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통상부 FTA ‘엉터리 번역’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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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통상부(장관 김성환)가 세계적인 망신거리로 전락했다. 이른바 ‘상하이 스캔들’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데 이어 설상가상 이번에는 여러 국가들과 맺은 조약을 엉터리로 번역해 국가적 망신을 샀다. 로이터 통신은 ‘이상한 뉴스’(Odd News)라는 제하 해외토픽에 본국 외교통상부의 번역 오류 사태를 다루기도 했다.
본국 외교통상부는 ‘고등어’를 ‘삼치’로, ‘참조기’는 ‘조기’로, 그리고 ‘갯가재’를 ‘닭새우류’로 번역하는가 하면 ‘텔레비전’을 ‘레비젼’으로 ‘공작기계’를 ‘공자기계’로 잘못 표기하기도 했다. 또 ‘짧은 외투’를 ‘카코드’로, ‘역학 서비스’를 ‘피부의학 서비스’로, ‘이식’을 ‘수혈’로, ‘자회사’를 ‘현지법인’으로 멋대로 해석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최고 엘리트 부서라고 하는 외교통상부의 번역 실력이었다. 일반적인 정부 발간물이라도 문제가 될 마당에 외국과 맺은 협정 조약 문서를 이처럼 마음대로 번역한 것이다.
이번 한국과 유럽(EU)간 FTA조약문서의 한글조약 번역오류는 단순 실수로 보기에는 문제가 많다. 외국과 맺은 조약은 국가의 이익은 물론 명운이 걸리는 관계이다. 단어 한 글자에 따라 국익이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FTA를 둘러싼 갈등으로 홍역을 치른 것도 모자라 중요 문서에서 200개 이상의 오류가 무더기로 발견됐다는 것은 이적행위나 다름없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성진 취재부기자>



유력 통신사인 로이터 통신이 해외토픽을 다루는 ‘이상한 뉴스’에서 지난 5일 ‘한국이 번역 수정을 위해 한국과 유럽(EU) 무역 협정문(FTA)을 철회하다’라는 제하의 보도를 내보냈다. 기존 국회에 제출한 비준동의안을 철회하고, 오류를 수정한 새 비준동의안을 보내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이상한 일로 해외토픽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G-20회의를 개최했다고 자랑한 한국의 국제적 망신이다. 과거 외교통상부에서 조약과 출신의 한 전직 외교관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사건”이라면서 “외교통상부의 총체적 기강해이와 공직자의 사명감을 실추시킨 결과”라고 단언했다. 그는 “외교부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번 일을 두고 미국이 FTA 비준 추진에 한국정부를 신뢰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면서 “외교부 공직자들은 애국심과 사명감으로 무장해야 하고, 책임감과 자부심을 지니고 근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FTA 비준도 비상


한-EU FTA 비준이 ‘번역 오류’라는 난기류를 만나면서 한-미 FTA 비준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는 한-EU FTA가 4월 안에 국회를 통과해야 목표했던 7월 발효가 가능하고 한-미 FTA 비준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야당이 “번역 오류 등을 심층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한-EU FTA의 처리는 한-미 FTA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부와 여당은 한-EU FTA가 통과되면 미국 의회 역시 한-미 FTA 처리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한-EU FTA 통과로 유럽 상품이 한국에서 경쟁력이 높아질 경우 미국 상품이 상대적으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EU FTA 처리가 늦어질 경우 미국도 조급함이 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야당도 바로 이 점을 노리고 있다. 한-EU FTA 통과를 최대한 늦춰야 한-미 FTA 비준을 늦출 수 있고, 한-미 FTA를 내년 대선 이슈로 활용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만약 한-EU FTA는 쉽게 통과시키고, 한-미 FTA만 반대할 경우 ‘반미주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국회 외교통상위는 번역 오류를 수정한 비준동의안이 12일 제출되면 13~14일 공청회를 열어 심사를 벌일 예정이다. 외교부는 조만간 국회가 곧 있을 4··27 재보궐선거 운동에 돌입할 가능성이 커 더 조급해하고 있다.
외교부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4월 통과가 무산될 경우 EU와 약속했던 7월 발효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EU와의 신뢰가 깨지고, EU 회원국 간의 협의가 추가로 필요해 연내 발효조차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EU 의회는 이미 한-EU FTA를 비준, 우리 측 비준을 기다리는 상태다. 이 관계자는 또 “그렇게 되면 미국 의회도 한국이 FTA에 준비가 안됐다고 판단해 한-미 FTA에 더욱 부정적으로 기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이 세계적으로 선거철임을 들어 한-EU, 한-미 FTA 모두 연내에 통과하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프랑스가 모두 대선이 예정돼 있어 보호무역주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통상교섭본부(본부장 김종훈)는 EU측과 한-EU FTA의 비준동의 시한을 올 6월 30일까지로 잡고, 7월 1일부터 잠정발효하기로 구두 합의했다. 그러나 당초 시민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가 지적했던 160여 개의 오류보다 훨씬 많은 200여 곳 이상에서 한글번역오류가 발견돼 문제가 됐다.
한-EU FTA 협정문의 한글판 오류로 인해 이미 3번의 국무회의와 3번의 국회비준동의안 제출, 2번의 비준동의안 철회 절차라는 극히 ‘이상한 절차’를 거쳤지만, 이번에는 본문에서까지 오류가 확인됨에 따라 비준동의안을 다시 국회에서 철회하고 또 다시 국무회의를 통과시켜 국회에 4번째 제출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한-EU FTA의 번역오류를 확인하면서 수정된 협정문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는 이상, 민의의 전당인 국회가 이를 확인시켜야하는 책무를 부담할 수밖에 없다.
국회 내에 설치할 검증위원회는 정부(통상교섭본부)의 신뢰성을 검증함과 동시에 다시는 이 같은 국익침해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한 것이며, 동시에 국민적 불신을 해소하고, 협정문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국회에서 비준동의도 받기 전에 EU측과 한-EU FTA 비준동의시한을 6월로 구두합의하고, 7월 발효를 약속하는 등 국회의 권능을 무시하는 위헌적인 외교행위를 한 것으로 야당의 비난을 받고 있다.




