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훈 칼럼]법조계 ‘쓰리 고’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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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오렌지 카운티 최초의 한국계 항소법원 판사인 이영(리차드) 판사의 취임식에 다녀왔습니다. 샌타아나 수퍼리어 코트에서 열린 취임식에는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LA카운티, 오렌지카운티의 행정부 및 사법부 인사 등 500여명의 하객이 참석해 이 판사의 취임을 축하했습니다.
리차드는 내 처조카입니다. 이곳 최초의 한인 연방검사로 일하다 슈워제네거 주지사의 마지막 고위직 임명에 픽업돼 판사 법복을 입게 됐습니다. 성품이 착하고 수연(粹然)한 리차드에게 터프한 검사 직업은 왠지 불편해 보였습니다. 그래선지 친정집 장손인 그 애를 유달리 아끼고 사랑한 내 아내는 ‘이 영 판사’의 취임을 누구보다 기뻐했습니다.
올해는 우리 부부의 미국 타향살이가 시작된 지 35년째 되는 해 입니다. 태어나서 한국서 산 날과 미국서 산 날이 엇비슷해 지네요. 앞서거니 뒤서거니 미국으로 이민 온 형제들이 내 쪽에 둘, 아내 쪽에 넷, 모두 여섯 가정입니다.
부모를 따라 낯선 이곳에서 미국 시민으로 살게 된 2세가 열한명, 이들이 낳은 3세가 열네명, 2세의 배우자가 아홉명, 모두 합해 46명에 이르는 대 이민 가족이 꾸려졌습니다.


내조카 이영 OC판사


2세중에는 판사, 변호사, 목사, 교사, 회계사, 약사, 의사 등 師자나 士자나 事자 돌림 직업을 가진 아이가 여덟명이고, 교수, 쉐리프, 은행원, 자영업 등에 종사하는 아이가 여섯명입니다. 취업 박람회를 열 정도의 다양한 직종이지요. 우리한테 시집 장가온 in-law들 중엔 타인종 아이들도 많습니다.
한국계와 백인계 외에 중국계, 태국계, 캄보디아계, 유태계의 사위 며느리들이 우리와 한 가족이 됐습니다. 이 애들만으로 모의 유엔총회 하나쯤 거뜬히 만들 정도지요.
다인종 사회인 미국에서 한국인만큼 결혼 순혈주위를 고집하는 인종도 아마 없을 겁니다. 이런 것을 ‘flesh & blood’라고 하던가요. 자식이 결혼 적령기가 되면 부모들은 무조건 한국인 사위 며느리를 찾느라 목을 맵니다. 십수년전 북가주의 어느 마을에선 금지옥엽 키운 두 딸이 모두 흑인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겠다고 떼를 쓰자 엄마가 실제로 목을 맨 사건도 있었습니다.
내 아들은 대학 다닐 때 고교동창생인 한국인 학생과 데이트를 하고 한인교회 목사님 딸과도 연애를 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원하면 자기는 꼭 한국인과 결혼하겠다고 ‘충성 맹세’도 해 녀석이 효도한번 화끈하게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헌데 어느 날 아들애가 결혼하고 싶다고 데려온 상대는 금발에 갈색 눈을 가진 유럽계 미국 처녀였습니다.
아들이 그렇게 무참히 배신을 때릴 줄은 꿈도 못 꿨던 우리 부부의 낙담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북가주의 어떤 엄마처럼 목을 매는 대신 백인 며느리를 받아들이기로 우리는 마음을 추스렸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이와 비슷한 갈등과 체념과 화해의 통과의례를 거쳐 우리 형제들은 타인종 사위 며느리를 Korean family로 받아들였지요.
이영 판사의 짝 캐롤도 중국계입니다. 한국인 밀집지역인 오렌지카운티 항소법원에 최초의 한국계 판사가 탄생한건 동포사외의 큰 경사입니다. 집안 자랑 같아 쑥스럽지만 우리 형제의 2세 피붙이 중에 ‘판사 영감아이’가 나온 게 개인적으로 엄청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올곧고 따뜻한 성품을 지닌 리차드가 계속 ‘최초 시리즈’를 이어나가 최초의 미합중국 한국계 대법원 판사까지 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재벌 2세의 폭력과 맷값


