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지역 탈북동포 60여명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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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평통(회장 이서희)이 지난 5일 주최한 탈북자 초청 간담회에서 탈북동포들의 애끓는 고통과 시련 가득한 삶이 알려져 관심을 집중시켰다.
박철웅 부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서 이서희 회장은 “그동안 LA평통이 미주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자의 생활에 무관심 했으며 탈북자 여러분의 어려움을 직접 듣고 현실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찾고자 한다”며 탈북자들을 위한 미주동포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탈북자들은 목숨을 걸고 탈출한 어려움보다 남한 정부와 국민들의 냉소적인 대우과 차별이 더 큰 고통이었으며 특히 김대중 노무현 정권시절 탈북자들에 대한 처우는 불합리의 극치였다고 고발했다.
                                                                                              <성 진 취재부기자>



탈북동포 이모씨는 “미국 정부가 한국을 거처 온 탈북자들에게는 망명신청을 허가하지 않는다”면서 “한국 정부가 이 같은 문제에 미국 정부에 건의를 해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지난 1991년에 탈북 해 한국을 거처 뉴욕에 입국, 최근 LA에 건너온 이씨는 정식 노동허가 없이 일을 하다 상해를 당했고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이씨는 “망명신청 장소에서 중국인들은 쉽게 망명신청이 되는 것을 보았다”면서 “우리처럼 한국을 거처 온 탈북자들은 취업 허가조차 받을 수 없어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또 그는 “미국에 살면서 언어 문제도 고통인데 취업도 잘 안되고, 변호사들은 돈을 안주면 우리 수속도 중단하곤 한다”면서 “우리에게 조금만 도움을 주면 나중 우리도 이 사회를 위해서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조선족보다 못한 대우

또 다른 탈북동포 이모씨 역시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미국에 온 큰 이유 중에는 남한인들의 탈북동포에 대한 차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같은 민족에게 차별을 당하는 것은 참기가 어려웠다”면서 “미국에서도 탈북동포임을 밝히고 한인 직장을 구하려고 했는데 ‘우리는 한인만 고용한다’는 말에 또 충격을 받았다”고 분노했다. 그는 “그래서 통일이 되면 북한인들은 노예가 될지 모른다는 말도 나돌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국에서 탈북동포들은 똑똑해도, 능력이 있건 없건 인정을 안 해준다”면서 “중국의 조선족보다도 인정을 못 받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미국에서 차라리 다른 인종에게 차별을 당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라며 울분을 토했다. 이날 탈북동포로서 빠르게 정착하고 있는 최 모씨는 제3국을 거처 미국에서 영주권을 받고 현재 의류분야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사례도 소개됐다.
한국을 거처 미국에 온 탈북동포 중에는 지난 과거정권 시절 직간접으로 불이익이나 압력을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시에는 탈북동포 자녀들은 학교에서도 ‘왕따’를 당하기 일쑤였다.
정권교체가 이뤄진 뒤에도 한국사회의 차별대우는 달라지지 않았다. 한 탈북동포는 안보강연에 나섰다가 집에 돌아오던 중 괴한에 테러를 당했으나 지역 경찰이나 안보기관에서 보호를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날 초청간담회에서 탈북동포들을 도와주는 ‘탈북자지원회’(회장 로버트 홍)의 김동진 목사는 “미국에 온 탈북동포들은 크게 한국을 거처 온 사람들과, 탈북해 제3국을 거처 온 사람들로 구분된다”며 “제3국을 거쳐 온 탈북동포들에게는 망명허가가 쉽지만 한국에서 온 탈북동포들에게는 아직도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목사는 “탈북동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생활비이고 다음이 신분문제, 의사소통, 구직, 기타 생활정보 문제 등”이라면서 “LA동포가 100만이라는 커뮤니티에서 교회도 많은데 60여명에 불과한 탈북동포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김 목사는 “이들 탈북동포들은 통일한국이 되면 매우 중요한 일들을 할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신분보장보다 생활비가 우선

