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훈 칼럼]엄기영과 스칼렛 엄의 ‘엄처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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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 (언론인)

‘엄처구니’를 아시는지요? 엄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면 바로 엄처구니가 된다네요. 한국의 4.27 재보선 직후 인터넷에 떠도는 이바구들을 모으다가 ‘엄처구니’라는 재미있는 신조어 하나를 건져냈습니다.
다름 아니라 엄기영 얘기입니다. 이번 재보선의 3대 빅매치 중 한나라당이 승리를 낙관한 곳은 바로 강원도지사 선거 하나였습니다.
엄 후보의 낙선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지요. 여론조사에서도 엄 후보는 민주당 최문순 후보한테 줄곧 리드를 지켰습니다. 지상파 메이저 방송의 간판뉴스 앵커가 선거에 나서 낙선한 적은 그동안 한 번도 없었다지요. 이른바 앵커 불패 신화입니다. 헌데 이 신화가 무참히 깨졌습니다.
엄기영은 MBC의 메인뉴스인 <뉴스 데스크>의 앵커를 장장 13년이나 했습니다. 한국 방송사상 최장수 기록입니다. 사장까지 하고 물러난 후 그는 여당과 야당 양쪽에서 끈질긴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6개월마다 치러지는 재보선에서 그는 늘 영입 0순위의 블루칩 예비정치인 이었지요.
엄기영이 잘 생긴 외모에 부드러운 화술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훈남’스타일이라면, 상대인 최문순은 투박한 외모에다 말투와 성격까지 거칠고 직선적인 ‘까칠남’ 스타일 입니다. 둘 다 MBC사장을 했지만 10년 이상 앵커로 국민적 호감과 인지도를 높인 엄기영에게 강성 방송노조위원장 출신 최문순은 애초 상대가 안 되는 듯 했습니다.
지난 2년 동안의 의정활동에서 보인 최문순 의원의 친북-좌편향적 이데올로기 노선도 보수적인 강원도 유권자들의 정서와는 동떨어져 보였습니다.
헌데 선거 막판 대역전극이 벌어졌습니다. 몇 차례 진행된 지역방송의 TV토론이 ‘말의 달인’ 엄기영과 ‘싸움의 달인’ 최문순의 운명을 가른 겁니다.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져 찾아낸 누리꾼들의 선거분석 글을 보면 방송토론은 화려하고 귀족적이며 방어적인 엄 후보가 질박하고 서민적이며 공세적인 최 후보한테 끌려 다니다 판정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엄기영 후보는 앵커시절 몸에 밴 습관 탓인지 방송 MC처럼 토론에 나선 반면 최문순 후보는 쟁점의 핵심을 파고드는 예리한 감각과 집요함으로 토론을 유리하게 이끌어 갔다고 합니다.
온실의 화초 같은 엄이 들판의 잡초 같은 최의 질긴 생명력 앞에 두 손을 든 셈입니다.


