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저주인가? 재앙인가?

이 뉴스를 공유하기









구제역이 한반도 전역을 휩쓸고 있다. 거의 재앙 수준이다. 전염병 차원을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을 가져오고 있다.
조(兆)단위로 들어선 직접 피해액 외에도 국내 축산산업은 기반 자체가 붕괴했고, 각종 행사 취소와 관광객 감소로 지역경제 역시 초토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구제역의 직간접 경제적 피해는 이미 2009년 신종플루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구제역 확산이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금년 성장과 물가 목표마저 위협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백신마저 무용지물이 되면서 이제는 살처분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번 구제역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측조차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초기대응에 이어 차단방역마저 사실상 실효를 거두지 못함으로써 이제는 구제역 추이를 전망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됐다.
한계에 달한데다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방역 때문에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엄동설한까지 겹치면서 매몰지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일부 지역에서 드러난 주먹구구식 살처분.매몰로 인해 2차 환경오염 문제마저 불거지고 있다.
집권 초반 광우병 소고기 파동으로 홍역을 겪었던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후반에는 구제역으로 인해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위협에 유례 없는 호들값을 떨던 한국은 이번 후진국형 구제역 사태로 인해 전 세계적인 비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2010년 11월28일 경북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11일(한국시간)로 44일째를 맞고 있다. 호남과 경남, 제주 지역을 제외하곤 전국이 구제역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접수되는 구제역 의심신고는 이제 거의 예외 없이 `양성’으로 판정되고 있다.
11일 현재 구제역은 경북을 비롯해 인천, 경기, 강원, 충북, 충남 등 6개 시.도, 52개 시.군, 122곳으로 늘어났다. 농식품부의 집계 결과, 살처분, 매몰 가축수가 3천499농가의 140만4천426마리에 달했다. 전국의 소와 돼지 10마리 가운데 1마리 꼴로 죽어간 것이다.
문제는 정부의 안일한 대처가 이런 대재앙을 불러왔다는 점이다.


초동 대처 미흡이 참사 불러

지난해 11월23일 경북 안동의 돼지농가에서 의심신고가 최초로 나왔을 때 과학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피해는 없었을 것이라는 자성이다. 당시 안동 지역 돼지농가에서는 잇따라 구제역 의심증상이 발견됐으나 지금까지 안동에서 단 한 차례도 구제역은 물론 가축전염병이 없었다는 안이한 생각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결국 11월29일에서야 구제역이 확인되면서 엿새간의 방역공백이 발생했다.
공백이 생긴 엿새간 안동에서 타 지역으로 빠져나간 한우만도 15마리나 됐다. 당국은 이들 한우의 이력을 추적한 결과, 구제역 증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사실 여부는 아직까지 누구도 모른다.
심지어 경기 파주의 분뇨시설업체가 안동 구제역 발생을 즈음해 두 차례나 안동 지역에 드나들었는데도 제지는커녕 검역 및 소독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초기의 안이한 대응 탓에 안동을 빠져나간 소를 통해서, 안동에 드나든 축산관계자를 통해서, 구제역 바이러스가 무방비로 다른 지역으로 퍼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공항만을 통해 동남아 지역을 다녀온 축산관계자 2만4천여명 가운데 무려 9천명이 귀국 때 신고, 검역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설마 나 한 사람이야”라는 축산농민의 `안전 불감증’이 대재앙을 초래한 또 하나의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자만심이 낳은 대참사

이처럼 피해가 커진 것은 초기대응 실패에 이은 초기 방역실패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지난 1934년이후 66년만인 2000년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위기관리 매뉴얼조차 없었던 정부는 이후 서너 차례 구제역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방역체계를 구축, 주변국가들로부터 방역강국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하지만 이런 자만심에 안주한 탓에 이번 구제역에서는 번번이 실기에 실기를 거듭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2월25일 경북 및 경기 지역 일부를 대상으로 처음 구제역 백신을 접종하기로 결정했을 때만해도 향후 1∼2주가 지나면 구제역은 잡힐 것이라는 게 정부 당국의 속내였다.
그러나 이후 서너 차례 추가로 백신대상 지역을 확대하면서 사실상 전국을 대상으로 백신을 접종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첫 접종시기가 너무 늦었다. 여기에는 `백신 맞은 소는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축산농가의 이기심도 한몫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백신 맞은 소를 내다 파는 것보다는 살처분.매몰을 하면 시가로 보상받는다는 잇속이 작용한 것이다.
게다가 백신을 접종하면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는데 시일이 오래 걸린다는 당국자들의 판단도 작용했다. 하지만 한국은 청정국 지위를 상실하더라도 크게 손해볼 것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은 소나 돼지를 거의 수출하지 않기 때문에 청정국 여부는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2~3주는 더 갈 듯