탈북자 지원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 내 탈북자 수는 약 300명 정도로 추산되며 그 중 약 1/3이 LA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2004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하자 탈북동포들의 미국행이 본격화됐다.
하지만 현재 북한인권법은 제3국을 통해 미국에 온 탈북동포들에게만 난민지위나 망명허가를 주고 있으며 한국을 거처 온 탈북동포들에게는 이를 허가하지 않고 있다. 다만 미국정부는 이들에게 1년 한도의 노동허가서를 발급하면서 계속 체류 허가만을 허용해 일부 탈북동포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현재 중국 등 제3국에 있는 많은 탈북동포들은 애초부터 미국을 목적지로 탈북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제3국에 있는 한국 공관원이나 이들을 돕는다는 단체 기관들 중에는 ‘한국으로 가는 길이 빠르다’고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한국을 택하는 탈북동포들도 상당수로 알려지고 있다.
이날 LA평통은 타운 내 오대산 식당에서 최재현 부회장의 주선으로 LA지역에 거주하는 탈북동포 20여명을 초청해 간담회를 개최하고 이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지원금 500달러를 전달했다.
LA평통이 탈북동포들을 초청한 것은 이번 14기 LA평통이 처음이다. 탈북자 지원회의 김동진 목사는 “지원금은 식품을 구입해 탈북자 가정에 전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평통의 박철웅 부회장은 “탈북동포들의 애로사항을 종합해 한국과 미국정부에 적절한 수단으로 건의할 방침”이라고 약속했다.
LA평통의 탈북자 초청간담회는 지난달 22일 임원회의에서 LA지역 탈북한인 지원 사업을 올해의 주요 사업 중 하나로 정하고 앞으로 탈북한인들을 위한 다각적인 지원사업을 펼치기로 한 일환이다.
우선 초청간담회를 통해 탈북동포들과 LA평통의 교류 채널을 정례화해 탈북한인들이 LA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활동을 벌인다는 방침이다. LA평통의 션 이 운영간사는 “LA에 거주하는 탈북동포들을 위한 교류의 장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탈북동포 김철-김정희 부부 ‘유향순대’ 성공 사례
조미료 없이 20가지 속배기 함경도 전통순대 인기












