항공정비학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교수 시절 당시 항공행정의 기틀을 마련하고 항공법 제정에 노력하는 등 항공산업 분야를 발전시키는데 일조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LA에서 정착해 개인적으로 자동차 정비소를 하면서도 1978년부터 1993년까지 남가주 한국학원 이사회 이사, 건축위원장,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한국어 교육기금 모금 캠페인을 펼치는 등 2세 뿌리교육을 위해 헌신했다. 그리고 그는 한미교육재단 이사장 시절엔 한국식 뿌리교육과 구분되는 미국형 뿌리교육 커리큘럼을 구축할 수 있도록 바탕을 다진 교육자이기도 했다.
조 목사는 은퇴 후 미주장로회신학대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후 파라과이에서 현지 선교활동을 펼쳤으며 극동방송 미주지사장으로 방송선교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한국정부로부터 국가산업공로포상 석탑훈장,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으며 한국항공대 총동창회의 ‘자랑스런 항대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유가족으로는 부인 조동희씨와 1남(지미) 3녀(해령, 헬렌, 에니)가 있다.
조 목사는 미국 땅에 살면서도 조국을 잊지 않았다. 이 세상을 하직하면서 유언으로 “내 무덤을 조국 산하에 만들어 달라”고 했다.










 ▲ 고 안승목 장례식: 고 안승목 거사의 장녀 애미씨가 장례식에서 아버지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버지는 위대한 개척자”

지난 8일 오전 11시 한국장의사에서는 故 안승목씨의 영결법요식(장례식)이 관음사 주지 도현 스님의 집전으로 엄수됐다. 고인은 한국일보(본사 및 미주)와 중앙일보(부산지사)에서 근무한 언론인으로 지난 5일 시미밸리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2세.
유족으로 부인 이재분씨와 장남 안영준(치과의사), 장녀 인선(교사), 차녀 윤선(디자이너)가 있다. 고인의 유해는 글렌데일 포리스트 론(1712 S Glendale Ave. Glendale) 양지 바른 곳에 안장됐다.
평범한 가장으로서 70여 년 일생을 살아왔던 고인은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자상한 아버지이자 정신적 지주로서 삶을 살아 왔음을 보여주었다.
고인의 맏딸 인선(Amy)씨는 고인의 영구 앞에서 “아버님은 저에게 멘토(Mentor)였습니다”라며 이내 눈물을 터뜨렸다. 그리고 “아버님은 위대한 분이셨습니다. 아버지는 40세 장년에 가족들을 이끌고 미국 이민을 하셨습니다. 은퇴를 준비할 나이에 한국에서 미지의 나라 미국 이민을 결심한 개척자였습니다. 우리들에게 자립심을 심어주기 위해 여러모로 우리를 격려했습니다. ‘열심하고 최선을 다하라’고 다독거려 주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면 용돈도 넉넉하게 주셨고, 좋은 일을 하면 우리가 평소 갖고 싶은 것을 반듯이 구해 주셨습니다. 그 덕분으로 오빠는 치과박사가 되셨고, 저는 자랑스러운 교사로 그리고 여동생은 전문 디자이너로 훌륭한 자립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라면서 이내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아버님은 우리 가족 모두를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친정이나 외가 모두를 한 가족으로 대해주셨으며 좋은 음식점을 함께 데리고 가셨으며, 미국 땅의 좋은 곳을 함께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가장 좋아하셨던 공원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 가족 친지들은 서로를 돕고 살아가는 것을 가훈으로 여기고 우애 있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아버님과 함께 놀러 가는 크나큰 기쁨을 지니지 못하게 됐습니다”면서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이날 그녀는 아버지가 평생직장을 어떻게 마감했는가를 토로하면서 “아버님의 높은 인격을 우리는 삶의 좌표로 여기고 있습니다. 아버님은 직장에서 경제적 이유로 직원을 감원하는 것을 아시고 자신의 동료 직원이 감원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버님 자신이 대신 사퇴를 하셨습니다. 이 일을 결정하시기 전에 아버님은 어머님과 이 문제를 상의하시고 동의를 구하셨다고 합니다. 저희들은 이 같은 아버님의 결단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행동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우리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비추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같은 아버님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아버님이 하신 그 인생의 길을 따라 가렵니다. 아버님 사랑해요”라며 다시 눈물을 흘렸다.
이날 고인의 외손자인 니콜라스 군은 “할아버지는 우리들의 친구였습니다. 언제나 다정한 할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모든 것이 편했습니다”고 말했다. 장래 영화감독을 꿈꾸는 니콜라스는 이날 할아버지와 지냈던 지난날의 삶을 영상으로 편집해 동영상으로 제작, 장례식장에서 방영해 조문객들에게 고인의 가족사랑을 촉촉하게 느끼게 했다.
고인은 진정 자녀들이 인생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삶을 인도한 ‘멘토’였다. 그는 자녀들의 바람직한 진로와 이를 달성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몸소 실천한 인간이었다. 자녀들에게 인간의 가치와 바람직한 인격형성을 위해서 가능한 가족들이 함께 지내는 시간을 많이 갖고 대화도 나누었다.
평생 고인과 가깝게 지냈던 노재수 옹은 이날 조사를 통해 “고인은 평범한 삶을 통해 실로 자상한 가장이었으며, 자녀들을 보람 있게 키워 나름대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친구”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이날 장례예식을 집전한 관음사 신임 주지 도현 스님은 “인간은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면서 “불교에서 바라보는 죽음은 영원한 끝도 아니고 삶의 지속도 아니기에 우리 중생들은 아비타불의 가르침대로 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기원했다.
도현 스님은 “몸은 죽어 없어져도 넋은 남아 새로 태어나기를 끊임없이 거듭하기에 죽음이 없는 불사의 경지에 도달하도록 정진하는 길이 중요하다”고 설법했다.
故 안승목 거사의 장례식은 조문객들에게 죽음을 통한 명상이 인간에게 삶을 완성하는 명상이며 죽음을 극복하는 명상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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