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훈의 클릭! 세상만사 “정치인이 장수하는 한국의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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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 씨가 며칠 전 어떤 TV 예능프로에 출연했습니다. 10여분 남짓의 짧은 대담에서 그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단짝 친구 코미디언 배삼룡 씨 얘기를 하면서 눈가가 촉촉해지더군요.

“…마지막 병문안 때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는 그 친구한테 간절히 부탁했지요. 어서 떠나라고… 어서 가라고…. 몇 년째 병수발 하느라 고생하는 그 친구 딸이 하도 가엽고 불쌍해서…”

친구의 부탁을 뿌리칠 수 없었던지 배삼룡은 얼마 후 정말로 갔습니다. 비실이의 영혼은 생전에 무대에서 보여주던 ‘게다리 춤’을 추며, 백수풍진(白首風塵)의 이 세상 공연 모두 끝내고 그렇게 훌훌 떠나갔지요.

어서 가라고 재촉한 말 빚이 마음에 걸리는지, 구봉서 씨는 요즘 날이 갈수록 비실이가 그립고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다며 또 목이 잠겼습니다.

<임춘훈 – 언론인, 전 KTE사장>
 
막둥이 구봉서와 비실이 배삼룡은 26년생 동갑내기로 50여년을 무대 안팎에서 함께한 한국 코미디계의 양대 산맥입니다. 구봉서의 올해 나이가 만 85세, 배삼룡의 향년이 84세니까 함께 장수의 복은 누린 셈이지요.

한국의 희극배우-코미디언 중엔 요절한 사람이 유독 많습니다. 60∼70년대 희극무대를 주름잡던 서영춘, 이기동, 백금녀, 양훈, 양석천 등은 거의 40, 50 고개를 넘지 못하고 타계했습니다. 배삼룡, 구봉서 외에 환갑상 받아먹고 떠난 유명 코미디언은 62세에 별세한 이주일 정도입니다.

미국 코미디의 황제라는 밥 호프는 지난 2003년 타계할 때 나이가 100살+2개월이었지요. 밥 호프처럼 세계의 유명 희극배우나 코미디언 중엔 80∼90살 이상 장수한 사람이 많습니다.

각국에서 발표되는 직업별 수명 통계를 보면 문화 예술 연예계 인사들의 수명은 대체로 긴 편이고, 연예인 중에서는 특히 코미디언의 평균수명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남을 웃겨야 하는 직업인 희극배우는 뇌 속에 알파파가 넘쳐나고 엔돌핀이나 엔케팔린 같은 생명 호르몬의 분비량도 많아, 현대의학의 장수 이론으로는 오래 사는 게 당연하지요.

헌데 왜 한국의 코미디언 중엔 80∼90 넘어 천수를 다하는 사람이 드물까요? 별로 웃을 일이 없는 나라의 웃을 줄 모르는 국민을 웃겨야 먹고 사는 그 직업의 치열성- 엔돌핀 보다는 아드레날린 분비를 엄청 더 촉진 시키는 살인적인 스트레스가 희극인들의 장수 DNA를 단명 DNA로 바꾸는 유전인자 변이(變異) 탓이 아닐까, 생뚱맞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후쿠시마보다 여의도가 위험?

며칠 전 인터넷을 뒤지다 가장 최근에 나왔다는 한국인의 직업별 평균수명 조사를 읽었습니다. 원광대 보건복지학부 김종인 교수팀의 조사인데요. 63년부터 2010년까지 48년 동안 언론에 난 3215명의 부음기사와 통계청의 사망 통계자료 등을 바탕으로, 한국의 11개 직업군별 평균수명을 비교 분석한 연구입니다.

연구팀은 직업을 종교인, 연예인, 정치인, 교수, 고위공직자, 기업인, 예술인, 체육인, 작가, 언론인, 법조인 등 11개 그룹으로 분류했습니다.

결과를 보면 48년간 전체 직업별 평균수명은 목사 승려 신부 등 종교인 80세로 가장 높았고, 이어 정치인 75세, 교수 74세, 기업인 73세, 법조인 72세, 고위공직자 71세, 연예인과 예술인 각각 70세, 체육인 작가 언론인 각 67세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세상적인 욕심 번뇌 다 내려놓고 살아야 하는 신부나 승려 같은 종교인이 장수하는 건 당연하겠지요. 헌데 염량세태(炎凉世態)의 근심 걱정 몽땅 떠 짊어지고 날마다 선 불 맞은 노루 뛰듯 살아가는 한국의 정치인들이 만수무강의 복까지 누리고 있는 건 또 하나의 ‘생명 패러독스’이고 대한민국의 불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 정치인들의 모진 생명력은 독성 스트레스 호르몬인 아드레날린도 막아내는 강한 내성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장수 이론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사람이 한 시간 동안 화를 내면 80명을 죽일 수 있는 독소가 뿜어져 나온다지요.

