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훈 칼럼]박근혜 임자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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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5년이 끝나가던 무렵, 한국에서는 한편의 단편소설이 화제를 모은적이 있습니다. 문예전문지인 <문학동네> 2007년 봄호에 실린 신예작가 백영옥씨의 작품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입니다.
작가는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는 누리꾼들의 재치어린 말장난을 모티브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하지요. 주인공 김호봉씨는 만성 변비환자인데 “요즘 가슴이 아프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며 가슴팍을 칩니다.
백수건달인 동생이 “형님, 변비면 똥구멍이 아파야지 왜 가슴이 아파요”라고 묻자 그는 “그것도 노무현 때문”이라고 주절대며 가출을 합니다. 주인공의 아내는 딸애한테 서울 대학에 꼭 들어가야 한다고 다그치지만 연예인이 되겠다며 딸은 성형수술에만 미쳐있습니다. 서태지, 이승엽이 서울대 나왔느냐고 앙앙불락 대들자 속 터진 엄마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 한탄하며 넋을 놓지요.
노무현 대통령의 잇단 기행(奇行)과 난정(亂政)에 질려 사람들이 힘들고 팍팍한 일상을 살아가던 시절입니다. 국책기관인 국립국어원은 그 무렵 신조어 모음집을 펴냈는데 “놈현(노무현)스럽다”라는 인터넷 유행어가 이 모음집에 실렸습니다.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을 주는데가 있다”는 뜻으로 풀이가 됐지요.
놈현스러운 현직 대통령이 동네북이 되자 일부 지식인과 논객사이에서는 ‘노무현의 기를 살려주자’는 일종의 안티테제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자. 자극할수록 그는 더욱 엇나간다. 국민이 차라리 항복해 주자.’ 어떤 이들은 New years resolution(새해결심)으로 담배 끊기 대신 ‘대통령 욕 끊기’를 결행했다는 우스개 얘기도 들렸습니다.



장안의 장삼이사(張三李四)와 인터넷 누리꾼들이 외쳐대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 함성을 끝내 귀 막고 외면한 사람은 물론 노무현 대통령 자신입니다. 그는 임기 종반 지지율이 20%대로 곤두박질치자 모든 게 ‘몽매한 국민 탓’이고 ‘몹쓸 야당 탓’이라는 듯, 집권말년을 이른바 ‘대못박기’라는 오기의 정치로 밀어부쳤습니다.
18대 대통령 선거가 코앞인데 60억 원이라는 국민혈세로 정부부처 기자실에 통폐합이라는 ‘대못’을 박았지요. 이병완 비서실장등 참여정부 실정의 주역인 참모들에게는 청조·황조 훈장을 주렁주렁 달아줬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도 정부 고위직 임명을 강행했습니다.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고위인사 발령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자 “계속 그런 식으로 소금을 뿌리면 고위직 인사를 무더기로 더 하겠다”고 몽니를 부렸습니다.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그는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로 낙향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자신과 친인척들의 비리의혹이 연이어 터지자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지요.
그날 새벽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리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래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고 놈현스럽지 않은 장절(壯絶)한 최후 고백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박근혜의 ‘미친 존재감’

여당에 참패를 안긴 한국의 4.27 재보선 결과를 놓고 “이게 다 MB때문이야”라는 볼멘소리가 여권 일각에서 불거져 나오고 있습니다.
양극화와 물가고, 부동산 가치 폭락과 전세 대란 등 이명박 정권의 경제실정이 보수중산층의 반란으로 이어져 한나라당에 궤멸적 패배를 안겨줬다는 분석이지요. ‘이게 다 MB때문’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이라도 나올까봐 신경이 곤두 선 걸까요? 이명박 대통령이 재보선 이틀 후 작심한 듯 한마디 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남의 탓을 많이 한다. 그런 사람들 성공하는 것 못 봤다.”
제85차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한 말입니다. ‘이명박 탓’ 입에 올리지도 말라는 으름짱이겠지요. 이명박 대통령도 요새 아주 놈현스러워졌습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이번 분당 보선에서 51%, 최문순 후보 역시 강원도지가 선거에서 51%를 득표해 꽃가마를 탔습니다. 패배한 한나라당의 강재섭 후보는 2.7%, 엄기영 후보는 5%의 박빙의 표차로 패배했지요.




선거의 여왕이라는 박근혜가 분당과 강원도 지원유세에 나서줬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요? 불수다언(不須多言) 두 한나라당 후보가 이겼으리라는 게 내 생각입니다. 박근혜의 적극지지자 중 상당수는 이번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고 투표자중 일부는 한나라당 후보 대신 민주당 후보 쪽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근혜는 친이명박계인 강재섭, 엄기영, 김태호(김해을) 후보의 승리를 내심 달가와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지요. 승리가 확실치 않은 선거에 몸을 담갔다가 결과가 여의치 않을 경우 자신이 입게될 정치적 내상(內傷)을 이악스레 계산했을 수도 있습니다.
경제가 아니라 분열입니다. 한나라당 참패의 원인을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어법을 패러디해 표현하면 “문제는 너희들의 분열이야, 이 한나라당 바보들아…”입니다.
야당이 단일후보로 치고 들어오는데 멍청한 집권세력은 친이계와 친박계, 당과 청와대, 당과 내각, 친이계도 이재오계와 이상득계, 청와대 참모들끼리도 네편과 내편을 가르며 굳세게 정치적 세포분열을 이어 갔습니다.
당도, 청와대도, 박근혜도 제발 아는 척도 하지 말아달라며 외롭고 고된 나홀로 선거를 치러 승리한 김태호 경남지사 당선자의 어마지두 분투는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박근혜계가 나섰더라면 이명박계 표가 떨어져 나가고, 이명박 계가 나섰더라면 박근혜계 표가 떨어져 나가 김태호는 아마 낙선했을 지도 모릅니다.
이번 4.27 재보선을 계기로 박근혜의 존재감이 다시한번 확인된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 존재감이라는게 요즘 애들이 즐겨쓰는 ‘미친 존재감’ 류(類)의 사후공명(死後功名)같은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박근혜의 지지율은 30~40%, 한나라당의 지지율도 그와 엇비슷합니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10~20%, 손학규 대표의 지지율은 그보다 못미치는 10% 정도입니다.
박근혜가 ‘대세’인 것 같지만 당과 그녀 모두 60%정도의 안티 혹은 유보층 유권자를 상대해야할 처지입니다. 4.27 선거에서 박근혜 표의 이탈로 한나라당이 참패했다면 다음 대선에 박근혜가 여권대표로 나설 경우, 그때가서는 범 이명박 표의 상당수가 투표 불참이나 야당후보 지지로 돌아서 박근혜한테 망외(望外)의 패배를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박근혜가 지금같은 불통과 자만과 배타의 리더쉽을 대선때까지 끌고간다면 말입니다.
선거공학적으로만 보면 박근혜는 이번 재보선에서 민주당 손학규 후보의 당선만큼은 어떻게든 저지해야 했습니다. 반박(反朴) 성향이 강한 강재섭을 골탕먹이려다 그는 손학규라는 야권 최강의 bigwig을 2012년 대선에서 만나야 할 자충수를 두고 말았습니다.
손학규가 분당에서 전사했다면 박근혜는 유시민이라는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를 만났을 수도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손학규는 학력, 경력, 민주화 운동 스펙 등 대선후보의 자질과 품질만으로는 박근혜보다 상품(上品)이라고 인정하는 국민이 많습니다. 고학력 지식층일수록 선호도가 높고 견고합니다. 박근혜의 반면교사(反面敎師)는 이회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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