최종원의 막장 정치

최종원이라는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있습니다. 지난해 7.28 재보선에서 금배지를 단 10개월짜리 초짜 의원입니다. 이 최종원이 요즘 여의도 막장 정치의 떠오르는 별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난달 재보선 때 그는 엄기영 저격수를 자임하며 강원도 지사 선거유세에 뛰어들었습니다.
투표 다음날 중앙일보가 ‘대한민국 선거사상 최악의 저질발언’으로 개탄하며 사설까지 쓴 최종원의 막장발언을 일부 인용해 보지요.
“… 이명박이 지금까지 어떻게 3년 반이나 대통령을 해왔나 짚어보니까 개판이다. 대통령으로서의 자질도 능력도 모자란 아주 몹쓸 사람이다. 그 형 이상득이 지 동생 대통령 시켜놓고 고향에 1조원이 넘는 돈을 갖다 퍼부었다. 그 대통령의 마누라라는 사람은 더 하다. 대통령 집구석이 하는 짓거리가 전부 돈 훔쳐 먹고 마누라도 돈 훔쳐 먹으려고 별짓 다하고 있다. …”
최종원은 엄기영한테는 이런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얼굴은 빤빤하다. 머리에 든 것이 없다. 작가가 써준 것만 평생 읽다가 보니까 입만 방긋방긋 웃으면서 살아온 게 엄기영의 인생이다…”
바로 이대목이 엄기영 후보한테는 아픈 비수가 돼 꽂혔습니다. TV 토론에서 의외로 고전하며 때로는 동문서답까지 하는 엄 후보를 보면서 많은 유권자들은 ‘저사람 그때 그 엄기영 앵커 맞아?”하고 고개를 저었다지요.
최종원은 가는 데마다 “얼굴만 반반하고 머리에 든 게 없고, 남이 써준 글만 평생 읽고 살아온 엄기영…”의 지적 콘텐츠 부족을 물고 늘어지는 사악하지만 영리한 지원 유세로 패색 짙던 선거판세를 뒤집어 놓는데 한 몫을 했습니다.
최종원은 조연급 중진 탤런트 겸 배우 출신입니다. 강원도 태백공고를 나와 탄광에서 일한 적이 있는 실제 막장 광부 출신이기도 하지요. 국회 상임위에서 출석할 때 가끔 삼각산 도사 같은 기이한 복장에다가 머리엔 빈라덴 처럼 회교식 터번 비슷한 모자를 쓰고 나타납니다.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윗몸을 거의 90도 가량 오른쪽으로 기운 일명 ‘오만방자 패션’으로 눈요깃감이 되기도 하지요.
최종원의 ‘대통령과 그 마누라’ 발언은 미국 같으면 의원 자격정지나 제명정도의 중징계를 받을 수 있는 사안입니다. 한나라당이 검찰에 고발하고 국회윤리위에 제소한다고 하지만 그가 어떤 제재나 법적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여의도 의사당 전체가 막장 소굴이니 누가 누구를 탓하고 징치(懲治)하는 것 자체가 노루잠에 개꿈 꾸는 헛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4.27 재보선은 한국의 선거사를 새로 쓸 작지만 의미 있는 단초를 제공한 선거인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의 텃밭인 분당에서 야당이 승리하고 노무현의 안마당에서 친노 단일후보가 고배를 마시고, 30년을 이어온 방송앵커 불패신화가 감자바위 고장 강원도에서 끝장을 봤습니다. 유권자들이 이제는 당보다는 인물, 인물보다는 자질, 말보다는 정책을 보고 한 표를 찍는 보다 열린 세상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가고 있는 청신호로 받아들여집니다.
내년 4월 총선에서는 경상도에서 민주당 당선자가 나오고, 전라도에서 한나라당 당선자가 나오는 이변 아닌 이변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요.
얼굴만 빤빤하고 머리에 든 게 없는 사람은 뽑지 말자고 목청을 돋운 최종원 의원의 막장 선거유세가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의 정치 발전의 작은 모퉁잇돌 하나를 얹어 넣는 꼴이 됐습니다.


LA 한인회의 ‘막장쇼’

LA엔 지금 두개의 한인회가 있습니다. (헌)한인회와 (새)한인회입니다. 1년 동안 한인회가 둘로 갈라져 서로 삿대질을 해대고 마침내는 재판정까지 싸움을 끌고 갔습니다. 한인회라는 것은 원래 최종원 의원의 어법을 흉내 내자면 “머리에 든 것 없는 사람들이 모여 악머구리 끓듯 싸우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곳”입니다.
한인사회의 대표기관으로 동포들의 지지와 신뢰 속에 봉사라는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적은 유감스럽게도 거의 없습니다.
30대 회장까지 이어져 왔지만 한인회가 둘로 갈라져 1년 동안이나 파행을 빚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글자 그래도 ‘막장 한인회’입니다. 이번 주 두 한인회가 다시 하나로 재통합하는 작업이 매듭을 짓게 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스칼렛 엄 회장의 독선독주에 반발해 새한인회를 출범시킨 박요한 회장 측이 상당한 양보를 한 모양입니다. 박요한은 물러나고 그 대신 자기 측 인사 15명을 엄 씨 한인회 이사로 들여보낸다는 게 양측 협상의 주요 골자인 것 같습니다. 두개 한인회를 다시 합치는데 필요한 조건으로 제시된 게 고작 감투 나눠 쓰기라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자, 박요한은 물러나는데 스칼렛 엄은 어떻게 될까요? 함께 물러나겠다는 낌새조차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그럭저럭 1년을 더 즐길 모양입니다. 엄 여사의 감투본색이 무하지증(無何之症)입니다. 엄 씨지요? ‘엄처구니’없는 일이 한국의 강원도에 이어 LA에서도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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