한국에서는 요즘 사법개혁 문제로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이 시끄럽습니다. 국회 사법개혁 특위가 심의를 시작한 변호사법 개정안,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안, 대법관 증원안 등을 놓고 벌이는 판·검사와 변호사의 밥그릇 싸움이 가관입니다.
강남 법조 타운과 교도소 쪽에 운 없게도 볼일이 많은 돈 없고 힘없는 민초들이 내뱉는 푸념 중에 ‘쓰리고의 저주’ 라는 게 있습니다. ‘변호사는 (수임료) 바가지 씌워 조지고 검사는 허구헌날 불러내 조지고 판사는 (재판날짜) 질질 끌어 조지고’라는 뜻입니다.
며칠 전 참으로 고약한 재판 하나가 있었지요. 1인 시위를 벌이던 근로자를 흠뻑 두들겨 패고 맷값이라며 2000만원을 준 혐의로 구속재판을 받아오던 M&M사 대표 최철원이라는 친구가 2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1, 2심 판결이 6개월 만에 모두 끝난 초고속 재판이었지요. 최철원이 콧노래 부르며 감옥을 나설 무렵 이번에는 검찰이 맷값 폭행 피해자를 잽싸게 기소했습니다. 법원과 검찰의 짜고 치는 고스톱 솜씨가 절묘하더군요.
폭력제벌 2세를 풀어주며 재판부는 ①피고가 이미 사회적 지탄을 받을 만큼 받았고 ②피해자와 합의를 했으며 ③구금일수가 너무 길어졌다는 등의 구차한 이유를 둘러댔습니다. 최철원이 석방된 날 <미디어 다음> 아고라에는 하루 동안 재판부를 성토하는 댓글이 1,066개나 떴습니다.
‘누리꾼 수사대’의 별도 수사결과도 발표됐습니다. 이에 따르면 최철원을 감옥서 빼내기 위해 구성된 재벌가의 호화 변호인단 5명중엔 항소심 재판장(양현주 부장판사)과 사법 연수원 동기이며 ‘절친’인 전직 판사 한명이 끼어있었다지요.
“질질 끌어 조지는” 판사의 저주를 “빨리빨리 끝내주는” 판사의 은총으로 둔갑시킨 것은 바로 돈과 빽, 그리고 그 나라에선 일상화 돼 있는 사법권력의 ‘양심 불량증’입니다.
어떤 누리꾼이 지난해 10월에 있었던 최철원의 맷값 폭행 현장을 보다 생생하게 재구성해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그날 가여운 탱크로리 기사는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합법적이고 비폭력적인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지요. 죄가 될 것이라면 사무실 출입문 쪽을 막고 시위를 해 업무방해나 교통방해를 했다는 정도였습니다.
먹고 살겠다는 생계형 시위를 벌이던 이 사람을 끌고 들어가 최철원은 야구 방망이 세례를 퍼부어댔습니다. “엉덩이가 피멍이 들게” 때리고도 성이 차지 않아 피해자의 입안에 휴지까지 쑤셔 넣고 “얼굴을 샌드백 삼아” 무자비하게 폭행 했다지요.
공포에 질려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실신할 때까지 계속 패고는 맷값이라며 2000만원을 던져줬다는 게 검찰 발표와는 별도로 누리꾼들이 사건현장 상황을 추적해 폭로한 조폭 재벌 2세 폭력사건의 전말입니다.
야구 방망이로 이렇게 사람을 패면 미국에서는 그 방망이가 살상무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최철원이 미국 검찰에 기소됐다면 살상무기를 이용한 폭행이나 최악의 경우 살인미수혐의로도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6개월 징역살다 랄랄라라 콧노래 부르며 세상살이 다시 나설 일이 아니지요. 내 조카 이영 판사한테 가상 판결을 한번 부탁해 보고 싶네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사법부조차 몹쓸 천민자본주의의 아포리아에 애이불비(哀而不非) 무하지증(無何之症)으로 골병들어 가고 있는 나라.
우리 가족의 2, 3세 아이들과 특히 다른 나라 출신 사위 며느리들에겐 끝내 쉬쉬하고 싶은 내나라 우리 조국의 일그러진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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