 ▲ 김철-김정희 부부
코리아타운에 있는 ‘유향순대’(954 S. Norton Ave LA, 올림픽과 노턴 코너)는 탈북동포인 김철, 김정희씨 부부가 운영하는 순대 전문식당이다. LA에 약 100명의 탈북동포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들 중 자영사업을 시작한 사람은 김 씨 부부가 유일하다.
지난 2008년 탈북동포 마영애씨 부부가 코리아타운 8가에 ‘평양순대집’을 잠깐 운영하다가 그만 둔 이후, 함경도 전통 순대 맛을 자랑하는 ‘유향순대’가 태어났다.
유향순대가 문을 연 것은 지난 1월이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잘 몰랐으나, 실제 찹쌀 등 20여가지가 들어 간 진짜 순대를 먹어 보고 나서 입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가 이제는 단골들이 많이 생겼다.
무엇보다 비린내 없는 졸깃졸깃하고 고소한 순대 맛에 멀리서도 찾아온다. 어떤 손님은 앉은 자리에서 두 접시를 먹고 “우리 집 사람에게도 주고 싶다”면서 ‘투 고우’를 주문했다. 어린 아이들도 아빠 엄마와 함께 맛있게 순대를 먹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김씨 부부는 “우리 유향순대에서는 절대로 미원을 사용하지 않고 각종 양념으로 맛을 낸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무엇보다 김씨 부부는 LA코리아타운과 미국 식당에서 수년간 음식을 만든 경험이 풍부해 한인동포들의 입맛을 맞추는데 자신이 생겼다.
‘유향’이란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문구에서 따왔다고 한다. ‘보석처럼 귀한 향기를 내는’ 음식을 손님들에게 선사하고픈 심정에서다.
순대는 함경도가 전통적으로 유명하다. 북한 땅에서 굶주림으로 동포들이 죽어 나가도 장터에서 순대는 인기를 모았다고 한다. 부인 김정희씨는 북한에서 살 때 음식 솜씨가 남다른 어머니 밑에서 배웠고, 북한군 복무시 순대로 유명한 함경도에서 복무하면서 ‘함경도 진짜 순대’를 많이 시식했다.
그녀는 함경남도에서 10년간 군복무를 하면서 방송요원으로 활동하면서 여기저기를 다니며 음식을 맛보았다. 특히 함경남도는 원래 순대가 유명한데 시장 같은 데서 순대를 먹으며 즐겼다는 것이다. 고소한 함경도 순대는 코리아타운에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 식당 메뉴를 함경도 진짜 순대로 정했다.
김씨 부부는 식당 자리를 찾다가 지난해 옛날 ‘아리랑’ 식당 자리가 적당한 가격으로 나와 선뜻 계약했다. 식당을 시당국에서 만족할 때까지 모조리 뜯어 개선했다. LA시에서 실시하는 개축허가위생검사, 내부시설 검사 등등에서 지적을 받고 개선하다보니 개업은 생각보다 4~5개월이 늦어졌다. 지적 사항을 고치는 만큼 비용은 자꾸 들어갔다.
거의 15만 달러가 더 들어갔다. 김씨 부부의 식당 개업은 탈북자 출신으로 미국 온지 10년도 안됐지만 그 동안 이들 부부가 얼마나 열심히 미국생활을 해왔는지 잘 알려주는 증거다.
함경북도 출신인 남편 김철씨는 북한에 있을 때 중앙당 5호 관리소 소속으로 일본, 중국인 상대로 무역을 했다. 그가 1993년 러시아에 외화벌이꾼으로 파견되었을 때 탈북을 결심했다.
외국을 다니면서 “내가 지금까지 속아서 살았구나”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북한 공산정권에게 속은 것이 너무 분했기 때문이다. 탈북해 한국 땅에 처음 들어와서의 인상은 충격을 받을 만큼 한국이 아름답고 풍족해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온 것 같았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김철씨는 죽기 살기로 열심히 일했다. 탈북동포들과 함께 ‘대관령식품’이라는 회사도 차리고 식당도 운영했었다. 그리고 다른 탈북자의 소개로 같은 탈북동포인 김정희 씨를 만나 결혼도 했다. 2000년 탈북한 김정희 씨는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다 김 씨 부부는 2002년 다시 미국으로 오게 됐다.
미국에 왔으나 언어라는 새로운 장벽이 또 생겼으나 그에 굴하지 않고 김철씨는 유명한 유흥도시인 라스베가스 등을 돌며 미국인을 상대로 일본 생선초밥을 만드는 스시맨에 도전하기도 했다.
이후 식품회사, 전기회사, 양말회사 직원을 거쳐 호텔에서 손님들의 자동차를 주차해주는 주차원으로도 일하는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부인 김정희씨는 계속 한국식당에서 일하면서 두 사람은 ‘미국은 열심히 하고 능력만 되면 누구라도 자기사업을 할 수 있는 나라’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남편 김철씨는 식당을 열 때 많은 동포들이 이자도 받지 않고 돈을 빌려주며 영어가 필요할 때는 통역도 해 주는 등 너무 많이 도와주었다고 고마워했다.
아직 이익은 안 나지만 그래도 손님들이 음식 맛있다고 하니까 힘든 줄 모르겠고 내 손으로 돈을 벌었다는 생각에 저녁에 돈을 세는 재미가 아주 좋다고 환하게 웃는다. 이들 부부의 앞으로의 희망은 이 식당이 잘 돼서 돈을 많이 번 다음 순대뿐 아니라 여러 가지 한국음식은 물론 일본식 초밥 등을 다루는 초대형 식당을 운영해 여러 인종들이 함께 가족처럼 즐기는 것이다. 


주문 예약 : 323-934-5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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