이 같은 이론대로라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안에서는 300여명의 ‘맹독성’ 금배지들이 모여 앉아 언필칭 국사를 논하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매일같이 싸우고 부수고 미워하고 화내며 이들이 뿜어내는 독성물질은 얼마나 될까요? 산술적 계산으로는 80×300=24,000입니다. 한 시간에 2만4000명을 죽일 수 있는 독소를 뿜어낸다는 얘기가 되지요. 일본의 후쿠시마보다 한국의 여의도가 오히려 위험물질 방출량이 더 많은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필 최단명 직업인이 언론인과 글쟁이(작가)일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 최단명 직업 두 개를 함께 가진 모진 팔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평생 언론쟁이를 하다 늘그막에 글쟁이를 하고 있으니, 벌써 북망산 끝자락에 누워 썩어가고 있어야 할 육신이 기적 같이 이렇게 살아 숨을 쉬고 있는 셈이네요.
 
아! 손학규, 엄기영, 최문순

앞으로 1주일 후 한국에서는 4.27 재보선이 열립니다. 국회의원 3명, 도지사 1명, 기초단체장 6명, 광역의원 5명, 기초의원 23명 등 모두 38명의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입니다. 관심의 촛점은 강원도지사와 분당을, 김해, 순천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모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1년에 두 차례 정도 각종 보궐선거와 재선거가 치러집니다. 까다로운 선거법과 각종 비리 등으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은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 시장 군수와 도지사 등을 새로 뽑는 선거지요.

보궐선거는 근대 민주주의의 본고장이라는 영국에 많습니다. 재보선이 거의 연중행사로 계속 열리지요. 영국의 재보선은 조용하고 평화롭게 철저히 지역일꾼을 뽑는 정치축제로 치러집니다. 보궐선거로 국회의원 몇 명 바뀌는 일이, 옆집의 바람난 이혼녀가 새 보이 프렌드 바꿔치는 사건만큼의 관심도 끌지 못하지요.

보궐선거 때마다 ‘대통령의 중간평가’니 ‘다음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이니 ‘사활을 건 총력전’이니 ‘물러설 곳 없는 배수진’ 같은 맹랑살벌한 구호가 난무하는 나라는 한국뿐입니다.

그 밥에 그 나물 격인 실답지 않은 국회의원 두 세 명 뽑는 일이 어떻게 대통령 중간평가가 되고, 차기 대권의 전초전이 되는지, 미국의 선진정치를 직접 체험하고 있는 이곳 교포들은 모두 의아해 합니다.

이번 보궐선거를 사활을 건 여야 전면전으로 판을 키운 사람은 누가 뭐래도 단연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입니다. 임기 1년짜리 국회의원 하겠다며, 그는 분당을 보궐선거에 직접 뛰어들었지요. 일찍이 그는 광명-종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이번 분당을 출마는 각기 다른 지역구에서의 세 번째 도전입니다.

2300년 전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지만, 국회의원 하겠다고 세 번씩이나 집을 옮긴 것은 ‘아사리판’이라는 한국 정치판에서도 보기 드문 진기록입니다.

여당의 박근혜와 상대할 야권 대선주자 1순위인 손학규는 한나라당 본거지라는 분당을에서 당선돼도 별로 얻을 게 없고, 낙선돼도 별로 잃을 게 없는 처지죠.

1년 후 대통령 선거에 나서겠다는 야권의 거물이 “사활을 걸고… 배수진을 치고”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단기필마로 뛰어든 이 만패불청(萬覇不請)의 수(手)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좀체로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강원도 도지사 보궐선거에 눈을 돌리면 시청률이 ‘애국가’ 수준인 저급의 ‘MBC 청백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MBC를 가장 래드칼한 편파 왜곡 방송으로 만든 장본인인 전직 사장 엄기영과 최문순이, 각각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간판을 걸고 피터지게 싸우고 있습니다.

엄기영은 광우병 촛불시위를 유도한 사태로 한나라당 정권에 의해 강제퇴진을 당한 인물입니다. “정권이 어떻게 언론사 사장을 퇴진시키느냐. 끝까지 싸우겠다”고 버티다가 절치부심하며 쫓겨났지요. 당연히 그는 야당의 러브콜을 집요하게 받았지만 “언론인으로 끝까지 남겠다”고 스타 앵커 출신의 얼굴값을 하는 듯 했습니다.

헌데 한나라당의 그 몹쓸 천적들과 슬그머니 손을 잡더니 “강원도의 발전과 강원도민의 행복을 위해서”라며 여당으로 백기 투항해 들어갔습니다.

최문순은 한국의 국회의원 중 친북반미 성향이 뚜렷한 좌파 정치인입니다. 이념성과 투쟁성이 가장 강하다는 MBC 노조위원장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엔돌핀을 자극해준 공로로 부장급에서 서너 직급 뛰어올라 사장을 한 사람이지요.

천안함 사태 때 그는 국회의원 중 가장 앞장서 북한 입장에 맞장구를 쳐줬습니다. 아마도 그는 지금도 자다가 “천안함은 이명박…” 어쩌구 잠꼬대를 할 위인입니다. 접적(接敵) 지역 탓인지 전통적으로 보수우익 성향이 강한 강원도 도지사 선거에 최문순 같은 사람이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사건이라면 사건이겠지요.

후쿠시마 방사능처럼 여의도 상공에 맴돌던 독성물질이 보궐선거 바람을 타고 지금은 강원도의 하늘에, 분당의 상공에까지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의 ‘날 쉼’에서 뿜어져 나오는, 1시간에 80명을 죽일 수 있다는 그 맹독성 호르몬 말입니다. 정치인들이 두 번째로 장수한다는 대한민국의 비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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