검증 맡은 로펌 의혹


이번 사태는 번역 오류 뿐 아니라 문장을 마음대로 재해석한 사항도 포함됐다. 한-EU FTA에 규정된 품목별 원산지 기준 가운데 완구류 및 왁스류의 원산지 기준과 관련해 영문본 협정문에서는 역외 산 재료 허용비율이 50%이지만, 국문본에는 각각 40%, 20%로 번역됐다.
지난해 1월 발효된 한-인도 CEPA의 이행요건 제10.5조 제1항 협정문 영문본에는 ‘협정에 합치하는 방식으로’라고 적혀있지만, 국문본에는 ‘협정에 불합치하는 방식으로’라고 표기된 적이 있었다. 전혀 반대되는 내용으로 둔갑한 것이다.
통상교섭본부가 국회에 다시 제출한 한-EU FTA 비준동의안에도 여러 오류가 발견됐다. 대표적으로 외국건축사 자격취득자와 관련된 규정에서 영문본에는 없는 ‘5년 실무수습을 한’이라는 문구가 한글본에 포함된 사실이 지적됐다.
애초부터 자격요건을 규정하지 않았는데 한글본에는 집어넣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결국 통상교섭본부는 EU측과 FTA 협정문 한글본의 일부 오류를 정정하기로 급히 합의해야만 했다.
통상교섭본부에 120여명, 국제법률국에 30여명의 전문 인력이 있음에도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문제의 한-EU FTA 협정문 한글판 번역에 대해 각 분야별로 법무부, 농수산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 내의 각 부처가 소관업무별로 나누어 2차 검증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물을 토대로 국내 굴지의 로펌(A)도 확인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 관련부처는 물론, 로펌(A)도 단 한 건의 오류도 찾아내지 않은 채 형식적인 절차만 거쳤으며 문제의 로펌(A)은 수 천 만원의 수임료까지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검증 작업에는 외교통상부가 또 다른 로펌(B)에게 의뢰를 해서 몇 가지 오류를 더 찾아냈다고 하지만, EU와의 최종 검증협상 때에는 문제의 A로펌이 EU측 대리인으로 나와 비엔나 협약에 따른 조약정정절차(§§79)에 참여하는 등 용납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자신이 번역오류를 전혀 발견해 내지 못 했던 A로펌이 이번에는 상대방의 대리인이 되어 정정작업에 참여한 것이다. 이런 결과는 누군가에 의해 일이 꾸며지고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FTA 협정문의 번역 오류가 잇따라 터져 나옴에 따라 민간 전문가가 포함된 민관 합동의 위원회를 구성해 한-EU FTA, 한-미 FTA 등 비준을 앞둔 통상조약 전반의 번역 작업을 철저히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이번에 또 다시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한-EU FTA 비준안은 국무회의 의결 3번, 국회 제출 3번, 철회 2번을 거치는 초유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
번역 오류와 관련해 김황식 국무총리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포함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론에 대해 김 본부장 본인은 “자의적으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며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없음을 밝혔다.
외교부는 먼저 통상교섭본부 내의 전문 번역인력들이 자체 재 검독을 실시하고 동시에 법률회사 등 외부 전문기관에도 재 검독을 맡기기로 했다. 이와 함께 온라인 국민 의견 접수를 통해 외부비판도 최대한 수용한다. 재검독을 통해 번역 오류가 발견되면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에 따라FTA 상대국과의 외교공한 교환 등을 통해 이를 정정할 방침이다.
통상교섭본부의 한 관계자는 “지금껏 나온 번역 오류들은 협정문의 실질적인 내용을 수정하는 ‘개정’이 아니라 착오를 바로잡는 ‘정정’ 수준”이라며 “몇 달이 걸리더라도 이번 기회에 한글본 오류를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한편 2007년 2월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서 작성한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 비준 동의안 검토보고서를 보면 총수입액의 25%를 ‘총수입액의 10%’로, 식물위생을 ‘식물위행’으로, 말레이시아를 ‘말레이사아’로, 당사국을 ‘당상국’으로 잘못 표기해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당시 외교부는 “한글본과 영문본이 충돌하면 영문본이 우선하기 때문에 법적 해석에는 문제가 없다”고 해명해, 우리 국회는 물론 영어 해독 능력이 없는 국민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문제가 됐다.
비준안 처리과정에서 외교통상본부의 기강해이와 관료주의, 엉터리 준비 등이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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