이번 구제역 파동으로 공무원 2명이 과로 또는 사고로 사망하고, 예방백신을 맞은 소가 돌연사한데다 매몰한 가축으로 침출수마저 오염되는 2차 오염까지 발생하는 등 후유증이 잇따르고 있지만, 아직 재앙은 끝나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통상 구제역 바이러스가 발생하면 1∼2주의 잠복기를 거치게 되는데다 바이러스가 검출된 이후 항체가 형성되기까지 또다시 1∼2주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특정지역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면 최장 4주 정도가 지나야 해당지역 구제역 바이러스의 순환주기가 끝나는 것이다.
가장 최근인 지난 10일에만 강원 화천, 횡성, 경북 봉화 등 3개 지역에서 의심신고가 나와 예외 없이 양성으로 판정됐다. 이를 감안하면 이번 구제역은 여전히 진행 중인 셈이다.


근본대책 수립해야

구제역은 후진국형 가축 전염병이다. 구제역은 기본적으로 밀집형 공장 사육 방식으로 가축을 키우는 나라에서 발생한다. 아프리카의 빈곤 국가나 동남아 국가에서 주로 발생한다. 중국과 베트남 등 일부 동남아 국가들은 사실상 구제역을 방치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선 구제역 피해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농가들이 구제역에 걸린 소·돼지를 신고하지 않고 도축해 먹기도 한다.
후진국형 가축전염병이 ‘청정 한우’를 자부해 오던 한국에서 이처럼 창궐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국제적인 망신거리다. 지난 2008년 한국 국민들은 미국산 소고기 파동에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는가.
구제역이 사실상 전국으로 확산된 상태여서 방역 강화를 말하는 게 무의미해져 버렸다. 방역과 확산 방지에 최대한 노력하되 허점투성이인 현행 방역체계를 전면 수정하는 작업을 빨리 시작해야 한다. 지금같이 안이한 방식의 방역체계로는 우리나라 축산업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구제역 따라 괴담도 확산

정부가 구제역 확산을 막으려고 100만 마리 넘는 소와 돼지를 살처분했음에도 병마의 기세가 꺾이지 않자 사이버 공간에 황당한 괴담과 음모론이 급속히 번지는 양상이다.
지난해 11월 말 발생한 구제역이 한달 보름이 넘도록 기승을 부리자 일부 누리꾼은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늘리려고 허술하게 방역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해 한파 속에 구제역 박멸에 악전고투하는 방역 당국의 힘을 빼고 있다.
11일 각종 포털사이트를 보면 ‘라****’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누리꾼은 “아마 의도적으로 방역을 허술하게 하고 병을 퍼뜨려 소와 돼지들을 많이 죽일 생각인가보다. 특히 쇠고기 공급부족은 미국 소로 메우려는 게 아닐지…”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구제역이 창궐하기 시작한 시점과 한미 양국이 FTA(자유무역협정)를 타결한 시점이 겹친다는 점에서 누리꾼은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위해 방역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괴소문을 그럴듯하다며 받아들이고 있다.
한 누리꾼은 “얼마 전 한미 FTA 완전타결 소식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게 쇠고기 얘기는 없었습니다. 정말 이상했습니다. 그런데 시의적절하게 구제역이 터지고…”라며 구제역 창궐의 배경에 한미 FTA가 있다는 비약된 논리를 펼쳤다.
구제역이 매우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음을 들어 누군가 일부러 구제역을 옮기고 있다는 음모론도 대두하고 있다.
음모론은 미국 축산업계가 비행기를 동원해 한국에 구제역 바이러스를 살포했다는 괴소문에서부터 이미 구제역 피해를 본 일본의 분풀이설, 남파 간첩의 화생방 공격설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쇠고기 수출을 늘리려는 미국 축산업계의 사주를 받은 북한이 전국의 간첩망을 동원해 구제역을 전파하고 있다는 ‘북미 합작 음모설’을 제기하는 누리꾼도 있었다.
이밖에 살처분된 소와 돼지의 원혼이 저주를 내려 구제역이 잡히지 않는다는 괴담과 4대강 사업으로 강물이 오염돼 구제역이 창궐했다는 주장까지 나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